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임실고등학교
<발령을 받기 까지>
"어이! 정선생! 자네 ....임실고등핵교로 갈 맘 없는가?"
강 태진 교장선생님께서 토요일 오후 퇴근길에 넌지시 나의 마음을 떠 보았다.
"하이고! 교장선생님!...‘불감청(不敢請)이어든 고소원(固所願)’이지라우!"
나는 귀가 번쩍 트이고 뭔가 좋은 예감이 '팍' 가슴에 꽂히는 느낌이 들었다.
‘하느님께서 또 나를 위하여 손을 쓰시고 계시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 문자(文字)한번 잘 쓰능만! 그러먼 돌아오는 수요일에 수업한번 잘 히바!"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그날 우리학교에서 교장들 회의가 있는디....임실고등핵교 교장이 자네 수업을 보러 들어갈 것이여!
강 태진 교장선생님이 자기의 동창이며 절친한 친구인 임실고 교장선생님과 학교 운영 얘기를 나누다가 부라스 밴드 얘기가 나와서 나를 소개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교장회의를 교통도 좋지 않은 지사 중학교에서 열기로 하고 임실고 교장님께서 나의 선을 보러 오신다는 거였다.
아무튼 자세한 속내는 알 수 없었어도 나는 나의 모든 면을 잘 보여 드려야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날을 위하여 나는 나 나름대로 작전을 세웠다.
복도에 나의 그림을 모두 내어 걸고 환경정리를 하였다.
좋은 그림도 아니었고 액자도 끼우지 않았지만 유화물감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그리고 수업은 음악수업을 하였다.
한꺼번에 나의 여러 면모를 보여주자는 심산이었다.
그것은 좋은 작전이었으며 나의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수업 단원은 ‘국악의 장단’이었다.
세마치 장단, 굿거리 장단, 도드리 장단,
‘쿵 덩덕 쿵덕’............
‘덩기덕 덩더러러러, 쿵기덕 쿵더러러러’........
국악의 기본 리듬을 배우며 북 장구 대신 갖가지 잡동사니들을 이용하였다.
신나게 치는 풍금소리와 나의 우렁찬 노랫소리...
거기에 아이들이
국악 장단을 치는 갖가지 소리를 내는 악기들...
장구 1개, 북 1개,
나머지는 대야, 수대, 찌그러진 깡통, 나무토막, 도마, 등등
막대기로 두드려서 소리가 나는 물건들이면 모두 가지고 나와서 ‘세마치장단’과 ‘굿거리장단’을 쳐가며
나의 오르간 소리와 합하여 아리랑과 도라지 등
민요를 신나게 불러가며
국악의 장단을 익혀가는 수업이었다.
참관하러 처음부터 들어오신 임실고등학교 김 창기 교장선생님의 뒤를 이어 한 두 명씩 교실에 들어와서는 나가지 않고 흥미진진한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여 쳐다보고 있었다.
수업을 시작한지 10여분 후에는 그 날 학교에 오신 모든 교장선생님들이 복도의 유리창 밖에서도 수업을 참관하며 내가 웃기면 같이 웃고 학생들은 신바람이 나서 막대기를 두드려 대며 노래를 하였다.
며칠 후
교장실에서 호출이 왔다.
교장선생님이 빙긋이 웃으며 하시는 말씀....
“어이! 정 선생! 오늘 점심 먹고 ‘임실고등핵교 교장실로 한 번 가봐”
“무슨 볼일이 있는가요?”
“그냥 한 번 가봐! 내가 찾아보랬다고 말씀드리고...그러면 무슨 말이 있을꺼여....”
................
아! 혹시???
임실고등학교에 근무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었다.
교육대학을 나와 초등학교에서 8년 8개월,
중등교사자격 검정고시를 거쳐 중학교 2개를 거치고
이젠 고등학교 교사가 된다고 생각해 보니 가슴이 환희에 벅차오른다.
.....................
임실고등학교 교장실을 노크하고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지사중학교 정 일웅입니다.”
“아! 정 일웅선생님! 잘 오셨습니다.”
“강 태진 교장선생님께서 찾아뵈라고 하여 왔습니다.”
“아! 알아요!! 내가 오시라고 한 것은 지난 번 교장회의 때 선생님 수업을 보고 우리학교에도 선생님 같은 분이 한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저희 학교로 오실 생각이 있으신지요?”
