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임실군 지사중학교
<개교식>
임실교육청 현관문을 지나 학무과로 들어갔다.
퇴근 시간이 거의 임박한 때였다.
‘오 성근’ 장학사님이 벌떡 일어나 나를 반기었다.
"어이! 정 선생! 축하 허네!"
"장학사님 감사합니다.....저는 이번에 발령이 안 나는 줄 알았어요!"
"아! 이 사람아! 내가 언지 실없는 소리 허덩가? 아무튼 자네가 와서 우리 강 교장 한시름 놓겠네...."
오 성근 장학사 책상 옆에 세 명의 손님 인 듯 보이는 사람들이 와 있었다.
"어이! 강 교장! 정 선생 왔네! 빨리 델꼬가서 준비혀!!"
"정 선생! 이 분이 자네가 모셔야 헐 지자중학교 교장선생님이네....어여 인사드려!!"
"정 일웅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정 일웅 선생님! 축하 허고.....나...교장 강 태진이요... 같이 잘 지냅시다."
내민 손이 따뜻하고 두터웠다.
"최 근홉니다 축하합니다."
"서무과(행정실) 김 인식입니다. 축하드려요"
곁에 있던 두 사람과도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서둘러서 버스를 타고 지사중학교로 떠났다.
피곤한 나는 바로 옆에 있는 집에 들어가 한 숨 잤으면 좋겠으나 내일 아침에 있을 개교식을 준비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1976년 3월 6일에 지사중학교는 개교식을 한다는 것이었고
오늘 이시간이 3월 5일 오후 4시.....
임실에서 남원 행 완행버스를 타고 오수에서 내려 장수군 산서면으로 가는 버스를 다시 갈아타고 가는 도중 교장 ‘강 태진’선생님은 곁에 나를 앉히고 대략적인 학교 설립 배경을 설명을 하여 주셨다.
임실군 지사면 금평리 출신인
‘최 주호’ 계성제지 회장이 주민의 염원이었던 중학교 설립을 위하여 학교 부지를 매입하여 전북도 교육청에 희사함으로서 학교 설립이 시작되었단다.
전주농고 교감으로 재직하던 ‘강 태진’씨가 교장으로 발령을 받아 학교 설립의 행정 책임을 맡았고
전라고등학교에서 실력 있는 국어 교사로 유명한 ‘최 근호’씨와 행정실 직원 2명과 더불어 지난 6개월간 행정 절차를 밟아 왔던 바
국어과 ‘최 근호’선생님은 이미 6개월 전에 발령을 받았고
3월 1일에 발령 받은 교사는 2명으로
과학과 ‘이 영부’선생님
영어과 ‘임 혜란’선생님이었는데 전북사대 영어교육과 수석 졸업생으로 대단한 실력가 이며 학생들 실력향상에 탁월하다는 소문이 자자하여 섬진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던 분을 ‘오 성근’장학사가 특별히 초빙한 교사였다.
2개 학급이라서 정원으로 확정된 평교사는 4명뿐이라서
나머지 한 명의 교사를 무슨 과목으로 발령을 내어야 신설학교의 중등교과목 모두를 원활하게 지도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발령을 미루던 차에
임실교육청의 ‘오 성근’장학사님이 ‘정 일웅’을 발견하고서
‘정 일웅이라면 예능교과 뿐 아니라 환경정리 등 신설학교에서 해야 할 모두를 능히 해 낼 수 있겠다’ 생각하고
전북도 교육청에 부탁하여
3월 6일 자로 특별 발령을 내게 된 것이라고 하는 말씀을 듣고서야 나의 발령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에 대한 납득이 갔다.
내일이 개교식인데 학생들을 소집하여 아직 학교에 남아 있고 모든 직원들도 학교에서 내가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한다.
‘편히 쉬기는 틀렸구나’ 생각하며 학교에 들어갔다.
............
황토 흙이 아직 잘 다듬어 지지도 않은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흩어져 놀고 있었다.
