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전주 풍남여자중학교 시절
.1990년 3월 1일 자 중등교사 인사발령내용이 신문에 실렸다.
나는 전주시 교육장이 지정한 중학교 근무를 명함이었다.
친구들이 교육청 장학사에게 찾아가서 좋은 학교에 발령을 받도록 부탁하라고 하였지만 아는 사람도 없을 뿐 아니라 전주시에 있는 학교이니 어디가면 어떻겠냐는 생각에 처분만 기다리고 있었다.
'풍남여자중학교 근무를 명함'
나와 함께 발령을 받은 교사는 모두 10명이었다.
김상돈
조명희
김영구
정옥희
김양수
박채임
김용필
.
.
전북의 중심 도시 전주에 근무하고 싶어서 몇년씩 적어도 6년을 통근하거나 혹은 시골에서 자취를 하며 기다려 온 보람이 이뤄진 터여서 모두들 만족하고 있었다.
이곳은 규모가 큰 학교라서 미술교사가 나 말고도 두명이 더 있었다. 라동렬선생과 유영곤선생
모두 나보다 10년 정도 젊은 교사들이었으므로 나에게 형님이라 부르며 다가왔기에 나는 어느 새 나이가 든 중년에서도 50대로 기울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마음 속으로는 씁쓸 했다.
이곳에서는 미술과목 외에 다른과목을 겸하지 않아도 되었다.
유영곤 교사가 근무하는 사무실엔 가정과 교사 김재봉선생님과 도덕과 교사인 강란희, 음악과 정영선 그리고 나까지 다섯명이 작은 사무실에서 근무하였다.
작은 사무실이었지만 한쪽에 이젤을 펴놓고 유영곤과 나는 그림을 그렸다.
유영곤은 수채화를 많이 그렸고 나는 유화를 그렸다.
남학생을 가르치다 여학생만 다니는 학교에 오니 분위기가 부드럽고 학생들의 감수성이 예민하여 나의 유머에 민감하게 반응하였고 이들의 학습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나의 교수법이 잘 먹혀들어가서 재미있게 수업을 하였다.
이듬해에는 3학년 주임교사가 되어 3학년 9반의 담임이 되었다.
오랜만에 해보는 학급담임이었기에 나는 우리반 학생들에게 온갖 정성을 다 쏟았다.
실장 이하정, 박수경,길지인, 김현희, 김혜실, 박선영, 정해실?, ....
귀엽고 깜찍한 50여명의 소녀들과 생활하던 그 시절은 하루하루가 기쁨의 연속이고 보람찬 나날이었다.
그 해 나의 생일날 직원조회를 마치고 학급조회를 하려고 막 교실 문을 열었을 때 출입문에서 칠판 주위와 교탁에 오색 풍선과 꽃들이 휘황찬란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선생님 생일축하 합니다.~~'노래에 이어 박수와 환호를 지르며 나를 반겼다.
교탁에 작은 케익에 다섯개의 양초가 꽂혀있었다.
57명 학생 전원이 그림 엽서에 사연을 적어 이 엽서들을 스카치테이프로 병풍을 만들어 선물로 주었다.
이 엽서를 읽다가 감격의 눈물이 쏟아지고 목이 메어 쩔쩔매던 그 순간......그립다.
...
...
수경이는 서울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하정이는 서울대 의대에 들어가 서울대학병원 에서 내과 레지던트를 하고 있고 혜실이의 결혼에 내가 주례를 해 주었고......
길지인의 집 가까이 내가 이사를 와서 지인의 부모님과 가깝게 지내게 되었고 지인이는 물리치료사가 되어 서울에서 근무하고....
아!
돌이켜 생각하니 아득한 세월이 었다.
내가 벌써 정년을 두세달 앞두었으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유영곤과 생활하며 많은 감정의 갈등과 대립을 술마시며 풀기도 하고 꿈같은 세월 6년이 흐르는 동안 나는 원광대학교의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한맺힌 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다음으로 나는 어느학교를 가야할것인가.
승진을 위하여 벽지점수를 따는 곳으로 가야하나
아니면 그냥 그림을 열심히그리며 화가로써의 길을 걸어가야 하나
기로에서 번민하고 있는데
순창교육청 학무과장 김용환씨의 전화를 받았다.
순창군에 유일한 벽지 복흥중학교에 미술교사 티오가 있으니 날더러 희망서를 내란다.
이어서
진안군 학무과장 김규정씨가 아내 최우련을 통하여 연락이 왔다.진안군에 유일한 벽지학교인 백운중학교에 미술교사가 필요하니
그곳으로 내신 희망서를 써보라는 것이다.
권하는 장사 밑가는 일 없다고 생각하여 1희망을 진안군 중학교, 2희망을 순창군 중학교로 쓰고 나머지는 김제 완주 이리의 고등학교라고 기록하여 제출하였다.
이튿날 이영태의 말을 듣고서 그에게 대답할 말이 궁해졌다.
"자네 이렇게 쓰면 정말로 진안 백운중학교로 발령을 받네 그렇게 산골짜기에 들어가서 구차하게 근무하면서 꼭 승진을 해야하겄는가?"
"이사람아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다 승진도하고 그러데... "
출근길에 조수석에 앉아있던 영태가 하는 말이 송곳처럼 나의 자존심에 꽂혔다.
그렇지 굴욕적인 생활을 감수하며 승진하는건 나에게 맞지 않아!
생각이 이렇게 바뀌고서 나는 그에게 말하였다.
'아 자네 말이 맞네 맞아! 당장 고칠수가 있으면 고쳐야하겄네'
양기현 교감은 의아하게 눈을 뜨며 내게 말하였다.
'어저끄 보냈는디 아직 도로는 안들어갔겄구만 근디 왜 희망지를 바꿀라고혀!! ?'
'암만 생각혀봐도 나는 승진하고는 거리가 먼것같아서 그냥 포기하고 고등학교로나 가서 그림이나 그리다가 그만둘라고 그렁만요!!'
박카스 두박스를 받아든 장학생은 박카스를 책상위에 놓으며 '오전중으로 다시 작성해서 가져와얍니다. 오후에 도에 들어가야 헝게..
'알겠습니다. 곧 작성해서 각고 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제1희망지 완주군 고등학교
제2희망지 김제시 고등학교
제3희망지 익산시 고등학교
제4희망지 군산시 고등학교
제5희망지 남원시 고등학교.............
어느 곳 어떤 학교에 미술교사가 필요한지 전혀 알지도 못한채 그저 고등학교로만 발령을 받으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으로 전출희망을 고쳐서 제출하고 나니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며 아! 잘 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벽지학교에 가서 근무평정점수를 따기 위하여 동료교사와 아귀다툼을 하고 교장에게 살살이 노릇을 하며 아부하여야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소름이 돋았고
내가 산골에 뭍혀서 주말에 한번씩 집에 오는 그런 생활을 하게 될때 아내의 고통을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었기에 휴~!하고 한숨이 나올만큼 이영태의 충고가 고마웠다.
'어이! 자네 신문 봤는가? 축하허네 남원고등학교로 발령났구만!'
이영태는 아침 일찍 전화를 해 주었다.
기뻤다. 아! 남원고등학교면 통근도 가능하고 그림을 열심히 그릴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