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남원고등학교에서의 에피소드
<1> 문 명선생님과 산적
"형님! 저 장은생이어요!"
"어이! 반갑네!! 잘 있었어?"
"다름이 아니라요 제가 부탁하나 드리려고요!
이번에요 저희학교에서 훌륭한 교사 한명이 형님네 학교로 발령을 받았는데요 친하게 지내시며 잘 좀 보살펴 주시라고요!"
"오! 그래? 누군데?"
"'문 명'이라는 선생님인데요 수학과 선생님이고요! 사람이 아주 좋아요!"
"그래! 동생 부탁인디 여부가 있겄능가? 내가 일부러라도 만나서 잘 지낼 팅게 걱정 말어! 전화해 줘서 고맙네!"
"예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장은생' 선생님!
이리 남중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새마을 어머니회를 내가 맡아서 지도할 때 ......매월 첫 목요일 오후에 회의 소집을 하였었고 .......회의 시작 전에 30분간 좋은 노래를 가르쳤었다.....그 때 피아노 반주를 아주 멋있게 하여 나를 도와주었던 홍안백발의 젊은 음악교사.....‘장은생’
그는 참으로 순수하고 소박한 젊은이였다.
'문 명'선생님이라! 이름이 범상치 않구나!
1996년 3월 2일 새로 전입 해 온 교직원의 소개가 있었다.
남교사와 여교사, 합하여 9명의 교사가 떠나고 떠난 숫자만큼의 교사가 전입해 들어 온 것이다.
젊고 패기 넘치는 남여 교사들의 모습이 참으로 싱싱해 보여서 좋았다.
이들과 또 다시 정들이며 살게 되겠지.....
며칠이 흘렀다.
물론 '문명'선생님과도 친하게 되었고 다른 선생님들과도 친절하게 되었다.
양호교사인 '소문자'선생님과 나는 친목회를 맡은 정부 간사였음으로 더욱 가깝게 지내었는데
'문명'선생님이 자기의 형부(사촌 언니 '소 명숙'씨의 남편)라는 것이었다.
'소문자' 선생님의 형부라니 더욱 반가웠다.
어느 날 인가?
대화하는 가운데 불쑥 '문명'이 큰 소리로 중대한 발표나 할 것처럼 말하였다.
"잠깐 !!! 대화를 중단하고 내가 하는 말 좀 잘 들어 봐!!......."
..........
"내가 ! '일웅'이 형님에게 고백할 것이 하나 있응게 조용히 허고 들어를 봐!!!"
영문을 모른 채 나머지 네 사람은 침묵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한테 고백을 헌다고?? 얼래! 먼일이 있냐?".... "후딱 말 혀봐!!"
'문 명'은 침을 꼴깍 삼키며 뜸을 드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사실은 내가! 익산에서 떠나 올 때, 남원고등학교에 발령을 받고나니까 '장은생'이라는 아우 선생님이 나한테 하는 말이.....
그 학교에 가면, 좋은 사람이 하나 있승게 꼭 찾아뵙고 '잘 부탁헙니다'라고 하라고 허더라고!!"
"그래서.....직원 조회 때 우리를 인사 소개 헐 적에~!,
내가 앉아있는 선생들을 쭈욱 한번 훑어 봤지~~~"
............
"이 중에서 어떤 사람이 인상이 좋으며, 내가 주의해야 할 놈이 어떤 놈일까~? 생각 험성 말여!"
.........'소문자' '장경연' '김금희'선생들이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다음에 이어질 '문 명'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랬더니요?"여선생님들 셋이서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아! 그랬더니...." '문 명은 힐끗 나를 쳐다보며 입가에 터지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말을 이었다.
"ㅎㅎㅎ 아! 유리창 쪽 세 번째 앉은 놈 하나가 ㅎㅎㅎㅎ,
꼭 산적 두목같이 생겨가지고 부리부리한 눈깔로 우리를 쳐다보는디ㅎㅎㅎㅎ! '문 명'은 웃음 반 말 반을 섞어가며 간신히 말을 이끌어 갔다.
"ㅎㅎㅎㅎ 아! 저 놈이다! 소름이 오싹 끼치는 저 놈!!!, 저 놈만 조심하면 이 학교생활이 잘 풀리겠구나!!ㅎㅎㅎㅎ, 허고 생각 혔는디! ......하하하하하하!~"
여선생님 셋은 알아들었다는 양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각고~~~~! 어서 계속 히바요 형부!" 양호교사 '소 문자'가 다그쳤다. 다 알지만 그 표현을 듣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하하하하 아! 그리각고 내가 그 산적 두목한테는 눈길도 안 줄라고 생각 험성 복도를 지나 가고 있는디.....
