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험한 질곡(桎梏)을 헤치고
항상 활달하고 명랑하고 남보다 많이 웃고 남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기술이 탁월하여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과 주위의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그녀 ...
그녀의 그런 모습 때문에 나와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될 거라는 말을 듣던 그녀....
언제나 맑은 날씨를 상징하듯 웃음이 감돌고 활짝 갠 하늘처럼 발그레한 볼연지와 미소가 항상 얼굴에서 피어나는 그녀...
볼륨이 있는 오동통한 몸매지만 발걸음이 가벼워 항상 날아갈듯 명랑하게 걷는 그녀...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혼자 노래를 잘 부르며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는 거의 모르는 게 없는 그녀 ...
그러한 그녀가 나와 단 둘이서만 만나면 그 명랑한 기세는 간 곳 없고 오직 사랑의 마술에 걸린 요정처럼 순한 양으로 변해버린다.
........................
학교에 출근하여 ‘우남’을 만나고 그녀와 의미 있는 눈짓을 교환하고 이미 모든 동료교사들이 나와 ‘우남’의 관계를 인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마냥 행복하였고 하루일과가 너무 빨리 지나감이 아쉽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가운데
뜻밖에도 나에게 호의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접근해 오는 여교사가 있었다.
내가 퇴근하려고 막 교문을 나서려면
“같이 가요! 선생님!”하며 내 곁에 바싹 붙어 와서 걸어가며 자기 학급의 어떤 학생 얘기나 학교 행사에 관한 얘기를 묻고 나의 대답을 즐겨 듣는 여자 선생님.....
그녀는 ‘한 규리’선생님이었다.
학급 환경정리를 하느라고 ‘우드락’으로 글씨를 오린다거나 포스터물감으로 켄트지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고 있노라면 ‘한 규리’선생님이 나의 교실을 방문하여 자기 반의 환경정리에 필요한 것들을 나에게 부탁하였다.
나는 친절하게 그녀의 부탁을 잘 들어 주었고 그녀는 틈만 나면 나의 교실에 찾아와 얘기하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아! ’ ‘한 규리‘선생이 나를 좋아하고 있구나~!’
사랑하는 감정은 말 하지 않아도 표정하나나 눈빛만으로도 감지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누구에게나 친절하였고 나에게 해 오는 부탁을 성심을 다하여 해 주었다.
내가 오려준 입체 글씨를 받아들고 너무나 좋아하는 ‘한 규리’선생이 귀엽기 까지 하였다.
아! 그러나 어이 하리 나의 뇌리에는 온통 ‘최 우남’이외의 여자는 아무에게도 흥미가 없는데 ............
이러한 ‘한 규리’선생님의 마음에 숨긴 사랑의 향기를 제일 먼저 감지한 사람이 바로 ‘최 우남’이었다.
‘한 규리’선생은 내가 글씨를 쓴다거나 할 때면 나의 곁에 의자를 바짝 붙이고 앉아서 나의 얼굴을 뜨거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나는 감지하였다.
이러한 때
어김없이 언제 나타났는지 ‘최 우남’은 나의 교실로 환타나 오렌지 쥬스 등을 가지고 찾아왔다.
‘한 규리’와 나의 사이에 야릇한 질투의 감정을 느끼는 것을 나의 본능이 깨닫고 있었다.
‘한 규리’선생은 틈만 나면 나를 찾아와서 별것도 아닌 것을 묻거나 상의하려 한다.
이 때 그녀는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었고 입김이 뜨거움을 나는 감지하였다.
솔직히 얘기해서 나는 학교의 교직원 사이에 있어서나 학생들에게도 인기(人氣) 있는 교사였고 나의 집안이 가난하다는 것 외에는 남에게 기죽을 일이 없는 능력 있는 교사였다.
친목회 간사 선출에서 만장일치로 내가 뽑혔고 직원들이 회식을 한다거나 여행을 갈 때에는 내가 사회를 봐야 분위기가 명랑해지고 나의 유머와 위트가 있어야 여행 맛이 났다.
이듬해에도 친목회 간사를 나 외에는 맡을 사람이 없었다.
환경정리나 학습 지도 뿐만 아니라 ‘운동회’가 돌아오면 마스게임이나 ‘조립체조’ 등 어려운 프로를 나의 아이디어로 멋있게 해 내었고
운동장의 ‘개선문’을 만들 때에는 ‘이 정애’ 선생님과 너무나 호흡이 잘 맞아서 남들이 서로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듣곤 하였다.