운동장 가장자리엔 수 십 개의 천막이 쳐져있었고
교사 건물이 있는 언덕배기에서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흙 계단에 가마니를 덮어 놓았다.
최근호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빨리 모여라!”하고 고함을 쳤고 아이들은 뛰어 모였다.
‘최 근호’ 선생님이 나에게
“내일 부를 애국가와 교가 대신 ‘새마을 노래’를 부르기로 했으니까 얼른 지도하시고 애들을 집으로 보내 주시지요!”하였다.
남학생 60명 여학생 60명 정도의 2학급 학생들이었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이라서 말을 잘 들었다.
지휘의 손에 맞춰서 큰 소리로 부르는 것에 초점을 두고 부르게 했다.
반주는 녹음해 둔 게 있다하여 반주에 맞춰보지는 못하였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자
반갑게 소리치며 한 사람이 뛰어나왔다.
“아이고~~! 정 일웅선생님??”
‘박 상호’행정실 사무원이었다.
그는 대뜸 나의 손을 잡고 인사를 할 틈도 없이 교실로 안내하였다.
1m정도의 폭에 길이가 7~8m 정도의 기다란 하얀 옥양목 천에 개교식 플래카드를 쓰려는 모양이 눈에 들어왔다.
서예 붓 한 자루, 2홉 들이 검정색 페인트 캔, 석유가 사이다병 으로 1병, 이렇게 준비되어 있었다.
경 지 사 중 학 교 개교 축
1976. 3. 6
이라고 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것 좀 써 주셔야 겠어요 저는 통 자신이 없어서 정 선생님만 눈이 빠지게 기달렸구만요...!”
“저는 박 상홉니다. 인사가 늦었구만요....너무 맘이 바빠서....”
난감하였다.
이렇게 큰 플래카트를 서예용 붓으로 어떻게 하려는 것 이었던가.
“박선생님!”
“예!”
“이 근처에 철물점 있나요?”
“있지요!...왜요?”
“뭐 좀 사다 주실 수 있을까요?”
“뭐든지 말만 하셔요 비행기 군함만 빼고는 다 사 올게요!”
그는 호탕한 말투로 친근감을 주었다.
“철물점에서 큰 풀비 두 개만 사다 주실래요...빨간색 페인트도 있어야겠고요...”
“예! 빨강색은 한 홉 짜리가 있구만요”
씩씩하게 대답한 그는 자전거를 타고 잽싸게 달려가 풀비 두 개를 사왔다.
사환으로 보이는 어린 청년에게 헌 대야 한 개를 구해 오라했더니 정말 찌그러진 대야 한 개를 가져왔다.
‘박 상호’씨가 잠시 후 돌아 왔다.
눈이 핑 돌며 어지러웠다.
심한 시장기가 나를 엄습하였다.
벌써 해는 지고 어둑해졌다.
.........................
서무실 쪽에서 큰 소리를 지르며 사환 ‘종혁’이가 뛰어 왔다.
“빨리 ‘라면’ 자시고 허시래라~”
아까부터 무슨 좋은 냄새가 난다 했더니.....나를 구원하는 소리였다.
‘임 혜란’선생님이 석유곤로 위의 커다란 냄비에 라면을 가득 담아 끓여서 싱글벙글 웃으며 그릇에 담아 분배하고 있었다.
전 직원이 모여들었다.
‘휴~! 살았다.’
양재기에 퍼 담아 주는 라면을 몇 젓가락 휘감아 들이키니 정신이 맑아지고 시야가 밝아졌다.
점심도 굶었던 터라 채면 볼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맛있는 라면을 먹어본 기억이 없었다.
두 그릇을 먹고 나니 힘이 솟았다.
어제 마신 술이 확 깨었다.
프래카트를 쓸 교실로 갔다.
대야에 페인트를 전부 쏟아 붓고 석유를 적당한 비율로 넣어 섞었다.
