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악몽(惡夢)
이튿날 아침 무거운 발걸음을 학교를 향하여 옳기고 있었다.
어제와 오늘 사이가 몇 달이 지난 듯 어제의 일이 오래 전에 꾼 악몽처럼 느껴지고 학교에 가 봤자 아무도 없을 것 같은 허전한 마음이 나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하였다.
직원회의는 '남숙'이의 죽음에 관하여 모두 비통한 마음을 토로하였고 학생의 안전 지도에 관한 말들이 오고 갔다.
회의를 마치고 쓸쓸히 출석부를 뽑아 들고 나의 학급 교실로 향하였다
오늘 따라 교실 안은 너무나 조용하였다.
아이들은 모두 조용히 앉아 고개를 숙이고 책을 읽는 척하고 있었다.
너무나 숙연하고 슬픔 속에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는 가까스로 진정하고 있는 '남숙'이에 대한 나의 그리움과 불쌍함과 처량함에 문득 문득 치솟아 나려는 눈물샘의 자율신경을 억제할 수 없게 만들고 말았다.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꼈지만 어금니를 꽉 깨물고 교단에 올라 교탁 앞에 섰다.
여자 아이 들은 고개를 숙여 양팔에 이마를 대고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오 기호'처럼 나이든 머시매도 눈이 빨개져서 겸연쩍은 표정으로 창밖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하다...........................
'열중 쉬어!
차려!
선생님께 경레!'
라고 가냘픈 목소리로 구령을 부쳐주던 '남숙'이의 자리에 '남숙'이가 없다.
텅 빈자리에 누군가 사이다 병에 병목이 가득 차게 진달래꽃을 꽂아 책상 가운데에 올려놓았다.
그 옆자리에 '귀례'가 엎드려 가냘프게 어깨를 떨어 오열하고 있었다.
그 꽃을 보는 순간 참았던 나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리려 하였다.
나는 당황하여 억지로라도 무슨 말이라도 하여야 하겠기에
"얘들아! 고개를 들어 봐............." 까지는 말을 하였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말았다.
나는 눈물 흐르는 나의 일그러진 모습을 애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칠판 쪽으로 얼른 몸을 돌려 버렸다.
실같이 가느다란 어린 소녀의 절규가 들려왔다. '귀례'의 목소리였다.
"............'남숙'아.....! 나는 니 짝궁인디 니 매똥도 못 봤어야......"
"....흐흐흐흐으 너 줄라고 인형이랑 만들어 왔는디 이-이-이-잉--"
말을 맺지 못한 '귀례'는 '엉엉'커다란 소리로 울음을 터트려 버렸다.
그것은 통곡의 도화선이었다.
초상집에서 병든 어머니의 마지막 임종의 순간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딸들이 임종이 확인되는 그 순간에 일시적으로 터뜨리는 그런 통곡처럼 걷잡을 수 없는 통곡이 쏟아져 나왔다.
울음소리는 순식간에 주위 어린이들의 오열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되어 점점 더 커져가고 나는 더 이상 교실에 있을 수 없어서 교무실에 돌아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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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하루는 수업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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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나고 세월이 감에 따라 '남숙'이의 죽음도 차츰 아이들과 나의 기억 속에서 슬픈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 잡으며 멀어져 갔다.
그래서 사람은 살아가는가 보다.
부모를 잃고도, 자식을 잃고도, 아내를 땅 속에 묻고서도,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서도, 세월이 지나면 그때는 너무 서러워 못 살 것 같았노라고 남의 일을 말하듯 얘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여름 방학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산골이라도 여름은 꽤나 더웠다.
장마가 계속 되어도 푹푹 찌는 더위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습도가 높은 공기는 흐르지 않고 정체되어 온 몸에 끈끈한 비지땀을 흥건히 적시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뚝뚝 떨어지며 흐를 지경이었다.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은 하숙집에서 잠을 자는 일이었다.
낮에 내가 학교에 가고 없는 동안 하루가 멀다 않고 '빨래를 삶는다', '간장을 다린다' 하여 내가 잠자는 방에 불을 때는 것이었다.
