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장기를 두었다.
내가 져야 아내의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첫 판을 형편 없이 졌다.
두번째 판도 나의 전세가 기울어 지고 있을 때
'따르르릉 따르르릉....' 윗 주머니의 휴대폰을 꺼냈다.
예상대로 '광래'였다.
눈치 빠른 아내는 장기판을 두 손으로 쓱쓱 문지르며....."나갔다가 와!" "점심까지 잘 먹고 와!"
아내가 이렇게 속시원하게 나에게 친구들과 나가서 점심도 먹고 잘 놀다 오라는 너그러움이 생긴
그 원인은 장기에서 승리를 하고 두 번째 판도 승기를 잡았기 때문이다.
나의 작전은 완전히 성공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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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 집에 운기가 왔고, 광래와 내가 도착하였다.
운기는 오후에 손자들이 집에 온다며 커피만 한 잔 마시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나머지 셋은 길주가 자기 차로 가자고 하여 무조건 차에 탔다.
"서산, 대천 쪽으로 갈까?" 길주의 말
"멀리 가지 말고 그냥 가까운 곳에서 밥이나 먹고 오자"..나의 반응
"일단 타라!"
길주가 운전을 하고 광래와 내가 탔다.
"서해안 쪽은 말고 가까운 쪽에 가다가 좋은 곳이 나오면 거기서 밥만 먹고 온다"
길주의 봉고차는 출발을 하였다.
삼례쪽으로 무작정 달렸다. 한 참을 가는 동안 아무리 창밖을 봐도
어디 눈에 쏙 들어오는 곳이 없었다.
여산을 넘고 논산 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아무 곳에도 점심을 먹을 만 한 곳이 없다.
길주는 성질 답게 차를 빨리도 몰았다.
논산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연무대를 지나고 계속 북쪽으로 달렸다.
"이왕 여그까지 왔응게 부여나 들려 보자! 광래의 말이 나오자
"그럼 부여 낙화암이나 보러 가자! 어처피 차를 멈출만 한 곳이 없쟎냐" 길주가 말 했다.
"그러자! 지--기 가까운 데 가잔것이 젤로 먼데를 가게 됐다야" 나의 말
부여 읍내의 풍경은 옛날의 모습이 아니고 새 단장을 한 여인내 처럼
시가지가 아름답고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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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나 먹고 가자"
길주가 부여 시장통 추차장 빈 자리를 찾아 차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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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으로 들어가 어슬렁 거리며 먹을 만 한 집을 찾았다.
시장 어디 쯤인가?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는 식당 앞에서 우리도 섰다.
40년 전통 왕곰탕(010ㅡ4371ㅡ2401)집이었다. 식당 문안으로 들어 섰다.
넓은 식당 안에는 빼곡히 사람들이 앉아 있고 좌석을 잡지 못한 손님들이 줄지어 서서 차례를 대기하고 있었다.
어정쩡하게 우리 영감 세명도 줄 맨 뒤에 서서 기다렸다.
20분 정도를 기다리자 빈 좌석이 나와서 우리까지 앉을 수 있었다.
"곰탕 셋!" 내가 종업원이 옆에 왔길레 말 하였다.
곰탕, 양탕(양지 탕)은 10,000원 도가니 탕은 14,000 원 이었다.
반찬이 먼저 나왔다. 맛깔 스런 깻잎, 깍두기 청양고추, 김치....등등이 역시 그 품위가 달랐다.
사람이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
한참 만에 종업원이 왔다.
"곰탕이 다 떨어졌는데요"
"그럼 양탕으로 하죠"
한 참 만에 종업원이 또 왔다.
"양탕도 재료가 다 소진되었답니다."
"그럼 뭘 먹어야지?"
"도가니 탕 밖에 안되는 데요".....곰탕 양탕은 10,000원짜리고, 도가니 탕은 14,000원이었다.
"그럼 도가니 탕으로 주세요"내가 주문을 마쳤다.
10여분 지나자 '도가니 탕'이 나왔다.
도가니가 맛있고 알맞게 삶아지고 곰탕 국물의 맛도 시원하고 좋았다.
'명불허전'...역시 유명한 곳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나는 도가니 고기를 씹기가 싫어서 몇 도막 씹어먹고
건져 놓은 도가니를 길주와 광래에게 나누어 주었다.
식사를 마친 나는
일어나서 계산대에 갔다. 50,000원 짜리를 내 주자 8,000원을 거슬러 주었다.
카운터 앞 칠판에 분필로 "재료가 모두 소진 되었습니다."라고 씌여 있었다.
역시 맛집은 다르다.ㅡ 전주의 '김판쇠 우족탕' '조점례 순대국' '베테랑 칼국수' 모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집이다.
맛있게 먹었고 배도 든든하니 날씨가 완전히 봄날씨로 느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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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래가 휴대폰으로 네비게이션을 보면서 길을 안내 하였다.
낙화암 가까운 곳에 넓은 주차장이 여기 저기 있었고 수 많은 차들이 이미 주차장에 박혀 있었다.
오늘이 토요일이고 날씨도 따뜻하니 나들이 하는 사람도 많았다.
길주도 한 쪽 빈 곳에 차를 넣었다.
낙화암까지 1,500m 정도를 걸어서 올라 가야 했다.
길은 넓고 계단이 아닌 폭 6m 경사로가 화강암으로 미끄럽지 않게 만든 길다란 기둥석이 로마의 길처럼 평평하게 잘 깔려 있었다.
천천이 쉬엄쉬엄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걸었다.
길주 광래가 걸음이 빨라서 나에게 보조를 맞추라고 당부하였다.
의자왕이 당나라 병사에게 잡혀가자 의자왕을 따르고 시중을 들던 궁녀들이 부소산으로 내 몰리다가 마지막 장소가 낭떨어지 낙화암 바위 절벽 위였다.
당나라 군사들에게 궁녀의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임금님에게 충성심을 보내며 꽃잎이 떨어지듯 치마를 둘러쓰고 금강물에 몸을 던졌을 때 그 모습이 마치 꽃들이 떨어지는 광경 같았다고 낙화암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곳.
의자왕은 술과 여색을 좋아하여 국정을 망쳤다는 설은 잘 못 된 것이란다.
의자왕이란 이름은 의자왕의 사후에
사가들이 왕의 공적을 봐서 짓는 칭호가 의로울 '義' 자비로울 '慈' 임금 '王'이 아니던가?
그는 호방하고 용기있는 군주로서 신라를 침공하여 낙동강 근처까지 국토를 넓히지 않았던가.
나당 연합군에게 패하여 당나라에 끌려가며 나라가 망하기는 하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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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자 상원이가 퇴원하여 자기 집으로 돌아 왔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아내가 기쁜 마움으로 소식을 전해 주었다.
상원아! 잘 견디고 잘 낳아서
마음껒 피아노를 치고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며 한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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