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새로운 직장 중국집 '예양춘'과 ‘신한관’
극장 일을 그만 두기로 작정하고 다른 일 할 곳을 찾기로 마음먹은 것은 배고픔 과 그림을 배울 수 없다는 절망 때문이었다.
아무리 소질이 있어도 앞을 가로막은 장벽을 넘는 데는 많은 세월이 필요하고 또 얼마나 많은 집단 폭행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건 내가 가야할 길이 아니다.!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도 돌아서면 바로 배가 고파오는 것이었다.
체중은 너무 줄어들어 입고 올라온 교복이 헐렁하여졌고 켄버스를 양손에 들고 걷는 것조차 힘들어 졌다.
...............
이래선 안 된다.!
내가 살아야 뭐든 할 수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내가 우선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살기 위해선 먹어야 한다.
배부르게 먹고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으로 가장 적당한 곳은 중국집이었다.
......................
5월 5일 어린이날 남산에 간판을 걸고 KBS방송국 옆에 있는 '예양춘'이란 중국집에 들려서 자장면 하나를 시키고 기다리면서 어떻게 말을 붙여서 이곳에 취직을 할까? 궁리하였다.
솔직하게 말하고 처분을 지켜보자는 결론을 내리고 음식 값을 치른 후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배가 고파서 직장을 바꾼다는 말,
나는 정직하여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
내년에 다시 시작할 학비를 벌기 위해서 서울에 왔다는 이야기를 차분하게 이야기 하였다.
중국 ‘산동성’이 고향인 이 중국인은 나에게 물었다.
"사라미 하나 필요 하기는 해 ... 그러치만 아무나 안 써 해 !"
"어디서 왔나?"
"전라북도 전주입니다."
...................
주인은 한참을 머뭇거렸다.
나는 고향이 전라도라는 말 때문에 머뭇거린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전라도 싸람 안써 하는데..... 학생 보니까 맘에 들어해....!"
전라도사람을 왜 안 쓴다는 것인가 나는 그 이유를 당시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뽀이해?!.. 주방해...?!"
주인은 나에게 일자리를 선택하게 하였다.
순간적으로 취직이 되었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무엇보다도 이제부터는 배고프지 않으리라는 기대감에 너무나 행복하였다.
‘뽀이’는 철가방을 들고 집집마다 나르는 일이란 걸 난 잘 알고 있었다.
집집마다 배달을 하며 나의 얼굴이 알려진다는 것은 나의 자존심이 용서를 하지 않았다.
"주방에서 일하게 해 주십시오!"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이름을 물었다.
이름이 뭐라 해?"
나는 나의 '일웅'이라는 이름을 이런 곳에서 더럽히고 싶지 않아서 준비해둔 다른 이름으로 둘러 붙였다.
"‘정 영철’입니다"
"알았어 예처리(영철이를 발음이 되지 않아 이렇게 불렀다)! 일이 잘이 해 보라해!"
"휴--!"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나는 즉시 달려가 선전부장에게 이별을 고하고 콘사이스와 영어책, 노트와 세면도구를 싸 가방에 넣고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고상 많이 혔다. 알겄다!"
"밥 잘 묵고 건강하게 있다가 내러가서 공부허거라잉?"
선전부장님은 나를 위로하여 떠나는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여주었다.
...............
새로운 직장에 도착하였다.
‘예양춘’
이곳은 나에게는 천국이었다.
우선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게 정말 꿈만 같았다.
첫날 저녁식사는 나의 입사 환영으로 쌀밥을 먹는다고 모두 좋아했다.
3단으로 된 찜통에 볶음밥 재료로 쓰일 밥을 쪄서 짓는데 그 밥맛은 그 언젠가 어렸을 적 아빠를 따라 양조장에 갔을 때 술밥이라고 하여 찐 밥 한 숟가락을 먹어본 일이 있었는데 얼마나 환상적인 맛이던지 평생 잊지 못하는 바로 그러한 쌀밥이었다.
