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찻집 2016. 7. 6. 15:22

43. 술때문에 무너지는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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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 단 하루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모든 술자리엔 내가 끼어야 했고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실 때는 나와 같이 하기를 원했다.

나는 이와 같이 술자리에선 어느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으며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정신을 놓아버리거나 남과 싸움을 걸거나 하지를 않았다.

내가 낀 술자리의 마지막까지 남아서 술에 취한 마지막 사람을 집에 대려다 주고 맨 끝에 나 홀로 집에 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술값도 내가 내는 경우가 많았다.

친구들이 초대하여 술 마시러 갔다가도 그 친구가 취해버리면 내가 술값을 다 치르고 그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어야만 했다.

이러한 나를 싫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정말 나는 내 자신이 두렵고 이렇게 하루도 쉬지 않고 술을 마시다가는 술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끔찍한 생각에 치를 떨다가도 술기운이 가시고 저녁때가 되면 술 생각이 나고 술자리에 어울릴 사람이 없을까하며 두리번거리는 내가 되어버렸다.

학교에서는 매일 퇴근시간이 술집에 들어가는 시간이었고 술집에 가면 당구를 치러가고 당구는 제2차의 술집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고 2차는 3차로 옮아갔다.

토요일엔 언제나 학교의 친구가 아닌 사회에서 친한 친구들을 만나서 술을 마셨다. ‘안창옥이나 이의신이는 거의 매일 번갈아가며 만나게 되는 친구였고 일요일엔 성당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게 되고 학부모의 초대도 많았다.

 

<스텐드 바>가 한창 번창하여 골목골목마다 코고 작은 <스탠드바>가 없는 곳이 없었다.

커다란 공간에 벽을 타고 디긋자()로 빙 둘러 술 탁자가 있고 그 가운데 예쁜 여자가 들어 앉아 맥주를 주로 팔았다.

정종 '원 컵'이 유행하여 정종을 마시기도 하였다.

소주를 마시거나 정종을 마시거나 언제나 2차는 맥주로 이어져서 알콜이 약한 맥주는 밤 새워 마셔도 취하지 않고 소변만 자주 마려웠다.

소변을 보고나면 또다시 마실 수 있는 술 그것이 맥주였다.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1988216일 학년말 방학을 하였다.

내일이 음력으로 섣달그믐, 모래가 설날이어서 내일부터 글피까지는 일반관공서도 쉬는 날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날이다.

술꾼으로 잘 뭉쳐지는 우리 몇몇 선생님들이 우루루 몰려간 곳은 이리 텍사스 골목의 스텐드 바였다.

정종 원 컵으로 술을 시작하였다.

창밖엔 눈이 살살 내리기 시작하였다.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며 술맛을 돋군 우리 일행은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았던지....웃고 고함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 술을 마셨다.

상냥한 마담은 우리들에게 따르기도 하고 같이 마시며 젊은 사나이들의 음흉하고 느끼한 시선들을 한 몸에 받는 재미로 갖은 교태를 다 부리며 술맛을 돋우었다.

 

사내들이란 모두 속 빠진 존재들이었다.

토실토실한 마담의 손목을 한 번씩 만져보는 재미로 밤 깊은 줄도 모르고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은 안중에도 없이 술을 마셨다.

앞에 노래하는 마이크에서 노래가 시작되고 노래를 전자 오르간으로 반주하는 사나이의 반주에 맞춰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고 마담의 손을 끌고 홀에 나가서 춤을 추기도 하였다.

많은 손님들이 홀 안의 여기저기 코너에 옹기종기 모여 높은 의자에 걸터앉아 술을 마시기도하고 노래가 끝나면 다른 파트에 질세라 마이크를 빼앗아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노래가 끝나면 박수가 쏟아져 나오고 술을 또 한 바퀴 돌려가며 마시는 중에 탁자위의 빈 맥주병이 줄줄이 몇 겹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사내들의 훈김으로 스탠드바의 유리창엔 서린 김이 물이 되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창밖엔 눈이 소복소복 쌓여가고 겨울밤은 깊어만 갔다.

 

거의 자정이 되었으리라고 생각될 무렵

나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사람이 있어서 돌아보았다.

낯익은 학부형이었다.

작년에 내 반 학생의 아버지였다.

그는 이리시내에서 상당히 잘 알려진 주먹세계의 거장이었다고 들었다.

그는 처음 나를 본 이후부터 나를 무척 좋아하였으며 같이 술을 즐겨마셨다.

술이 몇 잔만 들어가면 '선생님'이란 호칭이 '형님'으로 바뀌고 깍듯이 나를 형으로 모시던 그런 사나이였다.

그는 나에게 눈을 찔끔 감아 보이며

"형님!!! 저랑 살짝 빠져 나갑시다!!!"

"???? 어디 가려고??"

"암말 마시고 걍 따라만 오세요!!"

"좋은 데 있어???"

"기가 맥힐 팅게 무조건 따라만 오세요...이 사람들 모르게요 살짝....알았죠???"

그는 나의 손목을 끌고서 비좁고 음침하고 시끄러운 틈을 빠져나와 스탠드바의 유리문을 열고서 밖으로 나왔다.

눈이 발목이 푹 빠질 정도로 수북이 쌓여 있었고 골목 안엔 아직도 펑펑 쏟아지는 눈송이가 환한 가로등에 비쳐 눈 그림자가 하얀 눈밭위에 어지럽게 아른거리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휙 얼굴을 스치고 목을 타고 가슴께로 밀려들었다.

