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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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처럼 쓸 이야기가 있는 날

화산공원을 할퀴고 간 볼라벤

정일웅 찻집 2012. 8. 29. 17:10

어제는 태풍 때문에 문밖에도 못 나갔다.

바람을 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아서 천변에 걷기라도 할까하고

아내와 둘이서 운동복차림을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아파트 주차장을 가로 건너 길 쪽으로 향하는데

'~~휘---익~~~'바람이 불어와 걸음이 휘청거렸다.

쉬지않고 계속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몇걸음 더 걸어 골목으로 접어드는데 

하늘에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검은 물체들이 무서운 속도로 땅에 쳐박히기도하고

건물에 부딛치기도 한다.

지붕을 덮는 슬레트 한 장이 '휘익~'날아 떨어진 곳은 골목길에 세워둔 승용차의 앞유리창이었다.

"와장창!~"소리와 동시에 유리창이 하얗게 그물모양으로 금이가고 보넷 뚜껑이 확 찌그러져 버린다.

나와 아내는 기겁을 하고 집으로 뛰어 돌아왔다.

.......................

공포의 시간이 지나고

바람은 점점 수그러들어

.......................

 

간밤엔 잠을 잘 잤다.

 

오늘은

언제  태풍이 불었냐는듯이 하늘이 맑고 뜨거운 태양의 열은 조금도 식지않았다.

아내와 나는

오전 운동으로 늘 다니는 '화산공원'에 이르렀다.

서신교 쪽 등산로 입구에 160계단이 등산의 시작인데

계단의 입구부터 낯설게 느껴진다.

나뭇잎과 잘게 부서진 나뭇가지 찢겨진 잔 가지들이 계단의 층층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북히 쌓여있다.

나뭇잎 찢긴 상처의 냄새가 산에서부터 진하게 흘러 나왔다.

피톤치드가 가득한 상쾌한 향기가 아니라

거의 역겨운 나무의 핏물 냄새처럼 ....나무의 시체...냄새라고나 해야할까?

바람이 없고 공기는 무덥고

산길은 나무의 시체조각들로 온통 덮혀있다.

험한 계단을 올라 가파른 등산로를 오르며

시야에 들어온 처참한 참상에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가파른 계단이 끝나고 막 산의 능선이 시작되는 곳에  엄청 큰 상수리나무 두 그루가 뿌리를 들어내고 쓰러져있다.

녹음이 짙던 산길은

햇빛을 가려줄 나뭇잎들이 거의 다 떨어져서 그늘이라고 볼 수가 없다.

 

 

얼마나 세차게

얼마나 지독하게

얼마나 집요하게

얼마나 악질적으로 ....밤새도록 온 산의 나무란 나무는 한그루도 빠짐없이

볼라벤의 무서운 쇠갈퀴에

할퀴고

털리고

잘리고

부러지고

찢어져서  차마 뭐라고 표현할 수없는 참상을 하고 있었다.

크고 웅장하여 녹음이 아름답던 아름드리 나무들

팽나무

느티나무

너도밤나무 아카시아.....

산에서 키가 좀 크고 튼튼하게 생긴 나무들은 한 그루도 살아남지 못하고

모두 찢겨지거다 쓰러지고 몸둥이가 부러지고

뿌리가 바위를 껴안은 채 뽑혀 하늘을 향하고 있다.

...................

부러진 나무기둥 아래를 기기도 하고

기둥 위를 타고 넘기도하며

때로는 쓰러진 나무로 인하여 없어진 길은 돌아서

산을 한 바퀴 돌고 집에 왔다.

 

아!

자연의 힘...................

하느님을 믿는 나로서

자연의 모든 섭리를 하느님의 권능으로 생각한다면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새삼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