하드보드 장판이 휘어져 올라올 만큼 뜨겁게 불을 때니 방에 잠을 자려 들어가는 것이 끔찍스럽기 까지 하였다.
나는 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어떤 불만이나 불평을 남의 마음에 상처를 줄까봐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그냥 혼자 삭이며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하고 지나쳐 버린다.
방에 불을 때는 것도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꿍꿍 삭이고 있는데 어느날 하숙집 아주머니께서 말씀 하셨다.
"선생님 방에 불을 때서 미안혀요!"
"너무 더웁지라우?"
나는 맹꽁이처럼 '제발 불 좀 때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라는 말을 하지 못 하고
"아!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잘 만 해요!"이렇게 말을 하고서 속으로는 금방 후회하며 내 자신에게 '야이 순 뒤야지 같은 놈아! 왜 거짓말을 혀!"하며 스스로를 꾸짖었다.
아주머니는 속도 모르고
"하이고! 참말로 다행이네요!.... 지는 또.... 혹시 더워서 잠이나 못 주무실까 허고 걱정 혔는디요잉!"
....'으이구....! ..이 등신아! 빨리 말을 혀! 불 좀 그만 때라고!'
불을 그만 때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쏙 기억 들어 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비상수단을 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에 있는 등불을 들고 학교로 향하였다.
학교는 동내에서 떨어져 있었고 학교 주위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밤이면 무척 조용하고 적적하였다.
텅 빈 교실에 들어가 유리창을 열어젖히고 2인용 책상을 여섯 개를 끌어다 창가에 붙여 놓고 등불을 유리창 틀의 난간에 세우고서 담요 한 장을 편 다음 책꽂이에서 새교실(교사들이 읽는 월간지 이름)을 몇 권을 뽑아 창 쪽 책상 끝에 놓고서 책을 베개 삼아 누어 보았다.
은은한 불빛은 독서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가끔씩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와 누어있는 나의 배를 시원하게 해 주었고 바람이 불지 않아 더위가 찾아오면 부채로 부쳐서 바람을 내었다.
논에서 들려오는 깨구락지소리를 들으면 더욱 아늑해졌다.
교실 밖 담장에서 들리는 여치소리와 귀뚜라미 소리, 지렁이의 긴 목청 가다듬는 소리, 개구리 소리에 섞여 맹꽁이가 띄엄띄엄 박자를 맞춰주는 합창은 더욱 듣기에 좋았다.
이렇게 기막힌 숙소를 왜 이제야 생각해 냈을꼬?
늦긴 하였지만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역시 나의 머리는 잘 돌아간단 말이야!'
나는 쾌적한 숙소를 발견한 기쁨에 혼자서 웃었다.
그렇다! 여긴 나에게 너무나 어울리는 숙소이다.
소리쳐서 크게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또 심심하면 풍금도 칠 수가 있다.
개 짖는 소리도 멀리서 가물가물 들리고 환상적인 독서실이요, 쾌적한 침실이요, 한없이 자유로운 음악실이다.
비록 관람자는 없어도 나 혼자서 독창 발표회도 매일 열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나를 기쁘게 한 것은 뜨거운 방바닥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근엄한 폼을 잡으며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웨--ㅇ--웨--ㅇ----'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종아리와 발목이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모기떼의 기습이다.
'이 외로운 산중에 오늘밤엔 어쩐 일로 이다지 푸짐한 식사 깜이 찾아 왔다냐!'하며 목아지며, 팔뚝이며, 물어 제키는 데는 견딜 수가 없었다.
책 읽는 것은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등불을 끄고 담요 한 자락을 휙-감아 얼굴에서 발끝까지 감싸 버렸다.
모기들이 화가 나서 식사 깜 주위를 빙빙 돌다 흩어짐을 느꼈다.
아주 약이 오른 모기 몇 마리가 담요를 뚫고 나의 배꼽 근처를 물었지만 참을 만 하였다.
잠이 슬슬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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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잠을 맛있게 잔 것 같다.
이튿날도 또 그 다음 날도 나의 숙소는 학교의 우리 반 교실로 정해져 버렸다.
