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일웅 자서전>
풍란처럼 살아온 나의 이야기
1. 목포발 서울행 완행열차
1944년 음력 2월 18일.
아이를 낳으려는 아낙내의 진통소리가 방안에서 간간이 흘러나왔다. 동네 아낙들과 나이 먹은 이웃 아낙네들의 수군대는 소리가 창호지 밖을 비집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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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다! 심써!"
"쬐까만 더 힘써!"
"올채! 올채! 쬐까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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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한 여인의 처절한 몸부림과 긴장과 초조함이 온 방안에 퍼질 즈음
'아------ㄹㄱ 응- 아-------ㄱ ㄹ ㄹ'
우렁찬 고고성(呱呱聲) 소리가 방안의 긴장을 찢었다.
"오매! 오매! 아들이네 ! 이내기(해남 땅끝마을 예낙리의 속칭) 떡(宅)! 고추 달고 나와 부렀어!"
"워매 잘 히부렀네!" "참말로 잘 혔네 또 딸 낳더라먼 쬐끼날뻔 힛는디 참말로 잘 히부렀네!"
“그나저나 고상 않고 빨리도 낳았다. 이놈이 효자 될랑갑네 지엄미 고생 안시키고 빨리 나옹것 봉게...”
"인자 아들 낳씅게 아녜(아녜스)아부지가 쬐끔 잘 히줄랑가 몰르겄네"
"하이고 인자 사람대접 받겄재 근디 ‘아녜’아부지는 시방 으디갔당가..."
“늘쌍 바뿐사람잉게 내비 두소 술 거나허게 쵀각고 들어와 보먼 좋아허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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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고 큰 고모님께 들었다.
태어난 지 사흘 되던 날 새벽 포대기에 싸여 성당으로 갔다.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산정동 성당에서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으로 유아세례를 받았다.
한약방을 운영하며 침과 뜸으로 이름난 ‘정 봉주’할아버지는 일 년에 한 차례씩 한 달도 더 되는 기간에 전국을 다니며 ‘우두’를 놓고 다녔고 돌아오면 각지에서 모여든 환자들의 진맥과 약을 짓기에 바쁘셨다.
주일날에는 목포 산정동 성당 회장이라서 하루 종일 성당에서 살았다.
할아버지 덕에 나의 아버지는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량이 되어 백구두에 양복을 걸치고 기타를 들고 다니며 술친구들과 어울리며 마냥 행복한 젊은이였다.
나는 부유한 가정에서 엄마의 고통과 시집살이에는 아랑곳없이 이 집에 같이 사는 많은 고모들과 친척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포동포동 살이 오르고 잘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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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2월 20일 어머니는 또 하나의 아이를 출산하였다 딸이었다.
바로 내 동생 ‘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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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2월 어느 날
평생처음 기차를 타 보았다.
야간 열차 --
영문도 모르는 채 겨울밤 야간열차에 나는 태워졌다.
확성기에서 코맹맹이 소리가 들렸다.
'서울행 발차----'
기차가 덜커덩거리며 어둠속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깨진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무척 차가웠다.
마을 뒤 철둑길로 기차가 지나갈 때 꼬맹이 들은 기차소리를 흉내 내었다.
-목포놈은 밥만먹고 똥만싼다 목포놈은 밥만먹고 똥만싼다 -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
-목포놈은 밥만먹고 똥만싼다 목포놈은 밥만먹고 똥만싼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
메주냄새 나는 담요로 몸을 덮고 기차 의자에 앉아 알 수 없는 전주라는 곳으로 가고 있던 나는 여섯 살이 되던 때의 이른 봄이었다.
돌이 지난 어린 딸은 순하여서 때맞추어 젖만 물려주면 보채지 않고 잠을 잘 잤다.
기차는 꼬습게 흔들대며 연신 '목포놈은 밥만먹고 똥만싼다'고 외치면서 달리고 또 달렸다.
나는 콧구멍 속으로 들어오는 기차연기 냄새가 맛있게 느껴져서 기차가 굴속으로 들어 갈 때는 숨을 더 크게 쉬었다.
불안과 알 수 없는 공포, 뭔가가 나의 몸속에서 빠져나가고 나를 감싸고 있는 어떤 보호의 끈들이 하나 둘 풀려나가는 허전함과 끊임없이 반복되는 기차소리와 규칙적으로 덜컹거리는 흔들림에 꿈처럼 밀려오는 피로와 졸음이 눈꺼풀을 덮게 하면서 엄마에게 기대어 살살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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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이~리~~! 여기는 이리역입니다....
‘와당탕’ 쇠붙이 부딪치는 소리와 쇠바퀴를 제동하는 금속성 마찰음이 고막을 찢으며
‘덜커덩’ 기차가 멈추자 수많은 사람들이 일렁이며 움직였고 엄마는 나를 걸리고 동생을 업은 채 밤바람 휭휭 부는 벌판 같은 곳에 내렸다.
칠흙 같은 밤
여기저기 전깃불이 높다란 지붕 아래서 노랗게 비치고 있었고 수많은 군중은 무더기무더기 움츠리고 앉아서 서울 발 여수행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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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꽥~~~'소리를 지르며 어둠속에서 시꺼먼 괴물이 나타나 커지면서 다가왔다.
대가리에선 시꺼먼 연기를 풍풍 내뿜으며 허연 입김을 찍찍 땅에 내깔기고 '치익! 치익!' 소리를 내며 기차가 멈췄다.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나와 아기를 업고 보따리를 든 엄마는 다시 괴물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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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부터 유아 시절의 끝까지 까마득한 기억의 잔영을 더듬어 보면 나의 전주에서의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전주에로의 이사는 그 동기부터 뒤틀리고 참담한 고통의 세월의 예고였고 모든 행복의 끝을 알리는 신호였다.
나는 포동포동하던 유아 시절의 젖살이 말라깽이로 변하게 되고 고모들의 사랑과 맛있는 먹거리와 따뜻한 방바닥과 영원히 이별한 채 어둡고 험준한 생의 질곡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