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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란처럼 살아온 나의 이야기/26. 중등미술과 검정고시 낙방기

26. 중등미술과 검정고시 낙방기

정일웅 찻집 2016. 7. 6. 14:47

26. 중등 미술과 준교사 자격 검정고시 낙방 기

 

이야기를 돌려서 중등학교 자격 검정고시에 응시한 이야기를 좀 해야 하겠다.

70년대 초반 여자 교사들의 수가 급증하고 남자교사들이 교단을 떠나 다른 직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초등교사들의 이직(移職) 현상이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내가 근무하던 임실 초등학교에서도 '홍동운', '허필수',선생님 등 배테랑급 선생님들이 사표를 쓰고 서울로 떠났고 야간 대학에 다니면서 중등학교의 자격을 딴 후에 중등학교로도 떠나가는 교사들이 많았다.

임실 초등학교에 근무한지 3년 째 되던 어느 날 나의 교육대학 선배이신 '강옥철' 선생님이 무슨 응시 원서 한 장을 내 놓으며 무조건 쓰라고 하였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원서에 나의 주소며 생년월일 등을 적고 도장을 찍었다.

'중등학교 미술과 준교사 자격 검정고시 응시원서'였다.

검정고시 과목은 '미술'로 적었다.

'음악'으로 할까 '미술'로 할까 한참 망설였으나 실기시험에서 음악은 낙방할 것이 너무나 빤한 일이라서 미술을 택하였다.

 

합창지도를 하고는 있고 나름 데로 동요를 째즈 식 반주로 하여 가르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으나 정식으로 피아노 교육을 받지 않아서 '소나타' 곡 중에서 한 곡을 치는 실기 시험공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바이엘도 쳐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미술은 연습하여 배우면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미술을 택한 것이었다.

 

중등학교 준교사시험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모르는 나는 일단 어느 정도의 시험문제가 출제되고 있는지 또 시험장소는 어디인지 시험을 보는 대상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일단 응시원서를 제출하고 보았다.

접수증을 받았다. 거기엔 수험번호와 시험장소가 나와 있었다.

 

중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 전율이 일며 짜릿한 기쁨이 전신으로 퍼졌다.

열흘 정도 남아있었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나는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옥철' 선생님을 따라 광주에까지 갔다.

 

'광주제일고등학교'의 교정에는 수 백 명의 많은 수험생들이 게시판 앞에 모여 각 과목별로 복잡하게 설명된 안내도를 읽고 각자의 시험장소로 찾아가고 있었다.

 

강 옥철선생님과 나도 배정된 교실에 들어갔다.

 

시험감독교사는 줄이 점선으로 인쇄된 8절 갱지 2장씩을 나누어주었고 여기에 논술 형으로 시험을 본다고 하였다.

수험번호와 이름을 쓰고 감독교사가 칠판에 쓰는 문제를 기다렸다.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니 여러 가지 책들을 펴보기도 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준비한 '커닝 페이퍼'를 주먹 속에 쥐고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작종이 울리고 감독 교사는 노란 봉투를 개봉하여 문제를 칠판에 적었다.

 

문제는 이러하였다.

"문제 1": "신석기 시대의 미술을 논하시오"

문제 2....."제시한 그림과 같은 도형의 '투영도'를 작도하시오.

이상 두 가지 문제를 120분 동안에 풀고 나가는 것이 시험이었다.

 

모두들 열심히 답안을 작성하고 있었다.

아무런 준비가 없이 자리에 앉아있는 나의 모습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시험지의 첫 머리에 수험번호와 이름을 적었다. 그 다음에는 할 일이 없었다.

 

'아하! 이렇게 시험이 나오는 구나! 생각하며 아무 할 일 없이 앉아 있는 것이 따분하여 답안지를 엎어놓고 유유히 걸어서 밖으로 나갔다.

감독교사가 깜짝 놀라며

"시험 도중에는 밖에 못 나갑니다.!"라고 크게 소리 질렀다.

나는 빙긋이 웃으며

"저는 다 썼는데요!"............라고 대답하며 교실을 돌아보았다. 모두들 자기 일에만 충실한 채 열심히 뭔가를 쓰고 있었다.

맨 뒷자리에서 강 선생님도 고개를 쳐 박고 열심히 쓰는 모습이 보였다.

