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초임지 부임
나의 교단생활 첫 출발은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학석리에 신설되었던 학석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66년 4월 1일 임실군 교육청에서 사령장을 받아 들고 순창행 완행버스에 올라탄 나는 사뭇 부푼 기대와 설렘을 느끼며 갈담이라는 곳에서 버스를 내렸다.
학석초등학교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알지 못하는 나는 같이 내린 승객 중 이곳 주민 인 듯 보이는 낯선 농부에게 "학석초등학교를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는 나를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고 나서 산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쩌짝 산밑에 질(길)로 쪼옥 따라 올라가면 있씰것잉게 가 보쇼"하는 것이었다.
트럭 한 대쯤은 다닐 만한 꽤 넓은 산길은 참으로 한적하였다.
나지막한 야산이 줄기줄기 이어진 산자락에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은 가끔씩 길을 가로질러 달아나는 산토끼와 다람쥐,
길옆 풀숲에서 후닥닥 날아 도망가는 까투리,
산 숲 속에서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는 뱁새,
꾀꼬리, 개똥지바퀴의 소리만 들려 올 뿐,
들에도, 건너편 산기슭에도 사람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몇 구비 산길을 돌아가니 산골짜기 저편에 초가집 두 채가 보였으나 인기척은 느낄 수 없었다.
길가에 커다란 정자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있는 곳을 지나고 몇 구비 산자락을 더 돌아 작은 도랑의 징검다리를 건너 얼마나 갔을까? 길가 왼편으로 꽤나 깊은 골짜기가 보이고 초가집 십여 채가 옹기종기 붙어 있는 작은 동네가 보였다.
동네 앞엔 다랑다랑 논들이 층층으로 이어져 내리고 논바닥에 몇 명 꼬맹이들이 고물고물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닌가?
"아니 이렇게 싶은 산골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니 그러나 도대체 학교는 어디쯤 있다는 말인가?"
"조금만 더 가면 어느 곳엔가 작은 학교가 있겠지" 아이들이 보이는 골짜기를 뒤로하고 좀더 빠른 발걸음으로 산굽이를 돌았다.
깊은 산골의 낯선 경치에 취하여 까마득히 잊었던 작은 기대감과 긴장 그리고 설렘에 심장의 박동이 조금 빨라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산길이 지금까지 걷던 것보다 좀 더 가팔라지고 산골의 고요는 더욱 적막하여지는 것 같았다.
얼마쯤 더 걸었을까 한 모퉁이를 막 돌아서는데 지게에 삭정이 나무를 한 짐 짊어지고 내려오는 노인 한 분이 있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타지를 여행하다 고향의 아저씨를 만난 기분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갈담'에서 이곳까지 걸어오는 동안 처음 만난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얼른 그에게 다가가서
"아저씨! 말씀 좀 묻겠는데요 학석초등학교가 어디쯤 있나요?" 하고 물었다.
걸음을 멈춘 그는 잠시 의아하다는 듯 위아래로 쭉 훑어보더니 지게 작대기로 아래쪽을 가리키며
"뭣할라고 여그까지 올라왔소, 나랑 같이 내려갑시다. 핵교는 저 아래요"하는 것이었다.
그가 알려준 학교는 아까 어린이들 몇이 놀고 있던 그 장소를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건물도 보이지 않는데 무슨 학교가 있단 말인가?
아무튼 나는 그가 알려주고 간 그곳을 향하여 갈 수밖에 없었다.
올라오며 보았을 때보다 아이들은 좀 더 많은 숫자가 되어 뛰어 놀고 있었다.
낯선 사람의 등장을 발견한 몇 명 아이들이 뭐라고 소리를 지르자 논바닥의 아이들이 우르르 내 곁으로 몰려들어 나를 에워싸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몰려오는 쪽을 향하여 시선을 돌렸다. 논바닥 여기저기에 배를 갈라 길게 펼친 쌀가마니가 논바닥에 가지런하게 깔려있고 가마니 위에는 노트와 필통, 교과서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아래 다랑이의 논에도 마찬가지였고 가마니 위에서 뒹굴고 뛰어 노는 아이들도 있었다.
논두렁에 기대어 놓은 까만 색 널빤지가 자세히 보니 칠판이었고 그 밑에 분필 쪼가리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좀 더 시선을 멀리하니 다랑이 논 저 밑에 작은 시내가 흐르고 그 너머는 산으로 이어지는데 산 중턱에서 불도저 한 대가 끄르릉 끄르릉 소리를 내며 산을 깎고 있었다.
