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찻집
등대찻집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일기처럼 쓸 이야기가 있는 날

나는 '울보'다!!! 두 분 수녀님의 송별 연회

정일웅 찻집 2023. 2. 12. 21:26

나는 '울보'다

바보 같이 눈물을 잘 흘린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만 혼자서 잘 운다.

눈물이 한 번 흐르가 사작하면 주체 할 수가 없이 마구 눈물이 흐른다.

처음 느닷없이 눈물이 흘러 아무리 참으려 해도 계속하여 눈물이 나서 당황해 하던 때가 있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시절에 '전주여고' 학생들의 학예 발표를 한다고 하여

동네 친구들.....이 대희, 오 건일, 조 선정, 등과 함께  구경을 하러 저녁에 전주여고 강당에 들어가서 

학부모님들 틈에 끼어 학생들의 발표를 구경 할 때였다.

'선정'이 누나가 전여고 2학년이었고 합창부였었다.

처음 순서가 '전여고' 합창부의 합창이었다.

단정하게 교복을 입은 예쁜 여학생들 50명 정도가 사뿐사뿐 걸어서 무대위에 다섯 줄로 정열을 한 후

지휘자 학생이 맨 마지막으로 대열의 중앙 전면에 나와서 인사를 하자

박수 소리가 강당을 진동하였다.

지휘자 학생이 뒤로 돌아서 지휘 봉을 든 오를 손으로 피아노에 앉은 학생에게 '사인'을 보냈다.

'장산곶 타령'이라는 노래의 전주곡이 조용히 들리고 이윽고 지휘 학생의 가벼운 손 놀림에

천사들의 노래 같은 꿈속에서 들음직한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 나왔다.

'장산곶 마루ㅡ에ㅡㅡㅡ' 

'북소리 나 더ㅡ니ㅡㅡㅡ'

아! 상상 할 수가 없었던 천상의 목소리 그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가볍게 흔들리는 학생들의 몸 동작.....

갑자기 나의 몸에 소름이 싸악 돋더니 눈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마구 흘러 나와서 학생들이 보이질 않았다.

노래가 계속되는 동안 줄줄줄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손등으로 문지르고 또 문질러도 흐르는 눈물은 노개가 다 끝날 때까지 그칠 줄을 몰랐다.

내 가슴은 야릇한 감동으로 뜨거워졌고 노래가 끝나고 학생들이 퇴장 한 뒤에야 겨우 눈물이 멈췄다.

내가 우는 모습을 내 친구들이 의아해 쳐다보면서  

"너 왜 우냐?" 하고 물었지만 나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울보'라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고 그 후로 나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이 내게 전해지면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다.

내가 나의 이야기인 '풍란 처럼 살아온 나의 이야기'를 쓸 때에

'깨구락지 합창단'이야기와 '남숙이의 죽음'이야기를 쓸 때에도 내가 나의 글을 쓰면서도

스스로 감동되어 눈물이 흘러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인도 영화 '당갈'을 보면서도.......

촌구석의 가난한 집의 가장인 주인공 아버지가 학창시절 배운 레슬링을 딸에게 가르쳐

대 도시의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할 때에.... 

'쿼바디스'     '십계'  등 영화를 보면서도 감동적 장면 만 나오면 눈물이 흐르던 것을 어찌 할 수가 없다.

 

오늘 아내가 좋은 영화를 골랐다며 같이 보자고 하여 본 '헐리우드' 영화 '후지어'를 보았다.

 

농구 코치로서 말썽 많았던 과거를 가진 나이 많은 농구 코치인 '노만 대일'.....그의 숨은 실력을 알아주고

감독으로 초빙해 온 사람은 '노만'의 동창이자 친구인  그 시골 고등학교의 교장이었다.

교장은  '노만'이 나이는 늙었어도 자존심이 강하고 훌륭한 '코치'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나이가 들었다고 시골 주민들이 그를 무시하고 학생들도 처음엔 그에게 반항하기도 하였지만

'노만 대일'은 자기 특유의 훈련법으로 학생들을 감동시키게 되고

시골 마을의 농구시합에서 우승팀이 되어

애리조나 주 전체 고교생 농구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이 큰 시합에서도  

'노만대일'의 고집 센 코치로서의 창의적 선수 기용과 작전 지시가  효과를 나타내어

 주 최고의 농구팀과 겨루어 마지막 한 점 차이로 우승을 하게 되는데

그 순간에도

나는 어김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숲정이 성당에서 근무하시다가 

'박마리아' 수녀님은 아직 종신 허원을 3년 앞둔 새내기 수녀님인데

대구의 대구 '싸르트르 바오로 회 수녀원'의 마리아 관 신학원으로 공부하러 가시고

 

'숲정이 어린이 집'의  '이 루시아' 수녀님은

대구의 '성바오로 유치원'으로  전근 되어 가시는 송별회가 있었다.

 

아직 소녀같은 어린 모습의 예쁜 박 마리아 수녀님을 생각하면......

금방 눈물이 쏟아 질 것만 같다.

예쁜 모습에 훌륭한 남자를 만나서 세상의 즐거움을 한 없이 즐기며 살 법도 하지만

평생을 홀로 늙어 가야 할 외롭고 힘든 수녀의 길을 택한 것을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그지없다.

송별회 때 수녀님의 모습을 보면서

돌아가신 나의 고모 수녀님 생각이 났다.

나의 고모님 '정 젤멘 수녀'.....16세에 목포 산정동 성당에서 수녀원으로 입회하여 가시고

수녀원에서 간호학교를 졸업시켜 평생을 병원의 간호 수녀로 사시다가 가신 고모님의 

마지막 모습이 떠 올라 나의 가슴을 찡~~하고 울렸다.

 

떠나시는 두 분 수녀님에게

작은 봉투를 만들어 아무도 모르게 그들의 손에 꼭 쥐어 드리며

'가시면서 차 한 잔이라도 사 드세요'하고 속삭여 드렸다.

수녀님들은 부끄러워 하시면서도 고마움의 미소를 내게 보내 주셨다.

 

돌아오는 길에 발걸음이 가벼웠던 것은

수녀님에게 찻 값이라도 드린게 잘 했다는 스스로의 위안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