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최우남을 처음 만나던 날
27. 최우남을 처음 만나던 날
임실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경이었는데 나는 집에 가방을 놓고 바로 학교를 찾아갔다.
학교는 이미 방학을 하여 텅 비어 있었고 교무실의 조개탄 난로 가에 일직교사와 교감선생님 교무주임선생님 그리고 낯이 익어 보이는 젊은 여직원이 새로 부임하였는지 맑은 목소리로 웃으며 그들과 말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 여인이 이제 막 행정직을 시작하여 교육청과 ‘청웅초등학교’를 거쳐 우리 학교에 전근하여온 '최우남'양임을 알았다.
그녀의 명성은 짧은 근무기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의 입줄에 오르내릴 만큼 명랑하고 능력 있고 인성이 좋은 아가씨였다.
그녀가 ‘오정리’에서 교육청 쪽으로 출근할 때 읍내에서 ‘오정리’ 방향으로 가는 출근하는 나와 길에서 가끔씩 만나던 오동통하고 귀여운 아가씨였다.
그녀가 바로 난로 가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 있었다.
"여! -- 교감선생님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햐 ! ‘정 일웅’선생 그 동안 수고 했네 잘 마치고 돌아왔는가?"
"방금 돌아와서 학교에 와 봤습니다."
"안녕하세요? ‘정 일웅’ 선생님이시죠? 새로 발령 받고 온 서무실의 ‘최 우남’입니다."
아가씨가 맑고 투명한 목소리로 나를 보며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렇게 귀엽고 예쁜 분하고 근무하게 되어 기쁩니다."
"당장 데이트 신청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네요!"
"아이! 최양! 이 사람 말 함부로 곧이듣지 마! 아무한테나 그렁게 조심혀!"
난로가의 교무주임선생님이 웃으며 ‘최 우남’에게 충고를 하였다.
"맞아! 조심혀 이사람! 노총각이라 조심혀야혀!"
교감선생님도 한마디 거들었다.
"오호라! 그래요?!, 그럼 용기 있으시면 데이트 신청을 해 보시지요!"
그녀는 한술 더 떠서 내게 말하였다.
"좋습니다.!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 기념으로 최양에게 데이트 신청을 정식으로 할까요?"
"네-! 한번 해 보시지요!" 그녀는 기가 죽지 않았다.
"그렇다면 낼 모래 26일 장날 학교에서 만나서 읍내로 데이트를 나갑시다. 정식으로 신청합니다." 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악수를 하며 말하였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약속 잘 지키세요!"
‘장 병구’ 교감선생님과 ‘최 병호’ 교무주임선생님은 재미있게 오가는 우리들의 대화를 들으며 연신 웃고만 계셨다.
알 수 없는
난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여인으로부터 받는 안도와 기쁨
그런 것이 가슴에 밀물처럼 들이닥쳤다.
'히야! 이게 웬 떡이냐? 이제 나에게 진짜 여인이 생기나보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 여인을 내게 보내 주시다니요! 정말 감사합니다.'
.....................
학교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이 가벼움은 마음에 지닌 한 가닥 기대감 때문일까?
그녀와의 약속 이후 나는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고 들 떠 있었다.
성탄미사를 하는 중에 조용히 눈을 감고 나의 데이트 신청이 큐피드의 금 화살이 되어 그녀의 가슴에 꽂혔기를 얼마나 기도하였었다.
나의 염원은 신의 마음을 감동시켰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녀는 큐피드의 마력에 이끌려 이틀간의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수많은 의구심과 야릇한 감흥에 싸여 내가 했던 그 말이 그저 농담으로 흘려버린 것이나 아닌지 하고 고민하였을 것이다.
그녀는 순진무구(無垢)하며 나는 그녀에게 정식으로 데이트를 신청한(사랑을 고백한) 첫 남자 일 것이다.
................
12월 26일 장날 아침, 그녀는 정확하게 10시에 학교에 나타났다.