학교 건물은 내가 하숙하고 있는 사구촌 마을에서 바로 건너편 산 아래턱에 있기 때문에 학교 운동장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또한 학교 옆을 지나서 뒷산을 넘어 가면 '하 필봉리(下筆峰里)' 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로 가려면 험한 산길을 넘는 것보다는 행길을 따라 산모퉁이를 돌아서 가는 길이 훨씬 가깝고 편하므로 일단 학생들이 하교를 하고 나면 아무도 학교 근처에 오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밤에 숙직을 하며 학교를 지킬 필요가 없었다.
또한 학교라고 해보았자 덩그런 건물 한 채와 건물 안에 학생 책걸상밖에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도 내가 학교에서 밤에 잠을 잔다는 소식을 들은 교장 선생님은 숙직을 해 준다는 의미에서인지 좋아하는 눈치였다.
아무튼 나는 매일 밤을 학교에서 지내고 새벽에 일어나 운동장을 서너 바퀴 뛰어 돌다가 마을로 오는 개울물에 몸을 씻고 집에 와 식사를 하고 출근을 하였다.
이러는 동안 어느덧 여름 방학을 맞아 교사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갔다.
방학 동안에 일주일간씩 학교를 지켜야 한다기에 나는 처음 일주일간을 지키기로 하여 혼자 남았다. 하숙집에서 밥을 먹는 시간외에는 종일 풍금도 치고 마음껏 독서도 할 수 있어서 아주 자유스러웠다.
근무조의 마지막 날 그날은 유별나게도 무더웠다.
아침부터 이글거리는 태양이 온 대지를 불에 태우려는 듯 불같은 햇살은 온 천지에 쏟아 붓고 있었다.
습도가 높아서 그늘에 앉아 있어도 땀이 주룩 주룩 흘러 내렸다.
억세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한여름의 태양에 더욱 뜨거운 에너지를 공급하는 듯하였다.
여름 낮은 길고도 길다.
저녁 여덟 시가 넘어 해가 죽원 마을의 뒷산으로 넘어가고 희뿌연 어둠이 필봉산 기슭의 밤나무 숲을 검정색으로 물 들여가고 있어도 끓는 물의 김처럼 더운 공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아마도 옥정 호수의 물이 낮 동안 '부글부글' 끓어 옥정 호수를 거쳐서 백련산 쪽으로 부는 바람을 타고 이곳으로 이동 하는가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마을 앞 정자나무 아래서 모깃불을 피워놓고 동네 할아버지들이 들려주는 도깨비 이야기를 들었다.
언제나 여름날 이렇게 날씨가 무덥고 구름 낀 날 밤에는 학교 뒷산의 아장터(어린이를 묻는 묘지 터)에서 파란 도깨비불이 이리 저리 움직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어린이들의 떠드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려온다고 하며 모두들 누구는 언제 그것을 보았다고도 하고 자기는 직접 몇 년 전에 밤에 필봉리를 넘어 가는데 자기 뒤에서 자꾸만 도깨비불이 따라다녔다는 둥 어렸을 적부터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하는 소리를 하릴없이 듣는 가운데 더위를 잊고 여름밤은 점점 깊어 갔다.
무성하게 자라난 논의 벼들이 검은 모포를 펼쳐 놓은 듯 가지런하고 그 논 속으로 수천 마리의 개구리들이 끊임없이 울어 대고 있었다.
가끔씩 점잖은 맹꽁이의 꿍얼거리는 목소리가 구성지게 들려오고 있었다.
쓰르라미와 와가리가 정자나무 위에서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노래를 하고 있었다.
정자나무 위에서는 매미 때들이, 돌담 틈에서는 귀뚜라미가, 풀 숲 속에서는 여치가, 논고랑의 진흙 속에서는 지렁이 울음소리가, 개구리들의 대 합창 연주에 찬조 출연을 하여 학석 마을의 여름밤은 대 자연의 장엄하고 신비스러운 음악 축제를 연출하고 있었다.