아니! 그 산적이 나를 부르더니....나 한테 '장은생'이를 아냐고 묻는 것이잖여?"
"하하하하하하 호호호호호 ---"우리 모두는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문 명'은 나에게 다가와서 나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형님! 미안혀요!! 형님은 옥수수 맹키로 껍대기를 벗겨 봐야 속을 알지 첫눈에 형님을 좋다고 허는 사람은 없을 것잉만요!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우리들의 웃음은 '만인의 총' 잔디위의 파아란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르며 구름을 만들고 있었다.
'문 명!'....참으로 좋은 인간성을 지닌 젊은이다.
깨끗한 외모처럼 맑은 마음을 지닌 남성이요, 정의에 사는 사나이며 정이 깊은 인간이기에 그는 모든 이로 부터 사랑을 받고 신임을 받는다.
..............
'문 명'선생님은 테니스의 달인이었다.
술도 좋아하고 운동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잘 하며 사람과 사람을 잘 연결하는 정 깊은 사나이였기에 우리의 모임 또한 순조롭고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게 되어 그 모임의 이름을 '다섯손가락'이라 부르기로 하였다.
남원고등학교는 상당히 학급수가 많은 학교라서 교직원의 숫자도 많다.
따라서 직원들 가정에 애경사도 많았고 특히 직원들의 가족 중에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모든 직원들이 우루루 찾아가서 위로해주고 포카를 좋아하는 남교사들은 밤세워 포가를 즐기며 초상집을 외롭지 않게 하여 주는 좋은 전통이 살아 있었다.
'이명재' '윤기태' '박언래' '조형환' '서영복' '강석호' '노홍섭'선생님 등은 직원들 집에 초상이 났다고하면 밤을세워 상가의 미망인들을 위로해 주는 단골 맴버들이었다.
2.<기막힌 해후>
'문 명'이 전입해 온 이듬 해 여름방학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문 명'선생님의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날도 포카 멤버들이 모여 밤을 지새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상을 마친 다음 날이 발인이어서 우리는 모두 학교에서 평상시의 수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1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소문자'선생님이 내게 인터폰을 걸어 왔다.
"저기~! 오늘이 형부 장인어른 발인이잖아요~!"
"응! 그래 그런데 왜?"
"정 선생님- 수업 있으세요?"
"아니 오늘은 6, 7교시 밖에 없는데!"
"아니~~! 우리가 친목회 간사이기도 하고 또~ 남원으로 모신대요~!"
"아! 맞아! 우리 학교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이랬지??"
"그래요! 그러니까...우리 몇 사람만이라도 장지까지 따라가 주면 예의상 괜찮겠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래~~ 미쳐 생각지 못했는데 그렇게 하더라고~!"
나와 '소문자' '박언래' 윤기태' 가 마침 수업이 없었다.
문명에게 휴대폰으로 연락하여 보니 지금 춘향고개를 넘고 있단다.
우리는 서둘러 차를 타고 '문 명'선생님 장인의 종중산이라는 곳으로 떠났다.
영구차가 오기도 전에 이미 많은 사람이 장지에 모여 있었다.
묘를 파는 일꾼들 제사상을 차리는 사람들이 하관 준비를 마치고 영구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영구차가 도착하였다.
딸들이 슬피 울며 운구하는 사람들 뒤를 따르고 있었다.
우리는 의식에 참여하는 '문 명'선생님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영구차 뒤에 두 대의 버스에서 많은 조문객들이 내려 무덤 주위를 감싸고 있기에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우리는 하관하는 모습도 잘 보이지 않았다.
교회의 신자들이 기독교 예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있었기에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는 찬송가도 부르고
"우리 다시 만나 볼 동안'도 들려 왔다. 4절까지 있는 찬송은 마지막 절까지 다 부르기에 의식은 참으로 길고 지루하였다. 목사님의 설교와 기도도 어지간히 길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 참이 지난 후 의식이 거의 끝났나보다.
'문 명'선생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삶은 돼지고기 편육과 파전 떡 등이 올려 진 작은 쟁반을 들고 왔다.
우리가 가까이 가자 '문 명'이 말하였다.
"이것 내가 비밀리에 꼼쳐 온것잉게 들어요"하며 소주병 세 개와 종이컵을 신문지 포장을 벗기고 내 놓았다.
