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설 날
쓸쓸한 설날
나의 일생동안
처음으로 적막한 설을 맞았다.
세상을 떠 날 때
인간은 누구나 가장 쓸쓸한 고독을 경험 할 것이다.
아무도 같이 갈 수 없는 길을 홀로 떠나야 하는 것
내가 코로나로 격리 명령을 받았기에 망정이지
만일 실제로 나와 아내가 멀쩡하게 살고 있는데
찾아오는 아이들이 아무도 없다면
그 것은 정말 비참한 일일것 같다.
동요를 불러 보았다.
<설 날>
까치 까치 설 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 날은 오늘 이래요
곱고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내가 어렸을 적 부르던 설 날이라는 동요이다.>
<새해의 노래>
온-겨레 정성덩이 해돼 오르니
올-설 날 이 아침 야 더 찬-란하다.
뉘라서 겨울더러 추웁다더냐
오는 봄 만 맞으려말고 내손으로 만드세
내가 지금의 한옥마을 은행나무 골목의 은행나무 집에서 '전주 최씨 종대 집에 세들어 살 때
나의 친구 들은 '오건일' '이대희' '조선정' '강중현' '전기영' '최낙영' 뇌성마비 였던 '김관영' ......등 이었다.
암울했던 시절 6.25 사변이 끝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학교를 다니던 그 때
설날이 오면 친구들 집에 우루루 몰려 다니며 친구의 아버지 , 어머니에게 세배를
드리고 뭘 주시나 기대하며 다니곤 하였다.
돈을 몇원씩 주시는 부모님이 제일 고마웠고 먹을 것을 내 놓는 집이 그 다음이었다.
아무 것도 내놓지도 않고 그냥 절 만 받아 먹는 집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때거리로 뭉쳐다니며 새배를 한 바퀴 돌고 나서 우리들이 놀이를 시작하였다.
자치기, 팽이치기, 진또리(진 빼앗기).......육이오가 끝나고 정말 살기 힘든 세상이었지만 부모님들은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시고 맛있는 먹을 것을 푸짐하게 내 주시는 부모님들이셨다.
코로나로 인하여 나의 아이들을 아무도 못 내려 오도록 지시를 하였는데도
인범이네는 엄마 아빠의 코로나 약을 가져오느라고 어제 잠깐 다녀 갔고
오늘 오후에는 상범이네가
아영이의 알바가 끝나는 시간 오후 3시에 맞춰 ,식구들이 차에 타고 떠나서
나에게 와서 단비의 대학 입학 축하금을 받으려 오는 것이 목적이 될 것이다.
오지 않아도 보내 주려 했지만 단비가 직접 축하금을 받는 것이
단비에게는 기쁨이 더 클것이다.
세월이 빠르다.
상범이가 벌써 50살 중년이 되고 딸 들이 어느새 저렇게 자라서 결혼을 해도 될 만 한 나이가 된 것이다.
상범이의 큰딸 아영이의 나이에 나의 아내는 나와 사랑에 빠져서 스물 두 살에 결혼을 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상범이네 식구가 집에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상범이 큰며느리(김정숙) 큰 손녀 정아영, 작은 손녀 정단비.......
아영이는 인천대 졸업반인데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해 놓았고
정단비는 인하대학교 전자 컴퓨터 관련 학과에 합격을 하였다.
큰 아들 가족 4명이서 109동 1512호....아내가 마련한 별체이다.
거기서 잠을 자고 내일 아침 집에 와서 아침 밥을 먹을 예정이다.
아침 밥을 먹고 진봉 처가에 들려서 서울에 올라 간단다.
상범이네라도 와서 잠을 자고 간다하니 그래도 완전히 적막한 설은 아닌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