순간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아! 실력도 부족하지만 불러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 그러면 정 선생님하고 나하고 약속을 하나 합시다......다름이 아니라...
다른 학교에서 선생님을 오시라고 부르시더라도 ....
나하고 약속이 돼서 그 학교에는 갈 수가 없다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나요?”
“아!! 불러만 주신다면 저에게 임실고등학교 말고 더 좋은 학교가 어디에도 없습니다....분명히 약속드리겠습니다.”
“아! 됐습니다. 그러면 학교에 돌아가셔서 근무 열심히 하고 계십시오...”
“이번에 전출 내신서만 희망학교를 임실고등학교라고 분명하게 쓰셔서 제출하시고요....그럼 됐습니다.”
“돌아가 보세요”
‘김 창기’ 교장선생님은 간단명료하게 몇 마디 말씀으로 나에게 확신을 심어주셨고 필요 없는 말은 단 한마디도 덧붙이지 않았다.
.................
며칠 후에 학교로 전화가 왔다.
‘임실 서(西) 고등학교’가 개교를 하는데 임실지역에 살고 있는 선생님을 생활지도 주임으로 초빙할 터이니 제발 승낙해 달라는 ‘서 돈석’ 교장선생님의 요청이었다.
그제 서야 ‘아! 임실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약속하자는 뜻이 이해가 갔다.
나는 정중하게 고사(固辭)를 하였고
예상대로 임실고등학교에 발령이 났다.
<임실고등학교 발령>
임실고등학교에 출근하는 첫 날 버스정류장으로 급히 달려가지 않아도 되는 아침이 너무나 좋았다.
아! 이제 자전거로 슬슬 5분만 달려가면 학교이다.
..............
직원들에게 부임인사를 하고 이어 학생 조회 시간에 부임인사를 하였다.
임실초등학교에서 나에게 배운 학생들이 많이 다니고 있었다.
선생님들 사이엔 낯익은 얼굴이 많아서 참 좋았다.
교육대학 선배인 ‘심 병기’ 선생님, ‘최 우남’의 친구 ‘조 윤희’ 선생님이 음악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송 호창’ 선생님,은 내가 초등학교때 같이 근무하던 ‘지 추자’ 선생님의 형부였고 일찍부터 잘 아는 처지였다.
교육대학 후배 ‘최 상영’ 선생님, ‘이 선희’ 선생님 등등 낯익은 얼굴들이 반겨주었고
학생들 중에서 임실초등 출신 몇 명은 찾아와서 인사를 하기도 하였다.
...............
부임한 날 점심을 교장, 교감, 교무부장 선생님과 같이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교장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정 선생님! 교감선생님 말씀을 한번 잘 들어보세요! "하시고는
교감선생님에게
"잘 말씀드려!..."하고 먼저 일어나 학교로 가셨다.
<음악 교과 지도>
잠깐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한참 머뭇거리던 교감선생님이 힘들게 입을 열었다.
"정 선생님! 실은! 저!! 오해 하지 마시고 들어주셨으면 허는디요....
핵교 형편이 아주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내린 교장선생님의 결정이니까.....
가능하면...아니...가능하면이 아니라 ...
꼭 들어주셔야 할 형편이라서....."
영문을 모르는 나는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이리도 뜸을 들이시는지...
"말씀하셔요! 교감선생님! 저는 무엇이든지 다 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아! 물론 그러실 줄 알죠만.....다름이 아니라 학교 형편상 정 선생님이 미술하고 음악도 좀 가르쳐주셨으면 하는디요!!!"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음악선생님으로 사대 음대를 나온 ‘조 윤희’ 선생님이 있지 않은가!!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뜻밖의 제안이며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아니! 교감선생님! ‘조 윤희’ 선생님이 음악전공을 하셨고 여기 계시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그래요 실은 그러니까....어려운 부탁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
"자! 가면서 얘기 합시다."교감선생님이 일어서시며 말씀하셨다.
나는 너무나 황당하고 기가 막혔다.
음악 전공 선생님을 재치고 내가 무슨 낯으로 음악을 가르친단 말인가?
이건 얼마나 음악선생님을 무시하는 일인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
퇴근시간 무렵 ‘조 윤희’ 선생님이 내게 왔다.