9시에 출근하여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나의 눈에 그녀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그녀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상기됨을 직감할 수가 있었다.
나의 본능은 그녀의 마음의 온도를 느낄 수 있었으며 나도 모르는 벅찬 환희에 가슴이 뛰었다.
'됐다!'
'이건 서로 느낌이 상통한 거야!'
'아! ‘최 우남’! 그녀는 나의 데이트 신청을 받고 난 이후 자기도 모르게 마음 한 구석에서 모락모락 번지고 있는 사랑의 불꽃에 서서히 달궈졌던 거야!'
<사랑을 하면 경제적 여건이나 가정환경은 문제가 될 수가 없다.>
그렇다!
그녀를 일단 내 사랑의 포로가 되도록 만들어야한다.
이 여인이야말로 내가 용기를 가지고 자신 있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여인,
결혼하자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여인,
첫눈에 느낌이 확 꽂힌 여인이라고 나 스스로 단정을 내렸다.
그녀는 나의 자존심을 건드릴 만큼 부자 집 딸이 아니었다. ‘오정리’ 골짜기에 농부의 딸이다.
그녀는 공주처럼 빼어난 미모를 가지지 않았고 수수하기에 오만하지 않고 성품이 정숙하게 보인다.
나이가 어리고 순진하며 마음이 명랑하여 나의 성격과 잘 조화를 이룬다.
‘최 우남’ 그녀는 나를 위하여 이 세상에 온 여인이다.
나는 그녀와 만나기 위하여 그 수많은 여인들에게 사랑을 고백할 용기를 갖지 못하였구나!
마음이 편해진다.
이제 그녀가 나타나기만 하면 된다.
그녀는 나를 보기 위하여 틀림없이 오고야 만다.
나의 신념이 끝없이 내 자신에게 용기를 주며 그녀가 들어올 교무실 도어를 응시하고 있을 때 그녀가 온 것이다.
밤색 코트를 입고 잘 익은 복숭아처럼 발그레한 볼에 활기 넘치는 발걸음으로 또박또박 걸어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정 선생님!" 반갑게 인사하는 그녀
"안녕!.... 잘 지냈죠?"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그녀를 반겼다.
<'오늘이 바로 약속한 데이트 날 임을 잊지 않았군요'>하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자기의 책상에서 경리장부를 꺼내어 열심히 정리를 하고 있었다.
주판을 왼손으로 잡고 장부를 훑어 내려가며 빠르게 주판알을 퉁기는 모습이 마치 은행원들의 손놀림과 같이 비상하였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분이 좋았다.
한 시간 동안 그녀는 열심히 일을 하였다.
11시가 되자 그녀는 장부를 책상서랍에 넣고 열쇠를 채우고 홀연히 일어나 가방을 어깨에 메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나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그렇게 나가고 있었다.
전혀 뜻밖의 그녀의 행동.............
나는 등골이 오싹하였다.
이게 웬 일이야? 저렇게 도망치듯 달아나다니......
후다닥 일어나서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그녀는 신발을 신고 ‘오정리’ 쪽에 나있는 쪽문으로 나가려고 걷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앞질러 뛰어가 가로막았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어딜 가려고???"화가 난 표정으로 내가 말하였다.
"집에 가는 데요!, 왜요?" 그녀는 시치미를 때고 나를 비켜서 걸으려 하였다.
"아-니! 오늘 데이트 약속한 것 잊었어?"
"농담이었잖아요!....."그녀가 대꾸하였다.
"뭐라고? 이틀간 잠도 못 자면서 오늘을 기다린 사람한테 그게 뭔 소리여!?"
"어서 날 따라와!"
나는 그녀의 오동통한 손목을 잡고 교문 쪽으로 끌었다.
그녀는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고 있었다.
나의 손에 잡힌 그녀의 통통한 손목, 그 따뜻한 체온과 탄력이 너무나 좋았다.
그녀는 혼자서 집에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순순히 나를 따라왔다.
"알았어요! 갈 깨요! 손 놓으세요 누가 봐요!"
