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고 3 수험생이 되어
고등학교 3학년 여름날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밤늦게 돌아와 잠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조용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평소의 목소리가 아니었고 뭔가 어머니의 속마음을 얘기하시려는 것이란 걸 직감하였다.
“일웅아!”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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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 일웅아! 너 교육 대학교 시험 쳐서 갈 수 있것냐 ? ! "
"거그 가면 바로 선생님이 될 수 있다고 허더라"
"나는 니가 거그 갔으먼 좋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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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여름방학이 가까워진 7월 어느 날이었다.
난데없이 엄마가 내게 던지듯 한마디 하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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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는 나의 초등학교시절을 회상하고 지금도 공부를 잘하여 어디든지 시험을 보면 합격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나의 마음은 혼란 속에 빠져들었다.
아! 나의 어머니는 아직도 나를 모범학생으로 믿고 계시는구나! 생각하니 기가 막히기도 하고 염치가 없기도 하였다.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였지만 학교에 가면 나의 생활은 또 다른 새로운 형태로 내 자신을 학대하며 공부에 관심이 없고 자포자기를 하는 생활의 연속이었었다.
남들보다 1년 꿇었다는 선배의식이랄까 하는 것 때문에 나의 행동은 과장되고 위장되고 일탈된 행동을 의식적으로 저지르고 있었다.
2학년 이 되면서부터 규율부에 들어가서 첫 시간은 지각생을 단속한다는 명분으로 교문에 서서 어영부영 놀다가 교문 밖 풀 빵 집에서 담배를 열심히 피웠다.
거기에 재미를 붙인 이유는 첫 시간이 골치 아픈 수학시간이 대부분이라서 그 시간을 빼먹는 다는 것이었고, 지각생을 단속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니 여학생들이 늦으면 현관에 세워놓기도 하고 예쁜 여학생이 늦게 오면 내 마음대로 교실에 넣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이러한 나에게 어머니는 교육대학에 입학하기를 기대하고 계셨다.
영생고등학교 야간에서 교육대학이라니.......... 이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전고’, ‘전여고’, ‘성심여고’ ‘기전여고’, ‘신흥고’, ‘상고’, ‘공고’, 그리고 이리의 ‘남성고’, ‘이리고’, 등 인문계고등학교이거나 실업계고등학교이거나 모두 인기 높은 교육대학에 많은 학생을 보내기 위하여 ‘교대 특별반’을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의 교육대학 입학시험은 까다로워서 입학 정원의 2배수를 학과시험으로 뽑아놓고 뽑힌 학생들에게 다시 '음악' '미술' '체육'의 이론과 실기 시험을 치러서 절반만을 합격시키는 제도였기에 음악 미술 체육의 실기와 이론공부 때문에 전주시의 모든 고등학교에서는 교육대학 특별반을 운영하는 기막힌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영생 야간에서 음악, 미술, 체육시간은 시간표에 나와 있기는 하였지만 한 시간도 제대로 해 본 일이 없었고 또 전공한 선생님도 계시지 않았었는데 무슨 재주로 교육대학을 간다는 말인가?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야위고 늙어 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외아들 하나를 의지하고 살아온 나의 어머니 그는 나를 초등학교시절의 그 영특하고 착실한 아들로 인식하고 계시는 것이었다.
순간 정신이 뻔쩍 드는 것을 느꼈다.
내가 지금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가.
고 3인 나는 장래의 어떤 꿈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나의 모습이 내 눈에 보였다.
초라하고 아무런 희망이 없는 그야말로 보잘것없는 한심한 학생이었다.
나는 정신이 반짝 드는 것을 느끼고 이어서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그렇다.
나는 지금 바로 학교를 주간으로 옮기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어야한다,
그리고 바로 수학공부를 시작하여야한다.
수학 공부를 하지 않고는 대학진학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망설이고 늦장부릴 시간이 없다.
나도 모르는 에너지가 심장에서 끓어올랐다.
