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진광장의 항도외과 병원에서
3년 전에 대장 용종제거 시술을 받다가
용종의 숫자가 많아서 다 떼어내면 출혈이 있을까봐 몇개를 남겨뒀다가 6개월 후에 와서 떼라는 걸
3년이 지난 오늘 아침(2010년 1월 4일)에야 비로소 미뤄둔 수술을 하기로 하였다.
아침 9시에 수술 시간이 잡혀 어제 저녁부터 식사조절을 하고
새벽 4시에 기상하여 대장 청소용 약물을 400CC컵으로 가득 딸아 10분 간격으 로 6번을 마셨다.
4번 째 부터 내용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더니
꼭 7차례 만에는 맑은 물 만 배설되었다.
그 것도 상당한 고역이었다.
....................
수술이 시작되었다.
모니터 화면에 보이는 나의 창자 속.....꿈같은 세상이다.
허준이 살아서 이런 걸 봤더라면 기절초풍했을거다.
해드라이트를 켜고 울진 석류굴을 탐사하듯 구비구비 뚫고 들어가는 영상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벽에 돌출한 작은 물 혹을 발견하면 철사 올가미가 덮어씌워 조이고
끊어질 때 까지 조인 후엔 레이저 광선이 나오며 잘린부분을 태워서 붙이고
쓰레기 들어 올리는 손가락모양의 작은 물체가 잘린 물혹을 불끈 쥐고 잽싸게 동굴을 빠져 나가는 게 보인다.
큰 용종은 없었고 작은 것들을 9개 떼어냈다.
나는 장의 길이가 유별나게 길어서 대장의 끝부분(작은 창자와 연결된 곳)까지는 내시경이 짧아서 들어가질 못한단다.
의사가 투덜거린다.
"허이구! 이렇게 긴 장은 처음보네....지난번도 애 먹었는데 이번에도 끝까지 들어갈수가 없네요..."
"나처럼 장이 긴 사람이 또 있나요?" 나는 실없는 질문을 해 봤다.
"글쎄요...몇년 만에 한 사람씩 만나기도 해요"
............
내가 술을 잘 마시고 또 그렇게 많이 마셔도 잘 취하지 않고 잘 견뎌내는 게
바로 장의 길이가 길어서인가보다....속으로 생각하니 장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배가 나온 것도 씨잘띠없는 기름덩어리가 많아서가 아니라
장이 길어서 남보다 배가 더 나온것이라 생각하며 혼자서 웃음을 삼켰다.
내시경...
기막힌 발명품이다.
지난 번 신장결석 수술도 방광내시경으로 했고
위 내시경을 두 번 해 본적이 있다.
...................................................
어떤 위대한 과학자가 나타나서
마음을 바라보는 내시경을 만들 수는 없는가? 바램을 가져본다.
요즘 내 심정이 좀 괴롭다.
나와 절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4명이 서로 의기 투합하여 술을 마시고, 차도 마시고,
당구도 치고, 같이 노래도 부르고, 함께 여행도 다니는 '4군자'라는 모임이 있다.
우린 연령순으로 '매공' '란공' '국공' '죽공'이라 부르며 지내고 있는데
나는 세번째 '국공'이다.
얼마 전
'매공'과 '죽공' 사이에 만취상태에서 오묘한 갈등이 생겼나보다.
나와 '란공'은 거기에 없어서 사태의 발생원인을 잘 모르겠으나
'매공' '죽공' 그리고 '제3자'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제3자'인 사람과 '죽공' 사이에 언쟁이 붙어 점점 감정이 격화되어
서로 붙잡고 밀치고 한 모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매공'이 그 자리에 없었는지.
멀리서 바라보며....'저러다 말겠지....'하고 있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이런 사태에서
'죽공'을 밀치고 험담을 하는 '제3자'를 매공이 끼어들어 말리지 않았음이
취중에도 감지되어
'죽공'은 '매공'에게 섭섭함이 단단히 가슴에 맺혀져 있는거 같다.'
'매공'또한 그 상황에 대하여서는 뭐라 할 말이 없는지 묵묵부답이다.
..........................
"술취할때 벌어진 일은 다 무효"란 말이 있잖습니까?
그냥 꿀떡 삼켜버리고 맙시다."라고 몇번 말 하였어도
아직까지 '죽공'의 마음에 응어리가 해소되질 않은거 같다.
이럴때 '마음 내시경'이 있다면
두 사람 마음을 살펴보고
서로 오해 한 것을 잘 풀어서 다시 웃을 수 있으련만......
하고 생각 해 본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쩌면 '4군자'모임이 깨질거 같은 초조감이 엄습하여 견디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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