운동장에서 쓰는 긴 줄자로 글씨의 간을 잡아 노란색 분필로 표시를 하고
학생용 의자를 가져다 글자 사이사이에 등받이 각목을 천 아래에 받쳐 놓고 압정으로 고정하여 페인트가 바닥에 새어서 번지는 것을 방지하였다.
납작한 풀비에 페인트를 묻혀 쓰기 시작하였다.
초등학교에 부임하면서부터 아영중에서 까지 얼마나 많이 해 본 일인가 이정도 쓰는 거야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지사 중학ㄱ’ 까지 쓰고 나니 밤이 꽤나 깊었다.
아뿔싸! 페인트가 모자랐다.
“박상호 선생님! 여기 페인트가 모자라는데요!”
“어~~ 어쩐데요 오수까지 가도 늦어서 뺑끼 집이 문 닫았을 틴디~~”
난감한 일이다.
“그럼 등사 잉크는 있지요?”
“등사잉크는 많이 있지요..!”
“그럼 등사잉크라도 좀 갖다 주시지요...”
등사잉크로 나머지 글자를 썼다.
‘경 축’은 빨간 색 글씨 ‘궁서체’로 썼다.
밤 자정이 다 되어서야 글씨가 완성되었다.
“선생님 안 오셨으면 저는 이거 날 새기 혀도 못썼을 판 인디 정 선생님 정말 귀신이네요...하하하”하며
박상호씨가 좋아하였다.
...............
전 직원이 숙직실 건물로 들어갔다.
방이 세 개여서 적당히 나누어 잠을 잤다.
방은 따뜻했고 담요도 충분하였다.
눕자마자 골아 떨어졌다.
..................
..................
아침 일찍 마을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방계’, ‘목평’, ‘금평’, ‘원산’, ‘성내’, ‘갈계’,....마을에서 대 광주리에 음식을 담아 머리에 이고 모여들었다.
직원들은 서둘러 아침식사를 하였다. ‘금평리’ 학부모들이 해 온 밥과 김치 시래기 국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플레카드 양 끝에 굵은 장대를 묶고 교문까지 옮겨 단단히 고정하였다.
이윽고
경찰을 실은 버스가 운동장 입구 쪽에 차를 세우고 정복경찰 십여 명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각자 임무를 수행할 차비를 하는 것이 보였다.
“왠 경찰들입니까?”
‘이 영부’ 선생님께 물어 보았다.
“오늘 개교식에 전국에서 높은 분들이 많이 오신 대요”
계성제지 회장과 직원, 교육감, 국회의원 3명, 순천 철도국장, 도교육청 장학사들
재경 임실군 인사들, 군인 장성급이 다섯명, 신문사 취재진, 전주농고 농악 단을 태운 버스, 임실군수와 관계직원, 임실경찰서장과 경찰간부들,
..............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운동장과 학교 앞 도로변에 번쩍번쩍한 차들이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섰다.
교장실엔 손님으로 가득 차 늦게 도착한 내빈은 들어 설 자리조차 없었다.
운동장이 정돈되고 의식 시작 시간이 임박했다.
교장실에서 내빈들이 내려왔다.
‘지사면’이 생기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는 건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조회대 뒤쪽의 천막에
농협단위조합과 면사무소, 등에서 빌려온 의자를 수 십 개 배열하여 놓고 교감선생님과 ‘최 근호’ 선생님, 면 직원, 교육청 장학사들까지 내빈들이 앉을 자리로 안내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유일한 여자교사인 ‘임 혜란’선생님은 차를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임에도 싱글벙글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임 혜란’ 그녀의 청순한 모습과 청아한 목소리가 귀여웠다.
그녀가 웃을 때 깊게 파이는 보조개가 더욱 귀여웠다.
3월 초순이지만 운동장의 황토 흙이 얼어 있어서 뒤뚱거리는 의자에 지체 높은 분들이 앉은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다.