술 좋아하는 우리는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교회의 신자들이기에 다른 곳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소주 한 잔을 마시고 나서 한산해진 묘지 가까이 가보고 싶었다.
"형님! 어디가요! 술 마시다 말고!"하며 부르는 '윤 기태'의 말을 들으면서도 나의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묘지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백일몽을 꾸는 사람처럼 시야가 흐려지고 묘지까지 사람의 발에 밟혀서 난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무엇에 이끌려 이렇게 걷고 있는 것일까? 나도 알 길이 없었다. 아니 의식이 단절된 채 그저 발걸음이 저절로 묘지를 향하여 걷는 것이었다.
묘지 앞
유리로 앞을 가린 영정이 희미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많이 본 모습이다.
입을 꼭 다물었으나 인자하게 표정 짓는 모습! 누굴까?
순간 나의 양 팔과 등줄기에 전율이 일어나며 소름이 오싹 돋고 있었다.
그것은 무서움에서 오는 전율이 아니었다.
사무친 그리움이 현실에서 이루어 질 때와 같은 충격이었다.
내 심장 저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마그마가 용솟음치며 올라왔다.
눈물이 나도 모르게 볼을 타고 흘렀다. 눈물이 뜨거웠다.
영정 밑에 써진 글씨.....
"성도 소 재 순"........그렇다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고 뵙고 싶었던 나의 존경하는 교감선생님! '소 재 순'!
나의 간절한 염원은 우주를 공명시켜 ‘소 재순’ 교감선생님께서는 마지막 가시는 그 순간에 나를 부르신 것이었다.
삼오제를 지낸 후 '문 명'선생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야 영원히 미궁에 빠질 뻔한 '소 재순'교감선생님을 내가 왜 찾지 못 하였는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
‘문 명’과 나는 하가한 막걸리 집 구석진 곳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 명’ 선생이 청년시절 열심히 다니던 교회에서 학생들 주일학교 지도를 같이 하던 착한 여인(소 명숙)과 사랑에 빠졌더란다.
둘이 서로 결혼을 약속하고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들리러 가려하는데
‘소 명숙’은 미안한 듯 수줍은 듯 자기 아버지께 인사드리려는 ‘문 명’에게 차일피일 미루며 뭔가 할 말이 있는데 차마 못하는 표정이기에 ‘문 명’선생이 결심한 듯 말을 했단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님께 인사를 드릴 테니 같이 가!”
“.............”
“왜 대답이 없어?”
“실은..........”
“실은 이라니....왜??, 나를 안 만나 주신데?”
“그게 아니라....실은....”그녀는 눈물이 금방 흘러내릴 듯 슬픈 표정이 되어 있었더란다.
“아니! 왜 그러는데??? 많이 아프셔??”
“지금은 아 아프시지만....그게.....아!....아-아-흐윽--”
끝내 그녀는 울음을 터트렸고 당황한 ‘문 명’은 뭐라고 할 말을 잇지 못한 채 그녀의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단다.
...........
며칠 후
‘문 명’선생의 마음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기의 사랑을 포기할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나서 그녀가 말 한 내용은 이렇다.
‘소 재순’교감선생님께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되어 끌려간 만주 벌판의 어느 ‘한센병 집성촌’에서 주둔하고 있을 때 자기도 모르게 ‘한센 병균’이 혈액 속에 들어가 잠복하고 있다가 ‘전주영생고등학교’ 교감시절 어느 날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들려 여러 가지 조사를 해 본 결과 ‘한센 병’이 양성화 되었다는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의 인식이 아직도 ‘한센병’환자들에게 부정적인 시절이라서 그는 학교를 사직하고 아무도 모르게 ‘한센 병’ 치료 시설에 들어가 몇 년간 치료하여 완전히 낳기는 하였지만 후유증으로 손가락이 잘려 나갔고 눈썹이 빠지는 등 말할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을 감내하며 시를 쓰고 독서를 하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
‘문 명’선생은 장인어른이 될 분을 처음 만난 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장인 될 어른의 문드러진 손을 덥석 두 손으로 감싸 쥐며
“아버님! 얼마나 힘드셨어요?”
“조금도 걱정하지 마셔요....”
“훌륭한 따님을 낳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부족하지만 저를 받아 주신다면 아버님을 위하고 따님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하며 눈물을 감추지 못하자 ‘소 재순’교감선생님께서 ‘문 명’의 행동과 그의 마음에 감동하여 자기 딸과의 결혼을 승낙하고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어 오늘까지 딸 넷과 아들 하나를 낳아 잘 살고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