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최 우남 마음에 사랑이 싹트던 순간
1월 1일 새해 들어 첫날이며 임실 읍의 새해 첫 장날이다.
내린 눈도 녹을 만큼 날씨가 화창하고 따뜻하였다.
오늘은 장이 꽤나 크게 설 것 같다.
8시 30분에 학교에 도착한 나는 기능직 '이 강노'씨와 함께 조개탄 난로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 장작개비를 넣고 신문지를 구기적거려 사이사이에 찌르고 성냥불을 붙였다.
연기를 내며 불이 붙었다. 금방 얼굴이 따뜻해 졌다.
장작에 불이 활활 붙어서 타기 시작할 때 마른 장작 세 개비를 더 넣고 그 위에 조개탄을 부삽으로 수북이 퍼서 장작불 위에 얹었다.
석탄가루가 불꽃이 되어 난로 밖으로 튀어나오며 기차 화통 냄새를 확 풍겼다. 조개탄 한 부삽을 더 떠서 난로에 가득 채우고 뚜껑을 닫았다.
'부우우-' '부우우-' 소리를 내며 장작불이 조개탄에 옮겨 붙고 무쇠 난로가 팽창하는 소리가 '쩌적!' '따닥!'소리를 내었다.
난로 벽이 금 새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조개탄은 정말로 잘 만든 땔감이란 생각이 들었다.
‘최 우남’이 정확하게 9시가 되자 학교에 나타났다.
그녀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조금 후에 ‘백 남구’ 선생이 교감선생님을 모시고 들어왔다.
‘김 재문’ ‘성 철호’ ‘고 길룡’ 선생이 교무실에 들어오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조용하던 교무실이 새해 인사하는 소리로 떠들 썩 하였다.
모두들 난로 가에 모여 손을 비비며 얘기하기에 바빴다.
교감선생님과 ‘백 남구’는 오자마자 어제 둔 바둑 이야기를 시작하였고 ‘김 재문’ ‘고 길용’은 당구얘기를 시작하였다.
‘김 재문’은 동창이고 ‘백 남구’ ‘고 길용’ ‘성 철호’는 후배였다.
우리는 모두 총각이었다.
어느새 백 남구가 바둑판을 가져와서 교감선생님과 바둑을 시작하였다.
최 우남은 책상에 앉아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 최양! 이리와! 불쬐아! 춘디 왜 거그 앉었어?"
교감선생님이 ‘최 우남’ 에게 말하였다.
"요새 ‘정 일웅’이 땜에 정신 나간 거 아녀?"
‘김 재문’이 의미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모두 웃었다.
"아이!‘ 최 우남’! 이리와 얏들이 무서워? 내가 못 때리게 헐팅게 이리와!"
나는 농을 걸어 그녀의 마음을 누그러트렸다.
그녀가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쳐놓고 난로 가에 왔다.
"얄마! 늣덜! 최양 건들지마! 나하고 보통사이가 아닝게! 알았지?!"
나는 눈을 부라리는 시늉을 하며 으스대어 보았다.
"았다 성님! 형님이 껀들지 말라면 저는 꼬구라 질께요!"
‘고 길용 이 웃으며 말했다.
"너는 임마 하나 있잖여?"
‘김 재문’이 ‘길용’이를 핀잔하였다.
"그나저나 어이 자네들 새해에는 복덜 많이 받어!!!"바둑을 두다 말고 교감선생님이 한마디 하셨다.
얼마 후에 ‘최 병호’ 교무부장님께로부터 학교에 전화가 왔다.
내가 수화기를 들었기에 우린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맹장수술을 하여 병가 중이었고 연이어 방학이라 집에서 쉬시는 중이었다.
"병문안도 못가서 죄송해요! 오늘 낼 사이에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아! ‘정 일웅’ 선생! 안와도 갠찬히여! 맬없이 올라고 허지말고 .....
어이! 오늘 이양로 선생 이사가서 집들이 허는 날 인디 내가 못가서 미안 허다고 전해 줄랑가?"
"그럼은요! 근디 몸은 좋아지셨어요?"
"응! 많이 좋아졌어!" "인자 방학 끝나면 학교나가도 암시랑 안컸어!"
"다행이네요! 몸조리 잘 하세요!"
"지금 학교에 교감선생님, ‘김 재문’, ‘곰(고)길용’, ‘성 철호’, ‘남구’, ‘최 우남’, 모다 나왔구만요 점심때 거그가서 점심억어야 겄네요!"
"그려! 잘 갔다덜 와!"
11시가 넘었다.
"교감선생님! 이제 슬슬 가야겠네요!"
친목회 간사였던 내가 말했다.
"알았어 인제 곧 끝낼깨!"
교감선생님은 심각하게 바둑판을 들여다보고 계셨다.
"교감선생님! 제가 졌네요!...한두 방 졌구만요!
‘백 남구’가 미리 계가를 해보고 말하였다.
"어!!! 그렇겄구만! 잘 봤어!. 요놈 죽고 저집이 쪼그라져서......!"
우린 모두 ‘이 양로’ 선생님 집을 향하였다.
