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처럼 쓸 이야기가 있는 날

7대 독자 정천봉 신부님의 부친 별세

정일웅 찻집 2023. 6. 9. 21:31

나의 누님(정동자 아녜스)이 살아 계실 적에

전주 서서학동 성당에 다녔었다.

 

나는 누님이 생전에 내게 했던 말을 듣고 정천봉의 성장과정을 잘 알게 되었다.

 

거기에서 같이 레지오 쁘레시디움 활동을 하던 자매님 한 분이

외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었는데 그 아들의 이름이 정 천봉이었다.

정천봉은 7대 독자였다.

정천봉 신부님의 아버지는 6대 독자이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만 하여도 田畓도 많고 꽤 잘 사는 집안이었는데

독자 아들들이 뚜렸한 직업이 없이 대대로 물려 받은 재산을 갉아 먹으며 살았고

그 아래의 독자도

재산을 팔아서 먹고 살았고

또 그 아들도 독자여서 물려 준 재산으로 먹고 살았다.

6대 독자에 와서는 아주 조금 남은 재산마져 술집에 술값으로 다 날리고 말았으니

7대 독자인 외아들을 키우는 어머니는 얼마나 힘들고 아들의 장래가 걱정되었으리.....

(그 어머니가 나의 누나와 가깝게 지내던 같은 쁘레시디움 단원이었다.)

 

어머니의 소망은 이 아들이 고 3이 되자

그 아들을 신학교에 보내어 신부님을 만들지 않으면 아버지와 똑 같은 

사람이 되어 버릴 것이 걱정이 되어

내 아들이 신부님이 되게 해 주십사는 기도를 끊임없이 하느님께 드렸다.

7대 독자 외아들은 착하고 공부를 잘 하였다.

그래서 이 아들을 신학교에 보내려고  주임신부님의 추천서를 써 주시라고 

부탁하였으나 집안의 대를 끊는 일은 찬성할 수 없다고 거절당하였다.

 

어머니는 수십번도 더 신부님께 눈물로 하소연을 하고 졸라서 정말 어렵게

추천서를 받아서 신학교에 입학 원서를 내었고 신학대학에 합격을 하였다.

어머니의 현명한 판단과 집요한 집념으로

정천봉은 신학생이 되었고 결국 사제가 되었다

 

사제 서품식을 하는 날

그 어머니는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으니

그 감격이 얼마나 컸으리...

 

그렇게 해서 신부님이 된 정천봉 신부님이 우리 본당에 주임신부님으로 오셨을 때

나는 사목회장을 하였었다.

정천봉신부님이 오시자 

전국은 '코로나 세상'이 되었고 

나는 심장에 이상이 생겨서 '권철'내과 의사에게 상의한 결과 

빨리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서 입원을 하고 심장 검사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대학병원에서 심근 경색 수술을 받았다.

스턴트 2개를 심장 동맥에 박는 시술을 하였다. 

정천봉신부님께서는 병원에 입원 중인 나에게 찾아와 '병자 봉성체'를 영하여 주셨다.

나는 사목회장으로써 신부님과 가깝게 지내었다.

내가 그려서 보관 중이던 유화 그림 두 점을 가져 가셨다.(60호F, 20호F)

그리고 우리 집에 와서 식사도 많이 하셨다.

 

나에게 '본당가'(숲정이 성당의 노래)를 작사를 해 달라고 부탁하여 

내가 써 드린 가사를 신부님이 적당히 수정하여

작사자의 이름을 ('정 일 웅 + 정천봉)=(정 일 봉)이라고 하여

이탈리아로 연수를 떠나신 음악 특기 수녀님께 작곡을 부탁하여

숲정이 성당 본당 歌를 만들었었다.

 

그 외에도 정천봉 신부님과의 에피소드는 많이 있으나 다 기록하지 않는다.

 

오늘 장례미사에 본당의 애령회원들과 많은 신자들이 봉동의 장례식장에 갔다.

주교님 집전으로 장례미사를 봉헌하였다.

많은 신부님과 수녀님도 오셨다.

미사가 끝나고 연도를 같이 드리고 

장례식장을 나와 성당에서 해산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