술이 화들짝 깨고 있었다.

그는 나를 데리고 골목의 사거리 한 블럭을 지나 다음 골목으로 꺾어진 곳에 아늑한 스탠드바로 데리고 갔다.

머리와 어께의 눈을 털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얼굴이 하얗고 까만색 반소매의 원피스를 입은 깜찍하게 생긴 마담이

"~~~!!!"하면서 그의 목을 얼싸안고 매달렸다.

"!! 언니 왔냐??"

"그럼~~~!~~~누구 명령이신데~~~!"

교태를 부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사내를 자극하기에 알맞았다.

"!! 문 잠그고 밖에 간판 불 꺼!!"

그의 명령에 그녀는 밖에 간판의 불을 끄고 출입구의 커튼을 닫았다.

스텐드 바의 중앙 코너 안쪽에 그녀와 비슷한 나이의 약간 통통하고 귀여운 모습의 여인이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띠고서 우릴 맞았다.

그녀는 코너의 밑에 있는 작은 문을 앉아서 통과하여 나오며

나에게 다가와

"오머나~~!! 정말 멋지고 호탕하게 생긴 오빠다~~~! ...안녕하세요?

미스 고라고 불러주세요~~~"

"!! 너 이 형님 확실하게 책임져??"

"그럼요!~~"

"! 이렇게 아름다운 아가씨가 내 파트너가 된다구?"

나는 기분이 좋아서 큰소리로 말하였다.

"어이! 아우님! 오늘 술맛 진짜로 끝내주겠는데....."

그녀들은 디긋자로 된 코너의 안쪽으로 쪼로록 기어 들어가서 우리 앞에 마주하고 앉았다.

그녀의 긴 머리에서 은은하고 야릇한 향기가 풍겨나고 있었다.

"! 한잔씩 따르거라!!"

"아가씨도 한잔 받거라!"

"!!!"

작은 맥주 '하이네켄'한 병이 술잔 하나에 가득 부으니 텅 비었다.

"뭐 이렇게 작은 맥주병이 다 있어!!!...."나의 볼멘 소리에

"맛도 좋고 기분 좋게 취하는 좋은 맥주잖아요!!!~"

화려한 과일안주 접시와 마른안주 파인에플 통조림을 그릇에 부어온 것 ....등등 푸짐한 안주가 상위에 올라왔다.

술 한 병을 단숨에 들이 키고 우리는 왼편에 올려놓은 맥주 한 박스20병을 삽시간에 해 치웠다.

나의 등 뒤에서 한창 달아오른 연탄난로가 열기를 뿜어 조금도 춥지 않고 넓은 공간에 작은 불빛하나가 우리 4사람을 비추어주고 있었다.

"! 우리 술만 마실 것이 아니라 너!! 노래하나 불러보아라!!"

기다렸다는 듯이 내 앞의 그녀가 노래를 부르려고 일어섰다.

"분위기 깬다고 생각하지 마셔요 저는요 유행가를 잘 모르거든요!!"

.......

"물 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

'아니 이럴 수가 내가 좋아하는 한국 가곡을 부르다니....'음정도 박자도 음색도 감정도 거의 완벽한 수준의 노래를 불렀다.

나는 신이 나서 일어나 같이 노래를 하였다.

...........

"내 맘---은 외로워-----...한 없---이 떠 돌고-------벽이 오려는---지 달 빛만 차---......"

노래를 부르던 그녀도 노래를 따라서 부른 나도 듣고 있던 두 사람도 모두 만족하여 감격적인 박수를 쳐댔다.

"!!!미스고.....정말 노래 잘한다. !! 내 맘에 들어 ..!!! 사랑스런 여인아!!!....."

나는 그녀의 노래에 기분이 들떠서 횡설수설하며 신바람이 나서 저절로 노래가 터져나왔다.

"--로 미오벤 ....끄레 디 미알-...쎈자디 떼----귀일세일 꼬오르.......

맑은 그녀의 목소리가 내 목소리에 첨가되었다.

"일 투오페 델 ---쏘스피랴오 뇨---"............

그녀는 이탈리아 칸쪼네까지 원어로 하는 것이었다.

노래가 끝나고 술을 마시며 너무나 즐거웠다.

 

나의 파트너가 된 그녀는 마담의 학교 1년 선배였고 대전에서 사업을 하는 여인이었는데 그 날 하루 설을 보내기 위해서 친구를 찾아와 기분을 한 번 낸다는 것이었다.

노래하고 술 마시고 나를 초대한 친구의 구성진 뽕짝과 마담의 노래와 맛있는 안주와 그녀의 신비한 매력에 푹 빠져서 줄기차게 마셨다.

시간이 가는 것도 모르고 배가 부르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고 마냥 즐겁기만 하였다.

하이네켄맥주박스가 층층으로 싸여졌다.

나와 아우님 못지않게 그녀들의 주량이 무척 세었다.

새벽이 밝아왔다.

...............

마신 하이네켄 병이 200병이 넘었다.

.................

형님! 이제 집에 돌아가셔서 쉬시죠!!!

그의 혀는 거의 꼬부라져 있었고

나도 상당히 취기가 돌아 정신이 약간 혼미하여 짐을 느꼈다.

그가 부른 택시가 왔다.

택시에 앉은 나를 두 여인이 서서 배웅하였고 아우는 선물 상자를 택시의 문안으로 집어 넣어주었다

"설 잘 쇠시고 또 만나요.....어이 박기사....잘 모셔 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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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새워 마신 술에 골아 떨어져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