군청앞에 새로운 주택단지에 첫 집이었다.
삼광상회에서 양초와 성냥 그리고 하이타이를 한 봉 사서 나누어 들었다.
‘이 양로’선생님 집에 도착하여
집에서 담근 술을 맛있는 동태국과 돼지불고기를 안주로 실컷 먹고 마셨다.
노래판이 벌어지고 젓가락으로 상을 두드리며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두만강 푸른 물'로 시작하여 '아아 으악새 슬피우는...' 남쪽나라 십자성은 어머니 얼-굴' 누가 먼저 노래 첫머리만 내 놓으면 다음은 자동이었다. 독창을 부르자는 제안이 들어와서 ‘재문’이는 배호의 '편지'를 부르고
나는 독창으로 '라노비아'를 불렀다.
나의 노래를 듣던 ‘최 우남’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박수가 쏟아지고 ‘최 우남’은 감탄하는 눈빛으로 박수를 치며 나에게 따뜻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좌우간‘ 정 일웅’이가 '라노비아'를 불러야 노래 듣는 맛이 난당게!"
‘이 양로’ 선생님이 나를 추겨 세웠다.
"이번 노래는 제가 최양에게 바치는 노래로 하나 더 부르겠습다!"
박수가 또 한번 쏟아졌다.
"최양 좋겄네 ! 근디 이사람 조심혀 아무한테나 그렁게!!!"
‘이 양로’ 선생님이 최양을 놀렸다.
"‘이 양로’ 선생님! 이번은 진실입니다.! 내가 얼마나 최양을 좋아허는지 노래로 들려드리겠습니다!"
나는 꾸벅 크게 인사를 하였다. 모두 세 번째 박수를 쳐 댔다.
"크레이지러-----ㅂ, 크레-지-러----ㅂ, 크레-에에에에 에지러--ㅂ........"
나는 온갖 인상을 다 써가며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로 ‘최 우남’의 감동을 받아내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온갖 째를 다 내었다.
박수가 쏟아지고 ‘김 재문’이가 일어나서 수저를 마이크처럼 입에 대고 '딴-따 딴따 딴따-따안--'하며 반주를 맞춰주었다.
‘최 우남’은 가슴이 찡-하는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고 있는 것이 노래하는 나의 눈에 띄었다.
어지간하게 취하여 집들이를 마치고 밖에 나왔다.
교감선생님과 ‘백 남구’는 관촌으로 가야 한다.
‘김 재문’ ‘고 길용’은 전주행 버스를 탔다.
나와 ‘최 우남’은 이들을 전송하고 시계를 보았다.
오후 3시 반 밖에 안 되었다.
둘이서만 남게 되자 나는 과감하게 ‘최 우남의 손을 잡고 장이 서있는 거리로 나갔다.
‘최 우남’은 나의 거미줄에 서서이 묶여가고 있음을 알았다.
"아빠 술 좋아하셔?"
"매일 소주 한두 잔 잡수시는 재미로 사셔요!"
"안주는 무얼 좋아하셔?"
"박하사탕이면 끝나요!"
"알았어! 그 참 되게 쉽고만!"
"뭐가요?"
"아버지에게 인사드릴 선물을 살려고 생각했었거든!"
"아버지에게 인사를 요?"
"그래! 오늘 두 분께 인사드리고 정식으로 청혼을 할꺼야!"
...................
‘최 우남’의 표정이 어두어졌다.
"걱정하지마! 오늘은 부모님께 인사만 하고 나올깨!"
소주 대두병 두 병을 끈으로 묶어 달래서 들고 박하사탕 200개 들이 한 봉지를 샀다.
달고 부드러운 '유가'도 200개 들이 큰 봉지로 하나를 샀다.
"너무 많이 사지 마요!"
"뭐가 많다고 그래?"
"지난번에도 돈 많이 쓰셨잖아요!"
"내 장인어른 되실 분 에게 드릴 것인데 뭐가 아까워?!"
"정말 자기 맘데로네요!"
"그럼! 사나이가 한번 마음먹으면 일편단심이어야지!"
............
우리는 서로의 사이에 한결 부드러움을 느끼며 '이도리'를 벗어나 '성가리'를 지나치고 있었다.
길을 지나치며 수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다정히 걷는 우리의 모습을 모두들 유심히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오정리' 골목 끝, 꼴짝 집에 도착하였다.
‘최 정태’씨가 마루에서 앉아 쉬고 계셨다.
나와 그녀는 당당하게 대문을 들어섰다.
"안녕하세요!?"나는 큰소리로 인사를 하였다.
‘최 정태’씨는 얼른 일어서시며
"아이! 누구시냐?!"하며 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버지 저의 학교 선생님이셔요! 저한테 너무 잘 해주시고 해서 아버지께 인사드린다고 오셨어요!"
"너그 핵교 선상님이여?"
"아이고 이리 올라오시기라우!"
"아이 저! 아버님! 말씀 낮추세요! 아버님 좋아하신다고 해서 여기 소주 한 병 사왔구만요!"
"아니 멀라고 이렇게 많이 사와! 여그 아직도 먹다 만 놈이 많이 남었는디!"
