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의 천사에게서 받은 편지와 답장
글을 한편 보냅니다.
제가 사는 이야기예요.
늘 건강하세요.
신림의 봄
전북 고창군 신림중학교
교장 이정애
정년 일년을 남기고 교장 발령이 났다. 가까운 곳이기를 기대했는데 통근하기가 어려운 고창군이어서 낙심이 되었다. 하지만 신림중학교로의 발령은 내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더 큰 계획에 의해 인도된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지막 일년을 아쉬움 없이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신림중학교는 전주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전남과 가까운 곳에 있고 전체학생수가 스물일곱명이며 교사 여덟명이 근무하는 아주 작은 소규모 학교이다. 학생들은 순박하고 인사를 잘하며 교사들도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많이 사랑을 해주어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따스함이 넘치는 학교이다. 학생들의 학력수준은 낮은 편이고 결손가정이 많지만 쾌활하고 의젓한 학생들도 많이 있어 마음에 들었다
통근거리가 멀어 길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관사에 들어가 생활하면서 주민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관사는 운동장 너머,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외진 곳에 있었다. 옆에는 가족묘지가 있고 황토밭이 이어져 있는 곳으로 혼자 생활해도 좋을지 망설여졌다. 그래도 들어가기로 결정하였다. 그동안 사용하지 않아 수리하느라 3주 정도 통근한 후 관사로 이사했다. 이사라야 자취하는 정도이니 차로 몇 번 짐을 옮기었다.
관사에 들어간 날 방문에 ‘사랑 감사 기쁨’을 써서 붙이니 관사분위기도 새로워지고 나 자신도 기분이 산뜻해졌다. 교직원을 불러 간단히 집들이를 하면서 함께 ‘사랑으로’를 불렀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중략)’ 라는 노랫말이 가슴으로 다가왔다.
저녁에 마을회관에 갔다. 면사무소가 있는 쪽은 남자와 여자 마을회관이 따로 있고 규모도 큰데 이곳 관사 옆 마을은 따로 십여 호가 있어 마을회관이 하나 있었다. 불이 켜 있고 몇 분의 할머니들이 모여 화투를 치고 계셨다. 깡통에는 동전이 가득했고 계산도 잘 하면서 재미나게 화투를 치셨다. 내 소개를 하고 함께 드라마를 보았다.
다음날 저녁에 다시 마을회관을 찾아 함께 운동하는 시간을 갖자는 얘기를 슬며시 꺼냈다. 이미 큰 마을회관에서는 요가를 하고 있었는데 이곳은 규모가 작아 강사가 오지 않는 상황이라 모두들 호응이 좋았다. 시간은 8시에서 9시까지로 정하고 운동할 수 있는 간편한 옷을 입기로 했다. 나는 덧붙여 호칭문제를 이야기했다.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정읍댁, 고창댁, 부안댁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는 불러주면 기분 좋을 이름으로 별칭을 만들었으면 해요.”
나는 집단상담에서 사용하는 별칭 짓기를 제안하고 내 별칭을 소개했다.
“저는 분꽃을 좋아해서 분꽃이라고 별칭을 지었어요.”
“나는 흑장미가 좋아, 옛날에 나보고 흑장미 같다고 했던 사람이 있는데 기분 좋더라고,”
맨 처음 흑장미님이 운을 떼었다.
“저는 채송화라고 해주세요.” 50대 중반의 아주머니였다.
“나는 튤립이 좋아. 우리 집에 튤립이 세 송이 피었는데 볼 때마다 예쁘거든.”
“튤립은 발음하기가 어려워서 안 돼. 쉬운 것으로 지어.”
몇 번 말해보더니 모두들 어렵다고 해서 민들레로 바꾸었다.
뒤이어 장미꽃, 봉숭아, 진달래가 별칭으로 만들어졌다. 81세의 가장 나이 많은 할머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생각이 안 난다고 하여 다른 분이 국화를 추천했다.
“나는 안 할래. 무슨 꽃 이름으로 불러. 다 늙어 예쁘지도 않으면서.”
