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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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란처럼 살아온 나의 이야기/16. 초임지 일상

16. 초임지 일상

정일웅 찻집 2016. 7. 6. 14:25

16. 초임지의 일상

 

 

여름방학이 끝나고 826일 개학을 하였다.

아이들은 물론 교사들의 숙원인 신축교사가 완공되어 91일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교실 세 칸과 현관이 완성된 것이다.

 

수동, 윗 밤재, 아랫 밤재, 죽원, 하 필봉리, 웃터, 내동, 써렁다리의 주민들은 물론 강진 면장님, 갈담 지서장, 교육청 에서는 학무 과장과 관리 과장이 참석하였다.

 

학석초등학교의 학구는 아니지만 이웃마을에서 상 필봉리에서는 농악대를 만들어 축하를 해주기 위해서 왔다.

 

온 마을의 축제였다.

마을마다 떡이며 부침개를 만들어 광주리에 이고 자모들이 모여 들었다.

갈담 주장에서는 막걸리에 모리미를 섞어 대여섯 말을 보내왔다.

 

운동장이라고 하지만 산비탈을 깎아서 만든 논 두어 마지기 정도의 넓이밖에 안되었다.

그 곳에 차일을 네 군대나 쳐 놓고 운동장 한 쪽에선 화덕에 불을 지피고 기름에 음식 볶는 냄새가 아이들의 식욕을 자극하기에 너무나 좋았다.

아이들은 운동장에 좀처럼 모이지 않았다.

부침개가 만들어져 채반에 올려놓기가 바쁘게 집어 들고 먹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술렁이며 들뜬 분위기 속에 가까스로 낙성식은 거행되었고 필봉 농악의 화려한 굿판에 술 취한 주민들의 춤판이 해 저물 무렵까지 계속 되었다.

 

교실에서 공부를 하게 된 아이들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현관 쪽에 붙은 교실은 가운데에 칸막이를 세우고 한쪽은 교무실로 사용하고 한쪽은 6학년교실로 쓰도록 하였다. 교무실은 또다시 작은 칸막이로 한쪽을 막아 교장실 겸 서무실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나머지 두 교실도 중앙에 칸막이를 세우고 양편에 칠판과 교탁을 놓아 3학년과 5학년이 한 교실, 4학년과 1학년이 한 교실을 사용하고 2학년은 복도에서 교감이 맡아 가르쳤다.

교실의 칸막이라고 하는 것이 베니어 합판 두 장을 붙여 T자를 거꾸로 세운 각목을 양편에 고정시켜 세운 것이라서 교단에 서서 수업을 하는 두 교사는 서로 마주보며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3학년 담임은 연령 미달로 인하여 나보다 한 달 늦게 이곳에 부임한 홍일점 여선생이었다.

학창시절에는 2년간이나 같은 반이었으면서도 나와 말 한마디도 해보지 않은 자존심 높고 콧대 높은 상당히 미인 축에 드는 날씬하고 예쁜 여선생이었다.

그녀가 전혀 뜻밖에 이곳에 부임하여 왔을 때 나는 가슴에 전율이 일 정도로 기뻤으나 그녀는 한심한 이곳 형편을 접하고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너무나 슬프게 우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달래기 위하여 별의 별 말을 다 하였지만 그녀를 달랠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나이인 나도 처음에 그러했거늘 하물며 처녀인 그녀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한쪽에서 수업을 하다가 웃기는 소리가 나면 뒤쪽에서 따라 웃었다.

 

우리 반에서 학생들이 재미있어하는 웃음소리가 나면 3학년 아이들이 교실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와 나를 쳐다보며 코를 질질 흘리는 채로 히죽히죽 웃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귀여웠다.

 

그는 수업을 하는 도중에 신경질 섞인 말투로 마주 보이는 나를 향하여 "정 선생님! 제발 애들 웃기지 좀 말아요! 시끄러워서 수업을 못하겠네" 하며 투정을 부렸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나 재미가 있었다.

나는 더욱 신이 나서 괴상한 표정과 몸짓으로 어린이들이 더욱 크게 웃도록 하였다.

윤선생이 화를 내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예뻐서 얼마나 많은 골탕을 먹였는지 모른다.

계속되는 나의 익살에 결국 그녀가 웃고 말았다.

그녀가 웃으면 나는 가슴이 터질 만큼 즐거웠다.

 

새로운 교실로 이사를 하고 난 후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아이들의 꺼칠하게 길은 머리를 말끔히 정리해 주는 일이었다.

 

토요일 집에 가는 날 우선 이발기구 상점에 들려 바리깡(머리 깎는 기계를 그렇게 불렀다)을 하나 사고 이발용 가위와 브러시를 구입하고 나의 헌 와이셔츠 한 개를 보따리에 싸왔다.

 

방과 후에는 교실 밖 양지바른 곳에 간이 이발소를 차리고 머리를 깎아 주었다. 며칠 되지 않아서 밤송이 같은 머리는 사라졌고 단정한 까까머리 학생들로 변하여갔다. 차츰 기술이 늘어 상고머리를 깎아 주기도 하였는데 많은 학생들이 상고머리를 원하여 이발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더 걸렸다.

