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갈등에 싸여
집에 오는 버스 속에서 나의 마음은 너무나도 착잡하고 쓸쓸하여 열등감과 서글픔에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학교는 넓은 운동장이 있고 운동장 가엔 빙 둘러 플라타나스가 심어져있으며 철봉, 능목, 모래판과 그네, 시이소,가 있으며 기다란 교사 건물과 건물 중앙에 현관이 있고 현관엔 종이 달려있는 학교....아무리 작은 학교라도 그 정도의 학교라는 생각이었다.
아!
논바닥에 가마니 교실이 학교라니.....
집에 가서 학교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친구들은 모두 역사 깊은 학교에 발령을 받았는데 나는 왜 이다지도 서글픈 신세로 나의 첫 직장을 시작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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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학년 때의 이른 봄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어 10년의 투병 생활을 죽음으로 마감하던 그 때처럼 나는 또 한 번 색다른 절망을 맛보아야 했다.
집에 들어온 나에게 온 집안 식구들은 기대에 찬 들뜬 기분이 되어 나를 에워싸고 갖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학교는 크더냐?"
"얼마나 멀더냐?"
"집에서 댕길 수 있겄디?"
"진짜로 오빠가 선생님이 된 거야?"
"몇 학년 맡았어?"
지난해에 결혼한 누나가 집에 와서 있었고 어린 여동생들이 선망의 눈망울로 오빠인 나를 바라보며 반가운 소식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특히 나의 어머니께서는 외아들 하나가 가난과 갖은 풍파를 이겨내고 어엿하고 당당하게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한없는 사랑과 감격의 눈빛으로 바라보시며 눈에는 눈물이 고여 흐르고 있었다.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로 이들에게 설명하여야 한단 말인가?
"말 좀 혀 봐 오빠!"
"임실이면 여그서 가깝지?"
"너...얼굴이 왜 그러냐?"
"...멋이 잘 못 되았냐?"
"..야가 시방 왜 저런 다냐?"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골방으로 건너가서 이불을 둘러 쓴 채 눈을 감아 버렸다.
어머니와 누나는 필시 뭔가 잘못 된 것이라고 크게 걱정을 하면서도 나의 울적한 심기를 다치지 않으려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머니의 마음속에 땅이 꺼지는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 차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음을 빤히 알면서도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다음날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누워만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나에게 아물아물 되살아나는 말이 있었다.
교무실이라는 사랑방에 논바닥 교실로 가던 길에 오선생이란 자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내게 하여주었다.
“여기는 벽지점수도 없는 오지라서 선생님들이 잘 부임을 하지 않으려 해요.”
“지난 3월 1일자에 남 상수 선생님도 부임인사만 하고서 부임을 안 해버렸기 때문에 이번에 정선생님이 오시게 되었구만요! 남선생님은 그 뒤 손을 써서 오수 초등학교로 이번에 갔지요...........”
또한 교무실이란 데서 새어 나오던 그 말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또 안 오면 어쩐디야........?'
'......걱정 말어 이번에도 안 오리라고....'
'그렇다면 나도 부임을 거부하면 한 달 후에 다시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을 수 있다는 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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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장을 받으려고 임실군 교육청에 십여 명의 신임 교사들이 모였던 그 순간이 선하게 머리에 떠올랐다.
신임 교사들은 대부분 나의 동창생 들 이었고 제대군인으로 복직 발령을 받는 한 두 명만이 우리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장학사라는 분이 한사람씩 부르며
"오수 국민학굡니다. 축하합니다."
"관촌 국민학굡니다. 축하합니다."
"임실 국민학굡니다.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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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귀에 익은 지명이었고 사령장을 받아든 그들의 얼굴은 개선장군처럼 득의양양해 보였다.
부르는 사람의 숫자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금방 내 이름을 부를 것만 같은 기대감에 마음이 설레고 이름을 부르는 장학사의 입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으나 끝내 나의 이름은 부르지 않았었다.
나의 부임지가 궁금하던 친구들이 잠시 술렁이고 당황해 하는 나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또 뭐가 잘 못 되었는가.....?'
아직까지도 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이 갑자기 수상쩍어지고 순간적인 불안이 갑자기 나를 긴장시켰다.
"...정일웅 선생님 계십니까?"
휴--그러면 그렇지, 드디어 내 이름을 불렀다.
"예! 여기 있습니다."
장학사는 나와 잠시 시선을 맞춘 후
"정선생님 ...잠깐 저 좀 보실 까요?"
순간적인 불안이 또 한 번 내 가슴을 '쾅'하고 내리쳤다.
남들처럼 학교 이름을 부르며 축하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내 등 뒤에 손을 얹어 복도 쪽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복도 유리창 깨로 나를 데리고 온 그는 한참 머뭇거린 후에 조심히 입을 열었다.
".....저....선생님께서 가실 학교는 쪼끔 멉니다."
“???”
"...여기서 순창 가는 버스를 타고 쪼끔만 가시면 갈담 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학석초등학교를 물으면 가르쳐 줄 것입니다........."
"거기도 임실군은 임실군이지요?"
"그렇고 말고요"
'알겠습니다. 한번 찾아가 보지요"
장학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온 나에게 친구들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별 것 아니라고 대답하였고 사실로 나는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너 어저께 여그 교육청 안 왔다 갔냐?"
"뭐하러 여기를 오냐?"
"얄마 우리는 어저께 다 여그 와서 학교랑 알고 갔어... 너 빽 하나도 안 썼구나?"
"............"
무심코 듣던 그 말들이 다시금 생생하게 떠오르며 세상을 모르고 순진하게만 살아온 내 자신이 부끄럽고 나의 처지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이제 어이 하리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운명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서는 며칠 더 뭉개고 버티다가 누구를 붙잡고서라도 손을 쓰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막막하기만 할뿐이었다.
'내가 누구를 알아서 무슨 빽을 어떻게 써야 한단 말인가?'
아무 것도 생각하기 싫다.
이틀간을 골방에 틀어박혀 혈혈단신인 신세 한탄만을 거듭하고 있었다.
하느님 생각도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