............................................

화단 가에 앉아서 '강 옥철' 선생님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담배를 얼마나 피웠는지 발아래에 꽁초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

시험 끝 종이 치고 나서도 한참 후에 강 선생님이 나왔다.

 

"잘 썼어? !" 하고 물었다.

"몰라 쓰기는 썼는디 떨어졌구만! 술이나 퍼 먹더라고!"

우린 낯선 광주의 선술집에서 실컷 술을 마시고 돌아왔다.

 

그로부터 약 3개월 후에 전북도교육청으로부터 낯선 등기편지한통이 왔고 그 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귀하는 불합격되었기에 알려 드리며 다음엔 좋은 성적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강옥철' 선생님도 같은 편지를 받았다고 '껄껄' 웃었다.

................

................

'! 이제 진짜로 도전을 한번 해 봐?' 하는 오기가 발동하였다.

 

'그렇다 한번 해 보자!'

'강옥철' 선생님과 사표를 내고 집에서 사업 준비를 하시는 '홍동운' 선생님, 그리고 나는 함께 미술공부를 하기로 결심을 하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위하여서 필요한 책을 알아보았다.

'한국미술사' '동양 미술사' '서양 미술사' 이와 같은 책은 서울에서 사는 나의 여동생 '춘희'에게 사서 보내라고 하였다.

 

책이 크고 값이 꽤 나가는 책이었는데 엄청난 소포 비용까지 지불하며 집으로 보내왔다.

혈육의 정이 뭔지 정말 고마웠다.

 

나와 '홍동운', '강옥철' 선생님은 열심히 공부하였다.

이웃에 살던 '홍동운' 선생님과 나는 밤에 같이 만나서 공부를 하기로 하였다.

 

서양미술사와 한국미술사를 한번 독파하는 데도 몇 달의 세월이 걸리었다.

 

'색채학 개론''미술개론' 등을 열심히 공부하면서 다음 번 시험에는 꼭 합격을 하여야지 하는 결의가 점점 더 새로워짐을 느꼈다.

 

가장 어렵고 힘든 공부는 작도법이었다.

 

이때는 참으로 많은 공부를 하였다.

거의 날을 지새울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한국미술과 서양미술의 역사, 그리고 색채학과 미술 표현활동의 각 영역별 기법과 표현 과정 등을 이론으로 배우고 익혔다.

5-6개월 정도를 이렇게 공부하는 가운데 시험문제의 성격과 윤곽이 머릿속에 정리되면서 이제는 시험을 보러 가더라도 어느 정도 답안지를 작성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 옥철' 선생님과 나는 또다시 원서를 접수하였고 1차 시험은 역시 815일 광주의 제일고등학교에서 치르게 되었다.

이번 시험은 1, 2교시를 나누어서 본단다.

1교시 시험은 '입체파 미술에 대하여 논하라'는 문제였다.

 

글씨는 악필이었지만 작은 글씨로 시험지 앞뒤를 깡그리 채우고 제출하였다.

입체파의 탄생 배경이 되는 후기인상파 화가 '세잔'의 형태론으로 출발하여 '피카소'의 일대기를 대강 기록하였다. 18811025일 에스파냐 말라가에서 출생에서 14세 때 바르셀로나로 이주한 이야기와 그에게 영향을 준 화가들의 이야기, 등을 기록하였고 P.세잔의 형태 관을 살려나가 점점 단순화되고, 1907년의 영원히 기념할 명작 아비뇽의 아가씨들에 이르러서는 아프리카 흑인 조각의 영향이 많이 나타나는 동시에 형태분석(形態分析)이 비로소 구체화되기 시작한 입체파 탄생의 계기가 된 것과 G.브라크와 알게 된 것, 그와 함께 입체파운동에 들어가 1909년에는 분석적 입체파, 1912년부터는 종합적 입체파시대에 들어가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전개하였다.

 

1교시는 60분 동안 단 1초도 쉬지 않고 손목이 시큰할 정도로 빽빽히 글씨를 써서 내 맘에 후회 없는 답안을 제출하였다.

15분간 쉬는 시간에 담배를 두 대나 연거푸 피우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화장실에 다녀왔다.