총총히 보이던 별들이 죽원 마을의 하늘 쪽부터 차츰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카치오페아 별자리가 백년산 뒤쪽에 숨어 버리고 북두칠성이 회문산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합창 연주의 음량은 점점 더 커지고 상큼한 풀 냄새를 내며 모락모락 타는 모깃불의 하얀 연기가 산신령처럼 흐물흐물 몸을 흔들며 하늘로 올라가다가 슬그머니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북서쪽 하늘에 먹구름이 낮게 내리 깔리며 서서히 몰려오고 있었다.
멀리서 하늘을 가르는 섬광이 비치고 '구르릉 구르릉' 천둥소리가 마치 오케스트라의 큰북과 팀파니의 북 면을 솜방망이로 치는 듯 크렌센도와 데크레센도를 되풀이하면서 간헐적으로 들려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더욱 품위 있게 해 주었다.
할아버지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뜨고 모깃불도 거의 꺼져 갔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바람이 갑자기 시원해지며 차츰 세게 불어오는 것이 소나기라도 한줄기 시원하게 내리 쏟아질 것 같았다.
나는 아무 소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숙소인 학교로 향하였다.
동료 교사들이 모두 고향에 돌아가고 나 혼자 남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자 항상 아무도 없는 텅 빈 학교였지만 오늘따라 더욱 조용한 것 같고 어쩐지 조금은 쓸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복도 문을 드르륵 밀어 열고 깜깜한 복도를 걸어 우리 반 교실 앞에 이르렀다.
여닫이로 된 교실 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섰다.
퀴퀴한 냄새와 습기를 머금은 정체된 공기가 답답하게 닫아놓은 창에 갇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문을 닫고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깜깜한 교실이지만 교단을 지나 북쪽의 유리창까지는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다.
커다란 성냥 통은 언제나 창틀 난간에 그대로 있다.
성냥을 그었다.
유황이 작은 나뭇개비 끝에서 폭발하며 섬광을 발산하였다.
눈앞에 확 밝아지며 교실 안이 밝아졌다.
성냥을 잡아 쥔 내 오른 손의 그림자가 교실 바닥과 천장에까지 크게 괴물 같은 어두운 형체를 이루며 움직이고 있었다.
호롱에 불을 붙였다.
노란 불꽃이 가볍게 떨며 조금 커지고 교실의 광선이 안정되었다.
출석부를 찾아 'ㄱ'자로 펴서 호롱 뒤에 세우고 바람막이를 하였다.
유리창을 열고 창밖을 보았다.
하늘이 온통 먹구름에 가려져 칠흑 같고 온 동네는 불빛 하나 보이지 않고 무거운 침묵 속에 잠들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조용히 밀려들어 왔다.
언제나 하듯 책상을 밀어 침상을 만들고 담요를 펴고 책을 베고 누웠다.
개구리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 왔다.
엉클어진 수많은 영상들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차가운 느낌의 바람이 '휘익' 불더니 호롱불이 펄럭 꺼졌다.
교실 안이 온통 어둠에 휩싸이고 암흑천지로 변해 버렸다.
밤마다 극성스럽게 달려들던 모기가 오늘밤엔 한 마리도 접근하지 않았다.
담요 한 자락을 잡아당겨 몸을 덮었다.
기온이 좀 더 떨어지고 바람이 세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교실 안이 번쩍 밝아 졌다.
눈부신 섬광이 번쩍거리며 한참동안 머물렀다.
창틀의 모양이 교실 벽면에 진한 그림자를 만들고 한동안 명멸하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순간 '따다다딱!--'하는 굉음이 천지를 진동하고 교사의 모든 창틀이 일시에 덜컹거리며 떨었다.
성난 사자의 포효(咆哮)처럼 '구르릉-- 구르릉--' 소리를 내며 천둥소리가 뒤 산에서 뒷산으로 메아리를 남기며 울려 나갔다.
복도 끝 쪽 교실에서부터 유리창이 세게 흔들려 덜컹 덜컹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고압선의 전선 우는소리가 ‘윙- 휘-잉- ’하며 밤하늘의 유령들이 통곡하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후둑' '후두둑'
굵은 빗방울이 난데없이 일어난 바람을 타고 들어와 누어있는 나의 얼굴과 배 위에 몇 방울 떨어졌다.