‘이 정애’선생님은 열렬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녀는 노래도 잘 부르고 미술에도 소질이 있었으며 참하고 착하고 모든 일에 의연하며 말 한마디도 경솔하게 하지 않는 엘리트 여교사였다.
‘이 정애’선생님은 U.B.F라는 기독교 단체에서 리더를 맡아서 열심히 교회활동을 하는 기독교인 이었다.
하루는 그녀가 퇴근시간에 집에 가지 말고 자기와 얘기를 좀 하자는 부탁을 받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결국 본론을 말하기 시작하였는데
나에게 종교를 자기와 같은 기독교로 개종하여 U.B.F를 하였으면 좋겠다는 고백을 하였다.
이 고백은 실로 진지한 사랑의 고백이었으며 일종의 구혼(求婚)이었다.
하지만
나는 천주교의 신자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이 골수에 사무친 사람이었기에 둘이는 도저히 결혼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에게 이렇게 남들의 눈에 띌 만큼 ‘이 정애’선생과 ‘한 규리’선생이 나에게 접근하는 것을 감지한 ‘최 우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두 여교사가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최 우남’은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자기만을 좋아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여자의 마음에 질투의 감정을 어떻게 억누를 수가 없었으므로 혼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두 여인은 ‘교사’이고 자기는 ‘서무과’직원이라는 일종의 이질감 비슷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혹시라도 마음이 변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도 마음 한 구석에 숨어 있었다.
그 당시 임실초등학교에서만도 부부교사 커플이 탄생되고 있었다.
교사가 부부가 되는 것이 대단히 이상적이라고 모두들 생각하고 있던 때이다.
‘김 종규’선생은 ‘박 준실’선생과 결혼을 하였고
‘김 재문’은 ‘신 현숙’선생을 좋아하고
‘고 길용’은 ‘정 명희’선생을 좋아하고.....
‘정 우봉’ 선생님도 부부교사였고
‘홍 동운’ 선생님도 ‘지 추자’선생님과 결혼을 하였었다.
아무튼 나는 집안이 가난하다는 것 외에는 누구나 훌륭한 신랑감이었고 모범 교사였던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최 우남’은 이런 상황에서 나의 선택을 받고 사랑에 빠진 상태였지만 혹시나 내 마음이 별할까 두렵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용감하였고 나의 사랑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에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3월 하순경
음력으로 2월 18일이었다.
그 날은 나의 생일이었는데 직원들은 아무도 나의 생일을 알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주민등록상으로도 나의 생년월일은 4월 18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나도 생일이라는 내색을 하지 않은 채 점심시간에 식사를 마치고 나의 책상에 앉아 서 이런 저런 잡다한 상념에 사로 잡혀 있을 때였다.
점심을 먹은 교사들이 모두 밖에 나가거나 탁구를 치러 가고 교무실에 띄엄띄엄 두 세 명의 교사가 앉아있을 때였다.
교무실 문으로 활짝 웃음을 띤 ’최 우남‘이 뚜벅뚜벅 내 곁에 걸어 왔다.
그 녀는 작은 소리로 내 곁에 와서
“정 선생님! 생일을 축하합니다.”하며
거북선 담배 새 갑을 뜯어 담배 한 개비를 뽑아 나의 입에 물려주는 것이 아닌가?
뜻밖의 일이었다.
나는 너무나 기뻐서 그 담배를 입술에 물고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때
“불 부쳐 드릴게요!”하며 지포라이터를 손에 들고 뚜껑을 열어 톱니바퀴를 ‘척’ 돌려 불을 켜서 대어주는 것이었다.
휘발유 냄새가 정말 향기로웠다.
얼떨결에 담배를 빨아 불을 붙였다.
내가 어리둥절해져 있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밝게 웃음을 띠우고
“이것은 생일 선물입니다.”하며 담배와 라이터를 내 앞에 놓고 생일 축하 카드 한 장을 놓고 홀연히 교무실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가슴이 찡~울렸다.
내 생일을 어떻게 알아냈단 말인가?
그리고 담배와 라이터....지포라이터는 엄청 비싼 것이어서 아무나 가지고 있지 않는 고급라이터였는데 이것을 어떻게 구입했단 말인가?