"오늘 가시는 길에 저와 말씀 좀 하게요"
"그래요! 나도 지금 할 말이 많아서 기다렸는데요!"
"벌써 교감선생님한테 말씀 들었는가요?"
"듣고 말고가 어디 있습니까? 그건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지요!"
조 윤희 선생님은 진지한 표정이 되어 차분하게 말 하였다.
"실은 교감선생님의 부탁은 제 부탁이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왜냐하면....정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오시지 않았으면 제가 미술을 가르쳤어야 하구요...
또 교장선생님께서 부라스 벤드를 만들고 싶다는데 그것도 제가 해야 해요....
저는 부라스 벤드는 전혀 모르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정 선생님을 이 학교에 모셔 오려고 하기 전에 이미 저와 상의를 한 것이었어요..."
"지금은 부라스 벤드가 없잖아요?
그리고 부라스 밴드가 조직된다면 그때에 제가 부라스 밴드만 따로 떼어서 가르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나의 말에 그녀는 바로 준비된 듯 말을 이었다.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여학생 교련을 가르칠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여학생 교련을 가르치기로 한 거죠.....
교련은 제가...그동안 음악하고 같이 가르쳐왔었거든요....
선생님이 음악을 해 주시면....제 수업시간이 줄어들어서....
대학원 다니기가 좀 좋을것 같아요...
그러니 ‘우남’이 친구인 저를 도와주신다....고 생각하고 그냥 승낙하셔요....
음악 수업하시면서 저를 의식하지 마셔요....
선생님이 가르치시면 아이들이 더 좋아할 거여요....
또 하나 말씀드릴까요....
사실은 이번에 미술선생님이 아니라 여자 교련선생님을 모셔 와야 하는데
정 선생님이 욕심이 나서 교상선생님께서 그렇게 결정하신 거라구요...."
..............
할 말이 없었다.
학교의 사정과 ‘조 윤희’ 선생님의 사정이 딱하여 하는 수 없이 음악수업을 맡게 되었다.
...................
이왕 맡은 바엔 아주 잘 가르쳐야 한다.
.......................
나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고등학생의 음악수업 다운 좋은 수업으로 음악적 감성을 마음껏 키워주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
학생들은 나의 수업시간을 기다렸다.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의 차이가 크리라고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맞지 않았다.
고등학생들도 신체적으로 크기만 했지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순진한 학생의 모습은 중학생들과 같았다.
"얘들아! 노래는 시(詩)에 가락을 붙이는 것이란다.
따라서 그 시가 슬프면 가락이 슬프게 되고 시가 명랑하면 가락도 그렇게 작곡되는 법이거든?
그러니까 우리는 어느 나라 노래이든지 그 노래가 작곡된 원어로 부르는 것이 곡상을 표현하는데 가장 알맞은 것이므로 앞으로 여러분은 교과서의 노래를 외국노래는 그 나라 말로 배울 것이다....."
나는 교과서의 한국 가곡이나 외국민요 등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주옥과 같은 우리의 가곡과 이탈리아 민요.....
내가 부르고 싶었던 아름다운 노래들....
나는 노래를 가르치면서 나 스스로 노래에 도취되어 신들린 사람처럼 신나게 노래를 가르쳤다.
학생들이 모두 나의 기분에 같이 빠져들면서 열심히 배웠다.
'목련화'
'님 이 오시는 가'
'비목'
'그리운 금강산'
'고향의 노래'
'수선화'....
가슴속에 파고드는 한국 가곡들...
'라스파뇨라'
'토르나 쏘랜토'
'라르고'
'까로미오벤'
'오 솔레미오'...아름다운 이탈리아 칸쵸네
'올드 블렉 죠'
'징글 벨'
'리틀 드러머 보이' ...주옥과 같은 케럴송
'양산도',
'오돌또기',
'밀양아리랑' ...흥겨운 우리 민요..
나는 교과서에 나오는 노래는 물론 빼놓지 않고 다 가르쳤으며 외국노래는 모두 원어로 부르도록 가르쳤다.
교과서 외의 곡도 좋은 곡을 선정하여 가르쳤다.
학생들이 뜻도 모르는 외국 언어로 노래를 부르는 게 처음엔 무척 어려워하고 싫어했지만
굽히지 않는 나의 설득과 엄포에 별수 없이 가사를 외어 부르기 시작하였다.
