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깨구락지 합창단①
학교에서 내게 맡겨진 사무는 관리(물품 및 학습 자료)전반과 예능교육 관계였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9월에 접어들었다.
아직도 태양은 뜨거웠으나 제법 시원한 바람이 필봉산 꼭대기에서 한줄기씩 불어오는 것이 가을을 예고하는 듯 기분 좋은 어느 날 오후다.
교육청에 다녀온 김 주사님이 공문을 한 묶음 가지고 왔다.
그 공문은 교장의 결재를 거쳐 교감이 각 교사에게 분류하여 전달되었다.
그날 오후 나의 소관으로 분류된 공문이 전달되어 그 내용을 훑어보고 있었다.
'임실군 초등학생 음악 경연 대회 개최'에 관한 것'이란 제목이었다.
공문 내용은 이러했다.
37개 초등학교 대항 독창 및 합창 경연 대회가 개최되는바
"모든 학교는 의무적으로 참가할 것이며 불참 시엔 학교장의 사유서를 제출하시기 바람"이라고 마무리되고 공문 뒤에 참가 신청서가 붙어 있었다.
나의 마음속에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내가 합창 지도를 어떻게 해야 할까 뚜렷한 윤곽을 잡히지 않았으나 일단 예능 분야를 책임진 교사로서 나 때문에 교장 선생님의 사유서를 쓰게 할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내가 공문서를 가지고 교장실에 갔을 때 교장 선생님은 책상에서 앉아 두터운 돋보기를 쓰고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 하고 불렀다.
교장실에 별로 출입한 일이 없는 나를 의아한 듯이 쳐다보았다.
"합창부를 조직해서 내일부터 연습을 시작해야겠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안경이 코끝으로 내려가고 안경테 위로 나를 쳐다보며 입이 크게 벌어져 있었다.
" 아니? 합창 부를 조직한다고?"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합창 대회에 안 나가면, 교장 선생님께서 사유서를 써야 한데요"
교장선생님은 돋보기 안경을 벗어 책상에 놓으며 말했다.
"정선생이 헐 수 있겠어?"
못미덥고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계속되었다.
"한 번 해봐야지요! 못 할 것 뭐 있겠어요"
엷은 웃음이 교장 선생님 입가에 번졌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야릇한 웃음이었다.
"알아서 혀 봐, 무리는 허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승낙 하신 걸로 생각하며 교장실을 나왔다.
먼저 합창부를 조직한다는 나의 말에 선배 선생님들은 모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고 알아서 해보라는 듯 무관심이었다.
우리 반 6학년 아이들이 남자 11명, 여자4명, 5학년이 남학생 14명, 여학생 12명, 5,6학년이 모두 41명이었다. 그러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방과 후면 곧 바로 집에 돌아가서 가사 일을 해야 하는 애들이 많았으므로 조직에 어려움이 많았다.
합창단으로 조직된 인원은 남학생 26명 여학생 15명으로 41명이었다.
연습 시간은 점심시간에 30분, 방과 후에 한 시간 씩 연습하기로 하였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 혼자서 해결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합창 연습은 나 혼자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군가 반주를 해 주어야 한다.
반주를 할 만한 교사는 윤 정자 선생님밖에 없다.
윤선생도 사실은 피아노를 어렸을 때부터 배운 것이 아니라 교육 대학에 다니면서 올겐 연습실에서 나처럼 배운 솜씨이기 때문에 능숙한 반주자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아니면 그 누구도 감히 엄두도낼 수가 없었기에 부탁하기로 마음먹었다.
부탁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공문으로 기안을 하여 계획서를 짜서 교장선생님으로 하여금 명령을 하도록 하는 방법과 다른 하나는 내가 개인적으로 부탁하여 인간적인 협조를 구하는 방법인데 나는 우선 후자를 택하기로 하였다.
그녀와 함께 서로 협조하며 내가 지휘를 하고 그녀가 반주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나의 가슴속에 뭔지 모를 찡- 하는 느낌이 일고 있었다.
망설이고 뜸을 들일 시간이 없었다.
점심시간에 그녀가 자취하는 집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것을 운동장 어귀에서 기다렸다가 같이 교실로 돌아오면서 말을 꺼냈다.
"저..! 윤선생.... "
어렵사리 말을 꺼낸 나에게 그녀는 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 합창 대회 나간다고 하셨어요?"
"....어...실은 그것 때문인데.... 반주를 좀 해줄 수 있겠어?"
그녀는 얼굴에 엷은 웃음기를 띠고 있었다.
그렇게 엷은 웃음을 머금을 때 그녀는 가장 아름다웠다.
양 볼에 살짝 보조개가 생기고 가지런한 흰 이가 분홍색의 입술 사이에서 눈부시게 반짝였다.
