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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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처럼 쓴 이야기

간병사 및 가정주부 체험기

정일웅 찻집 2009. 7. 14. 23:11

 

 

'최태선'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고 전화라도 해 줘야겠다.

 

아내의 수술을 마치고 며칠 후에

퇴원후에도 척추 수술 환자에겐 병원용 침대가 필요하다는걸 다른 환자의 경험담을 듣고 알게 되었다.

신일 아파트에 이사 올 때 집에서 쓰던 침대를 버리고 맨 바닥에서 생활한 지가 몇 년이 되었기에

집에는 침대가 없다.

침대를 어디서 사야 하는가?

그 때 떠오른 친구가 '의료기 상사'를 운영했던 최태선이었다.

그는 '병원에서 쓰는 환자용 침대를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한 부탁을 받고

'알아 보고 전화해 줄게요 형님!'하며 시원하게 대답을 하더니

삼일 후에 갑자기 전화가 왔다.

"형님! 1507호 맞죠? 방 문을 어떻게 열어요?"

"왜? 무슨일이 있는가?"

"침대를 하나 빌렸는데 형님집에 싣고 왔으니까 들여 놓고 가려구요!"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다니

이것 또한 하느님의 뜻이로구나!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는 순간 하느님에게 감사를 드렸다.

 

퇴원을 하여 집에 온 나는 최태선이 빌려다 놓은 침대를 깨끗이 닦고 매트 위에 요를 깔아서 거실의 벽면에 붙여 놓고 거실 소파를 침대 좌우에 배치하였다.

침대의 상태도 매우 양호하였다.

환자는 누어서 TV를 볼 수 있고 나는 침대 아래 바닥에서 잘 수 있게 해 놓고 아내를 침대에 뉘였다.

가히 종합병원의 특등실을 능가하고도 남는 입원실이 되었다.

 

아내는 내장에 병이 든게 아니라서 음식을 잘 먹고 소화도 잘 시켰다.

잘 먹어야 원기를 빨리 회복하고 상처도 빨리 낳으리라 생각된다.

퇴원후 첫 날 저녁 식사는 보신탕을 먹이고 싶어 '가마골'탕집에 들렸다.

보신 전골 2인 분을 포장시켜 놓고 밖에서 기다리는데

"어! 지휘자님! 여기 오셨네요....사모님은 좀 어떠셔요?" 

뜻밖의 본당 주임신부님이었다.

"오늘 퇴원하여 지금 집으로 왔습니다. 수술환자에게 보신탕이 좋다고 하여서 사러 왔구만요"

보좌신부님은 얼굴에 애틋한 표정을 담고 나를 보고만 계셨다.

 

아! 신부님도 알고 계셨구나!

본당 신부님과 보좌신부님 학사님 학사님친구 2명의 신학생이 같이 계셨다.

이들의 기도가 나의 아내를 더욱 빨리 좋아지게 하셨구나! 생각하니 고맙다.

 

보신전골 2인 분을 얼마나 많이 주었는지 5인 분은 됨직하였다.

 ............................

 

빨래가 방마다 그득히 쌓여 있었다.

세탁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아내에게 물어 세제를 넣고 적당량의 빨레감을 넣고 스위치를 눌렀다.

 

 

십여일을 비어 놓은 방엔 먼지가 그득하고 청소할게 너무나 많았다.

진공청소기를 끌고 다니며 이곳저곳 다 빨아들였는데 바닥을 자세히 보면 작은 머리카락과 티끌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포장용 청테이프를 거꾸로 말아서 머리카락을 붙여 내었다.

돌아앉으면 또 머리카락이 있다.

방금까지 전부 찍어 내었는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머리카락은 수도 없이 많이 굴러 다닌다.

 

책상밑, 장농 속, 서랍장 위, 여기저기에 빨래감들이 다시 쏟아셔 나온다.

세탁기를 이틀 동안에 다섯번을 돌렸다.

거의 모든 빨래감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양말, 하루 두번씩은 갈아입는 런닝셔츠, 한번쓰고 던져놓은 타올, 목에 때낀 와이셔츠,..............

 

청소와  빨래는 하루에도 몇번씩 해야 했다.

 

한 끼 식사를 무사히 해결하면 다음 끼니의 반찬을 뭘로 어떻게 만들까?

어렵기도 하고 재미가 나기도 하였다.

하지만 별 걱정이 되지 않는다.

나는 선천적으로 요리의 맛 감각이 있나보다.

된장 찌개를 끓이고

미역국도 끓여보고

초간장도 만들고

남은 밥으로 누룽지도 만들고

남원에서 자취하던 경험을 살려

이것 저것 정성을 다하여 음식을 만들었고 내가 만들기 힘든 밑반찬 같은 것은

'굿모님 마트 '앞  성당 아주머니에게서 샀다.

 

아내는 끼니마다 맛있다고 감탄하며 고맙고 미안하다고 한다.

아내에게 평생동안  진 빚을 갚는 기분이다.

 

색소폰 학원도 중단하고

중국어 연수도 중단하고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끊고

술도 마시지 않으며

오직 아내의 병간호와 성가대에만 열중하기로 마음먹으니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하다.

 

마늘을 물에 불려 까느라고 손이 부옇게 뜰 정도로 부풀어 있었어도 행복하였다.

 

설거지 또한 만만치 않은 노동이다.

한끼 식사를 하고 나면 어찌 그렇게도 많은 그릇들이 나오는지 기름기 묻은 플라이펜과 그릇을 수세미에 주방세제를 묻혀 닦고 흐르는 맹물로 씻어 뽀도독 소리가 날때까지 씻었다.

다 씻은 그릇을 타올로 닦아 물기를 없에고 그릇장에 포개어 진열하는 일은 하루 종일 계속되었다.