.....................
"이번 중간고사 음악 실기 시험은....
이태리 민요 외어부르기이다.
요령은...
<‘오 솔레미오’>....
<‘까로미오벤’>....
<‘라스파뇨라’>...
<‘돌아오라 쏘렌토로’>...
이상 4곡 중에서 선생님이 전주곡을 치면 그것이 무슨 노래인가 듣고서 원어로 부르기다.....
노래 가사를 철저히 외우지 않으면 재시험을 볼 테니깐 알아서 해...!!"
학생들은 질 겁 하여 소리를 질렀다.
"안돼요!!! 너무 어려워요!!!"
"...나도 안 돼!!! 이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야!!!"
"그래도 너무 많아요!!!. 어떻게 다 왼데요????"
"하면 된다.!!!는 말..... 이것 모르냐? 엉???
이번에 외어 놓으면 평생 안 잊을 꺼여!!!
나중에 나한테 고맙다고 할 때가 올 것이다..."
학생들은 열심히 가사를 외었다.
종이에 가사를 한글로 적어가지고 다니며 외우는 학생도 있었다.
시험을 보기 전까지 음악시간엔 시험범위의 노래를 집중적으로 연습시켰다.
목적은 이 학생들이 앞으로 어른이 된 후에 있었다.
연회석상이나 어느 경우에 멋있게 칸소네 한 곡을 원어로 부를 때 주위에서 보는 시각이 달라질 것이다.
연회석상에서 부른 노래 한 곡에 그 사람의 인격이 나타나는 것이다.
................
시험 시간이 되었다.
시험 당일 날에는 학생들이 바짝 긴장하여 있었다.
"지금부터 음악과 실기 가창시험을 실시한다...."
"........."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긴장을 하였다.
"얘들아! 그동안 열심히 연습하였지??"
학생들은 일제히 고함을 지르듯이 외치며
"몰라요!!!! 어려워요!!!"라고 부르짖었다.
"그래 알았다. 그러면 그중에서 자기가 가장 자신 있는 곡 하나를 선택해서 불러라....됐니???"
"예!!!!"
학생들이 좋아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라 스파뇨라’를 선택하여 불렀다.
외우기 쉽고 부르기가 쉬었던 것 같다.
<라 스파뇨라 에피소드>
다음 번호 나오세요!
"방 수영 !"
"예!"
"넌 뭐 부를래?"
"라스파뇨라요"...."그래! 알았어 자 반주 들어간다!"
나는 평소에 나를 잘 따르는 이 학생을 골려주고 싶은 장난기가 발동을 하였다.
그래서 시치미를 딱 떼고선 '돌아오라소렌토'의 첫 구절을 피아노로 졌다.
따-라-라-라- 라-라-랄-라~~~
따-라-라-라- 라-라-랄-라~~~
‘라 스파뇨라’를 준비하고 있던 이 학생은
‘소렌토’노래의 곡이 흐르는 것을 생각 못하고
‘라 스파뇨라’ 가사를 접합시키며
연신 고개를 갸웃 거리며 당황하는 것이었다.
나는 시치미를 딱 떼고
~시~작~! 하고 노래가 나오길 기다렸다.
'디스파냐 소노라 벨~라~~......
‘소렌토’ 곡에 ‘라 스파뇨라’가사를 붙여서 부르니 너무나 이상한 곡이 되어서
스스로 당황하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선생님! 선생님---! 다시요 다시 한 번 불러 볼께요--"
학생들은 모두 폭소가 쏟아져 나오고 나 역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쓰면서 다시 피아노를 쳤다.
~~역시 ‘돌아오라 소렌토’의 곡을 전주곡으로 쳤다.
이번에도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며 전주곡을 듣다가 나의 시작 소리와 함께
"~디스파냐 소노라 벨~~라~~"
아뇨 !!!선생님 제가 잘 불렀었는디요
이상 혀요 다시 한 번 하면 안 될까요?"
그 학생의 이 말과 당황하는 표정에 드디어 나의 참았던 웃음이 터져 나와 버렸다.
학생들은 함성을 지르며 책상을 두드리며 웃어댔다.
더욱 당황한 이 학생이 얼굴이 빨개져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모습...
학생들과 나를 폭소의 바다로 빠지게 하였다.
