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처럼 쓸 이야기가 있는 날

나의 78세 생일잔치

정일웅 찻집 2021. 4. 2. 16:15

사실 금년부터는 나와 나의 아내 생일을 1년에 하루만 합동으로 기념하기로 약속이 됐었다.

 

서울과 대전에 살고있는 아들 식구들이 부모의 생일을 찾는다고 1년에 두번씩이나 가족들을 데리고 전주까지 내려오는 것도 번거롭고

 

나의 생일은 음력 2월 18일이고 아내는 양력으로 4월 19일인데,

나의 생일을 양력으로 보면 거의 아내 생일과 별반 차이가 없어서

아들들이 자기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나의 생일에 내려오고 

겨우 한달 정도 지나서 또 어머니 생일이라고 두번이나 내려온다는 것이 얼마나 번거롭겠는가 생각하여

몇년 전부터 부모의 생일을 통합하여 한번으로 하자는 제안을 몇 번이고 하였건만 아들들 입장에서는 그게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금년에는 미리부터 설득을 하였다.

아빠의 호적상 생일이 기록이 잘 못되어 4월 18일로 되어있고

엄마는 주민등록 생일이 4월 19일로 되어있으니

엄마의 생일에 합쳐서 한 번으로 하기로 하였다.  아들들도 수긍을 하였고 막둥이 상원이가 그 추진을 맡아서 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금년의 부모 생일잔치는 아들들의 편의를 봐서 4월 24일에 하기로 결정하였는데

갑자기

대전에 사는 둘째 인범이가 병원근무가 없는 3월 28일에 내려오겠다고 26일 아침에  연락이 왔다.

 

아빠 생일을 그냥 지나치기가 너무 미안하여 3형제 대표로 내려 온다는 것이다.

아내는 내려온다는 인범이를 막을 수가 없어서  부랴부랴 김치를 담고 준비를 하였다.

생각 밖의 내 생일을 둘째아들 식구들이 3형제 대표로 찾아준다는 것이다.

나는 기대 밖의 일이었지만 싫지는 않았다.

 

인범이, 며느리 희경이, 벌써 중 3학년이 된 승민이, 중 1학년인 다솔이가 보고도 싶었기 때문에 더욱 기뻤다.

 

오늘 성지주일 미사를 마치고 아이들이 들이닥쳐 갑자기 잔치 분위기가 되고 즐거운 식사가 되었다.

승민이와 다솔이가 생일 축사를 제법 잘 써서 낭독하고 케익에 촛불도 켜고

할머니가 준비한 음식으로 풍족한 잔치를 치렀다.

 

인범이 덕분에

내가 블로그 비밀번호를 잊어먹어서

찾아보려고 아내와 내가 별별 수단은 다하며 노력하여도 못 찾아서 

몇달 동안을 묵혀두었던 블로그의 비밀번호와 IP주소를

인범이가 십에분간 부지런히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대더니

신통하게도 찾아내어 내 답답함이 풀렸다.

그게 제일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인범이 덕분에 내 블로그에 이 글을 쓰게 되어 나의 답답하던 마음이 확 ~ 풀어졌다.

 

신생아 시절에 우리 품에서 자라던 손자 손녀가 의젖하게 성장하여 엄청 키도 크고 

중 1, 3학년이 되니 식욕이 왕성하여 고기며 통닭이며 여러가지 먹거리를 먹어대는 모습이 마치 넉 잠 잔 누에가 뽕나무 잎 갉아 먹듯한다고나 할까?

먹는 것만 보아도 마음에 기쁨으로 충만되었다.

 

아무튼 오늘은 즐겁고 행복하였다.

 

어제밤 꿈에 내가 원더맨의 망또 같을 것을 입고 하늘을 비상하여 산에 오르고 쉬익~ 내려와 성당 마당에 안착하고 또 하늘을 날아서 창공을 유영하다가 내려오는 신기하고 신나는 꿈을 꾸고 기분이 좋았는데

세번이나 하늘을 날으는 꿈...... 평생 한 번도 꾸어본 적이 없는 꿈이었고

 

그 꿈을 꾸고나서

지난 주 병원에서 맞은 나의 사경증 주사약 효과가 나타나 목이 많이 부드러워진  상태를 느끼며 기분이 좋았는데

 

아무튼 오늘은 인범이의 병원생활이 이제 중견 교수와 의사가 되었다 하고

며느리 희경이의 제가 복지 사업이 한창 번창하고 잘 운영되어서 좋다하며

승민이는 교회에서 합창단 피아노 반주의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다 하고

다솔이도 영어회화가 능숙해 졌기에 미국인과 일상 대화가 부드럽게 잘 된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나는 행복한 할아버지라는 마음에 들뜬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