 

'세상의 남편들이여 아내의 소중함을 알아줄지어다!'

나는 혼자서 독백처럼 아내의 소중함을 외쳐 보았다.

 

침대에 누운 아내가 속옷을 갈아입혀 달라고 하였다.

아내의 옷장을 열어보고 나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업었다.

아! 이럴 수가...........

어느 것 하나 변변한 속옷이 없었다.

늘어지고 후지레한 그야말로 거의 넝마와 같은 속옷...그것도 몇개 되지 않았다.

아내의 양말도 몇켤레 되지 않은게 거의가 길가의 노점에서 싸구려로 사온 것들 뿐이었다.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고 눈물이 핑 돌았다.

아! 나의 아내는.....

나와 같이 코아백화점에 들려서 와이셔츠와 넥타이 코너에서 새로운 디자인의 화사한 제품이 나오면

주저없이 사서 들고오곤 하였다.

곰곰 돌이켜보니 정말 아내가 자기 옷을 백화점에서 사는 것을 본 기억이 없었다.

아예 여성 복장을 파는 3. 4층은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지도 않고 그냥 지나쳐 6층 남성 복장코너로 가는게 당연한 것처럼 습관되어 버렸다.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자존심처럼 소중하게 골라 입는 겉옷 속의 아름다운 속옷.....

아름답기는 고사하고 몇번 입지 않은 낡지 않은 옷이 한 개도 없다니..............

아내는 나를 위하여 자기의 자존심같은걸 그렇게 쉽게 잊고 살아온것이다.

 

"어떻게 하지 당신 속옷이 왜 이렇게 없는거야?"

"언제 샀어야 있지!...."

"아무리 그렇다고 병원에 가져갔던게 전부야????"

"..................."

"아까 세탁기 속에 다 집어 넣었는데..........!"

"그냥 당신 런닝셔츠 한 개 가져 오세요!" "그게 더 낳겠어 당신 옷이 길어서 보조기 끝이 몸이 닿는걸 보호하는데는 딱이야!"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그렇게 말 하고 있었다.

................

 

상원이와 인범이가 와서 엄마의 머리를 감겼다.

아내는 행복하다며 좋아하였다.

나는 머리를 쉽게 감길 수 있도록 침대 아래에 물 다라이를 높게 설치하고 수대로 따뜻한 물을 떠 왔다.

침대에서 머리를 침대 밖으로 내 놓고 인범이가 목과 머리의 뒷부분을 받쳐들었다.

상원이는 제법 익숙한 솜씨로 조심스럽게 컵으로 물을 떠 머리에 바르고 눈과 얼굴쪽으로 물이 흐르지 않도록 비누칠을 하여 커다란 손을 펴서 머리통을 박박 긁어댔다.

"아휴!!!시원해!! 아휴!!!시원해!!!"를 연발하며 아내는 행복에 겨워 매우 만족해 하였다.

 

 

6개월 동안 허리 보조대를 차지 않고는 절대로 일어나지 말라는게 의사의 지시사항이었다.

허리 보조대를 차고 나면

허리를 앞으로 굽히지도 못한다.

바닥에 정좌하고 앉는것은 석달간은 피하라 하였다.

식사할 때 의자에 엉덩이를 대고 잠깐 앉았다가는 다시 일어서서 있어야 한다.

 

아내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호전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석달 후에는 설거지 정도의 일을 할 수있다고 의사는 말했다.

보조기는 6개월 동안 착용하여야 한단다.

 

오늘은 나 혼자서 아내의 머리를 감겨 주었다.

 

어서 3달이 지나서 활동이 자유로운 모습을 보고 싶다.

 

아파트에 같이 사는 통로의 이웃들이 병문안을 와 주었다.

문병오는 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공통적이기에

아내의 수술 전의 척추모습과 수술하는 방법 그리고 과정과 결과를 브리핑할 수 있도록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려 놓았으며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 익숙해 졌다. 

사람들은 나의 설명을 듣고 쉽게 이해하며 익살 맞은 나의 말 투에 즐거워 하였다.

 

아가다님은 정성을 다하여 맛있게 토종닭 찜과 밑반찬을 많이도 만들어 가지고 오셨다.

며칠동안 먹어도 남겠다.

우영례님은 매일 과일과 반찬을 만들어 온다.

아래층 송말순 님이 상추와 소고기 자장을 만들어 오고 오병선 부부가 전복 미역국과 불고기 파프리카를 사오고....레지오 마리에 회원인 요안나님은 손수 키운 상추를.... 성가대원 최미란, 안미란, 심공이님이 포도, 복숭아와 다른 과일을 사오고 냉장고가 넘쳐날 지경이다.  

 

7월 13일엔 '도신경 외과'에 가서 배와 등의 실밥을 완전히 제거하였다.

한결 자유스러워진 모양이다.

 

정기적으로 복용하던 약 한가지가 다 떨어졌다.

그 약을 먹지 않자 통증이 온다고 호소하더니 하루가 지나자 괜찮아졌다고 하며 좋아한다.

'인범'이가 준비해 준 멸균상태의 소독약 접시를 펴놓고 거즈와 핀셋을 이용하여 내가 수술 부위를 소독하는것도 이젠 익숙하다.

석달 후의 완쾌한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의 몸도 무척 피곤하다.

하지만 즐겁다.

보람이 있다.

 

꺼져가는 생명을 간병하는 사람은 얼마나 비참할까 생각해 본다.

 

간병사와 가사도우미의 실습을 통하여

아내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아내가 걸을 수 있게 되면

제일 먼저 백화점에 들려 예쁜 속옷을 종류대로 많이많이 사 주리라 마음먹으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