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겨울을 나는 풍란처럼 살아온 최 우남의 성장기
아들을 낳아야만 하는 강박관념....
종족유지의 본능이라고나 할까?
유교적 관습에 젖은 시대 풍조 때문일까?
‘박 시약씨(장모님의 호적 이름)’의 아들에 대한 집착은 그 누구보다 컸다.
따라서 다섯째 딸의 출산은 그녀의 최대의 수치요 집안사람들에게 죄를 지은 것이었다.
다섯째 딸은 저주받은 운명처럼 생긴 모습마저 보기 싫게 생겨서 전혀 애착이 생기지 않았고 자기의 딸이라기보다는 원수 덩어리라는 생각이 더 컸다.
그러기에 이 보기 싫게 생긴 신생아가 어서 병들어 죽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젖이 불어터져서 아파서 견딜 수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젖을 먹였고 울거나 말거나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이는 산골짜기 외딴집에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울음을 지치도록 울었으며 고픈 배를 어찌할 수 없는 이 신생아는 입 속에 닿는 포대기의 귀퉁이를 빨다빨다 지쳐서 잠들곤 하였다.
이제 막 말을 할 줄 아는 세 째 딸과 네 째 딸들이 이 어린아이가 너무나 심하게 울면 밭에 나가 일하는 어머니를 찾아와서 "엄마! 애기 죽어!" 하고 말하여 주었다.
깜짝 놀란 ‘우남 어머니’는 호미를 놓고 집에 들어와 퉁퉁 불은 젖을 물려주면서 "아이구 이년아! 왜 죽도 않고 지랄이냐!"하며 한숨을 쉬었다.
아기는 지금 먹지 않으면 언제까지 또 굶어야 할지 모르는 것을 알기나 하듯 게걸스럽게도 젖 두통을 다 빨아먹었다.
‘박 시약씨’는 밤에 우는 아기를 보면 불쌍하기도 하고 보기 싫기도 하고 그렇게 학대를 하는데도 감기한번 걸리지 않고 자라는 아기가 밉기 그지없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그렇게 아기는 자라서 돌이 지나고 생일이 돌아오던 해에 ‘박 시약씨’는 또 아이를 가졌다.
'내 팔자에 아들은 없능개벼!' 하면서 아들 낳기를 포기하기도 하였지만 또 혹시나 하는 기대에 아이를 낳았다.
또 낳으면 아들을 낳으라는 염원으로 이름 지은 ‘우남(又男)’이라는 이름 덕이었는지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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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생긴 후로부터 다섯째 딸에 대한 학대는 조금 줄었다.
다섯째 딸이 터를 잘 팔아서 아들을 낳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내딸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다. 언젠가 꼭 죽을 것이라는 염원이 아직도 그녀의 어머니 뇌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몇 마지가 안 되는 적은 농사를 지으며 고물고물한 육남매를 먹여살려야하는 이 집안에 ‘박 시약씨’의 친정집의 막둥이 남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시공부를 한다며 더부살이로 들어왔다.
작은 방 한간을 동생에게 내어주고 세 평 남짓 한 안방에서 어머니와 육남매가 잠을 자며 사랑방에선 아버지인 ‘최 정태’씨가 살아가는 어려운 생활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어느새 ‘최 우남’은 일곱 살이 되었다.
또래의 동내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간다고 야단들이었다.
"아이! 성 님! 우남이도 핵교는 넣야 허지 않겄어?"
아랫집 동서가 와서 우남의 어머니에게 권하였다.
"몰-라! 썩을 년 죽지도 않고! 지지바를 갈쳐서 멋헌다고 갈쳐?!"
"성님! 그렁거 아니어라우! 애들은 다 지 팔자를 타고 난디야!
핵교 보내서 눈이라도 틔어주어야지 난중에 자가 큰 담에 어떤 원망을 들을라고 그려!"
"저년 호적도 없어서 핵교도 못가!"
"아니 그게 먼소리랑가? 여태께 호적도 안올렸당가?"
"크다가 죽을 지 알었재!"
"아이고! 배락 맞을 소리 허네 성님! 아이고 참내!
안되것구만 내가라도 면에 댕기는 막둥이 작은 아부한테 말혀서 호적 올리라고 헐랑게 그리알고 핵교보냅시다!"
작은 어머니는 읍내 면사무소에 찾아갔다.
호적계에서 일하는 막둥이 작은 아버지에게 찾아가서 우남이의 호적을 올려 줄 것을 청하였다.