나는 우동 그릇에 소복이 담긴 김이 풍풍 나는 하얀 쌀밥을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얼마 만에 먹어 보는 쌀밥이란 말인가?
밥은 입에 넣자마자 아이스크림 녹듯 없어졌다.
"많이 먹어 해! 배 많이 고파해서 ..... ‘진타마-르가비(중국인이 일상 하는 말 속의 욕 )’ 고생 마니 햇써해 .....마니 먹어 해 !"
인정 많은 중국인은 나의 밥 먹는 모습을 보며 측은 한 듯 많이 먹어라 하였고 주위의 종업원들은 동물원의 하마가 사료 먹는 것을 구경하듯 쳐다보고 있었다.
먹는 동안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고 온 몸은 땀에 흥건히 젖어 버렸다.
네 그릇을 순식간에 비우고 물을 마셨다.
세상이 달라져 보였다.
뿌옇고 노리끼리하던 시야가 또렷해지고 정신이 맑아짐을 느꼈다.
서울에 와서...
아니다...평생 처음으로 느끼는 ‘배부름’...그것은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
나는 열심히 일을 하였다.
미끈미끈한 탕수육 그릇이나 기름이 번지르르 흐르는 야끼만두 접시 자장면 그릇에서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비누로 닦고 맑은 물로 헹구어 찬장에 진열하였다.
...........
나날이 행복의 연속이었다.
인정 많은 장꿰(주인)와 순진한 중국인 손씨 이다바(조리사), 그리고 한국인 다섯 명
작은 식구들은 서로 협동하여 일을 하였고 방송국 옆이라 손님이 많았다.
영화배우 '박노식' '구봉서'씨가 단골손님이었고 가끔씩 ‘최 무룡’, ‘이 예춘’, 내가 좋아하던 ‘황 해’씨도 오는 것을 음식 내주는 반달 같은 구멍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
오후 3시부터는 고향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한가한 시간이라서 모두 깔판을 깔고 앉아 다마네기(양파)를 까는 시간이다. 마늘도 까고 대파도 다듬고 하노라면 매운 기운이 눈에 들어가 눈물을 안 흘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시간을 ‘고향생각 시간’이라 부른다.
나의 체중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얼굴이 벌겋게 핏기가 돌며 볼에 윤기가 흐르고 하루하루가 다르게 나의 건강이 좋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행복도 잠시 뿐 인가?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고 세상이 매우 시끄러웠다.
오후 6시 이후부터 통행금지가 이루어지고
‘예양춘’에서 뭘 잘못했는가는 알 수 없었지만 영업정지를 당하였다.
주방 직원들 식당 뽀이들이 모두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나갔지만 나는 갈 곳이 없었다
주인이 나의 처지를 미리 알아차리고
“예철이...다른 식당 소개 해 줄게 가서 일이 열심히 해!!”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주인은 친절하게 자기 친구의 음식점으로 날 데리고 갔다.
을지로 5가 오장동의 ‘신한관’이었다.
‘예양춘’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규모의 큰 중국집이었다.
1층에서 3층까지 손님을 받고 4층은 주인이 살림을 하는 건물이었다.
키가 185cm는 되어 보이고 몸무게가 150kg이 넘어 보이는 띠룩띠룩 살진 중국집 주인은 왕서방이라 했다.
주인 왕서방은 황소개구리 눈 같은 커다란 눈으로 나를 보며 ‘예양춘’ 주인과 무어라 중국어로 시끄럽게 예기하며 사뭇 만족 해 하는 눈치였다.
한참이나 둘이서 지껄이다가 가끔씩 왕 서방이 나를 향하여 말을 하곤 하였다.
“이름이 예철이라 해?”
“내 친구 얘기 했어....‘예철이” 밥이 많이 먹고 일이 잘한다 했어....
밥이 많이 먹고 일이 잘 하는 사람...나는 좋아해.........
