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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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주 퇴원........................................유치원 동창 김경조 ...요셉회 가입

정일웅 찻집 2026. 2. 2. 19:44

오늘이 전북대학병원에서 신장암 수술을 하고

입원한 지 일주일이 되는 날 퇴원을 했다.

길주는 이제 아무 걱정 없이 생의 마지막 날까지 살아갈 것이다.

건강한 몸을 주님께 받아서 평생토록 병원에 간 것은

찰떡을 먹으면서 식도를 넘기다 식도 입구에 걸려

기도가 눌리는 바람에 호흡 곤란을 겪어

119를 부르고 병원에 실려 가서 식도에 걸린 찰떡을 빼어 내고

호흡을 하게 된 터무니 없는 사건이 있었고

 

이 번에 뜻밖에 하체의 마비 증상으로 병원에 갔으나 

마비 증상은 금새 풀리고

CT 촬영을 한 결과 엉뚱하게 신장암 3기에 걸려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우측 신장 하나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어제 퇴원을 한 것이었다.

 

운기, 광래와 내가 늘 만나는 자리

길주 집의 공공수퍼 가게 방에서 

언제나 처럼 커피를 마시고 너스레를 떨다가

집으로 돌아 왔다.

수술을 한 자리....복강경을 집어 넣은 여섯 곳의 작은 상처는 곧 아물 것이고

신장 한 개로 나머지 생을 잘 살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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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조가 나의 성심유치원 동창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초등학교 동창생 인 것은 학교에 다닐 적에도 알았지만

유치원 동창이었다는 것은 내가 전통고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할 적에

'성심유치원 60년'이라는 제목의  기념 책을 발간 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그 책을 만들려고 유치원에서 졸업생들을 조사하던 중에

3회 졸업생인 '정 일웅'......내가 '한국전통문화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 책 발간 위원이

전통문화고 교장실에 찾아와서 나를 인터뷰를 하고서

졸업생으로서 책 발간에 즈음하여 '짧은 글' 한 마디를 글로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서

까마득한 기억을 더듬어 다음과 같은 글을 써서 주었더니

그 글이 실린 책과 내용이  바로 아래와 같다.

 

"성심 유치원 60년",,,,1948~2007   

전주구천주교회유지재단

성   심   유   치   원 

 

 

성심유치원 60주년을 맞아 그 시절을 그리며

                                               제 3회 졸업생

                                 한국전통문화고등학교 교장 정일웅(안드레아)

유치원 교육의 중요성은 실로 막중하다.

유치원 교육은 지식의 교육이 아니라 한 인간의 평생을 좌우할 잠재의식을 형성하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구분, 기본 생활습관,기본예절, 질서의식, 미의식, 신뢰감 형성 등은 어린 시절에 형성되어 생의 종말을 맞을 때까지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행동을 제어하고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본인이 성심유치원에 다니던 1950년, 열악한 환경에서도 우리 원생들을 가장 많이 감동시킨 것은 김혜정 (알릭스)수녀님의 얘기시간이었다.

교실 한쪽 구석에 우리를 앉혀놓고 들려주시던 이야기에 우리 어린이들은 울고 웃고 놀라서 소리지르곤 하였다.

수녀님은 우리에게 절대자였고 말씀은 바로 진리였다.

<중 략>......

수녀님은 우리 모두에게 각각 나를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있어서

언제나 나를 따라다니면서 나를 인도하고 지켜준다는 것이었고

우리들은 밤길을 걸을 때에도 수호천사가 있어서 무섭지 않았고

거짓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한 마음은 성인이 된 후에도 각인이 되어 언제나 남아있고

평생을 그렇게 느끼고 살아가게 되었다..는...이런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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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 속에 우리의 졸업사진과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거기에 '김누수'가 있었다.

'김누수'가 '김경조'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친구들 중에서는 나 외에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어렸을 적 경조의 아버지가 살아계실적에   

'누수야'하고 경조를 부르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경조에게 직접 전화해서 알았다.

오늘에야 알았는데 

그 때에 '루도비코'를 '누수'라고 불렀었다고 한다.

오늘에야 '누수'의 수수께끼가 풀렸다.

유치원에서는 경조의 이름이 아니고 '누수'가 이름이었었다.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이 이름을 '누수'라고 했으니....내가 알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