"가가 아적 호적도 안올렸능가요?"
"아! 죽어뻔지라고 그랬데요! 근디 야를 핵교라도 보내서 눈이라도 틔어 주어야 난중에 원망 안 들을 거 아니것소 잉?"
"암먼요! 그리야지라우! 가가 몇 살이지라우?"
"야달살이지 우리 '상님'이허고 동갑 잉게! "
"가(그 아이) 생일이 언젠가 아-요?"
"응! 맞어! 사월 열아흐레라우!"
"알었어요! 내가 맹그라 놀팅게 이번에 핵교 보내라고 허시지요!"
이렇게 하여 최우남은 나이보다 한살 많게 호적에 올려 졌고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흙에 뿌리를 내리지도 못하고 바위에 간신히 엉겨 붙어 차가운 바위를 하얀 뿌리로 꼭 붙잡고 살아가는 풍란!
뿌리까지 다 내놓은 알몸으로 차가운 겨울바람을 견디고 눈비가 내려도 악착같이 죽지 않는 풍란!
그 누구도 비료를 챙겨주지 않아도 그 누가 찾아와 물을 주지 않았어도 이슬을 먹고 바닷바람을 맞아 숨을 쉬고 바위에 엉겨 붙는 먼지를 빨아 마시며 자라나 아름답게 꽃을 피우는 풍란!
‘최 우남’은 풍란처럼 그렇게 강인한 생명력으로 스스로 살아났다.
소박한 모습과 은은한 향기로 자신을 들어내어 주는 풍란의 꽃처럼 그녀는 자신의 내부에 감춰놓은 조물주의 선물을 스스로 알지도 못한 채 학교에 들어가 남들처럼 임실초등학교의 학생이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최 우남’, 그녀는 딸 5형제 중 막내였기에 언니들이 입던 옷을 줄줄이 내려 받아 입고 자랄 수밖에 없었으므로 언제나 헌 옷을 입었다.
‘최 우남’은 그러한 것엔 부끄러움을 타지 않았다.
‘최 우남’은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빈곤을 느끼지 못하고 자랐으며 탄생 자체가 천덕꾸러기였다는 것은 조금도 알지 못하였고 관심사도 되지 못하였다.
모든 일에 낙천적이었고 어린 나이였지만 이해심이 많고 순진하여 부모님의 말에 거역할 줄을 몰랐다.
오막살이집에서 많은 언니들과 우글거리며 사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고 남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지는 알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항상 행복하였으며 한글도 몇 자씩 익혀나갔다.
장날 언니들을 따라 읍내에 나가면서 간판을 읽는 언니들을 따라 '화신 양복점', '대성약국', '삼광상회', '참새집' 등의 글자를 보면서 그냥 음을 익혔다.
언제 한글을 다 알게 되었는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국어책을 줄줄 읽어 내려갔고 산수문제는 너무나 쉽게 답을 맞혔다.
순진한 이 어린이는 자기가 공부를 잘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였고 남들이 글을 못 읽는다거나 산수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조물주는 이 처량한 아이에게 자생할 수 있는 선물로 명석한 두뇌를 감추어 두었던 것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공부하는 법이 없었다.
그저 아랫집 사촌오빠들을 따라다니거나 집에서는 언니들과 어울려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마냥 선 머슴애처럼 자랐다.
다른 아이들과 똑 같이 아무거나 잘 먹고 심부름시키면 순종하고 거짓말을 할 줄 모르고 소죽을 끓이는 가마솥에 불을 뗀다거나 앞마당을 싸리비로 쓴다거나 논에서 피를 뽑는 일, 나물을 뜯어 오는 일, 대문 밖 논 가장자리에 있는 샘물을 길어와 부엌 독에 붓는 일 등을 일상 하면서 자랐다.
여자아이지만 낫질도 제법 잘하여 새벽에 꼴망태에 절반 정도는 깔을 베어 소에게 주곤 하였다.
동네 아이들과 공기받기 놀이도 하고 혼자서 팔방도 하고 고무 줄 놀이도 하며 잘 자랐다.
대문만 나가면 뒷산이 있어서 먹을 것은 지천으로 깔려있다.
산딸기, 삐비, 으름, 다래, 오두게, 산벗찌, 맹감, 땡감, 팽, 참진달래꽃, 신금, 밭 가장자리에 심어진 ‘단수수 대’, 아무 밭에서나 뽑아먹는 무, 칡뿌리는 가끔 외삼촌이 캐주었다.
