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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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처럼 쓴 이야기

유치원 동창 친구

정일웅 찻집 2007. 12. 13. 11:53
 

유치원 동창 친구


요한회가 있던 지난 주일날 밤도 우리는 만나서 그곳으로 갔다.

좁디좁고 음침한 덕진 연못가의 카페 ‘하늘못’에서 영철이 피아노반주에 맞춰 나는 파바로티 흉내를 내며 ‘오 솔레미오’와 ‘토르나 쏘렌토’ 변훈의 ‘명태’를 목이 터져라 부르고 요셉 단장은 ‘마이 웨이’ ‘백치 아다다’를 간드러지게 불렀고 ‘문정남’이는 ‘제비’를 불러서 골방에 술 마시던 젊은 남녀들과 우리 옆 탁자의 손님이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쳐 주었다. 

박수소리에 신이 난 영철이는 추억속의 명화 ‘닥터 지바고’의 주제곡을 연주하고 이어서 구루미 선데이에서부터 처음 보는 술친구들이 신청하는 곡들을 모두 다 연주하여 여기저기서 맥주를 서너 병 씩 선물로 주는 바람에 거나하게 취하여 기분이 좋았다.

영철이 녀석은 악보도 없이 부르는 사람의 음역에 맞춰 마음대로 조를 옮겨가며 연주를 하는 천재 피아니스트이다. 클래식이건 째즈이건 모르는 곡이 없다.


영철이란 녀석.....그녀석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4년 전, 내가 솔내 성당으로 교적을 옮기고

신부님 영명 축일 날 점심 회식자리에서였다.

내 옆에 앉아 있던 김만 단장님이 나를 넌지시 건드리며 말을 걸어왔다.

“아이! 안드레아님!”

“저기 저쪽 구석지에 앉아있는 저 분이 보통사람이 아닝만요!..... 음악으로는 끝내주는 사람이라우.....젊었을때 한때는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요”

꾀죄죄하고 비쩍 마른 늙은이가 머리가 허옇게 되어가지고 앉아서 조용히 소주를 마시는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말에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소주병과 빈 잔을 들고 그의 곁으로 찾아갔다.

“인사나 헙시다!” “나는 이 본당에 새로 온 정일웅 안드레안디요 한 잔 받고 야그 헙시다!”

“아! 그리요? 저는 이영철 요셉잉만요” 그는 후다닥 무릎을 꿇으며 내 술잔을 받았다.

“저도 사실은 여그 본당이 아니고 전동 성당 다녔는디 어찌다 봉게 처갓집이 전당리라서 이 성당을 댕깅만요!”

“아니! 전동 성당이요? 나도 전동 출신인디요!” 전동성당이라는 말에 나의 귀가 번쩍 틔었다.

그도 나의 말에 화들짝 반기며 말을 이었다.

“나는 토백이라서 성심유치원부터 국민핵교 북중 전고 댕길때까지 계속 전동인디 그러면 우리 알만도 헌디요!”

“성심유치원요? 내가 거기 3회 졸업생인디요잉!”

“아! 나도 3횐디요......그러먼 우리가 동창인가요?”

이런 기막힌 해후가 있는가?

“아니 야임새꺄! 니가 정말로 성심 3회란 말여?” 나는 다짜고짜 말을 내리깔고 큰 소리로 외쳐댔다.

“여기들 보쇼 요새끼가 나허고 성심유치원 동창이라네요! ”

주위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우리의 해후를 축하해 주었고 우리는 교리반 이야기부터 끄집어냈다.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동안 서서이 떠오르는 녀석의 그 어렸을적 모습이 현상액 속에 담겨진 인화지에 영상이 떠오르듯 하나씩 떠오르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56년... 긴 세월로 단절되어 빛바랜 사진처럼 희미해진 기억의 단편들이 하나씩 떠 오른다..

나는 찰찰이나 때리고 있는데 그 녀석은 실로폰을 멋있게 쳐가며 으스댔지...

아릭스 수녀님이 칭찬하시면 수줍게 웃던 녀석

요리강령이란 책을 들고 예수님이야기를 실감나게 들려주시던 수녀님의 추억


초등학교 다니며 교리반을 다닐 때에도 녀석은 오르간을 연주하여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했었다.

그 녀석 집에 놀러 가서 커다란 피아노와 마루 한쪽에 있는 올갠을 보고 깜짝 놀래서 기가 팍 죽었던 나의 모습도 떠올랐다. 


요한회의 회식자리의 만남이 있은 후로 우린 서로 자주 만나게 되었고 만날 때마다 서로 생일이 빠르다고 주장하며 형님 대우를 받으려 하기도 하였다.


가끔씩 낡은 앨범 속에 유치원 3회 졸업장 겸 졸업사진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영철이 녀석이 누군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성심유치원 60년’ 기념 책을 만들 때 원장수녀님의 부탁을 받고  원고를 써 드린 대가로 책이 한권 배달되었다.

나는 책 속에서 제일 먼저 이영철을 찾기 시작했다.

‘아니! 이럴 수가!’ 이영철이는 3회 졸업생 이름에 없지 않은가?

4회 졸업생 1번이 이영철이었다.

‘올커니 이놈! 너는 이제 죽었다! 어디서 선배님한테 까불어!’

나는 녀석이 만나자고 할 때를 기다렸다가 시치미를 딱 떼고 두꺼운 책을 들고 ‘하늘못’으로 갔다.

좌중에 술이 몇 순배 돌고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내가 벌떡 일어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네이놈 이영철이 내 후배놈아!”

모두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해 있을 때 책을 펴고 4회 졸업생 명단을 펼쳐보였다.

친구들이 모두 웃으며 영철이의 표정을 살폈다.

“아! 맞어! 나는 그때 아부지가 좀 잘 살고 주교님 조카라고 혀서 빽이 좀 있어서 유치원을 3년이나 댕겼어 임마! 그리각고 내가 6.25끝나고 이듬해 졸업혔지...그러면 나는 임마 2회부터 모두 내 동창이나 마찬가지여!”

우린 또 한번 웃을 수 있었다.

예순 넷을 넘기는 나이에도 유치원 선후배를 따지는 우리가 젊은 건지 철이 아직도 덜 든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유치원 친구만큼 이무런(거리낌 없는) 친구는 없다.

 

나는 성심유치원을 다녔다는 것이 늙었어도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