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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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란처럼 살아온 나의 이야기/34. 결혼식

34. 결혼식

정일웅 찻집 2016. 7. 6. 15:03

34. 결혼식

 

1973617일 새벽

벽에 붙은 괘종시계가 네 번 느릿느릿 둔중한 소리를 내며 울릴 때마다 말아놓은 강철 나선형 스프링의 울림의 긴 여운이 깜깜한 어둠을 타고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바르르 떠는 철사의 진동이 마지막 멎을 때까지 수많은 맥 노리를 반복하며 가늘어져 마침내 그 꼬리를 감추고 또다시 정적 속에 개구리 우는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 '' '' - '' '' '' -

작은 소리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바로 내가 누워있는 머리맡의 격자문의 문살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선생님-!" "정선생님-"

가느다란 여인의 목소리였다. 그렇다.

낯익은 목소리 그 소리는 분명 그녀의 친구인 '영희'의 목소리였다.

"누구여-!" 얼떨결에 묻는 나의 말에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정 선생님! 안심하셔요! 지금 '우남'이가 집에서 도망 나와서 '스타 미장원'에서 머리 손질하고 있어요 그렇게 알고 있어요...나는 미장원으로 가요....!"

 

! 이제야 안심이다.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나보다.

"알았습니다. 고마워요!"나는 간단히 말하고서 다시 눈을 감았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며 피로가 밀려와 쉽게 잠 속에 빨려 들어갔다.

주일날 공식미사시간에 결혼식을 하는 것은 지 신부님의 특별한 용단이었다.

 

결혼식 시작 10분 전에 장인과 장모님 그리고 작은 아버지 두 분과 작은 어머니 두 분 셋째 언니와 그녀의 친구 그리고 결혼식이 막 시작될 무렵에 큰언니와 형부가 택시에 카시미론 이불 한 채를 싣고 참석하여 주었다.

 

신부 측에서 가져온 유일한 혼수품이 바로 카시미론 이불 한 채였다.

많은 친구들과 교우들이 참석하였다.

 

어제 밤 나 대신 숙직을 하느라고 백 남구는 미사도중에 참석하였다.

하필이면 백 남구가 대직을 하는 날 게라나무(주목) 도둑이 들어 나무를 싹둑싹둑 잘라갔단다.

결혼 미사는 성당의 축제처럼 이루어졌다.

처음 나온 칼라 필름으로 김 규원 형제는 사진 찍기에 바빴다.

 

이 태문’ ‘이 태현’ ‘윤 영섭가밀로, ‘신 태근님은 하객 안내를 해 주시고 박 예노파할머니 배 마리아’ ‘김 막례황회장 부인 김 마리아’ ‘오 태숙한 장현부인 이 태문부인 등 모두 한 식구가 되어 음식을 장만하고 나르고 손님접대를 하며 한 식구가 되었다.

 

박 두수선생님, ‘진 경현교장님, ‘박 세중교장님, ‘장 병구교감님, ‘최 병호교무님, ‘홍 동운’, ‘김 공영’, ‘강 옥철’, ‘이 춘재’, ‘김 제문’, ‘김 현수’, ‘이 덕기’, ‘김 종규’, ‘서 정식’, ‘황 완규’, ‘박 성규’, ‘황 영주, ’성 철호‘, ’오 강호‘, ’이 재식‘, ’이 경희‘, ’진 소자‘, ’박 현자‘, ’정 명희‘, ’이 강노...수많은 교직 동료들과 친지들이 모였다.

 

장인어른이 흰 두루마기를 입고 와서 딸의 손을 잡고 입장하여 주었다

고맙기도 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신부는 그 흔한 웨딩드레스를 입지 못하고 하얀 한복 차림으로 입장하였다.

 

'최 우남의 모습을 보는 나는 안쓰럽고 미안하고 슬프고 애절하고 그러면서도 가슴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행복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신자 좌석 앞에서 장모님과 세 째 언니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였다.

신랑 측 증인은 이 영길이가 하고 신부 측 증인은 박 희옥선생님이 맡았다.

 

신부가 독서를 하고 신랑은 복음을 읽었다.

성체는 신랑이 손으로 면병을 집어 신부의 손에 건네어 주고 신부는 신랑에게 그렇게 하였다.

일반 신자가 성체를 손으로 집어서 신부에게 주는 것은 한국에서 내가 처음이었을 거다.

포도주는 신랑이 성작을 들고서 반을 마시고 나머지를 신부에게 주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국제사진관 아저씨가 사진을 찍었다.

서양식 웨딩드레스는 입지 못하였어도 하얀 한복이 천사의 옷처럼 순결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머리에 쓴 장미꽃 화관은 사랑의 승리가 만든 월계관이었다.