2교시만 잘 넘기자!

'오 하느님! 2교시를 무사히 넘기게 해 주세요!'

마음으로 기도가 절로 나왔다.

 

'땡땡땡땡' '땡땡땡땡' '땡땡땡땡' 2교시 시작종이 울렸다.

2교시는 작도법이었다.

 

'원기둥의 높이의 절반인 위 부분을 45도로 절단한 입체의 전개도를 작도하라'는 문제였다.

“?????????”

................................

머리가 '~~!' 하고 한대 얻어맞은 듯 둔탁한 통증이 뇌에서 느껴졌다.

이것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문제였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실컷 공부한 결과가 이게 뭐란 말인가?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篇意自現)'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랬지!

 

마음을 가라앉히자!

조용히 명상하며 생각하자!

'45도 절단! ' '45도 절단! ' '45도 절단! ' '45도 절단! '

백번도 천 번도 더 상상을 하여 보았다.

원기둥의 전개도는 원둘레만 한 길이의 가로와 높이는 세로인 직사각형의 위, 아래에 원이 하나씩 붙어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45도로 중간을 절단하면 절단된 윗면은 타원형이 될 것이고 아래는 둥근 원 모양이고 높이의 2분의 1 부분까지는 직선으로 올라가다가 그 위는 타원으로 절단된 타원형 원주의 길이 만 한 구부러진 모양이 되겠는데...................'

 

'그런데 이걸 어디에서부터 시작할까? 사고가 꽉 막혀버렸다.'

손과 이마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 또 떨어지는구나!

하지만 한번 차근차근 해보자!'

'먼저 단면도와 평면도를 그린 후에 ................'

진땀나는 한 시간 동안 상상되는 모양을 그럴싸하게 그리려 안간힘을 다해서 답안이라고 작성을 하긴 하였다.

 

끝 종이 울리고 모두 일어서서 답안지를 제출하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살펴보았다.

각양각색이었다.

왜 하필이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전개도가 나온단 말인가?

맥 풀어진 마음으로 시험장을 걸어 나왔다.

'강 옥철' 선생님은 대강 흉내를 내는 수준으로 작도를 하였다고 말하였다.

그가 부러웠다.

술을 몽땅 마시고 집에 들어갔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것저것 바쁜 일과에 정신없이 세월이 흘렀다.

11월이 되는 첫날이었다.

시험에 관한 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을 무렵 전북 도교육청에서 한 통의 행정 편지가 왔다.

전에 한번 받은 적이 있는 행정봉투였다.

"귀하는 불합격되었기 알려드리오니 다음에는 좋은 성적을 거두시기 바랍니다."라는 편지일 것이 빤한 일 이었다.

펴보지 않고 버리고 싶었다.

 

펴 본 후에 또 크게 실망할 것이 아닌가?

펴보지 않고 그대로 책상 서랍에 넣어버렸다.

 

퇴근 준비를 하려고 책상서랍에 열쇠를 채우고 있을 때였다.

"! 이사람아 ! 어이! ‘일웅! 축하허네! 그리고 나도 축하혀 주더라고! ! ! !"

 

커다란 목소리로 넓은 교무실이 떠나갈 듯 말하는 사람은 다정한 강 옥철선생님이었다.

"! 그게 뭔 말이여?!"

나는 그렇게 물으면서도 찡하는 기쁨 같은 것이 가슴 깊은 곳을 뜨겁게 달구는 느낌을 받았다."

"! ! ! 이 사람아! 합격이네! 합격!"

 

"! 하하하 기분 되게 좋네 옥철이 성! 갑시다. 한잔합시다."

홍 동운선생님을 안타깝게 여기며 우리는 진창 술을 마셨다.

이튿날 교무실에 오자마자 책상 서랍을 열고 편지봉투를 개봉하였다.

 

거기엔 " **년도 중등학교 준교사 검정고시 1차 시험 합격자 명단"'2차 시험 장소와 과목'이 적혀있었다.

 

아니 이게 뭐야?!

2차 시험이 116...................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강의실.....!!

수채화로 인물 사생하기..............준비물...*****...........

아니? 그럼 딱 일주일이 남았다는 말이다.

"별거 아닝게 걱정 말고 한번 봐봐! "

"평소실력대로 그리면 되지 뭐!!"