가끔은 동네 할아버지들도 내게 와서 머리를 깎아 달라고 하여 기꺼이 깎아주자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단골손님도 생겨났다.

교사의 신축 공사는 계속 되었다. 나머지의 4개 교실을 증축하는 것이었다.

 

2학기는 더욱 빠르게 지나갔다.

 

학생들과 나는 정이 들 데로 들었고 교사와 학생이라는 관계를 떠나서 친동생이나 조카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나와 아이들 사이에 아무런 벽이 없었다.

 

여름날 밤이 되면 일찍 저녁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나에게 놀러왔다.

정자나무 아래에 모기 불을 펴놓고 아이들은 나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재미로 거의 밤마다 놀러왔다.

나는 내가 어렸을 적 어머니에게서 들은 옛날 얘기랑 명작 집에서 읽은 기억을 더듬어 거기에 살을 붙여 얘기를 하여주었다.

 

몬테크리스트 백작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에드몽 당테스가 억울하게 투옥되어 탈출을 하는 장면을 실감나게 얘기하노라면 애들은 침을 꼴깍 꼴깍 삼키며 숨을 죽이고 이야기 속에 빨려 들어갔다.

 

한참 긴장된 순간에 "! 오늘은 여기까지 ! 내일 계속!" 하고 이야기를 중단하면 그들은 애타는 함성을 지르며 얼마나 졸라 댓던지 .......그것은 내일 또다시 아이들이 내게 놀러 오기를 기대하려는 마음이 더 컸는지 모른다.

 

학교 뒷산에 커다란 바위는 이제 교실로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점심시간이나 체육 시간의 자투리를 이용하여 돌탑을 쌓았다.

마이산의 돌탑처럼 높이높이 쌓아 올렸다.

맨 꼭대기의 돌은 책상 위에 의자를 얹고 그 위에 내가 올라서서 손을 쭉 뻗어 닿을 수 있을 높이만큼 높이 쌓았다.

 

아이들이 돌을 나르고 나와 영환이는 돌을 쌓았다.

탑의 숫자가 많아졌다.

나는 이들의 탑에 이름을 붙여 주었다.

 

남숙탑, 성조탑, 영조탑, 영환탑, 귀례탑, 동섭탑..........

 

아이들은 자기의 이름이 탑에 붙여지는 것을 대단히 기뻐하였으며 행여나 자기의 탑이 무너질까봐 수시로 찾아가 돌을 얹어 주곤 하였다.

학교 뒷산이 돌탑 공원처럼 아름답게 변하여 갔다.

 

농사를 짓는 시골이면서도 점심을 굶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이 학교에 미국의 원조 물자인 옥수수 가루가 교육청을 통하여 보급되었다.

 

학생들의 점심을 옥수수 가루 죽으로 대신 할 수가 있게 되었다. 학생들은 빈 도시락을 가져와서 점심시간이 되면 교사 뒤편에 지어놓은 숙직실 부엌에 줄을 서서 기다려 고용원 아저씨가 퍼주는 뜨거운 옥수수 죽을 받아 아무 곳에서나 먹었다.

 

한 달 후에는 우유가루도 보급되었다. 전지 분유였다. 이 우유는 물을 조금만 붓고 반죽을 하여 쟁반에 담아 쪄서 과자처럼 먹도록 나누어주었다.

 

어느새 가을이 지나고 초겨울이 찾아왔다.

 

산골이라서 인지 눈이 일찍 내렸다.

가난하고 배고픈 아이들이었지만 애들은 애들이라서 눈을 무척 좋아하였다.

 

주위가 온통 산으로 둘러 싸였기 때문에 이곳의 설경은 대단히 아름다웠다. 아이들이 토끼 잡으러 가자고 졸라대는 것을 뿌리치지 못하고 교장 선생님에게 건의를 하여 4학년 이상의 학생들이 토끼 사냥을 떠났다.

 

새끼줄로 고무신을 칭칭 동여매고 지게 작대기나 삭정나무 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학교 뒷산에 올랐다. 토끼는 세 마리를 발견하였지만 아무리 뒹굴고 뛰었어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발만 꽁꽁 얼어서 돌아왔다. 잠자는 산토끼만 깜짝 놀라게 해주고

털레털레 돌아오면서도 목이 쉴 정도로 소리를 질렀고 척척하게 젖은 바지가 빳빳하게 얼어붙어도 추운 줄 모르고 그저 재미가 있었다.

 

아직까지 이곳 학교에 전화 가설이 되지 않았고 전기는 생각도 못할 지경이었다.

고압선 전봇대만 논 가운데 우뚝 서있고 높다랗게 전깃줄이 지나 가고 있지만 언제나 이곳의 호롱불 신세를 면하게 될지는 기대할 수가 없었다.

 

겨울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하여 신학년도까지는 바쁜 중에 빠르게 지나가고 나와 열여섯 명의 아이들은 6학년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 열일곱 명 중 복례가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