가족사진을 찍을 때야 '용준'이가 어느 곳에 숨어 있다가 나타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축하해 주었다.

 

내가 사는 집은 오래 전에 유치원으로 쓰던 건물이라서 교실 만 한 거실이 있었기에 피로연을 하는 데는 안성맞춤이었다.

 

신자들이 음식을 나르고 모두가 분주하였다.

일손이 모자랐다.

 

신랑과 신부가 손님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하객들에게 술을 따르고 대화를 나누었다.

서울에서 온 친구들은 택시를 전세 내어 대기시켜 놓고, 택시 뒤 범퍼에 노끈으로 깡통을 매달고 있었다.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신랑 신부를 태운 택시는 떨그렁거리는 깡통을 끌면서 전주로 향하였다.

................

택시가 임실을 벗어나 들녘이 보이는 관촌길을 달리고 있었다.

..................

"우리 결혼 한 거야?"

""

"나 오늘부터 우리 집에 안가도 되는 거야?"

""

"- 오늘부터는 엄마한테 안 혼나?"

""

"정말 안 혼나는 거지?"

""

"..............."

 

나의 왼쪽 어깨에 뺨을 기대고 말하던 그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모든 시련이 끝나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그 동안에 억제된 모든 서러움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듯 심하게 어깨를 요동치면서 오열하였다.

 

"엄마!- 엄마!- ....엄마 너무나 죄송해요.....!"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던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과 초라한 어머니의 쓸쓸한 모습이 그녀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는 것을 나는 안쓰럽게 바라보며 그녀의 등을 손으로 다독거려 주는 것밖에는 아무런 위안이 되어주지 못하였다.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모처럼 진하게 화장한 얼굴이 엉망이 되고 단정하던 머리카락도 흩어져 쑥대머리가 되었었다.

 

택시가 전주시에 진입하자 그녀는 애써 울음을 그치고 손가방을 열어 작은 손거울을 보며 얼굴을 다듬고 있었다.

 

유월 중순의 맑은 날의 태양은 뜨겁게 내리 쪼이고 차안이 후끈거려 결혼식에 입은 예복과 와이셔츠는 땀범벅이 되어가고 그녀가 엎드려 울던 나의 양 허벅지는 땀과 눈물로 흠뻑 젖어있었다.

 

고속버스 정거장에 도착하여 보니 오후 5시에 부산행 고속버스가 있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155분이다. 너무나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미리 버스 표 예약도 할 수 없는 시간들이 흐르다 보니 부산에 여동생 춘희에게 미리 알려준 것이 후회도 되었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세 시간 정도 땀을 뻘뻘 흘리며 '완산칠봉'으로 가서 돌아다니다,

시간이 되어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에 도착한 것은 저녁 1130분이 넘어서였다.

 

부산에서 여동생 춘희의 친구들이 꽃다발을 들고 터미널 대합실에서 무려 4시간을 기다리며 우리를 환영하여 주었지만 너무나 피곤하여 환영 나온 일행들과 차 한 잔도 나누지 못하고 택시를 타고 해운대에 갔다.

 

두 군데 호텔은 만원이었고 세 번째에 찾아간 호텔은 방이 딱 하나가 남았는데 무척 비싼 방이었다.

값은 비싼데 서양식 호텔이라고 1인용 침대가 한 개씩 따로 떨어져 있었다.

'제기랄 이게 뭐야' 첫날밤부터 따로 떨어져서 잔단 말인가?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옷을 대강 벗고 옹색하지만 작은 침대에 둘이서 누워 꼭 부둥켜안고 잠을 청하였다.

 

새색시는 금방 잠에 골아 떨어졌고 한참 후에야 내가 잠이 들었는데 침대에서 두 번이나 떨어져 다시 기어 올라가면서 혼자서 웃었다.

...................

"! 집에 안 들어가도 돼?"

이튿날 아침 느긋하게 늦잠을 즐기고 일어난 '우남'은 잠에서 깨어나 내게 던진 첫마디 말이었다.

"!"

'우남'은 행복과 안도에 젖어 눈물을 글썽이며 나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그녀를 꼭 껴안아 주었다.

 

근처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해운대의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한 장면처럼 마냥 행복한 한 쌍의 부부로서 손을 잡고 걷는 모래사장은 온통 우리 두 사람을 축복하여주는 듯 갈매기는 노래를 부르며 우리의 머리 위를 배회하였고 파도는 결혼의 축가를 부르며 춤추면서 우리의 발밑에까지 왔다가 웃으며 물러갔다.

 

많은 인파도 모두 우리를 축하하러 온 하객들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