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아! 백내장
친목행사로 한 낮에 배구 시합을 하는 데 자꾸만 눈이 침침하였다.
손등으로 문질러도 소용이 없었다.
교실에 들어가서 회식을 하는 동안엔 눈이 잘 보였다.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고 눈에 통증이 있는것도 아니다.
안과 병원에 들려서 진찰을 받았다.
"두 눈 모두 심한 백내장에 걸려 있습니다.!"
"백내장이라뇨??? 그게 뭐란 것인데요??"
"그냥 놔두면 실명하게 되는 병이지요!"
"???????............"
'실명?'
'내 눈이 ....실명이라니!!!!'
청천벽력이었다.
정신이 혼미하여 져 왔다.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처럼
암 선고를 받은 환자처럼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절망적인 현실을 탈피할 방법이 없이 죽음의 계곡에 빨려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림을 그리는 내가 장님이 되다니
그렇다면 나의 교직 생활도 끝을 내야 한다는 말인가?
아내의 절망하는 얼굴이 눈에 그려진다.
어머니의 근심띈 얼굴이 보인다.
아직 고물고물한 아들 셋의 얼굴이 떠오른다.
...........
간호수녀로 평생을 살아온 고모 수녀님 생각이 났다.
고모 수녀님은 얼마전까지 서울 명동성모병원에 근무하시다가 울산 현대해성 병원으로 옮겼다.
명동성모병원이 안과 진료를 잘 한다는 소문을 들은 기억이 났기에
고모님께 전화를 하여 백내장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고모님은 나를 안심시키며 전화를 하여줄 터이니 안과의 과장 의사님을 만나보라고 하였다.
사진촬영과 안압 등 여러가지 검사를 마치고 수술날자를 잡았다.
'인공수정체'가 발명되어 이것을 눈 알속의 수정체와 교환하는 수술이라는 것이다.
한국에 들어온지 아직 4-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수술결과는 부작용이 없이 무난하다는 것이었다.
아내와 함께 서울에 올라가 수술을 위하여 입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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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전 공포에 질리던 것에 비하면 수술 그 자체는 간단히 끝났다.
일주일 후
심한 난시현상을 나타내며 나의 수술한 온쪽 눈이 보였다.
난시는 안경으로 교정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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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후 강남성모병원 안과에서 오른쪽 눈의 백내장을 또다시 수술하여 두 눈 모두 인공수정체로 교환하였다.
우측 눈은 수술결과가 의외로 좋아서 1년 사이에 의술이 놀랍게 발전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오른쪽 눈은 거의 난시 현상도 거의 없이 처음부터 잘 보이는 것이었다.
석달 후에 다초점 안경을 ??춰서 썼다.
나의 교정 시력은 거의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