나는 그녀의 표정에서 승낙한다는 암시를 느끼며 나는 가슴 깊은 곳 어디에선가 일고 있는 뜨거운 전율을 감지하고 있었다.
지정곡은 5학년 교과서 맨 끝에 나오는 '술래잡기'라는 곡으로 ‘부분 3부’ 합창곡이었다.
자유곡은 앨리스 호손의 ‘희망의 속삭임’으로 정하였다.
방과‘후에 연습이 시작되었다.
4,5,6 학년 전체 학생을 4학년(윤선생 담임) 교실로 모이게 하고 발성 연습부터 시작하였다.
한마디로 발성은 엉망진창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짧게는 1,2년 길게는 3,4년씩이나 쉬다가 다니는 것이기에 남학생은 거의 대부분이 변성기에 들어서거나 이미 변성기를 지나 있었고 4학년의 꼬맹이들은 변성 전의 아이 목소리였다.
그러니 화음이 맞을 리 없었다.
아무리 곱게 소리 내라고 강요하여도 소용이 없었다.
내가 가성을 내러 가느다란 소리로 두 마디를 노래하고 따라 하면 괴상한 귀신 우는소리를 내고 나서 모두 웃어 버렸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어 비상수단을 강구하였다.
일단 각 파트의 멜로디만을 먼저 익혀서 부르게 하고 소리를 다듬은 것은 차후에 하기로 마음먹고 파트별 가락 연습에 들어갔다.
먼저 지정곡 '술래잡기' 노래부터 연습을 시작하였다
'꼭꼭 숨어라 -- 머리카락 뵐라, 꼼짝 말고 있거라 --'
4분의 2박자의 가벼운 노래를 군가보다도 더 씩씩하게 불러 대며 의기양양해 하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이틀에 걸쳐서 각 파트별 가락을 익히기는 하였으나, 막상 합창에 들어가면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이 노래의 후반부에서
'술--래--가 찾 아 다 닌 다 젊잖-- 게 뒷 짐을 지고-'
하고 소프라노 멜로디가 유창하게 흘러가는 동안에 실처럼 가느다란 알토 멜로디가
'꼭꼭 숨어라' '꼭꼭 숨어라' '꼭꼭 숨어라'
하면서 은은하게 화음을 맞춰 주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 부분에서는 흡사 여름날 가랑비 오는 밤 논바닥에서 울어대는 개구리들의 합창 소리가 되고 말았다.
반주를 하던 윤 선생도 지휘를 하던 나도 기가 막혀 그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두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그만--" "그만--" 하고 중단시키며
"얘들아 너그들 시방 그걸 노래라고 하는 거냐?"
"깨구락지들이 비오는 날 떠들어대는 소리하고 똑 같다."
아이들도 나도 웃음이 터져 나와 그칠 줄을 몰랐다.
아이들은 나와 윤선생이 웃는 모습이 더욱 재미가 있는지 책상을 치며 자지러지게 웃었다.
강수와 '영환'이는 교실 바닥에 나동그라지며
"깨구락지... 깨구락지... 우리는 깨구락지여.... "
"서.. 선 .... 선 생님은 .... 히 히 히 ... 깨구락지 대장님 이싱개벼 ....." 하며 소리지르며 웃음을 참지 못하고 교실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은 더욱 더 '갈갈' 대며 웃었고 '귀례'와 '영숙'이는 연신 눈물을 닦아 내며 웃고 있었다.
풍금 앞에 앉아 허리를 구부리고 웃던 윤선생은 얼굴이 빨개져 교실 문 밖에로 나가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기침까지 하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웃는 윤선생의 모습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그 날은 연습을 더 계속 할 수가 없었다.
..................
좋은 소리로 합창을 한다는 것은 이미 틀렸고 이 아이들에게 합창 대회에 나가 봤다는 추억이라도 만들어 주자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열심히 연습을 하였다.
나 또한 처음으로 하는 합창단의 지휘자로써 즐겁고 보람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가장 즐겁고 나를 신나게 하는 것은 합창 연습 시간에는 항상 윤선생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의 시작 신호의 손짓에 따라서 그녀는 올겐을 쳤으며 정지 신호만 보내면 바로 그쳤다.
그녀는 항상 나의 손동작이나 몸 동작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히 나타나 보였다.
그것은 아직 숙달되지 않은 솜씨로 처음 해보는 반주인지라 악보의 음표와 나의 동작을 한 시야 안에 동시에 넣으려고 눈을 커다랗게 뜨고 악보와 나를 번갈아 응시하는 눈빛이 유난히 맑게 빛났으며 약간 상기된 얼굴에 뺨은 복숭아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나의 손동작의 신호나 학생들에게 지시하는 언어를 재치 있게 간파하며 반주를 해 주었다.
학창시절 그녀는 나와 얼마나 먼 곳에 있던 여인이었던가?