조회대 앞에 학생 120명이 네 줄로 서고 학생들 양편과 뒤쪽으로 주민과 일반 하객들이 늘어섰다.
10시 30분에 개교식이 시작되었다.
개회사,
국민의 례
학교장 인사
경과보고, 감사장 수여, 내빈축사, 등등 지루한 행사가 계속되었다.
하늘이 화창하게 개이고 따뜻한 햇살이 운동장을 내리 쬐었다.
따뜻한 햇살 때문에 드디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운동장의 얼었던 흙이 녹자 서 있는 모든 사람들 신발엔 황토 흙이 달라붙어 걷기에 힘이 들었고
의자에 앉은 지체 높으신 분들의 의자 다리가 흙 속에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었다.
의자의 쿠션이 거의 땅에 닿을 만큼 의자는 가라앉았고 의자에 앉은 사람들의 키가 낮아져 앞에 놓인 책상 때문에 시야가 가려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마을 청년들이 짚 다발을 가져와 깔아 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
학생들의 새마을 노래 제창으로 개교식이 끝났다.
내빈들은 식사가 준비된 교실로 들어가고
이어서 제 2부 행사가 있었다.
전주농고 학생들의 농악대 연주가 있었는데 운동장의 진득거리는 황토 때문에 현란한 대형의 이동과 몸놀림의 연기는 할 수가 없었다.
......................
모두 다 돌아가고 텅 빈 운동장이 되었다.
천막을 철거하는 청년들만 분주하고 너저분하게 널린 지푸라기,
종이 조각들, 빈 병, .....
발령을 받자마자 큰 매듭하나를 넘은 듯 하였다.
개교식이 끝난 운동장은 쓸쓸하였다.
....................
<학습지도>
지사중학교에서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1학년 1반 담임....정 일웅
1학년 2반 담임....임 혜란
학급 담임은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
다음은 교과 담임을 정하는 게 문제였다.
오성근 장학사는 교사 4명을 뽑아서 수업에 지장을 최소화하겠다는 목적으로
주요과목인 국, 영, 수, 과, 중에서 '수학'과 '과학'을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수학과목을 과학 선생인 ‘이 영부’에게 맡기고
나머지 음악, 미술, 체육, 한문, 도덕, 사회를 나에게 맡기려 계획을 하였던가 보다.
그런데 '과학'과의 ‘이 영부’선생님이 수학교과서를 검토해 보고 새로운 집합이론이 맨 먼저 등장하는데 집합은 학창시절에 전혀 배운 적이 없는 생소한 수학분야라며 난색을 표하였다.
하는 수 없이 첫해에는 교과 담당을 다음과 같이 짜서 운영하였다.
최근호 : '국어', (1반 '체육'),
임혜란 : '영어', '가정',
이영부 : '과학', '도덕', '한문', '기술'
정일웅 : '수학', '음악', '미술', (2반 '체육'), '사회'
나도 역시 학교에 다닐 적에는 한 번도 접하지 않았던 '집합'이라는 단원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 아내에게 밤마다 개인교수를 받았다.
아내의 학창시절엔 집합이 일반화되어 배우는 시절이었다.
'최 우남'은 전주여고에서 수학은 전체 1등을 했다고 자랑을 하더니 과연 내게 쉽게 잘 가르쳐주었다.
내용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내가 이해한대로 가능한 재미있는 예를 들어가며 가르쳤다.
나는 '웃으면서 이해하는 수학시간'으로 만들기 위하여 갖은 꾀를 다 내었다.
<학생의 수업태도와 학습에 열중하도록 하는 것은 교사의 기술이다 >
<학생들이 학습흥미를 느끼면 절대로 딴 짓을 하지 않는다.>
<학습흥미 유발은 전적으로 교사의 능력에 달려있다.>
<폭력이나 공갈은 학생을 조용히 하게는 할 수 있어도 학습에 열중하도록 하는 방법은 못된다.>
<학습흥미는 학습의 원동력이다>
<수업시간에 나는 원숙한 배우가 되어 학생을 웃기고 울릴 수 있어야 한다.>
이상은 평소 나의 마음속에 지닌 나의 교육 신념이었다.