나는 가슴이 뛰고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가운데 엄청난 행복을 느끼며
‘아! 그녀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구나.....
이제는 정말 안심이다....
아! 나의 사랑 ’최 우남‘
이제 그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너만을 사랑하리....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나는 결코 지지 않으리라는 확신과 용기가 나의 가슴에 용솟음 쳤다.
그녀의 사랑을 의심한 바는 없었지만 그래도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오늘의 이 일은 그녀가 내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확실하고 믿음직한 고백이며 약속이 아닌가?
...............
토요일이 되었다.
“‘최 우남’에게 오늘 전주에 나가서 영화나 한 편 감상하지”하고 말했더니
무조건 OK였다.
남들이 다 퇴근한 다음
‘갑원’에서 짬뽕 한 그릇씩 시켜서 먹고 전주행 버스를 탔다.
이 버스는 ‘순창’에서 출발하여 ‘갈담’과 ‘청웅’을 거쳐 ‘임실’에서 승객을 태우고 전주로 간다.
버스를 탔을 때 전혀 뜻밖에 나의 2년 후배인 ‘ 한 병진’선생이 ‘청웅’에서 타고 와서 ‘전주’를 가려 한 모양이었다.
‘청웅’ 초등학교에서 1년 동안 근무하던 최 우남이 ‘임실초등학교’로 발령 난 지 아직 두 달 정도 밖에 안 되었고
‘최 우남’과 함께 근무하며 지낸 ‘한 병진’은 ‘청웅’ 초등의 ‘총처당’(총각 처녀의 모임)이라는 친목모임에서 ‘최 우남’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최 우남’은 어디에서나 인기 짱인 여성이었다.
버스 안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우린 서서 있었는데
앉아서 가던 ‘병진’이가 우남을 불러 자기 자리에 앉히고 자기는 그 곁에 서서 낮은 목소리로 다정히 속삭이는 것이었다.
나와 ‘최 우남’ 사이에 사랑이 싹트고 있다는 걸 ‘한 병진’은 상상도 못하였을 터였다.
하지만 ‘한 병진’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표정과 뭔가 간절하게 고백 할 기회를 노리는 것을 직감한 나의 심장 속에서는 이글이글 질투의 불덩이가 솟아올랐다.
전주에 가서 같이 어디를 가자고 제안하는 것이었다.
나의 뜨거운 시선이 감시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우남’은
‘한 병진’에게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여 난처해하는 표정이 딱해 보였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의 곁에 내가 가서 대화를 막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버스가 ‘전주 역’ 버스 승강장에서 1차로 승객을 하차 시켰다.
나는 다짜고짜로
“최 우남! 여기서 내려!!” 하며 그녀의 손을 끌었다.
“나도 여기서 내려....”하며 ‘한 병진’도 따라 내렸다.
...............
“어이 병진이!”
“ 나~ 지금 ‘최 우남’하고 어디 가야하거든 그러니까 잘 가...”
“..................”
그는 갑자기 황당한 꼴을 당한 기분이 되어 얼굴이 빨개져 멍하고 서 있었다.
마침 빈 택시가 곁에 다가왔다.
손을 들어 택시를 세운 뒤
‘최 우남’의 손목을 잡고 끌어 당겨 택시 뒷좌석에 밀어 넣고 나도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기사님 유성까지 빨리 갑시다.”
나도 모르게 ‘유성’이라는 말이 나왔다.
‘유성’은 많은 사람들의 신혼여행지가 아닌가?
나도 ‘신혼여행’의 기분이라도 내 보자는 심사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미끄러져가는 택시를 멍하게 바라보는 병진의 모습이 백미러에 보였다.
택시는 신나게 달렸다.
‘휴~~!’
‘하마터면 일이 복잡하게 될 뻔 했네’
.............
전주시가를 벗어나 이리를 지나 ‘황등’ 벌판을 지나 북 쪽으로 북쪽으로 달려갔다.
갑작스런 상황이 정리가 되지 않아
나도 그녀도 말이 없었다.
...............
오늘밤 나와 그녀가 집에 들어가지 않고 과연 어디서 밤을 지내야 하는 걸까?
유성까지 납치하듯 그녀를 데리고 와서 그녀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휙휙'지나가는 가로수가 멍 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의 망막에 줄을 그리고 있었고 나의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
................
'툭툭툭툭' 나의 어깨에 반복적인 움직임이 전달되고 있었다. 그것은 차의 속도와 도로의 요철로 인한 흔들림이 아니었다.
