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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처럼 쓴 이야기

유치원 수녀님이 가르쳐준 기도

정일웅 찻집 2007. 12. 13. 11:51

 

 

          유치원 수녀님이 가르쳐준 기도

                                                                    정일웅(안드레아)


  2006년 10월 성심 유치원 60주년 행사에 초대를 받았다. 1950년에 졸업을 하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되어 전동 성당에 들어서니 아름드리 은행나무와 잘 꾸며진 유치원에  감회가 새로웠다.   

  전동 성당 골목에 살던 나는 당시 성모병원에 수녀님으로 계시는 젤마나 고모님의 권유로  1949년에 성심 유치원에 들어가 1950년 5월에 졸업하고 바로 6.25 전쟁을 맞았다. 아마도 나라가 흉융하니까 졸업을 일찍 시킨 것이 아니었나 싶다.

 유치원 건물은 1층 건물이었다. 그리고 월사금은 보리쌀로는 신발주머니에 두 배 정도였고, 쌀로는 신발주머니의 반절 정도 담아서 냈던 기억이 난다. 놀이 시간에는 성당 마당에 남학생, 여학생 둥그런 원으로 서서 한쪽은 시계바늘 방향으로 다른 한쪽은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만나는 짝에게 멋지게 서양식 인사를 하며 춤을 추기도 했다.

  그리고 모두 무서워하면서도 좋았던 아릭스 수녀님!

  요리강령이란 책을 들고 예수님 이야기를 실감나게 들려주시던 수녀님은 우리의 절대자였다. 

  “너희들의 등 뒤엔 항상 수호천신이 따라다니며 착한 일을 하는 것도 나쁜 일을 하는 것도 다 보고 계신단다.”

 “성당에 갈 때는 금 잣대로 한 발 한 발 모두 세어서 천당에 모두 기록하신단다.”

  얼마나 뇌리에 사무치게 강조하셨으면 나이 육십이 넘도록 수호천사의 존재를 느끼게 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그리고 트라이앵글, 탬버린, 아코디언, 실로폰. 캐스터네츠 등으로 구성된 꼬마 합주단이 있었다. 당시 주교님 조카였던 이영철(요셉)이라는 친구는 4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 아코디온과  실로폰을 잘 연주하여 수녀님의 칭찬을 받곤 했다. 그래서 더욱더 피아노를 열심히 쳤다고 했다. 그때 당시 나는 영철이를 몹시 부러워하며 탬버린을 흔들던 기억이 아스라이 난다.

  그후 영철이는 중고등학교에서 밴드부를 하며 관악기를 불기도하고 전국에서 유명한 악단을 이끄는 밴드마스터가 되어 전국을 누비고 다니면서도 하느님 곁을 떠나지 않음은 수호천사의 기억 때문 일 것이라고 말하였다.

  나 또한 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려운 가정환경에 돈을 벌겠다고 가출하여 서울에서 지내던 시절과, 고학하며 야간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주위의 유혹에 휩싸이지 않은 것은 유치원시절 신앙교육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번에 전통문화고등학교 교장으로 퇴임을 하면서 더욱더 그 수녀님 생각이 났다.   

  이처럼 아릭스 수녀님은 우리의 잠재의식에 신앙을 심어주신 참 교육자이셨다. 그래서인지 유장훈 몬시뇰님은 1년 선배이고 후배들 중에도 이태주 신부님, 강덕행 신부님, 범선배 신부님 등 사제가 많이 배출되었다.

“천주님은 착한 사람의 기도를 가장 잘 들어 주신다.”는 알릭스 수녀님의 가르침은 하얀 도화지 같은 내 마음에 처음으로 써진 글귀였기에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유치원시절에 수녀님께 배운 기도는 평생 나를 하느님께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었고 내 마음에 평화를 주고 시련을 이기는 힘이 되었다.

  나는 성심유치원을 다녔다는 것이 지금도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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