마치 활화산이 막 터져 화염과 마그마가 분출하는 것 같은 힘이 솟구쳐 올랐다.
지금 바로 !
지금 바로 당장 !
행동에 옮겨야한다.!
오늘이 며칠인가. 7월 15일 이다.
오늘부터 시작이다. 바로 시작이다.!
우선 학교에 가자 주간으로 옮기려면 지금 가야한다.
나는 곧 바로 학교에 가서 교무실에 들려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이 홍근 담임선생님께서는 잘 생각했다고 말씀하시면서 주간으로 옮기는 데 동의를 하여주셨다.
학교를 주간으로 옮기는 것은 간단히 해결하고 곧 시내로 와서 학원에 들렸다.
'상록학원'의 입구에 프레카드가 붙어있는데 ' 수학1 특강 1개월 완성'이라는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나는 당장 등록을 마치고 교재를 구입하였다.
강의는 7월 15일 밤부터 시작이 되었다.
나는 맨 앞자리에서 열심히 듣고 필기를 하였다.
강사의 설명하는 말과 칠판에 보조로 써나가는 예시문제를 깡그리 적었다.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모든 것을 다 적었다.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은 소질이 없지만 빨리 쓰는 속기는 자신이 있었던 나는 특기를 발휘하여 거의 녹음을 하는 마음으로 모든 설명을 다 적었다.
8절 갱지 수 십장을 반으로 접고 접힌 부분의 위아래에 여자들의 머리핀(실핀)을 꽂아 고정시킨 것이 나의 노트였다.
수학의 기초를 거의 망각한 상태여서 보통의 노력으로는 수학을 정복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학원에서 돌아오면 처음부터 끝까지를 천천히 정서 하면서 강의 내용을 머리에 떠올리며 이해를 하는데 몰두하였다.
정리가 끝나면 그 날 배운 곳을 처음부터 다시 풀어 가는데 강의 시간에 그냥 지나친 연습문제까지 모두 풀면서 배운 것을 확인하고 나면 새벽 3시경이 되었다.
언젠가 김 인해 선생님께서 “수학도 암기”다 라는 말씀을 믿고 실천하였다.
마지막으로 처음부터 배운 곳까지 한문제도 빠뜨리지 않고 속도와 정확성을 확인하며 다시 한 번 풀고 나면 새벽 5시경이 되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았고 완전히 이해하고 외우기 전에는 잠에 들 수가 없었다.
매일 이와 같이 하고 나서 이부자리에 들어 한 두 시간을 자고 곧 학교에 갈 시간이 되어 적당히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무도 모르게 학원으로 가서 공부하고 돌아와 새벽까지 공부를 하였다
낮과 밤에 수시로 쏟아지는 잠을 퇴치할 방법이 없어서 약국에서 '카페나'라는 약을 사서 먹기 시작하였다.
'카페나'를 먹으면 머리가 산뜻하여지고 약간 어지러움이 있었으나 잠을 이길 수가 있었다.
수학공부를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이번 방학동안은 좋아하던 고기잡이도 가지 않고 밤낮으로 오직 수학공부만 열심히 하였다.
친구를 만나러 가지도 않았다.
수학1을 마치는 날은 여름방학이 끝나는 날 쯤 이었다.
나의 각오는 대단하여서 수학 공부를 시작하여 강의가 끝나는 날까지 새벽 다섯 시까지 잠을 자지 않았고 그 날 배운 내용을 완벽하게 익히고서야 잠을 자는 강행군을 계속하였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여도 내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하루하루가 지나는 동안 수학의 진도가 나감에 따라 더욱 내용이 알아듣기가 쉬웠고 점점 자신이 생기는 것을 느꼈기에 나의 용기는 더욱 강하게 나를 이길 수가 있었다.
재미가 있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수학을 왜 게을리 하였던가?’
‘시도도 해보지 않고 어렵다고 생각하며 왜 여태까지 포기했던 것일까?’ 하고 느끼고 있는 내 자신이 신기하였다.