"아버지 좋아하신다고 혔더니 박하사탕이랑 유가랑 이렇게 많이 사오셨어요!"
"아니! 이거 미안시러서 어쩐다냐!"
"미안시럽기는요! 앉으세요! 제가 한잔 따라 올리고 정식으로 인사드릴깨요!"
‘최 정태’씨는 마침 소주가 생각나던 참이었는지 반갑게 앉으셨다.
눈치 빠르게 최 우남은 소주잔 두 개와 젓가락과 김치 사발을 들고 왔다.
"한잔 받으세요!"
무릎을 꿇고 얌전하게 한 잔을 따라 올렸다.
잠자코 술잔을 받던 ‘최 정태’씨는
"아이! 편히 앉으시기라우!"
"아니요! 말씀 낮추시라니까요!"
"아-이! 어떻게 최면인디--- 아! 그리도 편이 앉으셔--"
나는 편한 자세로 앉았다.
"선상님도 한잔 허여!"
"예_!"나는 두 손으로 소주를 받아 홀짝 마시고 한잔을 더 권하여 드렸다.
서너 잔이 오가고 있을 때 ‘최 우남’의 어머니 '박 시약씨'가 들어오다가 깜짝 놀랬다.
"아이고머니나! 우냄아! 손님 왔냐?"
"엉! 엄마 ! 우리학교 선생님이신디 나한테 너무 고맙게 해 주시는 분이여요"
"그려! 아래께 그 조구(조기) 사주신 선상님이여?"
"응! 그려! 엄마!"
나는 얼른 마루에서 내려가 신을 신고 90도로 허리를 굽혀 절을 하였다.
"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최 우남’같은 훌륭한 따님을 두셔서 행복하시겠습니다."
그녀는 나의 절을 받으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아이고고고! 어찌야 오리여! 선상님이 시방 왜이런디야!"
.....
"아이 선상님은 이리 와서 한잔 더 혀!! 그리고 이녁은 가서 밥이나 혀와!"
순박하고 숫기가 없는 ‘박 시약씨’는 ‘우남’이를 손으로 불러 부엌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아버지 ‘최 정태’씨와 소주 두 잔을 더 마셨다.
"여그 앉아서 놀다가셔!! 나 밭에 좀 나갔다 올랑게!!"
‘최 정태’씨는 나가고 ‘최 우남’이 마루위로 올라왔다.
"‘최 우남’! 자기 방은 어디야?!"
그녀는 좁은 마루의 끝에 있는 작은 방 문을 열고
"여기여요! 이리로 들어오세요!"하고 나를 인도하였다.
외삼촌이 고시공부를 하던 작은 방이다.
좁은 방은 장판이 울퉁불퉁 튀어나왔으나 청소는 잘 하여 콩기름 먹인 장판이 반짝였다.
벽에 '통기타'가 걸려있었다.
작은 책상위엔 소설책이 몇 권 있었고 책상 아래엔 손으로 들고 다니는 전축이 있었다.
나는 기타를 내렸다.
대학시절에 클래식 기타의 기본을 조금 익힌 적이 있었다.
교육대학 동창인 '강 천년쇠'에게 배운 '소녀의 기도'와 '엘리제를 위하여' 그리고 '기타 책에서 기본으로 배운 '여수'의 멜로디를 아직도 외우고 있었다.
그녀가 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잠깐 나가 있는 동안 ‘여수’를 연주하여 보았다.
기타의 조율이 조금 풀려 있었다.
나는 기타 줄을 능숙한 솜씨로 조율하였다.
그리고는 '여수'를 연주하였다. 내가 들어도 멋있는 연주였다.
소녀의 기도를 연주하는데 그녀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머니나! 세상에 키타까지 잘 치시네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유롭게 끝까지 연주를 하고서 '엘리제를 위하여'의 첫 부분을 연주하다가 그녀의 표정을 보았다.
그녀는 완전히 나의 분위기에 폭 빠져 버린 모습이 역역하였다.
"정 선생님은 못하시는 게 무어래요?"
그녀가 감탄하여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칠 수 있는 기타의 실력 전체를 연주한 것이었다.
만일 그녀가 한곡조만 더 신청을 하였더라면 나의 실력은 형편없다는 것이 탄로 나고 말았을 것을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나에게 더 이상의 연주를 부탁하지 않았다.
단 한명의 청중은 나의 연주에 매료 되었으며 나에게서 한없는 멋스러움과 남성적인 매력을 느끼며 스스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날, 우남의 집에서 저녁 식사를 얻어먹었다.
반찬은 맛있는 산채나물과 날계란 두개가 있었다.
나는 계란 두개부터 깨서 먹고 나서 나물과 새우탕국 맛있는 쌀밥을 배부르게 먹고서 집에 가려고 일어났다.
"최 우남! 오늘 너무 좋았어! 그리고 나의 '결혼 작전 제1단계'는 성공이야!"
"히야! 신난다!"
나는 낮게 부르짖었다.
밖에 나와서 ‘최 우남’ 부모님께 인사를 하였다.
"다음에 또 들리겠습니다.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