가만히 구경하던 분이 자기는 이름을 짓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채로 헤어졌다. 다음날 저녁 다시 마을회관에 모였다.
“나 목련꽃으로 불러줘.”
어제 이름 짓지 않겠다고 퉁명스럽게 말하던 분이 오자마자 별칭을 이야기해서 모두들 한바탕 웃고, 별칭을 불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분꽃님, 흑장미님, 봉숭아님, 진달래님, 채송화님, 민들레님, 국화님, 장미꽃님, 마지막으로 목련꽃님.”
모두들 꽃 이름으로 불리니까 꽃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즐거워했다. 그동안 요가학원에서 배운 동작 중에서 이분들에게 맞는 조금 쉬운 동작을 중심으로 한 시간 동안 요가를 했다. 따라 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거의 어려워하고 동작이 잘 나오지는 않아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셨다.
“왼쪽으로 해야지, 그쪽은 오른쪽이잖아. 손도 이렇게 해.”
옆에 있는 사람이 틀리게 하면 일일이 지적하며 구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절대로 무리해서는 안 되셔요. 다른 사람이 잘 하는 것을 내가 못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잘못하는 것을 내가 할 수도 있어요. 사람마다 다르니까 욕심내지 말고 조금씩 꾸준히 하셨으면 해요.”
나는 무리하지 않도록 거듭 주의를 주어가며 자상하게 동작을 알려주었다. 저녁시간 쪼그리고 앉아 화투를 치면 재미는 있어도 허리가 아팠는데 요가를 하니 온 몸에 힘이 나는 것 같아 즐겁고 상쾌하다고 했다.
며칠 전이다. 2교시에 교실 순회를 하는데 음악실에서 ‘산 너머 남촌에는’이라는 노래가 흘러 나왔다. 성악실기시험을 보는 중이었다. 1학년 일곱 명이 하나씩 나와서 열심히 부르고 있었다. 큰소리로 부르는 아이도 있었지만 수줍어서 소리가 기어들어가는 아이도 있었다. 나도 들어가 노래 부르고 싶어 교실 문에서 몇 번 신호를 보냈는데 음악선생님이 알아채지 못했다. 내려왔다가 쉬는 시간에 올라가 보니 3교시도 음악시간이었다. 음악선생님이 들어오셨을 때 그 노래를 같이 불러보고 싶다고 말했다. 전체로 함께 부른 다음 자청해서 승주와 함께 앞에 나가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기에...”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아이들도 좋아했다.
관사 전기요금이 나왔다. 4월 8일까지 2710원이었다. 3월 24일에 관사에 들어갔으니 2주 정도의 사용료이다. 점심 후 농협에 가서 내고 골목길을 따라 오는데 개인택시가 들어가는 집이 있었다. 채송화님의 남편이 개인택시를 운전한다고 해서 그 집인가 싶어 들어갔다.
“대강리 마을회관에서 요가를 하는 채송화님 댁인가요?”
“채송화인지는 몰라도 요가를 하러 다니기는 해요.”
“화단에 꽃이 예쁘게 많이 피었네요. 구경해도 될까요?”
마당에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채송화님은 손자를 데리고 고창 미장원에 갔단다. 집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고 화단에는 철쭉이 피어있어 아주 보기 좋았다. 한참을 구경하다 나왔다. 여기는 임리 마을회관 소속인데 대강리로 오는구나 생각했다.
주사님이 언덕배기 밭에 상추가 너무 뵈게 나서 솎아야한다고 해서 신을 신고 나가 보았더니 큰 봉지 하나 가득 애기상추를 뽑아 놓았다. 학교 텃밭에 초록상추, 적상추가 촘촘히 났고 시금치와 쑥갓은 제대로 싹이 나오지 않아 듬성듬성 있었다. 그 옆에는 복분자가 줄줄이 심어져 있어 초록색 잎이 예쁘게 나오고 있고 조금 떨어진 밭은 나중에 고구마를 심는다고 한다. 고추와 가지, 도마도 심을 곳도 마련해 놓았다. 교직원 전체가 먹기에 충분하다. 시골학교에 근무하면서 무공해 채소를 먹을 수 있는 혜택이 주어져 좋았다.