밥이 먹어 소한가지.... 일이 해 소한가지...이런 사람 못써 해....”(소처럼 밥 많이 먹고 일을 잘해야지....밥 많이 먹고 소처럼 일을 느리게 하는 사람은 못쓴다)
.......................
주인을 따라 주방에 들어갔다.
주인이 살림하는 4층까지 음식 운반용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는 시설이 있었다.
1층에서 3층까지 각 층마다 뽀이가 4명씩 있고
주방에 이다바(요리사)만 하여도 중국인이 2명,
한국인으로는 ‘우동빼기(국수를 손으로 빼는 기술자) 1명,
만두밀이(찐만두 야끼만두의 피를 만드는 기술자)1명,
후라이팬 잡이 2명,
우동건지리(국수를 삶아서 그릇에 담는 사람)1명이 모두 나의 상전이었고 나는 맨 끄트머리 그릇닦이였다.
나의 일은 새벽부터 시작되어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새벽 5시가 되면 내가 잠자는 2층 방에 초인종이 ‘때르릉’울린다.
4층에서 잠자는 주인이 자면서 발가락으로 눌러주는 나의 기상신호이다.
나는 부리나케 일어나 주방에 내려가서 맨 먼저 전날 빨아서 부뚜막에 널어놓은 앞치마 7개를 잘 개켜서 각자의 작업대에 올려놓고 5군데의 화덕에 밤새도록 타서 불기운이 시든 49공탄을 새 연탄으로 갈아야 한다.
다음은 커다란 양동이의 물에 담가놓은 각종 해물의 물을 갈아주는 일이다.
커다란 조리로 해물이 흘러가지 못하게 양동이의 한쪽을 막은 다음 조심스럽게 물을 따르고 새로운 물로 갈아서 채워 놓는다.
양동이는 10개 정도이다.
다음은 냉장고 청소이다.
냉장고가 요즘 같은 전기 냉장고가 아니고
직육면체의 널따란 얼음 덩이위에 하얀 천을 깔고 그 위에
새우, 해삼, 오징어, 복어, 홍합,....등 각종 해물을 올려놓는다.
얼음이 녹고 밤새 해물에서 빠져나온 해물 즙이 냉장고 밑바닥에 고여 있으므로 이것을 닦아 다시 제자리에 놓는다.
얼음 덩어리를 꺼내고 냉장고 바닥의 해물 즙과 녹은 얼음의 물을 말끔히 닦아낸 다음 천을 빨아서 다시 얼음위에 깔고 해물을 올려놓는다.
한 시간 정도 이 일을 하고 나면 ‘후라이팬 잡이’와 ‘우동건지리’가 부스스한 눈으로 내려온다.
이다바를 제외한 대부분의 직원들은 모두 식당의 각 방에 흩어져서 잠을 잔다.
그러므로 계급에 따라 기상시간이 모두 다르다.
늦게 내려온 직원들은 내가 청소하는 동안에 아침에 배달되는 새로운 해물을 받기 위해서다.
6시면 어김없이 해물 수송차가 출입구 앞에서 ‘부릉부릉’엔진소리를 내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 들어온 해물을 깨끗이 씻어 냉장고에 넣고 바닥 청소를 마치면 7시 반 정도가 된다.
뽀이들은 이때 쯤 돼서야 칫솔을 물고 주방으로 세수를 하러 내려온다.
뽀이들은 세수를 마치고 각자 근무영역의 청소를 하는 동안 야채 수송차가 도착하면 주방식구들은 야채를 받아 다듬기 시작한다.
대파, 양파, 부추, 무, 배추, 당근, 각종 버섯, 마늘, 고구마, 감자, 시금치, 연뿌리, 죽순, 고추, ............
이들 채소를 다듬는 일이 가장 번거롭고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야채 다듬기는 아침에 다 끝내지 못하고 오후까지 이어진다.
우선 급하게 쓸 채소를 다듬고 나면 각종 고기가 배달된다.
돼지고기, 쇠고기, 닭고기,..........이들을 각 부위 별로 절단하여 냉장고에 넣는 일은 후라이팬잡이가 한다.