그녀의 몸에서 발산하는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질끈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눈에서 언제부터 흘렸는지 범벅이 된 눈물이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소나기의 물줄기처럼 그녀의 뺨을 흘러 입 언저리를 통과하여 턱으로 흘러 떨어지고 있었다.
가볍게 흐느끼는 어깨의 흔들림,
어금니를 꽉 다문 그녀의 입술,
그녀는 나의 시선을 의식하였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앞좌석의 등받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흐느낌에 어깨가 들썩이고 들이쉬는 호흡의 불규칙한 진동으로 온 몸이 오열하고 있었다.
큰소리로 터져 나오려는 그 울음소리를 힘들게 억제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
그녀를 바라보는 나의 맘속에 연민과 사랑, 애절함과 안쓰러움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와 울컥 치미는 눈물을 가눌 길이 없었다.
눈물로 흐려진 나의 눈을 손등으로 쓱 문질러 닦아내었다.
'내가 여기서 눈물을 보이면 안 돼지' 나는 애써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 했다.
이 여인이 맘속에 감춰놓고 혼자서 애 태우는 그 어떤 사연을 나는 알아야 한다.
당황함과 갑자기 닥친 사태의 변화에 나의 달콤한 꿈같은 낭만은 깡그리 무너지고 말았다.
"최 우남!!! 조금만 참어!!!"
"다시 집으로 돌아 갈 테니깐 조금만 참어 응?!!"
나지막하게 그녀의 귀에 속삭여 주었다.
그녀의 등을 조용히 감싸주고 오른손으로 주머니의 손수건을 꺼내어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손에 쥐어주었다.
그녀는 손수건에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적시고 있었다.
..................
"기사님! 유성에서 전주 가는 버스 있는가요?"
"예! 있을 겁니다.!"
"지금 가면 탈 수 있을까요?"
"충분하지요!"
"그럼 유성 시외버스 터미널로 데려다 주시죠!"
"예! 그렇게 합시다.!"
운전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외버스 정류장에 차를 정차시켰다.
어느새 ‘최 우남’은 울음을 멈추고 머리카락을 손으로 매만지고 있었다.
평소에 화장을 하지 않는 ‘최 우남’은 흘린 눈물 때문에 얼굴이 망가지지 않았고 오히려 소나기 갠 뒤의 하늘처럼 더 화창하고 밝은 얼굴이 되어서 택시에서 내렸다.
한 시간 후에 있는 전주행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가한 대합실의 나무의자에 몸을 바짝 밀착시킨 채 우린 앉았다.
겨우 꺼지지 않을 만큼 바람구멍을 닫아놓은 연탄난로 한 개가 대합실에 차가운 공기를 데우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일이었다.
.........................
"선생님! 미안해요!"
"................"
"................."
"내가 미안해! 오늘 '한 병진'때문에 내가 너무 흥분했나봐!"
"그렇다고 그렇게 무섭게 끌고 가면 어떻게 해요!!!"
"왜?! 무서웠어?"
"어처구니가 없었죠! ‘한 병진’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어떻게 생각하긴! ‘한 병진’이가 최 양을 그렇게 사랑하고 있는 줄 몰랐었지!!"
"하마트면 큰 일 날 뻔했잖아!"
그녀는 나의 말에 웃었다.
"좌우간 정선생님의 그 박력이랄까? 그 힘에는 누구도 당해낼 사람이 없을 것 같아요!"
"사랑하는데 그만한 용기와 박력은 기본이지!!"
.................
....................
" 최 우남! "
"네?!"
"아까 왜 그렇게 슬프게 울었어? 그대의 맘속에 감춰진 슬픔을 말 해줘!"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 저! 사실은 너무 힘들어요!"
"뭐가?"
"집안에서 온통 난리여요!"
"우리 결혼 때문에?"
"결혼은 고사하고 만나는 것도 못하게 온 식구들이 난리여요!"
"온 식구들이??!"
그렇다! 올 것이 드디어 온 것이다.
그녀는 그동안 밤마다 나를 만나지 못하도록 설득하는 그녀의 어머니와 언니 그리고 작은 어머니들의 성화에 시달리고 있음을 자세하게 말하며 우울한 표정에서 헤어나지를 못하였다.