연이어 바람은 더욱 기세를 더하여 온 교실의 창문을 흔들어 대고 운동장 앞 대발의 댓잎에 부는 바람소리가 폭포의 물소리처럼 들려 왔다.
교사의 맨 끝의 지붕에 슬레이트 한 장이 깨져나가 함석 한 장을 붙여 못질해 놓은 것이 바람에 못 이겨 한쪽이 뜯겨진 듯 요란한 굉음을 내며 '꽈르릉--차앙 - 꽈르릉-차앙-'지붕을 치고 있었다.
지붕에 부딪히는 함석판의 요란한 금속성 굉음은 지붕아래 텅 빈 보꾹에서 더욱 크게 공명되어 구르다가 교실에서는 더욱 크게 들려 왔다.
'쏴아--'
빗줄기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억수 같은 빗줄기가 세찬 바람과 함께 갑자기 교실 안으로 밀어 닥쳐왔다.
순간적이었지만 나의 몸이 물벼락을 맞은 듯 젖어 버렸다.
얼른 손을 뻗어 유리창을 닫았다.
바람은 더욱 거세어지고 유리창의 흔들거림이 더욱 요란해 졌다. 지붕 위의 함석은 연달아 '꽈다당 꽈다당' 소리를 내며 미쳐 날뛰었다.
빗줄기가 사정없이 거칠어 졌다.
유리창에 부딪치는 빗줄기가 얼마나 센지 유리를 삽입한 창틀의 홈을 통하여 교실까지 이슬비 같은 물 가루를 뿌려 대고 있었다.
번갯불의 섬광이 너무나 가까이 에서 빛났다.
바로 운동장에서 벼락이 친 듯 나의 온 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섬광과 동시에 '꽝-따따딱--딱'
고막을 찢는 듯 무서운 뇌성 소리가 들렸다.
운동장 앞 커다란 포플러나무가 꺾여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함석으로 만든 홈통에서 삽시간에 내린 빗물이 꽉 차서 연신 '그르릉그릉'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공포가 갑자기 나를 엄습하였다.
성냥불을 그어 불을 붙여 보려고 성냥이 있는 곳에 손을 뻗었다.
빗물에 젖어 척척한 성냥 통이 손에 잡혔다.
성냥 통 안에 빗물이 그득히 고여 있었다.
불을 켤 수가 없었다.
폭풍우가 미친 듯 휘몰아치는 깊은 밤에 산 속의 커다란 집안에 나 혼자 암흑 속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자 전신이 움츠려 들고 두려운 마음이 나를 사로잡았다.
성냥개비 하나가 없어서 불을 켤 수가 없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 하찮은 성냥개비 하나가 이토록 절실하게 필요 해 본 적이 있었을까?
하는 수 없었다.
그냥 빨리 잠이 들고 내가 잠든 사이 폭풍우가 개이고 밝은 아침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나중 얘기지만 그날 밤에 내린 폭풍우로 산사태가 일어나 운동장에서 교사에 이르는 흙 언덕이 5미터 이상이나 유실되고 운동장 가운데 도랑이 패여 깊이 내를 만들어 버렸다.
폭우 속에서 나는 노아 홍수를 연상해 보았다. 이처럼 며칠만 더 비가 내린다면 온 세상이 물속에 잠길 것 같았다.
비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것은 뇌성벽력이었다.
거대한 산소 용접봉에서 피어나는 듯 파란 광선이 갈기갈기 북쪽 하늘을 찢으며 명멸 할 때 교실의 남쪽 벽에 유리창틀 그림자가 선명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바로 뒤이어 온 천지를 들썩들썩 흔들며 내리치는 천둥소리에 교사 전체의 유리창이 와장창 깨질듯 흔들거리고 유리창을 갈기는 굵은 빗줄기가 더욱 거세어 졌다.