수업시간에 돌아다니다 보니 3학년 성열이와 현우는 책상에 엎드려 누워있었다. 이 아이들은 특수아들로 공부를 따라가기가 어렵다. 현우는 방과후학교에 참여를 하지 않고 성열이는 참여해서 그 시간만이라도 나와 함께 공부하려고 8교시에 성열이를 교장실로 불렀다.
“야! 성열이 머리 깎았구나. 멋진데.”
“어제 집에 가면서 깎았어요.”
“어디에서 깎았는데. 고창에 나갔냐?”
“임리에서 깎았어요.”
“아버지가 돈을 주셨어?”
“아니요, 내 용돈 모은 것으로 깎았어요.”
“용돈을 얼마 주는데”
“만원 주는데 이번 달에는 까먹지 않고 모았어요.”
“잘 했구나. 머리 깎으니까 정말 멋지다. 아침에 교장실에 와서 나에게 보여주지 그랬어.”
성열이는 머리를 덥수룩하게 하고 다녀서 신경이 쓰였지만 머리 깎으라는 말을 못했다. 아버지가 돈을 주셔야 하는데 어떤 형편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성열이가 제일 좋아하는 체육선생님은 성열이를 볼 때마다 머리를 깎으라고 했다. 성열이가 자기 용돈을 아껴 머리를 깎았다는 것이 기특했다.
오늘은 ‘구름빵’이라는 그림책을 가지고 공부했다. 그림이 많이 있는 책이다. 거의 책을 읽었지만 몇 군데는 지어서 마음대로 읽었다. 노트에 써 보게 하니 받아쓰기는 못하고 책을 보면서 썼다. 쓰다가 이야기하다가 하면서 계속 집중하지는 못했다. 집에 가면 소 먹이고 못자리 준비 작업을 도와주고 나름대로 집안일을 한단다.
“볼펜이 멋지구나. 누가 사주었어?”
“엄마가 중국에서 사 왔어요.”
“새 엄마?”
“예.”
“친 엄마는 안 만나보냐?”
“명절 때만 가요.”
“왜 엄마와 헤어졌는데. 아빠와 싸웠냐?”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명절 때 산소에 가는 거예요.”
“그렇구나, 내가 잘못 알았네. 그럼 새 엄마가 중국 사람이냐?”
“예.”
나는 성열이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새엄마를 얻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새로 중국계 여자를 엄마로 맞이했나보다. 중국 엄마도 잘 대해준다고 한다. 한참 쓰다가 쉬는 시간이 되어 둘이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이 서서 밀기놀이도 했다. 성열이는 세게 밀지 못했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져 2대1로 내가 이겼다. 성열이의 산뜻한 얼굴이 보기 좋아 사진도 찍어주었다. 자연스런 표정을 지으며 기분 좋아했다.
하교 후 관사에 와서 솎음 상추를 다듬어 일부는 씻고 일부는 관사 옆 마당에 심어 보았다. 땅이 척박하여 뿌리를 내릴지 모르겠다. 학교 밭에 있는 상추를 가져다 먹어도 충분하지만 내가 직접 가꿔보고 싶었다. 저녁은 누룽지를 끓이고 애기상추를 된장 찍어 맛있게 먹었다.
7시가 넘어 밖으로 나가 논둑길을 걸으려다가 어둑해지는 것 같아 동네를 돌았다. 마을 회관에 들려 불을 켜고 들어갔다. 뒤이어 민들레님과 전날부터 나오기 시작한 박꽃님 그리고 이름 없는 분, 흑장미님, 채송화님, 그리고 목련꽃님이 와서 요가를 시작했다. 장미꽃님은 조금 늦게 왔다. 이름 없는 분은 임리 회관에서 요가를 했다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발이 저릴 때는 요가 강사가 어디를 어떻게 하라고 이야기도 해주는데.”
“저는 요가 강사가 아니에요. 저도 배우고 있어요.”