교집합, 합집합, , 여집합의 벤다이어그램을 그리며 집합연산을 설명하면서도 어느 부분에서든지 학생들이 깔깔대며 웃을 수 있는 요소를 집어넣었고,
1차 방정식을 가르칠 때에도 나만의 특이한 몸짓,
식을 전개 할 때의 말의 속도와 목소리의 높낮이 변화로 우스꽝스러운 표현,
특별한 전라도 사투리로 하는 설명 등 나 혼자만의 쇼맨십을 발휘하여 어떻게 든 웃으며 공부하는 수학시간의 운영을 하였다.
학생들은 수학시간을 무척 기다렸고 나 또한 나의 수업을 좋아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생각보다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 재미가 있었고 중요한 과목을 담당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 해에 실시한 임실군 ‘중1학년’ 학습흥미도 검사에서 의외의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임실군 중학생 1학년의 학습흥미도 검사에서 지사중학교에서만 ‘수학’이 흥미도 1위가 나온 것이었다.
이 통계를 본 교육청에서 잘 못된 것이 아니냐는 문의가 오기도 하였다.
교과흥미도 검사에서 '수학'이 1위인 학교는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수학을 좋아한다고 응답해 준 학생들이 고마웠다.
음악시간에는 교과서의 노래는 물론이고 내가 좋아하는 한국 가곡과 이태리의 깐소네, 세계적인 명곡, 곡이 좋은 팝송 등을 시간이 허락하는 데로 많이 가르쳤다.
"여러분! 여러 사람 앞에서 노래 한 곡을 부르는 것으로 자기의 품격을 높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의 이런 설득에 학생들은 한국 가곡이나 외국 가곡 등 고등학교 수준의 노래도 잘 배웠다.
음악의 이론 역시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는 나만의 방식을 계발하였다.
미술과목은 나의 자격증 과목이기에 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미술 실기는 잘하든 못하든 학생들이 자유스럽기에 흥미를 가지고 참여하였다.
이론을 가르칠 때는 흥미를 잃기 쉽다.
그래서 재미없는 색채를 공부 할 때엔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도록 '보색의 노래', '색의 3요소 노래', 등을 작사 작곡하였고
한 시간의 수업을 마치면 보색과 색상명 명도 채도를 평생 잊지 않도록 소위 '해마 자극 암기법'을 적용하여 지도하였다.
예를 들어본다면 다음과 같다.
표준색의 보색을 가르치기 위하여
삼원색에서 출발하여 5주요색, 표준10색, 표준20색의 색상환 표를 칠판에 그린 후 색종이로 만든 색상환 표를 제시하여 색상과 색상이름을 확실하게 알게 한 후에
마주보는 색의 보색 관계를 설명한 다음에 칠판에 보색끼리 짝지어 썼다.
<표준색의 보색>
빨강 - 청록
다홍 - 바다색
주황 - 파랑
귤색 - 감청색
노랑 - 남색
--------------
노란연두 - 남보라
연두 - 보라
풀색 - 붉은보라
녹색 - 자주
초록색 - 연지... ........ 이렇게 쓴 다음 서로 짝지어서 여러 번 일제히 읽도록 하도록 하고 나서
색상명의 첫 글자만 남기고 뒷 글자를 지운 후에 바르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
빨( ) - 청( )
다( ) - 바( )
주( ) - 파( )
귤( ) - 감( )
노( ) - 남( )
............................................................
노*연( ) - 남보( )
연( ) - 보( )
풀( ) - 붉( )
녹( ) - 자주 ( )
초( ) - 연( )
**************************************************
첫 글자만으로 색상 명을 바르게 읽을 수 있게 되면 다음으로는 ( )안에다가
암기용 구호를 써넣었다.
