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구나
어제 천변 걷기를 하고서 전신에 땀이 범벅이 되었었는데
오늘은 서일공원까지 다녀왔어도 땀이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걷는 동안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목과 팔에 감기는 바람의 느낌이 비단을 휘감는 듯
가볍고 향기로운 초가을의 향내가 나를 황홀하게 한다.
내일이 秋分....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
길었던 낮이 이젠 하루 6分정도 짧아 지기 시작하는 날이다.
금만경 너른 벌 지평선의 평야에선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장수 사과는 제철을 맞아 눈부신 빨간 피부로 물들고
고구마는 땅 속에서 굵게 살쪄가고
김장용 배추는 노오란 속이 차며 하얀 속살에 녹색 레이스 치마로 휘감기 시작한다.
무우는 땅속에서 총각 종아리 만큼 굵어지기 시작한다.
임실 고추는 탐스렇게 빨갛고 씩씩하게 발기했다.
고산 동상 산기슭에 대봉시가 탐스럽게 익어 가지가 찢어질 만큼 무거워졌다.
이제 싱싱하던 녹음이
레몬 옐로우, 옐로우, 번트 시에나, 번트 엄버, 옐로우그린, 퍼머넌트 그린, 비리디앙, 레드, 크림슨 레이크,
채도 높은 노랑과 빨강으로 나무마다 잎사귀마다. 제각각 아름다운 화장으로 치장하겠지
정읍내장산에
건지산의 단풍나무에
진안 고갯길 메타쎄콰이어 길에
주황색 비단으로 융단을 깔아 가을님 지나가시도록 길을 닦아 드리겠지
시인은 시를 쓰고
화가는 캔버스를 펴고 이젤 앞에 앉겠지
사진 작가는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폼잡고 다니겠지
정자나무 밑에 물이 흐르는 골짜기 바위위에선
가을을 노래하는 청승맞은 대금산조가 간장을 끊겠지
인생길 가을의 길목에 서성이는 나그네는
심란스런 맘으로 가을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