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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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란처럼 살아온 나의 이야기/32. 날뵈기라우 야가 그말 헌댔어라

32. 날뵈기라우 야가 그 말 헌댔어라우

정일웅 찻집 2016. 7. 6. 15:00

32. 날 뵈기라우 ! 야가 그 말 헌댔어라우!

 

그 날 밤부터 그녀의 셋째 언니는 그녀가 귀가하기를 기다렸다가 그녀가 저녁식사를 하고 나자마자 그녀를 다그치기 시작하였다.

거기에는 그녀의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와 가끔 남원에 사는 큰언니까지 합세하기에 이르렀고 이리에 사는 이모까지 몰려와서 결혼 방해 작전에 합세를 하였다.

"! 이년아! 너 그 사람한티 가서 그 말 헐래 안 헐래?"

"무슨 말을?"

"! 이년아 긍게 머냐먼 '나는 당신을 사랑 안 헝게 결혼하지 않겄습니다'.- 이렇게 말이여!

그놈의 소방울(나의 눈이 크다고 그들이 붙인 별명)한티 그 말을 허란 그 말이여!"

그녀는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

"웃지 말고 이년아! 말을 좀 혀 봐! "

"뭐라고 말을 혀?"

"내가 금방 말 혔잖여! 니가 그 소방울 한티 가서 '나는 당신을 사랑허지 않응게 결혼허지 않것습니다' 이렇게 말을 헐판이여 안 헐판이여! 그 대답을 허란 그 말이여!"

이와 같은 실랑이는 밤새 계속되고 그녀는 자기의 어머니와 언니와 작은어머니들에게 차례로 심문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며 밤에 잠을 못 이루는 괴로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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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주일날 아침 나는 공식미사의 전례 안내를 마치고 성당 문을 나서는데 성당 대문에서 그녀를 데리고 그녀의 어머니와 작은어머니 2, 그리고 그녀의 셋째 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 뵈기라우!"

"날 뵈기라우 선상님!"

"야가 그 말 헌댔어라우!"

나는 그들을 향해서 걸어가며 웃음을 띄어 보였다.

그들도 여러 번 나를 만났던 터라서 낯이 익었는지 모두 웃음을 띄우고서 득의양양한 기세로 말하였다.

"선상님! 거시기 그 - 긍게요 잉 그 말, 그 말을 야가 헌뎄어라우-."

"뭐라고요?"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긍게 아래끼 선상님이 말헌거 그 말- 말이어요 "

"그게 뭔데요?"

셋째 딸이 답답한 듯 나서며 말하였다.

"아 긍게 저뭐냐.... 아래깨 선생님이 우리한티 야가 선생님을 사랑 안헝게 결혼을 않것다고허면 선생님이 포기헌다고 혔잖여요!"

나는 그제서야 그들이 나에게 득의양양한 기세로 쳐들어와 승리를 이미 쟁취한 듯 느긋한 자세로 도전해오는 까닭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을 모두 방안으로 안내하였다.

 

그녀와 내가 마주보는 위치에 앉고 그들은 양쪽에 둥글게 둘러앉았다.

순간 긴장감이 감돌고 나의 입에서 나올 말과 그녀가 답변할 말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으면 그렇게 말한다고 했을까? ! 그럼 내가 편하게 그대를 포기할 수 있도록 말 해줘!"

나의 목소리는 진정하려해도 자꾸 떨렸고 이러한 말을 듣는 그녀의 감정은 한없는 탄식과 슬픔에 일그러지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울기 시작한다.

머슥해진 그녀의 수행원들이 나와 그녀를 번갈아 보면서 안절 부절을 못한다.

그녀의 언니가 그녀의 옆에서 어깨를 찔벅거리며 하는 말

"! ! 야가 시방 왜이려! 얼랠래? "

"! ! 너 그 말 헌댔잖여! ! 우냄아! 빨리 말 안 혀??"

"얼래! 얼래! 야가 왜이런디야 시방--! 울지말고 빨리 말혀 이년아!"

화가난 장모가 딸의 머리를 쥐어박는다.

"빨리 말 혀 이년아!"

그녀는 더욱 참을 수 없는 울음을 터트리며 어깨를 들썩거리고 채지기까지 하며 울음을 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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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사태에 그녀의 일행은 서로의 눈치만 살피다가 결단을 내린다.

"안되것네요! 오늘은 그냥가고 다음에는 꼭 그말 허도록 혀각고 올깨요!"

"가자! 썩을년 실컨 엊지녁에는 말헌다고 혀놓고 여그까지 와서는 울고자빠졌어!"

일행은 실망하여 그녀를 데리고 불만스러운 말들을 구시렁거리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 다음에는 꼭 말 하도록 그렇게 하세요! 그럼 안녕히 들 가세요"

그들을 배웅하고 방으로 들어서는 나의 마음은 참으로 착잡하였고 그녀에 대한 한없는 연민의 정과 안쓰럽고 측은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뒤범벅되어 온 방안이 자욱하도록 담배만 빨아대었다.

주일날이 다가오면 그들의 고문은 또 시작되었다.

"너 내일 그 소방울 집에 가서 그 말 헐래 안헐래!"

"빨리 말 혀 이년아! 말 헐판여? 안헐판여?"

그러한 고문(?)이 계속되면 최우남은 하는 수 없이 그들의 괴롭힘에서 벗어나는 모책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그 말 할 깨!~ "

"오냐! 너 정말이지? 진작 그랬어야지! 잘 생각 혔다. 아가! 잘 자라!"

"..............."

일주일이 지나고 또 일요일이 되었다.

그들은 이번에는 틀림없이 결혼을 포기시키는 그 말을 하게 하고야 말 것을 다짐하고 또 나를 찾아왔다.

결국 '최우남'은 나의 진지한 표정 앞에서 감히 표현을 하지 못하고 울음으로 저항하여 득의양양하던 언니와 그녀의 어머니와 작은어머니들이 실망하여 돌아갔다.

이와 같은 "그 말 헌댔어라우!"3번이나 계속되다가 제풀에 지쳐 포기하고 말았는지 뜸 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