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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포발 서울행 완행열차

정일웅 찻집 2007. 7. 15. 23:43
 1. 목포발 서울행 완행열차
작업내용


  아직 제목 없는 자서전



1. 목포발 서울행 완행열차



1944년 음력 2월 18일.

아이를 낳으려는 아낙내의 진통소리가 방안에서 간간이 흘러나왔다. 동네 아낙들과 나이 먹은 이웃 아낙네들의 수군대는 소리가 창호지 밖을 비집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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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다! 심써!"
"쬐까만 더 힘써!"
"올채! 올채! 쬐까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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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한 여인의 처절한 몸부림과 긴장과 초조함이 온 방안에 퍼져 터지려할 즈음

'아------ㄱ 응- 아-------ㄱ ㄹ ㄹ'

우렁찬 고고성(呱呱聲) 소리가 방안의 긴장을 찢었다.

"오매! 오매! 아들이네 ! 이내기 떡(宅)! 고추 달고 나와 부렀어!"
"워매 잘 히부렀네!" "참말로 잘 혔네 또 딸낳더라먼 ?T기날뻔 힛는디 참말로 잘 히부렀네!"

"인자 아들 낳??게 아녜아부지가 쬐끔 잘 히줄랑가 몰르겄네"
"하이고 말도 말어! 지금 딴짓거리 허고 댕기는 참이라 지 새끼낳는 지도 몰르잖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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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나는 부유한 가정에서 엄마의 고통과 시집살이에는 아랑곳없이 이 집에 같이 사는 많은 고모들과 친척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포동포동 살이 오르고 잘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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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2월 20일 아낙내는 또 하나의 아이를 출산하였다 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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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2월 어느 날
평생처음 기차를 타 보았다.
야간 열차 -- 영문도 모르는 채 겨울밤 야간 열차에 나는 태워졌다.

확성기에서 코맹맹이 소리가 들렸다.

'서울행 발차----'

기차가 덜커덩거리며 어둠속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깨진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무척 차가웠다.

마을 뒤 철도길로 기차가 지나갈 때 꼬맹이 들은 기차소리를 흉내내었다.

목포놈은 밥만먹고 똥만싼다 목포놈은 밥만먹고 똥만싼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목포놈은 밥만먹고 똥만싼다 목포놈은 밥만먹고 똥만싼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메주냄새 나는 담요로 몸을 덮고 기차 의자에 앉아 알 수 없는 전주라는 곳으로 가고 있던 나는 여섯살이 되던 때의 이른봄이었다.
돌이 지난 어린 딸은 순하여서 때 맞추어 젖만 물려주면 보채지 않고 잠을 잘 잤다.


기차는 꼬습게 흔들대며 연신 '목포놈은 밥만먹고 똥만싼다'고 외치면서 달리고 또 달렸다.

나는 콧구멍 속으로 들어오는 기차연기 냄새가 맛있게 느껴져서 기차가 굴 속으로 들어 갈 때는 숨을 더 크게 쉬었다.
불안과 알수 없는 공포, 뭔가가 나의 몸 속에서 빠져나가고 나를 감고 있는 어떤 보호의 끈들이 하나 둘 풀려나가는 허전함과 끊임없이 반복되는 기차소리와 규칙적으로 덜컹거리는 흔들림에 꿈처럼 밀려오는 피로와 졸음이 눈꺼풀을 덮게하면서 엄마에게 기대어 살살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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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이~리~~! 여기는 이리역입니다....
와당탕 쇠붙이 부딪치는 소리와 쇠바퀴를 제동하는 금속성 마찰음이 귀를 찢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일렁이며 움직였고 엄마는 나를 걸리고 동생을 업은 채 밤바람 휭휭부는 벌판같은 곳에 내렸다.

칠흙같은 밤
여기저기 전깃불이 높다란 지붕 아래서 노랗게 비치고 있었고 수많은 군중은 무더기 무더기 움츠리고 앉아서 서울발 여수행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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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꽥~~~'소리를 지르며 어둠속에서 시꺼먼 괴물이 나타나 커지면서 닥아왔다.
대가리에선 시꺼먼 연기를 풍풍 내뿜으며 허연 입김을 찍찍 땅에 내깔기고 '치익! 치익!' 소리를 내며 기차가 멈췄다.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나와 아기를 업고 보따리를 든 엄마는 다시 괴물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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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부터 유아 시절의 끝까지 까마득한 기억의 잔영을 더듬어 보면
나의 전주에서의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전주에로의 이사는 그 동기부터 뒤틀리고 참담한 고통의 세월의 예고였고 모든 행복이 끝을 알리는 신호였다.
나는 포동포동하던 유아 시절의 젖살이 말라깽이로 변하게 되고 고모들의 사랑과 맛있는 먹거리와 따뜻한 방바닥과 영원히 이별한 채 어둡고 험준한 생의 질곡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