그녀는 나무도 잘 올라갔고 혼자서 산 깊을 곳에 까지 들어가도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산 속에 다람쥐며 꽃뱀이며 오소리랑 청솔모랑 개구리, 두꺼비, 작은 청개구리, 배가 빨갛고 등이 검은 독 개구리도 모두 그녀의 장난감이요 친구였다.
벼메뚜기, 방아깨비, 풀무치는 갖고 놀다 불에 구어 먹고 송장 땅구, 개미, 거미도 친구였고 매미소리는 그녀가 좋아하는 자연의 음악이었다.
마루 기둥에 높이 붙은 스피커는 이른 새벽에 울리기 시작하면 자정까지 계속 그치지 않고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희망무선사'에서 사업의 일환으로 하는 유일한 방송시설인 스피커...
마을마다 집집마다 봄에 보리 한말, 가을 에 쌀 한말 받기로 하고 달아준 스피커였다.
'좋아졌네 좋아졌어~ 몰라보게 좋아졌어~ 이-리보아도 좋아졌고 저-리 보아도 좋아졌어 우물가에 물을 깃는 순이 얼굴이 하하.........'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자-알 살아보세-.....'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눈을 뜨자마자 들려오는 국민가요에서 낮에는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카보이 아리조나 카보이- 광-야를 달려가는 아리조나 카-보이.....'
'푸라타나스 향기-퍼지는 그늘을 거-쳐-서 달린다 달려간다 검은머리 날리며....'
'파랑새 노래하는 청포도넝쿨아래로 어여뿐 아가씨여 손잡고 가잔-다...'
‘우남’이는 모든 노래를 잘도 따라서 불러 외었다.
어려서 많이 울어서인지 목청도 고았다.
시간 시간마다 뉴스를 알려주었고 날씨도 말하여 주고 밤에는 연속방송극도 들려주어서 모두 스피커가 있는 마루에 앉아 노래하고 연속극을 들으며 울고 웃었다.
밭에서 일 할 때엔 스피커 줄을 길게 삐삐선(검은 전화선)으로 연결하여 밭 가장자리에서 놓아두고 스피커 소리를 들으며 일을 하였다.
‘우남’이는 학교에서 시험을 보면 언제나 100점이었다.
학교의 시험은 그녀에게는 너무나 쉬웠다.
‘우남’이는 그러한 자기가 자랑스럽지 않았으나 주위의 모든 아이들이 ‘최 우남’을 알아주기 시작하고 그녀와 가까이 지내기를 좋아하였다.
담임선생님은 ‘최 우남’의 모든 행동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였다.
모든 시험에서 100점을 맞는 이 아이의 초라한 의복이며 똑똑한 발표 태도며 빈약한 학용품을 보면서 가정방문을 하기로 하였다.
담임선생님인 ‘박 인숙’ 선생님이 집에 찾아오는 건 이 집안으로서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논에서 일하던 아버지 ‘최 정태’씨가 불이 나게 달려오고 밭에 나갔던 어머니 ‘박 시약씨’씨는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라 안절 부절을 못하였다.
아래에 사는 작은 어머니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동네 꼬마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아이고 선상님! 어쩐데요 이렇게 꼴작까지 오시다니 어서 들어 오시기라우! 아이고 방도 쫍고 구질구질 혀서 들어오라고도 못 허겄는디...어쩐대라우!"
아버지는 지개작대기를 들고 마당을 뛰어다니며 암 닭 한 마리를 잡으려고 야단이었다.
"아! 이놈의 달구새끼가 왜 이렇게 잽싸다냐?"
‘최 정태’씨는 투덜거렸다.
"뭐하시는 거얘요?"
"선상님 오셨승게 닭 잡아 드릴 려고 허는디 저놈의 달구가 잘 안잽히는 개벼요!"
선생님은 웃으며 강력하게 만류하였다.
"어머님! 저 금방 돌아갈 거예요! 그러지 마세요!"
"우남이가 공부를 너무 잘하고 착해서 어떻게 사는가 보고 싶어서 한번 와 봤어요!"
"아이고 그 못냉이가 무슨 공부를 잘 허간디라우?"
"아녜요! 우남 어머니! 우남이가 우리 반에서 공부를 1등으로 잘 해요!"
옆에서 보던 작은어머니들이 탄성을 질렀다.
"하이고! 우리 우남이가 공부를 1등으로 잘 헌다네!!!"