나는 웃음을 참느라고 잠시 밖에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그래 이번에-는 자알 혀~바~! ”
'짠짠짠 짠짠짜 따라라라~~~~ 짠짠짠 따라라 라~~~~~'이번에는 진짜로 ‘라 스파뇨라’의 전주곡을 쳐 주었다.
'디스파냐 소노라 베~~ㄹ 라~~ 레지나 소~ㄴ 델 아 모~~~ㄹ'
여기까지 부르던 ‘수영’이는 노래를 뚝 그치면서
"쌤님!!!!!" 아까 쌤님이 저 틀리라고 어멍겄 쳤지요?????"하며 웃었다.
학생들과 나는 또 한 번 웃음보따리를 터트렸다.
......................
교단생활을 하는 동안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작은 것에서
행복의 꽃이 나의 가슴속에 피어났다.
<‘그리워’ 노래 에피소드>
가창 시간이었다.
채 동선의 <망향>이라는 노래였는데
이 교과서에는 가사를 바꾸어 <그리워>라는 노래로 나와 있었다.
노래의 악보를 크게 그려 칠판에 붙이고 수업을 시작하였다.
" 이 노래는 원래 ‘망향’이라는 노래로서 채 동선 선생님이 일제시절
잃어버린 조국의 국권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고향이 그립다는 ‘망향’이라는 제목으로....표현한 시에 가락을 붙인 구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곡이었다.
우리가 배우는 교과서에서는 ‘그리워’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으니까....
곡의 흐름을 눈을 감고서 조용히 들어보도록 하자"
나의 낮은 목소리와 근엄한 표정에 교실은 엄숙한 침묵이 흘렀다.
모두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고 나의 손가락은 천천히 곡의 시작에서 끝까지 연주를 해 주었다.
자! 이제 내가 ‘백 뮤직’으로 이 곡을 칠 때 누가 시를 읽듯이 분위기 있게 가사를 낭독해 볼래?
“목소리 예쁜 ‘곽 은진’ 일어서서 천천히 낭독해 봐!!! ”
오르간에서 작은 소리로 전주곡이 울려나오고 그 곡은 정적을 타고 온 교실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자!~시작!
<착한 ‘곽 은진’이가 음악교과서를 들고 읽기 시작 한다.>
그리-워 그리워 찾- 아--와-도
그리-운 옛-님은 아-니 뵈 네--
들 국-화 애 처-롭고
갈 꽃--만 바 람에 날-리--고--
마음-은 어디고 붙일곳 없어 먼- 하-늘만 바-라 본- 다--네
눈--물도 웃-음도 흘러간 세-월
부질없-이 헤아리지 말-자
그대- 가슴엔 내-가 내가슴에는 그- 대- 있어---
그- 것--만 지-니고 가--자-꾸나
그리-워 그리워 찾아- 와서--
진종-일 언-덕--길---을 헤-- 메--다--가네---
이러한 가사의 노래였다.
조용하게 읽던 은진이가 가사에서 붙임표와 이음표로 된 부분에 '-'의 기호를 붙여서 노래의 단이 변하는 곳에 이르자 올바른 띄어쓰기로 읽기가 어려웠나보다
그 노래의 후반부에 '그리움 그것만 지니고 가자꾸나'가 나오는데 거기에서 실수가 나왔다.
숨소리도 조용한 분위기에 가냘픈 나의 피아노 소리와 낭낭한 목소리의 ‘곽 은진’의 낭독이 천천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만.....그...그..것만 ...만...지..니고 ...아니”
“그것만 만 지고 가 자 꾸나.....”
은진이는 읽으면서도 가사를 잘 못 읽어서 이상한지 다시금 읽는데
그...것..만 ..만 지고 가 자꾸나..하면서 고개를 갸웃 거리며 몇 번을 반복하여 읽고 있었다.
..............
"잠깐! 은진아!!! 너 지금 읽은 가사가 뭐냐!!"
"그것만 만지고 가다니......"
"그게 뭔데 그것만 만지고 가---!?"
나의 뜻밖의 질문에
..............
은진이는 입이 다물어지고 어리둥절하고 서 있었다.
은진이 얼굴이 빨게졌다.
어디선가 뒤에서 '쿠쿡-!하며 웃는 아이가 있었다.
또 한이이가 'ㅋㅋ-'웃었다.