한 번 더 번개와 천둥이 휩쓸고 가는 바로 그 순간에 나의 온 몸을 움츠려들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그 소리는 비바람의 작용으로는 낼 수 없는 소리였다.
그것은 오늘 저녁, 내가 들어 올 때 분명히 닫아 두었던 복도의 서쪽 출입구의 미닫이문을 '드르륵' 밀어 여는 소리였다.
이 험악한 폭우 속에 문을 밀어 여는 것은 누구란 말인가?
온 몸의 피부가 움츠려 들고 머리카락 모두가 곤두서 일어남을 느꼈다.
대자연의 분노 앞에 인간이 얼마나 작은 미물인가?
나는 마치 거대한 산 속에서 폭풍우에 휘말려 떠내려가는 개미처럼 무기력함을 느꼈다.
어둠 속에서지만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 청각을 곤두 세웠다.
문을 열었으니 누군가 왔다면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릴 것이다.
공포에 질린 나는 십자 성호를 긋고 '주님 나를 이 공포에서 구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올렸다.
복도의 열린 창으로 세찬 비바람이 휘몰아쳐 들어오자 모든 교실과 복도의 유리창이 더욱 세차게 흔들렸다.
번쩍! '꽈르르르릉' '쏴아아'---.
또 한 번 섬광이 전신을 저르르 전율케 했다.
두 무릎을 구부려 배에 대고 이마를 무릎에 묻은 체 두 손목으로 머리를 감쌌다.
'딱! 따닥 따닥 딱!'
교사의 바로 뒤편 어딘가에 또다시 벼락이 친 모양이다.
'주님! 주님! 나를 지켜주소서'
소리 없는 나의 기도는 그야말로 처절한 절규였다.
순간, '쿵당, 쿵당' 복도의 판자 바닥 위를 가볍게 뛰는 듯 소리가 나더니 몇 발자국 가까이 오다가 멈췄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 가는 폭우의 소음 속에 걷잡을 수 없는 혼돈과 공포에 휩싸여 죽음을 눈앞에 감지한 미물처럼 저항할 의지와 힘을 잃어버린 나는 오직 심장의 고동소리에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느꼈다.
지붕 위의 함석판이 계속해서 '꽈르릉' '꽈르릉' 굉음을 내고 양철제 홈통의 물소리 또한 성난 맹수의 포효처럼 기세 좋게 으르렁 거렸다.
또 한 번 고압선이 윙- 울었고 폭우의 파도가 밀려왔다.
'따닥따닥' 우박까지 섞여서 유리창을 깨트릴 것처럼 미쳐 날뛰었다.
수많은 죽음의 신들이 나 하나의 생명을 가져가기 위해서 닫혀있는 유리창을 열어 재끼려 모든 유리창에 달라붙어 그들의 검은 날개 짓을 퍼덕거리는 것 같았다.
'통, 통, 통' 판자 위를 걷는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다시 또 들리더니 내가 갇혀있는 교실의 출입문 앞에서 멈추었다.
의식이 몽롱해져 감을 느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주의기도(主祈禱文)를 읊조리며 수호천사에게 기도를 올렸다. '이렇게 움츠리고만 있을 수 없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은가.
나는 영세를 받은 하느님의 사람이다.
잡귀가 내게는 대적 할 수 없다.
그렇다 용기를 내자. 그 소리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나는 일단 새우처럼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때까지 나는 침상으로 만든 책상 위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책상이 삐거덕거렸다.
'쏴아 꽈르릉'
나의 정신적 안정을 자꾸만 공포의 도가니로 휩쓸어 가는 그 소리들이 더욱 기세를 더했다.
죽음의 사자가 더욱 세차게 유리창을 흔들어 댔다.
순간 파란 전광에 일시에 교실이 밝아졌다.
사람처럼 생긴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교실 벽면에 또렷하고 커다랗게 박혀 있었다.
'아악!' 터지려는 외마디 소리는 목안에서 기어 나오지를 못했다.
사진기의 플래시가 터지고 난 것처럼 시야가 암흑에 휩싸일 때 벽을 보던 나의 눈엔 시커먼 그림자의 보색잔상이 허옇게 남아 있음을 느꼈다.