"누가 보면 어때? 애인 손잡는데 누가 뭐래?"
"애인이요!? "
"그럼!, 데이트하면 애인이지-"
그녀의 표정이 다시 밝아지며 발걸음도 명랑하게 종종거리며 나를 잘 따라 왔다.
....................
"누구한테나 그렇게 박력 있게 행동하세요?"
"박력 있는 행동이라니?"
"아니! 박력이라기 보다 막무가내 지요!"
"막무가내라니? 우린 서로가 첫눈에 반했고 그래서 정식으로 데이트 신청을 하였고 또 그것을 받아들였고 그런데 자기가 그냥 도망가려고 했었잖아!"
"첫눈에 반해요?, 누가 누구 한테요?"
"우리 둘이 서로 똑 같이!!"
그녀는 '기가 막히다'는 듯 그냥 웃기만 하였다.
우린 걸어서 읍내의 '이도리'로 나갔다.
평소 다정한 형처럼 지내는 중앙서점에 들렸다.
사장 이재식형은 우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야! ‘일웅’이 니 웬일이가? 어라! ‘최’양하고 같이 왔나?"
"오! 재식이 형! 여기는 내 애인이고 앞으로 결혼할 사이야!"
"싱거분놈 또 지랄한다아이가! ....최양! 조심허래이! "
"다 알아요! 사장님! 걱정 마셔요!"
"그긴 그렇고 어쩐 일이고 둘이서 말이다!"
그는 한참을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짓더니
"아! 참 맞다! 그제?? ‘최’양이 임실초등학교로 전근 했다카드이만 그래 만났구나!"
"그래 그렇다니까! 형!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우리 결혼할거니까 잘 좀 도와조!"
"문디- 자슥! 그래 잘 해바라마! 총각처녀니까 잘 하면 되겠네 하하하!"
"내 생각도- 둘이 오는 거 보니 깨니 참 좋아 보이네!" 형수씨도 한 목 거들었다.
"‘최’양!" 그의 부름에 그녀는 시선만 주고 있었다.
"이자슥! 이레 덜렁대도 사람 참 좋다아이가!"
‘이 재식’사장은 은근히 나를 추겨 세워주기도 하였다.
중앙서점 사장은 ‘최 우남’이 교육청에 근무할 때부터 잘 알고 있는 사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교육청 바로 앞에 중앙서점이 있었고 중앙서점에서 교육청의 각종 문방구를 납품하고 있는 관계로 더욱 자주 만나는 사이였다.
중앙서점의 ‘이 재식’ 사장은 경상도 의성 사람이었지만 천성이 부지런하고 착하고 사교적이라서 뜨내기로 임실에 문방구 상회 겸 서점을 차렸지만 아주 잘 운영하여 번창하고 있었다.
"형! 우리 데이트 나왔으니깐 시장 좀 둘러보고 나중에 다시 들릴게!"
"자! 갑시다!" 나는 통통한 손목을 잡고 밖으로 끌었다.
그녀는 순수하게 따라왔다.
"잘- 해 보거래이! 하하하! "
이 재식 형은 웃으며 우리의 뒷모습을 축복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
장날이라서 거리엔 수많은 노점상인이 길거리에 장을 펼치고 있었고 시골에서 모인 사람들이 꽤나 많이 붐비고 있었다.
"집에 엄마하고 아빠 계시지?"
"그런데 왜요?"
"아! 반찬거리 하나 사 드릴려고!"
"괜찮아요!"
"알았어 내 맘대로 할 거니까 그냥 잠자코 있기만 해!"
건어물 전에 걸려있는 마른 조기가 좋아 보였다.
"아저씨 저기 마른 조기 한 드룸 주세요! 냄새 안 나게 잘 싸서 주세요!"
비닐로 꼭꼭 싸주는 조기를 들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대부분의 상점 주인과 거리를 다니는 어린이들은 나를 알고 있었기에 인사를 하였고 나는 되도록 많을 사람들에게 우리 둘이서 걷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뻥튀기 기계를 돌리는 노인네를 한참이나 서서 바라보기도 하고 엿장수의 가위소리와 노래장단을 웃으며 듣기도 하며 시장을 누볐다.