웃는 아이의 곁에 있던 아이가 웃는 학생에게
"야! 너 왜 웃냐?"
"ㅎㅎㅎㅋㅋ 그것만 만지고 간 다 잖어??ㅎㅎㅎㅎ"
여기저기서 ‘쿡!’‘쿡!’ 하고서 참았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웃냐?!" 하고 묻는 학생과 대답하는 학생,
늦게 서야 내용을 알아들은 학생들....
이내 교실 안에는 온통 웃음바다가 되어버렸다.
....................
음악수업은 정규수업시간에 이루어지지만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는 또 다른 나 혼자만의 봉사활동을 하여야 하였다.
부라스 밴드 지도....그게 나의 봉사활동이었다.
<부라스 밴드 지도>
부라스 밴드 지도가
봉사라기보다는 나의 존재가치를 나타내는 일이었고 나 스스로 기쁨에 넘쳐서 하는 일이었다.
밴드부의 조직은 내가 부임하여 한 달이 된 4월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
...................
여기서 밴드부의 조직 경위를 돌이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3월 말 경 하루는 임실경철서장이 교장실에서 나를 보자고 한다고 연락이 왔다.
경찰서장은 경찰악대 출신이란다.
그는 우리 학교에 부라스 밴드를 만들기로 교장선생님과 이미 약속이 되었다며 나를 만나보고 싶었다 한다.
교장선생님의 설명에 의하면 밴드 부를 조직함에 있어서 학교에서는 상징적으로 일부의 예산만 지원하고,
나머지는 경찰서장이 군수와 농촌지도소 소장 그리고 마을에서 사업을 하는 유지들을 설득하여 협찬금 일천만원을 확보하였으니 부라스 밴드 부를 조직하여 악기 구입과 학생지도를 맡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올 것이 왔구나’.. 나는 벅찬 기쁨으로 가슴이 뛰었다.
이제 지사중학교의 그 낡은 악기와 어린학생들의 연주가 아니라 명실 공히 부라스 밴드다운 밴드부를 지도하게 되는 구나!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나는 전주농고 부라스 밴드 선생님인 ‘김 종태 ’선생님을 만나서 자문을 받았다.
그의 조언에 따라 악기 구입의 종류와 숫자를 정하고 입찰공고를 내었다.
‘중앙악기점’ ‘제일악기점’ ‘남문악기점’...등등 많은 악기점 사장들이 모여들어 입찰에 참가하였다.
.............
‘중앙악기점’으로 낙찰이 되었고 며칠 만에 악기가 들어왔다.
..............
밴드부 학생들의 유니폼을 서울의 어떤 업체에 맡겨 옷이 들어왔다.
..............
밴드부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매우 많아서 이들의 음악성과 체격조건 등을 감안하여 부원을 조직하였다.
악기를 처음 만져보는 학생들이기에 학생들의 적성에 맞는 악기 배정과 악보 읽는 방법, 그리고 악기의 기본 운지법과 소리내기를 훈련시켰다.
감정이 유연한 학생들이라서 무척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기본적으로 훈련이 끝나고서는 처음으로 ‘의식 곡’부터 쉽게 편곡하여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국기경례, 애국가, 묵념 곡, 그리고 아리랑 행진곡, 간단한 민요곡 등을 가르쳤다.
큰북과 작은 북의 리듬악보까지 편곡하여 듣기 좋은 합주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C조의 ‘피아노’ 악보를 가지고
Bb조 악기인 ‘테너 색소폰’ ‘소프라노 색소폰’ ‘트럼펫’ ‘클라리넷’...으로 편곡하기와
Eb조 악기인 ‘앨토 색소폰’ 악보로 편곡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덕분에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다.
밤잠을 설치면서 각각의 악보를 편곡하고
편곡된 악보를 각각의 악기별로 오선을 그려서
등사 원지에 철필로 악보를 그리고 이것을 등사하여 나누어 주는 일까지 나 혼자서 하여야만 하였다.
악기점에서 팔고 있는 악보는 너무나 보기에 어려워서 처음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물론 나 자신도 그 악보를 소화할 수가 없었다.
점심시간에 연습을 하고 방과 후에 학교 뒷산 골짜기 까지 올라가서 연습을 하여야 학교수업에 지장이 없었다.