빨(래줄에 ) - 청(바지 )
다(락방에 ) - 바(퀴벌레 )
주(방에는 ) - 파(출부 )
귤(껍질과 ) - 감(자껍질 )
노(다지는 ) - 남(대문 )
..............................................................
노*연(숙과 ) - 남보(원 )
연(못속에 ) - 보(물단지 )
풀(밭에는 ) - 붉(은 꽃 )
녹(두밭에 ) - 자주(가면 )
초(가집에 ) - 연(기난다. )
**************************************************
응원구호를 외치듯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위 아래로 흔들면서 학생들에게
"보색의 노래 구호! 시--작!"하고 명령을 하면
학생들은 오른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힘찬 목소리로 "빨래줄에 청바지, 다락방에 바퀴벌레, 주방에는 파출부....."
하면서 잘도 외쳐대며 신나게 웃곤 하였다.
"여러분! 빨래줄에 청바지는 무스-은 뜻?"하고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처럼 질문하면
"빨강색의 보색은 청로-옥색!!" 이렇게 학생들도 초등학교 1학년처럼 대답하였다.
단 한번 이렇게 외치도록 하고서 출석부로 오른편쪽을 길게 가린 채 가려진 곳을 외어서 읽게 하면 거의 모든 학생들이 보이지 않는 곳을 더 크게 소리 내며 자신 있게 읽어갔다.
여기에 곡을 붙여서 노래로 부르게 하여 '보색의 노래'라고 이름을 붙였다.
<<<여기서 참고로 명도의 숫자는 색의 밝기를 나타내는 수(數)로써
흰색을 명도10으로 나타내고,
검정색은 명도 0,
그 사이의 회색을 밝은 정도에 따라 1부터 9까지 구분하여 10에 가까울수록 밝은 색이 된다.
따라서 노랑색의 순색과 명도 9의 회색의 밝기가 같다는 뜻이다.
즉 명도9의 회색과 노랑의 순색을 흑백필름으로 촬영을 하면 그 색이 같게 찍힌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
중학교 학생으로서 꼭 암기할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나는 내친김에 표준색의 색상 이름에 명도와 채도를 한꺼번에 연관하여 암기할 수 있도록 '색의 3요소 노래'를 만들었다.
이들이 어른이 되거나 대학에서 미술이나 디자인을 전공하게 될 때 필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가르쳤다.
지루하더라도 기왕 시작하였으니 그것을 써보기로 한다.
<색의 3요소 노래>를 외우는 방법은 보색의 노래와 같은 순서로 하였고 색의 연상구호는 보색의 노래에서 파생시켰다.
즉 '빨래줄에'...가 상징하는 것은 '빨강색'이고, '다락방에'가 상징하는 색은 '다홍색'으로 암기 하도록............ 먼저 암기시킨다.
물론 색의 3요소인 색상, 명도, 채도의 의미를 모두 터득하게 설명한 후에 마지막으로 실시하는 마무리 수업용으로 사용한다.
<<<참고로 설명을 덧붙인다면 색은 '무채색'과 '유채색'의 두 가지로 구분할 수가 있는데
무채색은 흰색부터 모든 회색과 검정을 말하며,
색상의 느낌이 없고 오직 밝고 어두운 정도만 있는 색을 말한다.
유채색은 무채색을 제외한 모든 색을 말한다.
즉 붉거나 노랗거나 푸르거나 어떤 색의 느낌이 있는 모든 색을 말하는데 이러한 유채색에는 색의 종류인 색상이 있고,
밝고 어두운 정도를 말하는 명도,
그리고 색의 채도(彩度)인데 다른 말로 순도(純度) 즉 순수한 정도라고도 말한다.
그 순도와 탁한 정도를 1에서 14까지로 구분하여 빨강과 노랑의 순색이 채도14로 가장 높은 채도의 색이며 그 색이 바로 순색이다.
