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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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란처럼 살아온 나의 이야기/40.교가작곡과 부라스 밴드

42. 교가 작곡과 부라스 밴드

정일웅 찻집 2016. 7. 6. 15:15

40. 교가 작곡과 부라스 밴드

 

시급한 것이 교가를 만드는 일이었다.

 

최 근호 선생님이 교가의 가사를 지어 나에게 작곡을 부탁하였다.

나는 짧은 실력이었지만 나의 온갖 지혜와 영감을 총 동원하여 작곡을 하였다.

초등학교시절 작곡 연수를 받은 기억이 생생하였다.

 

<지사중학교 교가 >

최 근호 작사

정 일웅 작곡

(1)

덕재산 푸른정기 벋어-내리고

주암천 맑은 물이 감기-는 이-

배움의 높은 전당 우뚝 솟으-

신념과 슬기와 성실로 닦아

겨레위한 밝은 꿈을 키워나가리

구원한 이상의 지사중학교

 

(2)

천황봉 솟은 기운 하늘에 닿고

우리의 품은 뜻도 하늘에 닿네

높은 뜻 펴려고 모여든 우리

알뜰히 배우고 바른 맘 길러

이 나라 길이 빛낼 일꾼되리라

구원한 이상의 지사중학교

 

모데라토로 장중한 느낌의 곡을 만들어 먼저 학생들에게 불러보게 하고 직원들에게 들려주어서 모두의 찬성으로 교가로 채택하였다.

교가를 확정짓는 날 교사들의 회식 자리에서 나와 최근호선생님이 교가를 시범으로 불렀다.

 

모두들 좋아하며 박수를 쳤다.

 

어느 날

 

"어이! ‘정 일웅선생님! 멋 하나 타협 헐 것이 있승게 오늘 점심 먹고 나서 교장실로 조깨 올랑가?"

"! 그렇게 하겠습니다."

점심 도시락을 먹고서 교장실에 갔다.

"아이! 땅게(다른 것이) 아니라! 농고에서 밴드 악기를 19인조 편성혀서 보내 주고 싶단디!

갖고 오면 갈칠 수 있겄어?

나는 한 번도 그러한 악기를 만져본 적이 없었지만 대단히 흥미롭고 이거야말로 악기 연주를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쾌히 승낙하였다.

 

"! 정말 신나는 일이네요!! "

"교장선생님! 열심히 가르쳐 볼랍니다. "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던 리코더와 어디 비교나 되겠는가?

나는 무척 기쁘고도 행복하였다.

내가 부라스 밴드를 배우다니 아! 이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악기가 들어왔다.

트럼펫 2, 트럼본 2, 색소폰 2, 클라리넷 2, 호른2, 수자폰2, 튜바2, 작은 북 2, 큰북 1, 심벌즈 1, 지휘봉 1개였다.

약간 낡은 악기였으나 번쩍번쩍 빛나게 잘 닦고 수리하여 가져 온 것이라서 신품처럼 찬란했다.

 

나는 여러 악기의 소리내기 연습을 위하여 밤새 열심히 공부하였다.

 

트럼펫을 들고 임실의 '홍 동운' 선생님을 찾아가서 그에게 개인 교수를 받았다. 그는 군악대 출신으로 트럼펫의 도사였다.

트럼펫을 불어서 입술이 떨어 소리를 내는 데만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입술이 부르트고 밥맛이 떨어졌다.

밤에 연습을 하기 위해서 동네사람들 시끄럽지 않게 하려고 방문을 닫고 이불 장 속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소리를 내었다.

클라리넷은 더욱 힘들었다.

 

수많은 키의 용법을 아무리 연구하여도 알 길이 없어서 전주시의 제일 악기점에 들려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도 잘 모른다고 가르쳐주지 않았다.

 

오랜 동안 악기점에서 이것저것 부속품의 가격을 묻는 등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심으로는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역시 나의 기다림은 헛되지 않았다.

 

전주농고의 밴드부 학생 한사람이 클라리넷의 리드를 구입하러 온 것이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악기점을 나가는 그 학생의 뒤를 따라가서 그를 불러 빵집으로 데려갔다.

그 학생은 처음엔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경계하였으나 나의 진지한 얘기를 다 듣고서는 나의 처지를 이해하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나는 악기 취구를 입에 무는 방법에서부터 음계별 구멍 막는 손가락의 위치를 그려서 메모하여 두었다.

학교에 돌아와서는 두뇌가 명석하고 음악성이 있는 학생들을 선발하여 악기를 가르쳤다.

그들은 밴드부에 선발된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였으며 입술이 부드러운 학생들이기에 나보다 더욱 맑은 음색으로 악기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들에게 맨 먼저 가르친 곡은 의식 곡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 곡과 '애국가''묵념' 곡 그리고 학교의 '교가'였다.

이들에게 복잡한 원 곡을 그대로 가르칠 수가 없어서 이를 단순하고 쉽게 소리 낼 수 있도록 편곡을 하여 가르쳤다.

 

학생들은 연습을 시작한지 한 달 만에 월요일 아침에 하는 애국 조회 시에 '국기에 대한 경례 곡', '애국가''묵념 곡', '교가'를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원 곡을 연주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누가 들어도 제법 그럴싸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소풍을 갈 때면 이들이 맨 앞에 서서 그 동안 연습한 각종 행진곡을 불며 당당하게 걸어갔다.

 

시골에서 지사중학교의 밴드는 명물이 되어 널리 알려지고 면사무소의 행사, 농협의 행사, 등에 불려 다녔으며 그들이 행사를 할 적에 의식 곡을 연주하여 주는 대가로 빵 값을 벌어서 전 단원이 자장면으로 즐거운 회식을 하기도 하였다.

 

바쁘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는 가운데 세월은 빨리도 흘렀다.

 

임 혜란선생님은 변호사에게 시집가느라고

학교를 퇴직하였고 학급이 불어남에 따라 교사들 수도 늘어났다.

박 광자수학 선생님이 왔기에 이듬해부터는 수학을 가르치지 않아도 되었다.

 

임실에서 지사까지 직접 가는 버스가 없었기에 나는 남원 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오수에서 내려, 지사중학교까지는 과학교사 '이 영부'선생과 함께 자전거로 통근을 하였다.

'이 영부'선생님은 오수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의 집에 나의 자전거를 맡겨놓고 함께 출근을 하는 것이었다.

 

둘이서 십리 길을 가는 동안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길 장가들기' 놀이를 하기도 하였다.

해가 감에 따라 학급수가 늘어나고 교사 숫자도 늘어났다.

1, 2, 3학년이 모두 완성되었을 때 교사도 2층 건물로 증축하였다.

 

공주사대를 졸업하고 첫 발령을 받아 온 가정과 김 현옥선생님은 정말 예쁘고 귀여운 초년병 선생님이었는데 나를 친 오빠 이상으로 따랐고 나의 왕 펜이었다.

 

과학과 홍 성태선생님 체육과 정 기수 선생님, 수학과박 광자선생님, 잠시 있다가 대학교수로 떠난 기술과 권 문선선생님 행정실장 김 인식선생님......여자 교감 권 태일선생님, 정든 식구들이 아기자기한 생활을 하는 동안 세월이 빠르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