악장을 맡았던 ‘이 광신’은 잘 생긴 미남학생이었고 음악성도 탁월하여 여러 가지 악기를 잘 다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작은 강당에서 또는 악기창고에서 연습을 하였다.
매주 월요일에 하는 애국조회 때 반주를 위해서
(국기 경례 곡) (애국가) (묵념 곡) (간단한 행진곡)을 우선 연습하고
군청에서 주관하는 국경일에 밴드를 초청하기 때문에
(삼일절 노래), (6.25노래), (제헌절 노래), (광복절 노래)등 의식곡을 기본적으로 가르쳐야 했다.
학생들에게 연습을 시작한지 한 달이 조금지난 6월 어느 날이었다.
군청에서 ‘새마을 전진대회’를 한다고 우리 밴드부의 ‘의식 가’ 반주를 부탁하여왔다.
처음공연이어서 며칠간 연습을 열심히 하였다.
새로 산 멋있는 유니폼을 입고 깃털을 꽂은 멋진 모자를 쓰고 번쩍번쩍 빛나는 악기를 들고 시가행진을 하였다.
간단히 연습한 행진곡을 불면서 시가지를 걸었다.
길가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악대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좋은 구경거리가 생긴 것이다.
나는 옆에 따라가며 어깨가 으쓱 해 지고 정말 기분이 좋았다.
임실고의 밴드는 임실의 명물이 되어서 각 기관의 행사장마다 불려가고 한 번씩 공연을 하면 학생들에게 식사와 과자를 사 주라고 몇 만원씩 봉투를 주기도 하였다.
학생들은 연주 있는 날을 무척 기다렸다.
그날은 수업을 빼먹을 뿐 만 아니라 식이 끝난 후 기관에서 준 돈으로 점심을 맛있는 짜장면을 먹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학교의 소풍이 있는 날 학생부 선생님은 출발 직전에 학생들이 소지품을 모두 검사하여 술과 담배를 빼앗았다.
소풍가는 날 맨 앞에서 밴드부가 나팔을 불면서 행진하고 그 뒤를 이어 학생들이 따라왔다.
소풍 목적지는 뒷 절이나 정월리 정도였는데 시가지를 지날 때 밴드부의 연주가 온 마을을 울리고 지나가므로 길가 양편에는 가게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모두 쏟아져 나와 밴드부의 멋진 행진을 구경하였다.
점심시간에 교사들이 모여 도시락을 먹을 때 밴드부의 ‘수자폰’부는 학생이 찾아왔다.
“선생님! 이것 드셔요...!”
소주 2병이었다.
“야! 이걸 어디서 가져왔어?”
“수자폰 속에 넣어서 안 들켰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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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내에서 상당히 유명하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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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꿈처럼 흐르는 가운데 밴드부의 기능신장을 위하여 전주농고 코치였던 '오 재남' 선생님을 채용하고 나는 연주지도를 하지 않고 밴드부학생의 관리만을 맡게 되었다.
학교의 일이 한결 수월해 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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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어떻게 가는지 느끼지도 못한 채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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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제일 고등학교 교가 작곡>
지사중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던 ‘김 현옥’ 선생님이 진안여자고등학교로 발령을 받아서 나갔다는 소식과 함께 그녀에게서 내게 부탁이 왔다. ‘
진안여고(현재의 진안 제일고)가 이제 개교를 하게 되는데 아직 교가의 작곡을 하지 않아서 자기가 그 작곡을 누구에게 의뢰하여 해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내가 지사중학교의 교가를 작곡한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기 학교의 교가도 작곡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
지사중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던 시절 그녀는 나를 무척이나 따르는 초임 교사였었고 나는 그녀를 매우 귀여워했었기에 흔쾌하게 받아들여서 작곡을 하였다.‘
‘이 기반’ 시인의 작사였다.
진안 제일고 교가
이 기반 작사
정 일웅 작곡
1 마이산 높은 정기 꿈도 푸르니
금 당의 종소리에 모여든-우라
지상의 낙원이룰 큰 꿈을 안고
새날의 인간상을 가꾸는 전당
영-원한 진리의 빛 찬란-도 하다
그 이름 제일고교 길이 빛나리
2. 비둘기 날아드는 아침 꿈동산
우정의 보금자리 날로 새-로워
참되고 아름답게 큰 뜻을 닦자
나라의 일꾼들을 기르는 요람
영-원한 진리의 빛 찬란-도 하다
그 이름 제일고교 길이 빛나리
나는 작곡한 곡을 악보에 쓰고 녹음기에 피아노를 치면서 학생들이 따라서 배울 수 있게 녹음을 하였다. ‘
녹음 테이프만 틀어 놓으면 50분 수업이 되고 한 시간에 교가를 완벽하게 부를 수 있는 테이프를 만들어 같이 보냈다.