"누구 다냐?"
"선생인가비여"
"옷-- 좋-다 잉-!?"
아이들은 신기한 동물을 구경이나 하듯 주름잡아 다려 입은 나의 바지를 만지기도 하며 반가우면서도 사뭇 경계하는 표정들이었다.
"얘들아 학교가 어디냐?"
"학교라우?... 학교는 여그여라우"
가마니가 널려 있는 논바닥을 가리키며 그중 키가 좀 큰 편이며 눈망울이 반짝거리는 사내아이가 얼른 대답한다. 머리카락이 밤송이처럼 길고 비쩍 마른 얼굴에 목소리가 가늘고 높은 금속성 토운 이었다.
때가 끼어 까만 목이 한줌이나 될 정도로 가늘게 몸통에 붙어 있었고 큰형한테서나 물려받았음직한 빛바랜 검정 대마지로 만든 고등학생용 동복의 소매를 몇 번이나 걷어서 입고 있었는데 훅크를 채운 둥근 깃 안으로 앞 어깨의 빗장뼈가 들여다보였다.
검정색 물을 들인 광목 통치마에 버선과 양말을 짝지어 신은 여자아이도 눈에 띄었다.
아이들의 모습은 모두 찌든 가난에 영양실조의 모습이 역력하였다.
"얌마, 학교가 어디냐고?"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다시 한 번 물었다. 그 아이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학교는 여그 라고라우!"
순간 나는 갑자기 전신의 힘이 쏙 빠지며 울분과 치욕감과 절망과 좌절이 한꺼번에 엄습해오며 가벼운 현기증이 일어났다.
이게 무슨 청천의 날벼락 같은 일인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산골 구렁텅이에 귀향 살이 같은 신세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나는 눈을 감아 버렸다.
부풀었던 희망과 기대가 일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나의 몸은 깜깜한 절망의 심연으로 끝없이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금방 쓰러 질 듯 무릎 관절이 휘청 꺾어질 뻔하였다.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가다듬었다.
불도저 엔진 소리가 다시 들려오고 초라한 초가집 능선의 힘없이 엎드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하나둘씩 흩어지며 제각각 장난질을 계속 하였다.
불도저 엔진 소리가 멎었다.
나의 시선은 아무 생각 없이 산 쪽을 향하였다.
얼굴이 까맣게 탄 잠바차림의 노인 한 분이 바쁜 걸음으로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4월의 초하루지만 산골이라서 아직도 땅이 얼어 있었고 아침 햇살에 땅거죽이 막 녹기 시작하여 질퍽거리고 미끄러워 산을 내려오는 노인은 연방 미끄러져 넘어 질 듯 뭐가 그리 바쁜지 헐떡헐떡 바쁜 걸음을 쉬지 않았다.
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너고 논둑길을 따라 내가 있는 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는 가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듯도 하였다.
아이들이 슬슬 내 곁을 떠나 논바닥의 가마니 위로 신을 벗고 올라가고 있었다.
검정 뿔테 안경을 쓴 그 노인이 내 곁에 다가와 걸음을 멈췄다.
그는 가쁜 숨을 진정하느라 한참이나 먼 산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굵은 주름살이 큰 골짜기를 이루며 두 줄기로 이마에 금을 그리고 아침 햇살에 밤색 피부가 번들번들 빛나 보였다.
검정 고무신엔 황토 흙이 더덕더덕 붙어 눌려서 옆으로 삐져나오고 바짓가랑이를 두 번 정도 감아 올려서 속에 입은 파자마 끝자락이 삐져나와 있다.
그는 나에게 미소를 띠며 오른손을 내어 밀면서 더듬더듬 말을 이어 나갔다.
".......저....정선생님 이신 가요....?"
"예! 그렇습니다만.....!"
나는 얼떨결에 그의 껄끄러운 손을 잡으며 대답하였다.
"아!.... 맞고만요. 오시니라고 참 수고가 많았습니다. 제가 교장입니다."
“............”
아니 이 사람이 교장이라니 도대체 믿을 수가 없었다.
"여그서 이럴 것이 아니라 어서 교무실로 가입시다."
"선생님들은 지금 회의 중이고 저는 잠깐 공사장에 가볼 일이 있어서 댕겨오는디 선생님을 봤지라우."
그는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며 나를 당황하게 만들고 있었다.
가마니를 깐 논바닥이 교실인데 교무실은 도대체 어느 논바닥에 무엇을 깔아 놓았단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하여 이런 곳이 학교란 말인가?'