10시 쯤 되면 재료 준비는 거의 끝나고 아침식사를 짓는다. 시금치국에 쌀밥이 단골 메뉴이다.
식사 후에 뽀이들은 간판을 내어다 걸고 간판에 빨간 천이 망가지지 않았는지 살핀다.
11시가 되면 ‘이다바’가 출근하고 주인이 주방에 내려와 예약손님이나 결혼식 피로연 등이 있음을 알리는 정도의 간단한 직원회의를 시작한다.
...................
손님은 엄청나게 많았다.
점심 식사 손님이 오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나의 그릇닦이가 시작된다.
쉴 새 없이 ‘음식 운반 엘리베이터’ 칸칸에 가득가득 실려 내려오는 그릇들....
이 그릇들을 꺼내어 설거지 통 옆에 쌓아놓고 각종 음식 쓰레기는 나의 손으로 쓸어서 커다란 드럼통 안에 버리고 설거지통에 넣어 비눗물로 씻고 수돗물에 헹구어 진열장에 넣는다.
내 손으로 쓸어버린 음식 찌꺼기는 하루에 평균 두 드럼통이 되었다.
찌꺼기를 돼지목장의 주인이 하루 두 번씩 와서 돈을 주고 사갔다.
하루 10,000여개의 그릇을 씻는 나의 손은 말할 것도 없고 장화를 신고 일하였지만 늘 물에 젖어있어서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주부습진이 생겨 갈라지고 진물이 흘러 밤에는 가려워 견딜 수가 없었다.
점심식사는 오후 4시에 중국식 식빵과 시금치 국으로 해결한다.
저녁식사는 밤 9시에 따뜻한 쌀밥으로 마음껏 먹는다.
저녁식사시간이 늘 기다려졌다.
밤손님까지 다 돌아가고 나면 뽀이가 아침에 내 걸었던 간판을 떼어온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침소로 들어가고 나의 마지막 일과가 시작된다.
주방청소, 냉장고 청소, 해물 물갈이, 화덕에 연탄 갈기, 마지막으로 남들이 벗어 놓은 앞치마를 양잿물에 삶아 빨아서 부뚜막에 걸어 마르도록 해놓고 주방에 전등을 끄고 나면 12시가 넘는다.
통금시간동안 세상은 죽은 듯 고요하다.
베개를 베고 누어 가방 속에서 영어 책을 꺼내어 읽어보다가 잠이 든다.
손가락으로 묵주기도를 하면 엄청 빨리 잠이 온다.
매일 계속되는 힘 든 노동을 하면서도 기름진 음식 탓에 나의 건강은 더욱 좋아지고 체중도 많이 불었다.
거울을 보면 내가 나를 보는데도 옛날의 그 깡마르고 눈만 툭 불거진 못난이가 아니라 귀공자처럼 뽀얀 빛의 뺨을 가진 청년이 거울 속에 있었다.
.................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났다.
또다시 겨울이 찾아오는 동안 나는 눈치껏 음식 만드는 순서를 익히고 재료와 요령을 수첩에 메모를 해 두고 나만 알 수 있는 공식을 만들어 외었다.
<‘수-간-당-마-초-가’>는.....탕수육 소스 만드는 순서였다.
(물)-(간)장-설(탕)-(마)(당근 양배추 파 등 야체) -식(초)-(가)다꾸리(녹말가루)
<‘간’ ‘수’ ‘당’ ‘구’ ‘아’ ‘후’ ‘가’>........<간장...물...설탕...구근채소...아지노모토...후추가루...가다꾸리.....>...해삼탕 소스 만드는 순서다.
..................
한가한 시간에 만두 피 미는 것도 배웠고 손으로 우동 빼는 기술도 익혔다.
‘수타면’을 4그릇 분량까지 뺄 수 있었다.
밤마다 조금씩 한 영어는 고1의 스탠더드 잉글리시 교과서를 1과부터 끝까지 읽고 해석할 수 있었다.
다시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할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