"그 말이 정말 이당가?"
혀를 내두르며 모두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거 바! 내가 갈치자고 허기를 잘 혔지!"
작은 어머니는 자기의 지난날에 우남이 호적을 정리하고 학교에 보내라고 권한 일에 대하여 우쭐해 졌다.
‘우남’이는 어머니 곁에서 어른들의 표정을 살피며 자기를 칭찬하는 줄 알고 속으로 기뻤다.
이 무렵 얼굴이 예뻤던 우남의 큰언니가 남원으로 선생님한테 시집을 간다고 하며 동네가 떠들썩하였다.
둘째 언니는 어디 취직했다고 집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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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이는 2학년 때 급장이 되었고 이후 6학년 때까지 급장을 하였으며 성적은 6학급 360명중 언제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음악경연대회에는 독창으로 출전하여 상을 받았고 글짓기 붓글씨쓰기 등 모든 면에 성적이 출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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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임실초등학교에서 6학년 전체 1등을 하는 남학생은 전주 북중학교에 원서를 썼고, 여 학생 중 1등은 전주여중에 원서를 써 주었다.
‘최 우남’의 6학년 담임 ‘송 승용’ 선생님은 중학교를 보내지 않겠다는 ‘최 우남’의 부모도 모르게 입학시험응시원서를 사다가 직접 데리고 가서 전주여중 입학시험을 보게 하였다.
담임선생님의 정성은 적중하였다. ‘최 우남’은 당당하게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하였다.
임실초등학교의 명예를 빛낸 것이었다.
전주여중! 누구도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전주의 명문 중학교에 당당히 합격을 한 것이었다.
‘최 정태’씨와 ‘박 시약씨’는 하는 수 없이 우남이의 입학금을 내어 주고 전주에 자취방을 얻어주어 중학교를 다니게 하였다.
언니들 네 명은 아무도 중학교에 다니지 못하였다.
외삼촌은 수없이 행정고시를 보았으나 번번이 낙방하여 계속 누나 집에 머무르며 공부를 하였다.
우남이가 터를 팔아서 낳은 외아들 ‘용준’은 종가 집에 종손으로써 온갖 대접을 다 받으며 도도하게 커나갔고 공부도 아주 잘하여 우남이 못지않은 실력을 과시하며 누나의 뒤를 이어 전주 북중에 들어갈 토대를 마련하고 있었다.
박 시약씨는 외아들 하나만 가르치면 되는 것을 우남이까지 전주에 공부시키는 것이 무척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장날이면 꼬박꼬박 집에 있는 잡곡이며 참깨 등을 내다 팔아서 학비를 마련하여 딸에게 찾아갔고 밑반찬, 김치 등을 담아서 머리에 이고 멀고도 먼 임실 기차역에까지 걸어서 갔고 기차에서 내려서는 전주 역에서 노송동 골짜기 집까지 찾아다니곤 하였다.
최 우남은 전주의 명문인 전주여자고등학교에 전체 3등의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하였다.
이어서 동생 용준이가 전주북중학교에 합격을 하여 ‘최 정태’씨 집안은 대단한 경사를 맞았고 동네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 무렵 우남의 집에서 공부하던 외삼촌이 드디어 '국가 4급 행정고시'에 합격을 하였다.
온 집안은 축하의 잔치에 들뜨게 되었고 머리 좋은 집안이라는 소문이 자자하여 졌다.
외삼촌은 '외무부'에 발령을 받았고 서울의 어느 부자 집에서 사위를 삼아갔다.
외삼촌은 어마어마한 부자 집에 장가를 들게 되면서 부터 누나에게서 12년간 밥 얻어먹고 공부한 은혜를 갚기는커녕 누나 집에 들르는 것조차 그의 아내가 막아서 거의 인연을 끊고 살았다.
‘박 시약씨’는 속으로는 자기의 남동생이 야속하였으나 워낙 마음이 곱다보니 원망하지 않았고 자기의 동생 한 몸이라도 행복하기를 기원하였다.
최 우남이 여고 3학년이 되었다.
학급 실장이었던 그녀는 명문고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하여 서울대 정치외교학과를 지원하기로 작정하고 공부를 하였다.
3학년 2학기가 끝나가고 대학 입학원서를 쓰는 시기가 되었다.
담임선생님이 서울대 ‘정치 외교 학과’에 합격할 것이라며 입학원서를 쓰기를 권하였다.
‘우남’이는 서울의 외삼촌에게 전화를 하였다.