항상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나로서는 감히 말도 붙여 보지 못하고 지냈던 그녀였는데 아 .........
지금 이 시간 그녀는 나의 반주자가 되어, 나와 호흡을 같이 하고, 나와 한 덩어리가 되어 합창을 지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창단의 지도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내게 큰 기쁨과 생활의 보람을 주는 것이었다.
........................
대회는 10월 7일 오전 10시 임실 제일 극장에서 열린다.
합창 대회 날 까지는 학교에 나오는 날만 하여도 열흘이 넘게 남아 있었다.
1년 내내 합창 연습만 했으면 좋겠다.
자유곡 <희망의 속삭임> 은 지정곡 보다 지도하기가 더 어렵게 느껴졌다.
특히 이 노래의 끝 부분에서 주 선율과 알토의 자락이 각각 다르게 진행되는 부분에서 그랬다.
소프라노 파트가
'소--ㄱ삭이는---ㄴ 앞날에--- 그 언야--ㄱ을---, 하고 진행되어 나가는 부분이 있는데,
처음에는 그럭저럭 단3도 화음이 어우러지다가 꼭 그 부분만 오면 엉망진창 깨구락지 합창이 되고 말았다.
며칠간을 그 부분만 집중적으로 연습을 하여 그럭저럭 맞춰 놓으면 다음날 깡그리 다 잊어버리고 또다시 새롭게 연습을 하여야만 했다.
아무튼 아이들도 나도 그리고 윤선생도 열심히 하였다.
날자는 빨리빨리 다가 왔다.
......................
10월 6일 출전 하루 전날이 되었다. 교장 교감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도 다 모셔 놓고 요새 말로 소위 '리허설' 이라는 것을 하였다.
아이들도 나도 윤선생도 사뭇 긴장된 가운데 열심히 자기 몫을 다 하였다.
노래는 예비군 훈련장의 군가를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음정은 그런 대로 틀리지 않고 제대로 불러 주었다.
조용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듣고 계시던 교장 선생님과 모든 선생님들이 일제히 기립 박수를 쳐주었고 그 동안 수고가 많았다고 격려와 칭찬을 하여주었다.
나는 좀 창피한 생각이 들어 얼굴이 붉어졌지만 아이들은 의기양양해 하며 으스대는 모습이 천진스러워 보였다.
방청객들이 모두 나가고 나서 나는 아이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였다.
"깨구락지 합창 단원 여러분! 그 동안 참말로 수고가 많았다!"
누가 치기 시작했는지 모두 박수를 치기 시작하여 모두가 '우- 우-'하는 괴성을 지르며 한동안 시끌벅적하였다.
남학생 몇 명은 '꽤륵 꽤륵하며 개구리 우는소리를 흉내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나서 말을 이었다.
"드디어 내일이 합창 대회의 날이다. 내일도 꼭 오늘같이 씩씩하게 잘 불러 주기 바란다."
말을 듣는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였다.
"내일은 깨끗한 옷으로 잘 갈아입고 여학생들은 머리 깨끗이 잘 깜고 빗질 잘 하고 ......
저기... 머리 긴 '성조', .....
또 너-!,.... '춘식'이랑 '강수'랑 머리 깎고 .... 그리고...... 아 참! 내일 아침 '갈담'까지 걸어가야 하니까 일찍 나와야 한다.
알았지?"
"예!-" 아이들은 일제히 큰 소리로 대답했다.
"자- 오늘은 빨리 집에 돌아가거라!"
"이상 !"
윤선생과 나는 아이들 앞에 나란히 섰다.
"였쭈--웅 쉬어--!"
영환이의 째지는 듯한 구령 소리가 터져 나왔다.
"츠리여엇! "
"스앵님께 경례!"
아이들은 요란한 소리를 지르며 교실 밖으로 쏟아져 나가고 윤선생과 나만이 남았다.
갑자기 교실이 너무 조용하여 귀가 멍멍하였다.
윤선생이 내일 가져갈 악보를 갖으러 풍금 쪽으로 걸어갔다.
암갈색의 긴 머리가 그녀의 어깨 위에서 조용히 찰랑거렸다. 그 머리 틈새로 하얀 목덜미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옅은 연두색 폭 넓은 스커트 자락이 잘록한 허리에서 흘러내려 무릎 위에서 조용히 흔들거렸다.
나의 심장 깊은 곳에서 뜨거운 불기운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얼굴이 확 뜨거워졌다.
그녀에게 그 동안 수고했다는 말을 막 하려던 참 이였는데 갑자기 아무 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멍하게 서 있는 나에게 그녀가 조용히 다가왔다.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던 어떤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봄에 산길을 걸어 갈 때 아카시아 나무숲에서 가벼운 바람을 타고 확 풍겨 오는 그런 향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