순색에 밝기가 같은 회색을 섞으면 그 섞는 정도에 따라 점점 탁해지며 채도 1에 이르면 회색과 거의 같은 정도의 탁한 색이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많은 색을 섞으면 섞을수록 채도는 떨어진다.
<색의 삼요소 노래>
* 악보는 생략한다.
(1절)
색상명-- 명도--채도...이렇게 짝지어서 먼저 글로 쓴 다음에 암기 구호를 써 나갔다.
예를 들면
<색상명> <명도> <채도>
빨강 ---- ---4 --------14
다홍 --------6 --------10
주황 --------6 --------12
귤색 --------7 --------10
노랑 --------9 --------14
노란연두 -----7---------8
연두 --------7 --------10
풀색 --------6 --------10
녹색 --------5---------8
초록 --------5---------6
************************************이 것을 외우는 방법의 구호를 만들었다.
색의 3요소 노래
(1절)
<색상명> <명도> <채도>
빨(래줄에)----4(사,마귀가)---14(열내, 고 있네요)
다(락방에)----6(엿,단지가)---10(열,받아 넘치네)
주(방에서)----6(여,자들이)---12(시비,하고 있고요)
귤(껍질 )----7(칭,칭감아)---10(열,번을 돌리자-)
노(다지를)----9(구,멍속에)---14(열내,개를 감췄네)
노(연숙씨)----7(치,마폭에)--- 8(파,리똥을 쌌구나)
연(못속에)----7(칠,보단지)---10(열,녀에게 주어라)
풀(밭에서)----6(여,자따라)---10(열,나게 뛴단다-)
녹(두밭에)----5(오,줌싸면)----8(팔,도 강산 냄새난다)
초(가집에)----5(오,징어- )----6(엿,장수가 다먹네)..네네네네
색상, 명도, 채도 삼 요소
....................................................지루함을 피하기 위하여 2절을 만들었고 4소절씩 도돌이 되는 음정을 붙이고 마지막 두 소절은 곡의 클라이막스를 멋있게 장식하였다.
(2절)
<색상명> <명도> <채도>
청(바지를 )----5(오,늘 사서)----6(엿,바꿔먹고요)
바(퀴벌레 )----5(오,줌은 )----6(엿,보다 달고요)
파(출부의 )----4(사,촌동생 )----8(팔,푼이의 첫사랑)
감(자껍질 )----4(너,랑 나랑)----8(팔,팔 끓여 먹자)
남(대문이 )----3(세, 개면 )----12(열두,대문 달겠네)
남(보원의 )----3(세, 각씨 )----10(열,달만에 도망가고)
보(물단지 )----4(사, 왔더니)----12(시비, 가 많구나 )
붉(은 꽃잎 )----4(사, 오던날)----10(열,병 났단다. )
자(주가던 )----4(사,탕 공장)----12(열두, 번 만 가거라)
연(기나는 )----5(오,방 떡집)----10(열, 좀 식혀 주세요)...요요요요 색상, 명도, 채도 삼 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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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같은 학교생활이었다.
학생들은 나의 수업을 좋아하였고 나는 수업이 즐거웠다.
학교생활의 모든 것이 너무나 재미가 있었다.
'최 근호'선생님은 즉흥시를 짓는데 천부적 소질을 지녔었다.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그는 술좌석에 적절한 즉흥시를 지어 읊었고 그의 글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려 술맛을 돋우었다.
나는 즉흥시에 즉흥곡을 붙여 노래하기도 하였다.
'최 근호'선생님은 타고난 성대가 좋아서 노래 또한 잘 불렀다. '충청도 아줌마' '친구여' 등 유행가 뿐 아니라 한국 가곡도 잘 불렀으므로 노래를 좋아하는 최근호선생님과 나와 함께 참석하는 술좌석은 언제나 떠들썩하고 화기애애하여 새벽까지 엄청나게 마셔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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