또 하나의 테이프에는 개교식에서 쓸 수 있도록 교가의 전주곡과 노래하는 테이프를 따로 만들어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는 ‘가정과’ 교사였으며 이제 막 개교를 하는 학교라서 음악교사가 없는 학교이기에 그녀가 음악을 병치하여 맡았던 거였다.
나는 그녀가 피아노를 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친절하게 녹음테이프를 만들어 주었다.
지금도 그 교가는 진안 제일고등학교의 교가가 되어 부르고 있다.
드디어 임실군을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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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 군에 만 6년이면 장기근속으로 타지로 떠나야 한다.
나는 3월 6일자 발령이기에 6일이 모자라서 7년이나 임실군에 있었다.
<강제로 쓴 각서>
임실군에서의 근무기간이 끝나고 이제 다른 시 군으로 학교를 옮겨야 했다.
어디로 가게 될까?....
희망지는
제 1희망 전주시 고등학교,
제 2희망 이리시 고등학교,
제 3희망 김제시 고등학교,
제 4희망 군산시 고등학교, 라고 무작정 썼다.
고등학교에 근무하여보니 중학교보다 훨씬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2월 말이 가까워진 어느 날 밤 11시가 넘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정 일웅 선생님 댁이죠?”
“예! 접니다만 어디시죠?”
“여기 도교육청인사과 인데요~~”
“그런데요?”
“어려운 일이 생겨서 상의 말씀 좀 드릴려구요~”
“뭔데요?”
“먼저 한 말씀 묻고 싶어서요~!”
“뭘요?”
“선생님 저~~! 꼭 이리시 고등학교로만 가셔야 하는지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1, 2, 3, 4희망지가 있잖아요?”
“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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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통화 끝에 알게 된 사실은
인사 발령도 교사 개인의 서열 점수에 따라 희망지 별로 발령하게 되어 있는데
나의 ‘제 1 희망지’ 전주시에는 고등학교에 미술과 교사의 빈곳이 없고
나의 ‘제 2 희망지’인 이리시의 ‘이리여고’에 미술과 교사가 필요하여 서열부에 의하면 내가 가게 되었는데
인사담당 장학관에게 인사 청탁이 들어 온 모양이다.
담당 장학관이
‘어떤 수단 방법을 다 해서라도 꼭 ’X XX‘교사를 이리여고에 넣어라’는 말을 인사담당자에게 했으니
나보다 점수가 낮은 그를 이리 여고로 보내려면
나에게서
‘이리시의 중학교로 발령을 내어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안 하겠다’는 각서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원칙대로만 해 주세요!” 하고 완강하게 거부하는 나에게
익히 잘 알던 인사 담당 장학관이 전화를 바꿨다.
절친하진 않지만 평소 형 동생하고 부르던 사이였다.
그는 안면을 완전히 바꾸고 냉정하게 협박조의 말을 하였다.
“정 선생님 끝까지 버티실 겁니까? 앞으로 편 하실 라면 협조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더욱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내가 노발대발하는 것을 옆에서 듣던 아내가
“오죽 다급하면 그런 부탁을 하겠어?”
“그냥 들어 주는 것이 앞으로 근무하는데 편할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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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내의 말대로 내일 아침 ‘각서’를 써서 가져가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의 발령장에는
‘이리시 교육장이 지정하는 중학교 근무를 명함’이라고 써져 있었다.
‘오 무창’선생이 이리여고에 발령을 받고 부임하였다.
아! 그렇지 오 무창 선생님의 어머니가 어느 학교 교장선생님이고 도 교육청 인사 담당 장학사가 ‘오 길판’ 선생......성씨로 관계가 있던지 아니면 오 무창선생의 어머니의 특별한 부탁이 있었나보다.
나의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나에게 각서를 써 달라고 거의 강제로 공갈을 하던 이유를 짐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