“분꽃님은 요가를 혼자하기보다 우리와 함께 하고 싶어 이렇게 회관에 와서 하시는 거예요.”
목련꽃님이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 박꽃님과 이름 없는 분은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축에 든다. 말이 험하고 서로 싸울 듯이 이야기를 해서 아슬아슬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끼어들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지난번 팀만으로 참 좋은 분위기였는데 이 두 사람이 끼어 흐트러지는 것 같지만 이런 사람도 마을분이니까 함께 하는 일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박꽃님의 하얀 살결을 이야기하며 관심을 돌렸다.
“발이 참 하얗네요. 박꽃 같아요.”
“제 속살은 하얀 색이예요.” 말하면서 바지를 무릎까지 들어올렸다. 비록 얼굴은 햇볕에 타서 검었지만 속살은 완전 백인이었다.
끝나고 오는데 민들레님이 나에게 줄 것이 있다며 흑장미님이 준 고추장과 된장, 채송화님이 준 감식초를 주었다. 요가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이렇게 마음을 표시했다. 오히려 내가 요가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고 주민들과 함께 하는 계기가 되어 감사한데 이렇듯 선물을 받으니 황송한 마음이었다. 다음에 만나면 그들의 사랑과 관심에 고맙다고 손이라도 꼭 잡아주어야겠다.
<답장>
님의 편지를 받고
어렸을 적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었을 때 처럼
잔잔한 감동이 나의 가슴에 일고 있네요
외로운 곳에서 스스로의 외로움도 달래며 천사처럼 살아가는 그 몸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애잔하고 꿈처럼 느껴진답니다.
분꽃님!
소박한 분꽃을 닮은 당신은 정말 '분꽃'인가 봅니다.
'내향성'이란 꽃말을 가진 분꽃은
당신의 겸손과 스스로를 과시하지 않는 소박한 그 모습과 너무 닮았네요
당신의 하나님은
당신의 교직생활 마지막을 그렇게 아름답게 장식하려고 그곳에 파견하셨나 봅니다.
평생을 외로움과 싸우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모진 역경을 슬기롭게 극복한 인내와 배품의 삶
세상의 어떤 역경도 그대 앞에서는 힘없이 사그라 들고 말았습니다.
바르고 겸손하고 사랑으로 가득 찬 당신의 광채에 모든 어려움은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길을 걷는 할머니들에게
마지막 건강을 지켜주고 웃음과 희망을 갖게 하는 당신은
하나님의 천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실적에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라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거기에 가 보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모든것을 다 일러 주신다는 말씀
당신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마을회관을 꽃밭으로 만드셨읍니다.
마을 회관의 퀴퀴한 냄새를 꽃 향기로 바꾸었고
평생 찌든 고생으로 무너질 대로 무너진 할머니 들의 허약한 몸에 마지막 활기를 넣어 주시는 당신
참으로 장하고 그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지적으로 허약한 특수반 아이들에게 베푸는 따뜻한 당신의 사랑으로
그들은
한번도 받아 보지 못했던 스승의 사랑을 맛보고 살게 되었습니다.
잘나고 위대하다는 사람이 지천으로 깔려있는 이 세상
신문에 이름이 크게 나오고
방송에서 외쳐대는 위대한 사람들......
가식과 과장과 허위와 기만으로 장식한 회칠한 무덤같은 수많은 잘 난 사람들....
당신은
그 모든 것들에도 아무 관심이 없고 그들을 보는 시선도 오직 부드러운 눈길로 봐 주시며
칭찬해 주는 순진무구한 천사입니다.
아쉽게도 시간은 자꾸 흐르는군요
얼마 남지 않은 내년 2월!
당신과 헤어지는 할머니 꽃들과 특수반 아이들의 황망하고 슬픈 표정이 그려집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대 있음에 나 비록 멀리 있으나 마음 든든하고
그대 있음에 나 결코 하나님과 멀어 질 수 없음은
그대에게 머물러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그대로 이소서..........................
2009년 5월 8일 정일웅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