온 산이 흔들리며 긴 천둥소리가 이어졌다.
그때
'선생님--' 하는 흔들리는 가느다란 소녀의 목소리가 바늘처럼 나의 고막을 자극했다.
분명히 힘없이 지르는 가느다란 소녀의 슬픈 목소리였다.
'이런 귀신 곡할 노릇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순간 번뜩 스치는 생각이 나를 전율케 했다.
'남숙'이!
'남숙'이의 마지막 가는 그 순간에 힘없는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며 파란 입술을 떨어 죽을힘을 다해서 부르던 그 목소리다. 나는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양팔의 솜털이 바늘처럼 일어나고 땀구멍 하나하나가 움츠려 들며 피부에서 융기하였다. 머리카락이 고슴도치처럼 곤두섰다.
혼령?
혼령일까?
남숙이의 혼령이 나타난 것일까?
그를 내 손으로 돌무덤에 묻은 지 겨우 삼 개월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나의 뇌리에는 그 소녀의 모습이 벌써 아득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자기가 살아 있을 적 그토록 사랑해 주시던 선생님이 자기를 잊고 있음에 대한 원혼의 항변일까?
어린 넋이 천당에 들지 못하고 연옥의 뜨거운 불 속에서 고독과 외로움과 고통을 견디다 못해 나에게 기도를 당부하는 영혼의 소리인가?
극락에 들지 못하고 구천을 헤매던 남숙이의 넋이 이승 사람들의 자기에 대한 망각으로 영혼의 교신이 끓어져 외로움을 참지 못해 내게 나타난 것일까?
혼령의 소리인 듯 가냘픈 목소리를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이 휩쓸고 멀리 사라져 가고 잠시 바람이 멎었다.
유리창의 덜컹거림도 지붕 위의 함석 소리도 잠시 멈추고 ' 쏴-아' 하고 퍼붓는 비 소리와 홈통의 그르렁 소리만 들려왔다.
고요가 암흑 속에서 또 다른 공포로 다가왔다.
나는 숨을 죽이고 금방 또다시 남숙이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 귀를 기우렸다.
고압선이 먼저 우-웅 소리를 내며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이어서 댓잎이 한쪽으로 몰리며 세차게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번쩍 ! '꽈닥! 꽈닥! 따다다딱!'
이윽고 잠시 쉬었던 폭풍과 빗줄기가 휘몰아쳐 온 천지는 또다시 공포의 지옥 속으로 변했다.
복도와 바람이 휘익 몰아쳐 유리창이 온통 흔들거렸다.
그 바람 속에서 다시 한 번 들려오는 소리 !
생생하게 '남숙'이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바로 나의 교실 문 밖에서
"선- 생- 님-!"
으스스한 소리였다.
"누구냐!"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었다.
나의 목소리가 빈 교실에서 괴상하게 반향(反響)했다.
....................
"남-숙-이-어-요-...."
분명한 응답이었다.
이 밤에 어떤 아이가 정신 착란이나 몽유병으로 여기까지 찾아올 것인가?
나는 책상 위에서만 웅크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조심조심 책상 위에서 교실 바닥에 발을 내 디뎠다.
칠판 쪽을 향하여 손을 더듬어 나아갔다.
손을 등 뒤로 하여 교실 벽면을 더듬어 한발 한발 출입문 깨로 걸어갔다.
너무나 긴장되어서 일까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릎 관절에서 '뚝 뚝' 관절 꺾이는 소리가 났다.
출입문은 직사각형으로 베니어판을 양쪽에 대고 못질하여 만든 목재 문이었다.
문의 상단에 마름모꼴로 구멍을 내고 우윳빛 유리를 삽입한 여닫이 문이었다.
문 고리 가까이에서 나의 손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한번만 더 부르면 이 문을 열어서 확인을 해 보리라.
세찬 바람줄기가 폭우를 휘몰아치며 또다시 습격하였다.
복도에서 나뭇잎 같은 것들이 때굴때굴 굴러서 휩쓸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바로 내 앞의 출입문이 덜컹거렸다.