당황해 하는 나를 강 옥철형은 위로하여 주었다.

 

그날 당장 수채화 팔레트와 물감 그리고 붓과 이젤을 사러 전주에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5일이 지났다.

시험 전날 연가를 내고 서울에 올라갔다.

 

옥철 형과 나는 물어물어 서울대학교를 찾았고 가까운 곳에 여관을 정하였다.

전국에서 미술과 1차 합격자들이 모두 모였다.

수 백 명이었다. 한 교실에 3-40개의 이젤이 있고 수십 개의 커다란 실습실에서 시험이 치러지고 있었다.

이젤에 붙은 수험번호를 찾아가서 화판에 나누어주는 3절 켄트지를 붙였다.

물통에 물을 준비하고 팔레트를 펴놓고 기다렸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있었다.

시작종이 울리고 청바지에 청조끼를 입은 젊은 모델이 가운데 마련된 높다란 모델 대 위에 올라가서 의자에 앉았다.

"! 시작하세요!"

"100분 동안입니다." 감독의 말은 짧고 냉정하였다.

"모델은 20분이 지나면 5분간 휴식을 합니다.!"

'슥슥 싹싹 ---' 연필 긋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

나는 어디서 어떻게 그려야 할까 까마득하였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그려보자!

나는 모델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하였다.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흘러갔다.

지우개로 지우고 또 그리고

'예쁘게 예쁘게 그리자! 모델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열심히 그리다가 색을 칠하였다.

여인의 속눈썹까지 그려서 아름다움을 강조하였다.

손톱도 예쁘게 그렸다.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찌르르릉 찌르르릉' 끝나는 벨이 울렸다.

확성기에서 감독선생에게 부탁하는 말들이 웅웅거리고 있었다.

옥철형과 나는 다른 교실에서 실기를 하였다.

우리는 서울역에서 소주 두병을 마시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 안에서도 갱생원 장사에게 소주 2병을 사서 더 마시고 옆 사람들에게도 권하였다.

시험을 치렀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또다시 일상에 복귀하였다.

열흘 후에 낯익은 편지를 받았다. 도교육청의 행정봉투였다.

반갑게 봉투를 개봉하였다.

한 가닥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귀하는 불합격되었기에 통보하오니 다음 기회에 좋은 성적 거두시기 바랍니다."

 

하늘색이 노랗게 보였다.

교육대학시절부터 열심히 그림활동을 하던 옥철 형은 합격을 하였다.

 

자신의 실력을 탓하지 않고 나는 술을 마심으로써 나 스스로를 잊어버리려 안간힘을 썼다.

강 옥철형은 무주 안성중학교 미술교사로 발령을 받고 떠났다.

떠나는 그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일웅이! 자네 내년엔 꼭 합격 혀! ?!"

"................................"

"포기허지 말고 꼭 혀! 알겄지?!..."

나는 자괴감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여 답하고 그를 보내었다.

 

허전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이제 누구와 가까이 지내며 어떻게 공부를 할거나! 세상에 나 혼자만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모든 걸 다 잊자!

욕심도 버리자!

편안히 살자!

즐겁게 살자!

어머니를 위해서 살자!

내 가족들을 위해서 살자!

성당 일이나 열심히 하며 신앙생활에 묻혀 살자!

아이들에게 사랑을 심고 열심히 가르치자!

나는 초등학교 교사가 아닌가?

 

불합격 통지를 받은 직후 학교를 떠나서 장기간 연수가 있었기에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기가 쉬웠다.

교육과정 개편을 위하여 교과서 제작요원으로 각 시·군에서 장학사 1명과 교사 1명이 서울에서 50일간 연수가 있었는데 임실군에서는 미술과 교과서 제작요원으로 추 금석장학사와 내가 거기에 차출되어 집을 떠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의 연수는 보람 있는 나날이었고 5학년 미술교과서를 만드는데 나의 힘이 투여된다는 보람과 자부심으로 열심히 연구와 연수를 거듭하며 과제 해결에 몰두하였다.

밤에는 근처의 막걸리 집에서 술을 나누며 장학사와 가까운 관계를 맺는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되었다.

50일 간은 꽤나 긴 기간이었다.

연수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 12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