알이 굵은 사과 한 가구를 더 사서 들고 돌아다니다 보니 점심때가 훌쩍 넘어버렸다.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돌아다녔다.
잘 아는 중국음식점 '갑원'에 들렸다.
언젠가 ‘학석 깨구락지 합창단’과 점심을 먹었던 식당이다.
주인은 학부모였으며 나의 단골집이었고 임실에서는 유명하여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집이었다.
"어서오세요 정선생님! 아이고 최양도 같이 왔네!"
"여태까지 점심도 안들고 ...배고프시겠네요!" 주인이 반겨주었다.
"아! 최양을 잘 아시네요! 여기 최양하고 나하고 이제부터 애인하기로 했어요!"
"아! 하하하 그래요? 잘 되었네요!" 농담인줄 알고 웃으며 말하는 주인의 표정이 밝았다.
구석진 방에 들어가서 밥상을 사이에 놓고 둘이서 마주 앉았다.
따뜻한 방에 앉으니 온몸이 나른하게 풀리는 것 같았다.
자장면 2개를 시켰다.
그녀의 얼굴은 잘 익은 복숭아처럼 진한 분홍색으로 부풀어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자장면이 들어왔다.
"배고프지?"
"아-뇨!"
배가 고파야 하는데 앞에 앉은 여인을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가슴이 벅차올라 식욕이 생기질 않는다.
젓가락으로 면을 비볐다.
비빈 면을 그녀에게 주고 그녀의 것을 가져다 다시 비볐다.
"어서 먹어 봐!"
그녀는 젓가락을 들다가 다시 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왜 그래?"
"제가 꼭 도깨비에 홀려 다닌 거 같아요!"
"나는 꼭 꿈을 꾸고 있는 거 같아!"
"선생님!"
"응?"
"지금 진심이세요?"
"그럼 내가 거짓 행동하는 것 같아?"
"믿을 수가 없어요 이제 겨우 두 번째 만난 거잖아요!"
"만난 회수가 문제가 아닌 거 같아! 많은 여 선생님들과 만나고 했어도 이렇게 내가 편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건 평생 처음이야! 또 우린 두 번만 만난 게 아냐! 나는 ‘최 덕자’ 선생님에게서 최 양의 소식을 늘 듣고 있었고 출근길에 자주 얼굴 마주 쳤잖아!"
"그럼 절 미리 알고 있었어요?"
"그럼! 매일 아침에 발그레한 뺨으로 내 곁을 스치고 지나칠 때마다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몰랐어!"
"..................."
"하느님이 그대를 내 곁에 보내주신 거라고 난 믿어!"
".................."
그녀의 두 손을 덥석 쥐고 '꼬옥' 힘을 주었다.
그녀의 손은 저항의 힘을 상실하였으며
나의 심장에서 타오르는 뜨거운 열정이 손과 손을 통하여 그녀의 가슴속에까지 조용히 흐르며 그녀의 심장을 태우고 있었다.
나의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빛은 그녀를 사로잡았고 그녀는 난생 처음 느끼는 남성의 뜨거운 사랑의 정염에 사로잡혀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이성을 상실하고 나의 사랑의 불길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포로가 되어버렸다.
"최양! 나는 이제 절대로 그대를 놓치지 않을 거야"
"........................."
"오늘부터 나에게서 벗어나려고 하지 마!"
".........................."
그녀는 달아오르는 뺨의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식탁을 옆으로 밀어버리고 그녀에게 다가가 강한 포옹을 하였다.
맞닿아있는 그녀의 뺨이 뜨거웠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휘어감은 나의 팔에 더욱 힘을 가하자 그녀의 팔이 나의 등 뒤로 와서 감기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도 쉽게 나에게 빠져들었다.
자장면은 먹지 못할 정도로 불어터져 가고 있었다.