기막히게 착잡한 심정을 억누르며 몇 발짝 앞서가는 그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땅거죽이 녹아서 미끄러워진 길을 조심히 걸어서 그가 인도하는 곳은 논 가장자리의 농로를 끼고 돌아 어느 집 뒤꼍에 붙어 있는 골방이었다.
대나무를 갈라 좌우 사선으로 얼기설기 엮어 놓은 직사각형의 작은 문에 창호지를 발라 놓은 모양새가 어느 영화에서나 본 것 같은 시골 가난한 집의 사랑방 같았다.
문 밑에 길쭉한 댓돌이 놓여 있고 그 위 아래로 황토 흙 묻은 고무신과 헌 운동화 짝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문의 손잡이가 붙은 안쪽 창호지는 주먹 몇 개가 들어갈 만큼 찢어져 펄럭거리고 있었다.
교장이라는 그 노인은 나를 이끌고 그 방문 앞에 이르렀다.
안에서 두런두런 무슨 말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또 안 오면 어쩐디야......."
".....걱정 말어. 이번에도 안 오리라고....?"
노인은 문 앞에서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어이...! 여그 정선생님 오셨구만." 하면서 문을 열었다.
방안에서 퀴퀴한 담배 연기가 문밖으로 확 쏟아져 나왔다.
방안은 깜깜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노인을 따라 허리를 굽힌 채 방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열 두어 자 정도쯤 되는 긴 방이었고 방 가운데 긴 밥상 하나를 놓고 대여섯 명이 둘러앉아 있었다.
교장선생님을 따라 들어간 나를 보며 그들은 엉거주춤 일어서며 이 사람 저 사람 번갈아가며 내 손을 잡았고 자기가 누구라고 소개하는 이름은 하나도 기억되지 않은 채 현기증을 느끼며 어물어물 그들의 인사에 응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참만에야 눈의 동공이 커져서 방안의 사물과 사람들을 똑똑히 볼 수가 있었다.
교감이라는 분이 말하였다.
" 저..! 이곳이 이렇게 생겼어도 울고 왔다가 울고 가는 곳입니다.
정 선생님 지금 마음이야 저희들도 다 알지요. 저희들도 처음에는 다 심란했지만 지내다 보면 정도 들고 지낼 만 해요."
그는 또 계속해서
"자! 나가서 애들한테 인사 소개하야지요..... 아이! 오선생! 종좀 쳐!"
오 선생님이란 분이
"예!"
하며 씩씩하게 대답하더니 상 밑에서 작은 종 하나를 끄집어내어 오른손에 들고 찢어진 문틈으로 손을 쑤욱 내밀고 '땔랑 땔랑' '땔랑 땔랑' 몇 번 잡아 흔들고서
"자! 나갑시다!"
하며 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온 몸을 휙 감쌌다.
방밖에 나오자 눈이 부셨다.
애들은 가마니 위에 질서 있게 서 있었고 교사들은 논가의 길 가장자리에 듬성듬성 서서 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애들이 바라보고 서 있는 방향은 길 쪽이 아니고 논둑의 칠판이 기대어진 쪽이었다.
교장 선생님이 미끄러운 논둑을 옆으로 살살 게걸음을 하여 조심조심 걸어가 애들 시선의 중앙에 섰을 때 애들 맨 앞에 서 있는 깡마른 아이가 쇠꼬챙이 같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구령을 붙이는 것이었다.
"엿쭈우웅 쉬어어!"
"츠리여어었!"
"교장 선생님께 경례!"
목에 둘러 있는 온갖 힘줄들이 불끈 곤두서서 외치는 절규와 같은 목소리였다.
"오늘은 훌륭한 선생님께서 부임하셨기 때문에 소개를 하게 되어서 대단히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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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인사말을 하였는지 지금은 기억 할 수가 없다.
늪 속에 빠져 아무리 손을 허우적거려도 아무 것도 잡을 것이 없는 절망감.
운명의 신이 내게서 멀리 떠나고 절망의 나락 속에서 한없이 외로운 신세로 일시에 전락한 슬픈 마음.
억울한 누명을 쓰고서 가족을 떠나 이역만리의 외로운 고도에 유배된 신세가 되어버린 듯 암울하고 답답함.
실로 이러한 참담한 심정으로 악몽과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이건 뭔가 잘 못 되어 있는 것이다'
'운명의 지침을 바로잡을 다른 생각을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서 교장선생님에게 집에 다녀오겠다는 가벼운 인사를 남기고 황급히 그 끔찍한 그곳을 빠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