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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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처럼 쓸 이야기가 있는 날

수평선위에 띄운 색소폰의 선율

정일웅 찻집 2010. 4. 7. 12:01

성지주일부터 시작하여

성 목요일

성 금요일

성 토요일저녁과

부활 대 축일까지

지난 성탄 이후 3개월간 열심히 연습한 성가대의 대 공연이 다 끝났다.

실수 하나 없이 모든 성가가 잘 불러지고

전례에 참석하여 듣는 신자들의 마음에 은혜로운 축복의 단비와 같은 화음과 선율이었다고 나 스스로 만족하였다.

지휘자의 행복은 바로 이런 순간에 찾아온다.

부활미사후 성당에서 국수잔치가 있어서 맛있는 점심을 국수로 대신하였다.

 

휴~~~!

등짐을 지고 먼 길을 걷다가 목적지에 도착하여 짐을 내려놓은 것 처럼 날아갈듯 홀가분한 마음이다.

 

"여보! 드라이브 시켜줄테니 타!"

 

나는 아내를 싣고 여수 오동도까지 단 숨에 운전하여 갔다.

수평선과 맑은 바다 시원한 바람을 맞은 아내는 탄성을 연발하며 좋아한다.

유람선을 타고 근처의 바다와 섬을 돌았다.

오동도에 내려 등대를 보고 동백꽃 숲길을 걸었고

향일암을 찾아 차를 몰았다.

돌산대교를 지나 돌산도의 남단에 이르렀을 때 오후 5시가 넘었다.

바닷가에 조그만 민박집이 있어서 그 집에 머물기로 하고 들어갔다.

'몽돌 이야기'민박 집

바닷가에 외딴집으로 수평선과 멀리보이는 섬 바다위에 떠있는 어선들 양식장의 하얀 스치로폼 부표들....갈매기....흰구름 푸른하늘........

전망이 환상적이었다.

 

민박집의 주인에게 물었다.

"여기 뒷마루에서 색소폰을 불어도 될까요?"

"그럼요~~! 여그 누가 있어요 외딴집이라 아무도 시비할 사람 없어요..."

 

숙소의 뒷마루에 나와서 바다를 바라보며 색소폰을 연주하였다.

소프라노색소폰의 가냘프고 아름다운 선율이 멀리멀리 수평선을 향하여 날아갔다.

갈매기들이 갑작스런 소리에 놀랐는지 끼룩끼룩하며 소리를 지르고 내 앞의 허공에서 맴돌았다.

처음 곡은 등대지기....

두번 째 곡은 섬집아기...바다의 정취가 풍기는 동요로 시작하여

해변의 길손.

바닷가의 추억

바위섬

외로운 양치기

가방을 든 여인

타이타닉의 주제곡

어메이징 그레이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

.

.

한시간 이상 계속된 나의 연주는 멀리 떠있는 어선의 어부들이 손을 흔들어 화답해 주었고

바닷가를 거닐며 나의 연주소리를 듣는 아내의 마음에 행복을 듬뿍 안겨주었다.

연주를 하는 나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것만 같은 착각속에

지칠줄 모르고 애절한 곡을 골라서 연주하였다.

너무나 행복하였다.

방음처리된 학원의 좁은 방안에서 연주를 하던 내가

온 세상 우주를 향하여 수많은 갈메기와 물고기들과 저 멀리 섬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독주회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곳은 이세상에서 가장 큰 무대이고

나는 세상에사 가장 훌륭한 섹소폰 연주자가 되었다.

 

민박집 주인이 넋을 잃고 선율에 취해있었다.

 

내가 연주한 곡은

지금도

돌산도 앞 바다의 허공에서 떠돌며

나의 이야기를 갈메기와 파도와 흰구름에게 얘기하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2010. 4월 5일 집에 돌아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