오직 한 가닥 희망이 외삼촌이었다. 외삼촌은 그녀의 집에서 12년간을 공짜로 먹고 자고 공부하지 않았는가?
"외삼촌! 저 ‘우남’인데요! 이번에 서울대 정외과에 원서 내라고 선생님이 그려셔요!"
철이 들고 나서 처음으로 구원의 손길을 기대하며 떨고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걸게 된 전화였다.
최 우남은 하마트면 수화기를 놓칠 뻔하였다.
지금 전화를 받은 사람이 진짜 자기의 외삼촌인가 의심하였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말이 전화선을 타고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그녀의 심장에 꽂혔다.
"야! 이 철없는 것아! 너 지금 무슨 소리 허는 거엿! 빨리 졸업 허고 공무원시험이나 봐서 용준이 갈쳐야지! 가시나가 무슨 대학이여?!"
"................"
수화기가 손에서 털렁하고 빠져버렸다.
공중전화 아래에 그녀는 털석 주저앉고 말았다.
둔기로 머리통을 얻어맞은 듯 그녀는 정신이 핑 돌고 말았다.
절망과 분노가 그녀의 가슴에 회오리바람처럼 일고 있었다.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밤새 잠을 들지 못하고 베게가 다 젖도록 울고 또 울었다.
유유히 비상하던 우아한 학의 한 쪽 날개에 독화살이 꽂혀 긴 목을 축 늘어뜨린 채 한쪽 날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사정없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진학의 꿈이 산산조각 난 이후 최 우남의 고3 후반기는 깜깜한 어둠속에 있는 절망의 나락에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참담한 가난의 아픔을 홀로 견디어야 했다.
그 아픔은 예리한 칼로 심장을 조금 씩 조금 씩 썰어내는 것 같은 아픔이었다.
같이 공부하던 특수반의 학생들이 서울대 의대, 법대,에 원서를 쓴다고 자랑하였고 이화여대 약학과, 연세대 불문과 에 원서를 낸다고 하는 말들은 모두가 칼이었으며 상처를 찔러대는 가시였다.
함께 ‘정치 외교 학과’에 들어가기로 했던 친한 친구 ‘경란’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녀의 상처를 건들었다.
"니기 왜 대학을 포기한다고 허냐? 이해가 안 된다! 니 실력이면 어디고 못 갈 데가 없잖아!"
우남이는 자리를 피하여 화장실에 들어가 울었다.
'나를 구원해줄 사람이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말인가?'
<"야! 이 철없는 것아! 너 지금 무슨 소리 허는 거엿! 빨리 졸업허고 공무원시험이나 봐서 용준이 갈쳐야지! 가시나가 무슨 대학이여?!">
자꾸자꾸 되살아나 들려오는 얼음장 같은 소리...
점점 커져가는 메아리가 되어 그녀의 심장을 도려내는 칼날....
아무리 귀를 막아도 끝도 없이 반복하여 고막을 때리는 소리....
최 우남은 이후 심한 우울증세에 시달리며 학교에서 학급 친구들과 말을 하지 않았고. 끝내는 학교의 졸업식장에도 참석을 하지 않았다.
전주여자고등학교의 모든 기억을 깡그리 머릿속 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녀는 학교의 앨범도 구입하지 않았고 졸업식장에서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그녀의 우등상을 다른 여학생이 대신 받아 주어야 했다.
담임선생님이 졸업 앨범 한 권 구하여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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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우남은 하는 수 없이 아무도 모르게 총무처에서 시행하는 공무원시험을 보았다.
성적이 탁월하게 좋았으므로 면접에서 그녀의 요구대로 교육행정직 9급 공무원으로 임실교육청에 발령을 내었다.
교육청에서 6개월 근무한 후에 인원 감축으로 청웅 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았고 청웅 초등학교에서 1년 근무한 후 고향집 가까운 임실초등학교행정실로 전근을 오게 되었다.
이 무렵 그녀의 동생 최 용준은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을 위하여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의 동생이며 집안의 외아들을 맡아 가르쳐야할 운명에 처해 있었다.
그녀를 나에게 인도하기 위한 운명의 여신은 그녀에게 너무나 큰 시련을 주었다.
운명의 신은 어찌하여 천덕꾸러기의 내부에 선물을 감춰두고 오늘까지 개봉하지 않았는가?
그러한 운명의 신이 그녀에게 이토록 커다란 아픔을 준 것은 또 어떤 속셈이 있어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