어떤 손이 교실 문을 열어 보려고 문손잡이를 잡고 조바심 나게 흔드는 듯 흔들거렸다.
그 흔들거림이 더욱 빨라졌다.
교실 문은 잠그지 않고 조금만 힘을 가하면 열리게 되어 있었다.
나는 석고처럼 사지가 굳어 문 옆의 교실 벽에 기대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또 한 번 나뭇잎이 바람에 밀려 굴러가는 소리와 유리창의 흔들림과 폭우소리가 거세어졌다.
백련산 뒤쪽에서 천둥이 '그르릉 그르릉'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때
"선-생-님 -- 추-워-죽-겠-어-요--"
분명히 '남숙'이의 목 소리였다.
"문-좀 열어 주 세 요--"
하는 소리가 바로 문 앞에서 들려 왔다.
무릎에 힘이 빠져며 달달달 떨고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해가며 주먹을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였다.
'에라 모르겠다'
확! 문을 밀어 재꼈다.
습기를 머금은 찬바람이 휙 교실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깜깜한 칠흑 같은 어둠 속 바로 나의 눈앞에 보여 지는 것.
그것은 실로 남숙이의 혼령처럼 느껴지는 소름 끼치도록 괴이한 형상이었다.
허공에 둥둥 뜬 허연 연기 같은 형체가 흐물흐물 움직인다.
점차 형체가 뚜렷이 잡히며 흰 치마가 바닥보다 약간 높은 허공에서 떠있는 모양으로 형태가 잡히고 흰 블라우스가 속이 텅 빈 채 허공을 감싸듯 치마에 붙어있다.
그 위에 긴 머리카락에 파묻힌 파란 얼굴이 붙어 있다.
눈동자 없는 허연 눈에서 붉은 핏방울이 주르르 눈물처럼 흘러내린다.
목 부분에서 붉은 피가 주르르 흘러 내려 흰 블라우스와 치마를 빨갛게 적시고 있다.
'남숙'이의 시신을 씻기 전의 바로 그 모습이 나를 향해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블라우스의 양 소매를 번쩍 위로 들어 펼치며 나에게 안기려는 듯 돌진 해 왔다.
" 선생님---!"
...................
"아! 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뒤도 물러서려 했으나 발이 땅에 붙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뒤로 뻥 나자빠져 떨어졌다.
그 후로는 아무것도 모른다
'번쩍 꽈르릉' 뇌성벽력이 내리쳤다.
.......................
.......................
가물가물 섬뜩하고 차가운 어떤 것이 나의 몸을 핥고 있는 것을 느끼며 나의 의식은 암흑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었다.
..............
...................
몇 시쯤 되었을까. 억수같이 퍼붓던 비는 추적추적 가는 비로 변해 있었다.
홈통의 물이 '조르랑' 거리며 적게 흐르고 있었다.
온 몸이 흥건하게 땀에 베었고 빗물에 젖었는지 아랫도리가 척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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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실 바닥에 떨어져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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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녘이 희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개구리는 멀리서 열심히 울고 있었다.
어제 밤의 악몽 같은 사건이 생시였는지 꿈이었는지 분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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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주사님이 새벽같이 삽을 들고 찾아와 내가 있는 교실로 왔다.
"정 선생님-! 난리 났네요. 운동장이 다 떠내려갔어요. "
나는 운동장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다짜고짜 '김 주사' 님을 떠밀어 '남숙'이 묘지가 있는 바위를 향하여 가 보았다.
돌무덤의 돌들을 산짐승이 후볐는지 온통 파헤쳐지고 시신에 입힌 옷이 아직 썩지 않은 부분이 있고 육탈이 덜된 유골이 멍석 찌꺼기와 긴 머리카락에 뒤엉켜 처참하게 드러나 보였다.
김 주사님과 나는 삽으로 바위 옆에 땅을 파고 시체를 옮겨 매장하였다.
근처의 흙으로 작은 무덤을 만들고 놓고 산을 내려 왔다.
...............
그날 이후 나는 한번도 '남숙'이의 꿈을 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