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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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처럼 쓸 이야기가 있는 날

一場春夢...새벽 1시 10분에 깨어서

정일웅 찻집 2023. 4. 11. 01:43

몇 달 동안 꿈을 꾸어 본 적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취침중에 꿈을 꾸지만 모두 잊어버린다고 하는 말을 어디서 읽은 적이 있다만

아무튼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꿈을 꿔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눕자마자 잠이 들었고 바로 꿈을 꾸기 시작한 것 같았다.

길고도 선명한 꿈이었다.

꿈을 꾸면서도 이건 꿈이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기도 한데

방금 꾼 꿈은 완전히 생생한 나의 생활이었고 

나의 젊었을 적 생활 그 자체였다.

 

나는 이리 남중학교의 주.야간을 모두 근무하고 있는 교사였다.

주,야간 수업시간은 합쳐서 주당 54시간

야간 1,2,3학년 9학급을  내가 미술과를  각각 3개 반....9개 학급....

음악 9시간 미술 9시간 합하여 18시간(야간은 음악 미술이 주 1시간씩이었다.)

주간에서는 전체 학년 18학급을 미술을 최인덕(조소과) 선생과 내가 나누어 맡았고

1학년 음악(박진문 선생님이 몸이 약하다고 하여 나에게 떠넘긴 음악시간)까지 합하여 36시간을 하였으니 

지금 같은 학교의 교사들은 주당 54시간 수업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업의 양이었다.

그래도 나는 수업하는 것을 좋아하였기에 기쁘게 맡아서 하기로 하였다.

 

다행인 것은 야간의 수업시간은 시간당 얼마씩의 수당이 나와서 그게 나의 술 값에 큰 보탬이 되었다.

 

대부분 귀금속 가공 단지에 다니는 성인 남, 여 학생이거나

다른 직장에 다니는 나이 든 청 소년들이 대 부분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어렸을 적 학업을 하지 못하여 배움에 한이 된 어른들도 있었다.

 

주간 수업이 끝나고 야간 수업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운동장 뒷편 화간 가에서 기능직 곽주사 아저씨가 흙일을 하던 뒤에 남겨놓은  ......황토 흙 한 수대를 내 책상에 가져다 놓고

소조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어느 잡지에 나오는 여인의 좌상 사진이 찢어져서 나의 책상에 놓여있고

헌 베니어 판같은 4각형 판때기 위에 그림의 그 여인을 보면서 소조 작품을 만들었다.

 

그 소조 작품은 내가 임실 초등학교에 근무하던 6학년 3반 교실에서

만들었던 여인 좌상과 똑 같은 크기의 작품을 손으로 빚어 만들고 있었다.

 

작품은 내 뜻대로 잘 만들어 지고 있었다.

 

청소시간이 끝나고 선생님들은 퇴근을 하지 않은채

교무실에 그득하게 남녀 교사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고

나의 작품옆을 지나며 황토흙으로 만든 소녀 좌상을 들여다 보며 

신기한 듯 관심이 깊은 듯 지나가다 쳐다보며 부러워하기도하고 칭찬을 하기도 하며

많은 관심을 가지고 내 곁에 모여들었다.

 

학교에는 국화 화분이 수도 없이 많이 있었다.

그 국화 화분은 유리창 가에 밖으로 길게 화분대를 설치 해 놓은 곳에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이웃 학교에 잠깐 다녀 왔는데 고등학교 남학생 한 명이 나에게 와서

우리 학교의 화분을 하나 얻어다가 아버지에게 드리고 싶다며  나를 따라왔다.

 

나는 그 학생을 데리고 학교에 와서 농업과 선생님에게 학생의 기특한 마음을 설명하고 

화분 하나를 그 학생에게 주겠다는 답을 들었다.

 

여선생님들이 우루루 나의 주위에 모여들고.....그 중에 음악교사라는 어떤 여자선생이 있었고 그는 성당에서

반주를 하며 성가를 가르친다고 하였다.

내가 음악에 관심을 보이자 그 여선생님과 다른 여인들이 모두 나를 따라다니며.......

나의 소조 작품에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는데 그 여선생들도 경이로운 눈빛으로 

나의 작품을 보면서 놀라워하고 있었다.....

한 편 

 그러는 동안에  농업선생은 잘 자란 화분 중 적당히 작은 것 하나를 잘 포장하여 준비하여 두었다.

내가 그 학생에게 그 화분을 주면서 아버지께 잘 가져다 드려라 하고 말하니

그 학생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화분을 들고 떠나갔다.

 

음악교사는 나의 곁에서 얘기를 즐겁게 하였다. 

내가 과거에 성가를 지휘했었다는 말을 하고 성가에 관심을 보였더니 그녀는 내 곁에 딱 붙어다니며

자기가 지휘하는 성가대 얘기를 하였다.

그 여선생은 전희주(장수 계남중학교) 선생님과 얼굴이 같았다.

나는 영웅처럼 많은 여자 교사들을 만나고 큰 소리로 얘기를 하여 주었고

마치 많은 여인을 거느리고 인기를 누리는

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어느 틈에 소조에 관심있는 남자 쌤들도 많이 나의 곁에 모이고...

누군가가 나의 소조 작품을 비닐 포장지로 잘 싸서 마르지 않고 누가 손대지 않도록.

임시 포장을 하여 두었다.

 

나는 성당에서 성가대에는 올라가지 않고 밑에서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맑고 바른 음정으로 노래를 가르치고  같이 불러서 성당 분위기가

2층에서  부르는 본 성가대와 내가 가르친 제 2의 성가대는 1층 신자석 뒤쪽에서

성가를 하여서 성당의 전 신자가 성가대 인양 분위기를 만들었다.

 

모든 젊은 여샘들은 나에게 호감을 보이며 나를 따라다니고.....

 

나는 금새 선생님들의 영웅이 되어 마치 예수님처럼 제자들과 군중을 몰고 다니고 있었다. 

 

이리 남중의 점심시간에 전직원과 어머니 회원들이 노래 부르기를 할 때

반주를 하던 음악교사 장은생 선생과 학교 자모회 어머니들이

나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따르던 그 시절 그대로 였다.

 

 꿈이 너무 생생하여서 그리고 행복한 꿈이었고 건강한 나의모습이 나를행복하게 하여서

일어나 이렇게 꿈 얘기를 잊지 않으려 대충 여기까지 적고 자려 한다.

새벽,  아니 밤중 2시를 시계바늘이 가르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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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잠자리에 들었는데 바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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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꿈은 개 꿈이라 했던가?

하루 종일 나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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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김치를 담근다고 도와 달랜다.

나는 평소 하던 대로 아내 곁에서 조수 노릇을 잘 하였다.

김치가 맛있게 만들어 졌다.

오늘 저녁 식사는 새 배추김치에다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