그 내용인즉
‘최 우남’의 시집간 언니들이 우리의 사랑 이야기를 전해 듣고 사태를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큰일(결혼하는 일)이 날 것 같은 예감을 느꼈던지 남원에 사는 큰딸, 임실에 사는 셋째 딸이 그의 어머니와 동네에 같이 사는 작은어머니 3명(그녀의 아버지는 모두 4형제인데 모두 오정리라는 이 마을에 모여 산다)과 합심하여 모두 6명이 '결혼 반대 결사 위원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우리의 결합을 방해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퇴근하여 집에 간 막내딸을 에워싸고 온갖 회유와 모함, 공갈과 협박, 삿대질과 주먹질, 잠 안 재우기와 살 꼬집기, 머리통 쥐어박기와 머리카락 쥐어뜯기 등으로 고문하며 나와 다시 만나지 않을 것을 약속하라고 밤마다 못살게 굴었다.
가련한 그녀는 집안에서 견디다 못해 '이제 사랑을 포기해야 하나보다'하는 생각을 하고서 학교에 출근하여 '이제 우리 그만 만나야 할 것 같아요! '라고 말해야지 하다가도 나의 뜨거운 시선을 마주하고 보면 어제 밤의 모든 결심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다시금 사랑의 마음이 불타오른다고 고백하였다.
아! 가련한 나의 사랑의 포로인 그녀!
일편단심을 굽히지 아니하고 갖은 학대와 폭력이 심하면 심할수록 더욱 나를 향한 그녀의 사랑은 커져만 갔으니 거룩한 순교자의 마음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유성에서 전주로 가는 버스는 정말 한가하였다.
앞좌석에 몇 사람이 타고 텅 빈 차안에서 우린 맨 뒤의 좌석에 앉았다.
우린 그동안 못하였던 모든 말들을 수없이 주고받았다.
"최 우남!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의 사랑은 절대로, 그리고 어떠한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변치 않을 것임을 믿어야 해! 알았지?!."
"그리고 나는 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아!. 나는 너에게 있어서 소중한 첫사랑이야!.
여인의 첫사랑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지 나는 잘 알아!.
‘최 우남’ 나는 너의 그 첫사랑에 조금도 상처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할 거야 .
그리고 우리사랑은 결혼으로 성공을 해야 해!"
"그리고 우리 결혼은 너의 고통 받는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라도 빨리 서둘러야 하겠어!"
"모든 것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깐 자기는 나를 사랑하기만 하면 돼! 알았지?!"
밤의 어둠을 가르며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는 우리 사랑의 요람이었다.
그녀는 나의 팔에 안겨서 몸을 나에게 기댄 체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며 행복한 순간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
전주에서 임실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임실에 도착하여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한 시간은 밤 아홉시가 넘어서였다.
"이제 그만 가셔요"
"아냐! 오늘밤엔 정말 어머니에게 정식으로 말씀을 드려야겠어!"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아! 안돼요! 난리가 날 건데요!"
"아니야! 어차피 한번 겪어야 할 관문이고 그게 예의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이야!"
"걱정 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 거야!"
"어서 들어가서 나 왔다고 말 좀 혀!"
그녀의 집 안방에는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방문에 비치는 그림자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봐서 분명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 돌아가세요! 지금 작은엄마들이랑 모다 와 있는 거 같아요!"
"그렇다면 잘 되었어! 지금 말하고 정식으로 청혼 할 거여!"
나는 사뭇 흥분된 어조로 말하였다.
나의 음성이 좀 컸나보다.
방안에서 문을 열고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최 우남’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를 끌고 대문 밖으로 나왔다
"언니까지 있어요 그리고 ‘용준’이도 있고요! 잘못하다간 몰매 맞아요 빨리 돌아가세요!"
"뭐?! 몰매? 좋아 때리면 맞더라도 오늘이 가장 좋은 기회인거 같아!"
나는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겨났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수는 없다.
‘최 우남’의 팔을 끼고서 대문간에 들어섰다.
"저! 안녕하세요?!"
"최 우남‘이하고 제가 왔습니다.!"
방안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더 커지더니 방문이 벌떡 열리고 ‘최 우남’의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 두 사람 그리고 ‘최 우남’의 셋째 언니가 우루루 몰려 나왔다.
‘최 우남’은 나의 옆에서 가냘프게 떨고 있었다.
나도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하였으나 주먹을 불끈 쥐고 애써 용기를 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