삼각함수가 끝나고 교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는 수학에 자신이 생기고 교육대학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였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향하여 만세를 부르며 크게 외쳐댔다.
--" 야 ! 이제 됐다. !"--
--" 정일웅이가 수학을 정복하였다.---- 문제없다.!"--
--" 야이 짜식 들아 ! 내가 수학을 정복하였단 말이다. !"--
나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산에서 내려오는 꿈도 꾸었다.
무지에서 탈출하는 것만큼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
수학공부에 자신감이 생긴 나는 정말 너무나 신이 났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주간의 학교학생이 된 것이다.
주간의 학생들도 대부분 얼굴을 안다.
왜냐하면 야간의 시작시간과 주간의 끝 시간이 거의 겹치기 때문에 잘 만날 뿐 아니라 수시로 가정사정에 따라 주간에서 야간으로 야간에서 주간으로 옮기기 때문에 얼굴이 익고 나처럼 야간을 다니다가 같이 주간으로 옮긴 친구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전혀 모르는 사실은 내가 수학을 정복하였다는 사실이다.
나의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기쁨과 희열! 그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기쁘고 즐거웠다. 그 누구도 칭찬해주지 않아도 내 자신이 무조건 즐거웠다.
아는 것이 힘이고 지식을 얻는 것이 기쁨이란 것을 진심으로 느끼고 있었다.
2학기에 들어 첫 수학시간이 되었다.
맨 뒤 좌석에 앉아서 장난이나 치고 만화책이나 읽던 나였지만 주간으로 옮긴 나만의 이유와 목표가 있었고 나의 자신감이 실력인지 아닌지 수업시간에 알아보려는 궁금증이 수학시간을 기다리게 하였다.
2학기의 처음 수학시간이 그토록 기다려지는 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심리적 변화였다.
‘김 인해’ 선생님의 수학 강의가 시작되고 있었다.
아 ! 이럴 수가 ! 내가 정말 이렇게 변하여져 있다니 !......................
그렇게 어렵고 듣기 싫던 수학이 너무나 쉽고 너무나 재미가 있었다.
간간이 묻는 선생님의 질문이 저렇게 쉬운데 왜 학생들은 대답을 못하고 쩔쩔매고 있는 것일까?
나는 답답하여 몇 마디 대답을 하였다.
나의 답을 들으신 선생님께서는 약간 머리를 갸우뚱하면서도
" 바로 그렇지 그거야! "하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말에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향하고 있었다.
나는 싱긋 웃고 만 있었다.
내 옆의 짝인 '무섭'이가 "너 뭣 보고 대답 허냐?"하고 물었다.
"그냥 한번 혀 본 것이여!--" 라고 대꾸하고 더 이상 아는 채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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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여 수학교과의 정복은 나의 모든 학습활동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었고 평소에 제법 하던 영어공부는 무난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
그야말로 나는 나의 학습 진도를 내 스스로 계획하여 열심히 공부하였다.
9, 10, 11, 12월 넉 달의 세월은 화살처럼 흘러갔다.
평소에 해 오던 영어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고, 국어, 화학,
국사 공부도 착실하게 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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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대학에 입시원서를 내었다.
친구들은 “야! 교육대학? 하하하 야! 너 웃기지 좀 마라 야야!”하며 놀렸다.
담임교사인 ‘권 영선’ 선생님께서 나와 조용히 복도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나의 어깨를 잡아 세우고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야 ! 정 일웅! 우리학교에서 교육대학에 간다는 것은 좀 힘 드는 일이겠지만 너는 어쩐지 합격 할 것만 같다. "
" 왜요?" 나는 의아해 하며 물었다.
" 글쎄 비밀이지만 지난번 지능 검사에서 니 점수가 아주 잘 나왔더라! 열심히 해 봐!"
짧은 대화였지만 그의 격려는 나의 마음의 밑바닥에 반석을 깔아놓은 듯 든든한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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