....................
'똑 똑 똑' "식사 다 하셨어요?"
........................
화들짝 놀라서 우린 떨어져 앉았다.
".......아! 중요한 얘기를 좀... 하..느...라..고....요!...."
"아! 알았어요! 너무 조용 하시길래!! 미안해요....."
정신이 바짝 들었다. 하필이면 이때 이 중요한 때 주인아줌마가 뭐 하러 온단 말이냐!
얼음물을 '확-' 끼얹은 듯 슬슬 달아오르던 분위기가 갑자기 팍 식어버렸다.
.......................
"이거 어떻하지? "
나는 불어터진 자장면을 보며 말했다.
"............"
"..............."
"하하하하-"나는 불어터진 자장면을 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도 따라 웃었다.
자장면 값을 밥상 위에 놓고서 일어났다.
"자! 우리 이제 가야지! 내가 데려다 줄께! 가지!"
음식을 남겨 놓고 그냥 나갈 것을 생각하니 뒤통수가 근질근질하며 창피함을 느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하며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사과 가구(사과 9개를 넣은 대나무 제품)와 조기 봉지를 잊지 않았다.
한가한 시간이라서 주인 내외는 안방에 있었다.
"아줌마! 우리 가는 데요! 음식 값은 밥상 위에 있고요! 중요한 얘기를 하다보니까 밥도 못 먹었네요! 다음에 와서 먹을 깨요! 흉보지 마세요!!!"
"네-! 안녕히 가세요!"
나는 넉살좋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바깥공기는 매우 시원하였다.
밥을 먹지 않았어도 조금도 시장기를 느끼지 못 하였다.
나는 그녀를 냇가 둑길로 인도하여 그녀의 집에까지 같이 걸으며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과 관심 그리고 앞으로 그녀의 나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기 위하여 온갖 미사여구는 다 써가며 환심 사기에 몰두하였다.
‘이도리’에서 ‘성가리’를 지나 ‘무듬실’을 건너 학교의 후문을 통과하여 사이 문으로 다시 나와 ‘오정리’의 골목 입구를 들어섰다.
"이제 돌아가세요!"
"아냐! 오늘은 집 위치만 알아보고 다음엔 부모님께 인사를 올리고 정식으로 청혼을 할 거야!"
좁은 골목에 눈에 익은 아이들이 신기한 듯 우리를 구경하며 '선생님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하였고 길을 걷던 동네 사람들이 그녀와 나의 거동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등이 근질거림을 느끼면서 산을 향해서 난 좁은 골목길을 그녀보다 앞서서 걸어갔다.
그녀의 집은 마을의 맨 뒤쪽에 산마루에 있는 마지막 집이었다.
조그마한 초가삼간 그리고 좁은 마당, 양철대문, 헛간과 뒷간에 사랑방이 붙어있는 사랑채가 그녀의 집이었다.
집안엔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대문을 들어가지 않고 나에게 먼저 돌아가기를 권했다.
나는 벅찬 환희와 감격에 가슴이 터질 듯한 기분으로 뒤돌아서며
"잘 있어! 내일 학교에 나올 거지?" 하며 물었다.
"할 일 때문에 나가야 해요!"
"알았어 그럼 잘 있고 낼 학교에서 만나 내일은 먹을 수 있는 점심 사 줄 께!"
방학동안이라서 매우 좋았다.
.......................
방학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녀와 나는 만났다.
학교에 나오는 동료 교사와 선배선생님들도 우리 사이를 예사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1973년 1월 1일
그녀를 만나고 싶어서 일찍 학교에 나왔다.
오늘은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고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고 ‘최진사’ 댁의 막내 따님을 사랑하오니 사위 감 없으시면 이 몸이 어떠냐고 말을 하기로 결심한 날이다.
......
그녀에 대한 정보를 여기서 알아보아야 우리의 슬픈 사랑의 이야기에 공감을 더해 줄 것 같다.
또 다시 과거로 돌아가 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