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찻집 2023. 5. 15. 21:30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란히 천변 산책로를 걷는다.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청춘

 

혼자서 걸으면 허전하고 자신이 초라해 보이는 것 같다.

 

아내가 묻는다

우리 둘이서 걸으면 행복해?

그럼~ 행복하지

나도 혼자 걸으면 허전 해

 

연애하던 시절

아내는 스물 두살

나는 서른 살

둘이서 임실천 둑 길을

밤에 손을 잡고 많이도 걸었다.

 

이도리에서 성가리를 거쳐 오정리까지

 

오정리 골목을 걷노라면 산으로 오르는

막다른 길까지 온다.

 

산을 오르는 길 맨 꼭대기의 초가집 

세칸짜리 본채와 작은 마당과 장독대

사랑채는

소 한마리 사는

헛간과 붙어 있는 

아늑한 산골의 마지막 집

 

잘자!

조심해서 가세요!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은 

사랑으로 넘실대는 행복이

가슴에 벅차오르고

 

내일 다시 만날 줄 알면서도

그리움에 가슴 떨리던 시절

 

결혼 한 지

오십년이 된 올 해 까지

 

잘 살아 왔다.

행복했었다.

 

가난 했던 과거의 쓰라린 아픔도

힘들었던 모든 일들이

눈이 녹고 녹은 물이 말라

촉촉한 땅이 되듯

 

기나긴 오십년이 언제 흘러갔는지

 

장인 장모님 떠나신지 기억에서 멀어졌고

어머니를  보내 드린지 벌써 까마득해졌다.

 

이제 우리가 갈 차례

 

아들 삼형제

장가들어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마음 놓고 훨훨 날아서

저 하늘 나라까지

 

우리 둘 가고 나도 

아이들은 잘 살아 가겠지

부모님 보내고서 

우리가 잘 살아 왔듯이

 

다만 한가지

내가 가고 나면  

내 아내가 

혼자 외로울 때 

때때로 눈물흘리며 그리워 해 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