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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란처럼 살아온 나의 이야기/23. 눈물바다를 만든 졸업식

23. 눈물바다를 만든 졸업식

정일웅 찻집 2016. 7. 6. 14:40

23. 눈물바다를 만든 졸업식

 

졸업식은 학교의 뜻 깊고 큰 행사이다.

교감선생님이 총 지휘를 하시고 교무부장과 연구부장이 기획을 하여

선생님들 각자에게 할 일을 분담하였다.

일주일 전부터 각자의 작업에 몰두하였다.

나는 재학생 대표의 송사에 이어 졸업생 대표 답사를 쓰고 학생을 선정하여 연습을 시키는 일을 맡았다.

혜란이는 모습도 예쁘고 목소리도 좋았다.

학교를 떠나 선생님들과 이별하는 소녀들의 여린 감성을 자극하도록 애절하게 썼다.

방과 후에 혜란이 혼자 남아서 실제처럼 낭독을 시켰다.

답사의 클라이막스에 이르러서는 거의 울음 섞인 목소리로 표정까지 애처롭고 슬픈 감정을 너무나 잘 표현하였다.

그래 졸업식날 그 대로만 잘 읽어라! 눈물이 나고 울음이 나오더라도 절대 그치지 말고 끝까지 천천히 읽어야 한다.” 알았지?.....

착한 혜란이는 믿음직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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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임실초등학교 57회 졸업식 날이 되었다.

19702월 중순 경이었다.

 

다목적 교실 3칸을 터서 강당처럼 만들고

여선생님들이 색종이로 만든 꽃 줄이 오색찬란하게 천정에 매달리고 유리창 틀 난간에 예쁜 꽃이 핀 화분을 색종이를 접고 붙여서 화분까지 장식하였다.

학부모석에 많은 부모님들이 들어왔고 재학생으로는 5학년 남 녀 한 반 씩 대표로 참석하였다.

내빈석에 교육장님과 장학사 선생님, 육성회장, 임실 군수, 임실 면장, 농협 조합장, 우체국장, 그 외에 여러 지역사회의 지도자들이 참석하였다.

국민의 례, 졸업장 수여, 각종 상장수여, 학교장 회고, 지루한 축사, 재학생 송사, 졸업생 답사차례가 되었다.

혜란이는 처음부터 마음으로부터 울어나오는 섭섭함이 슬픔으로 밀려오는 듯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장내가 갑자기 숙연해지기 시작했다.

.....선생님~! 그리고 사랑하는 아우들~! 이 시간이 지나면 정든 교실에서 다시는 선생님의 얼굴을 뵐 수가 없는 것인가요? 혜란이의 눈에 눈물이 글썽이더니 두 죽기의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그렇게 울면서 읽어가는 슬픈 글을 계속 흐느끼며 읽어간다.

6학년 3반 우리반 학생들이 갑자기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울음은 마치 초상집에서 딸의 울음소리에 온 가족이 울음바다가 되듯 엉엉 울기 시작했다. 6학년 4반 여학생들도 울기 시작했다. 남학생들이 하나둘 고개를 떨구더니 손 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리 참으려 애썼지만 흐르는 눈물과 북바치는 서러움을 참을 길이 없었다.

여선생님들이 울기 시작하고 앞 단상에 서계시는 진경현 교장선생님까지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기 시작하였다.

학부모가 울고 온통 졸업식장이 울음바다가 돼 버렸다.

혜란이의 아버지는 임실군 장학사이셨기에 내빈석에 앉아서 울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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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란이의 마지막 인사가 끝나고 송사를 접어서 교장선생님께 드리면서도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마지막 순서인 졸업가 제창의 풍금 반주가 나왔다.

풍금소리가 울음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다.

그 누구도 졸업가를 부르지 못하고 소 숙희선생님의 풍금 반주만 아스라이 흘러나왔다.

반주를 하는 소숙희 선생님도 풍금을 치면서 흐느껴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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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퇴장! 사회를 보시는 교무부장의 말에도 졸업생들이 일어나지를 않고 있었다.

간신히 진정을 찾은 담임들과 학부모들이 자기의 아들 딸 곁으로 가서 등을 도닥거려 주고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교실에 돌아와서 자리에 앉아 더욱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졸업장을 개인에게 분배 해 줄 수가 없었다.

한 시간도 더 흘렀다.

나는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고 마음을 진정한 후 다시 교실에 들어가 졸업장을 한사람 한 사람씩 돌아다니며 나누어 주었다.

모든 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의 손이 자기의 머리에 닿자마자 더욱 크게 울어 댔다.

우리반 교실 창밖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유리창을 통하여 이 슬픈 이별의 장면을 감상하고 있었다.

19702월 어느 날 이었으니까 45년 이상이 된 지금도 그때의 제자들을 만나면

졸업식 날 울었던 얘기를 주고받으며 그 날을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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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초등학교에서 나의 합창지도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꿈에도 그리던 그 천사의 합창단을 내가 직접 지도하는 것이었다.

중학교 입학시험제도가 다음 해부터 없어지고

중학교 무시험 진학이 시행되었다.

나는 5학년 남학생 반을 맡고 합창지도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