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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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처럼 쓸 이야기가 있는 날

비 오는 날... ..................... 도올의 명강의 제주 4.3사건

정일웅 찻집 2023. 4. 29. 21:36

봄비는 농부의 마음에 온다.

봄비는 땅도 적시고 타들어 가는 농부의 마음을 적신다.

 

오늘 종일 비가 내렸다.

많은 비는 아니어도

밭의 땅을 적시어 뿌린 씨는 싹을 키우고 신록은 짙은 녹색으로 힘을 얻는다.

 

도올 김용옥의 명강의로 제주 4.3사건과 여순 사태에 대한  절절한 해설을 들으며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철학자 도올 김용옥님은 정말 대단한 철학자이다.

도올이 제주에서의 강의를 마치면서

자기가 이곳에 떠나오기 전날 밤에 적었던 시 한편을 낭독하며 연설을마친다.

 

<슬픈 제주>

               도올 김용옥

나는 슬픕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슬픕니다.

여러분도 슬픕니다.

무언가 속 시원히

다 말할 수 없는 사연

우리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가슴을 짓누릅니다.

제주는 슬픕니다

제주는 슬픕니다.

지금 여기 누군가 일어서서

제주는 슬프지 않다고 말한다면

나는 외칩니다.

그대는 위선자

그대는 진실을 외면하는 거짓말쟁이

그대는 위선자

그대는 진실을 외면하는 거짓말쟁이

緣起의 굴래를 망각한 허구!

 

제주는 슬픕니다.

그대는 위선자

그대는 진실을 외면하는 거짓말쟁이의 굴래를 망각한 허구!

제주는 슬픕니다.

 

진실도 화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 둘러대는 말일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슬픕니다.

슬픔에는 이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이념적 상찬이나 폄하나

언어의 꾸밈이나 위로도

모두 제주를 자기 구미대로 말아먹고 싶어하는

인간들의 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슬픔은 그냥 슬픕니다.

영원히 슬픕니다.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기억은 절대 자살하지 않습니다.

아라야식의 굴레 속에서라도

끝없이 자기 생명을 유지합니다.

 

우리가 제주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은

슬픈 제주를

슬프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 슬픔에

동참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슬픔을 슬프게 느낄 때만이

그 슬픔은 정의로운 에너지를 분출합니다.

슬픈 제주는 알고 보면

우리 민족 전체의 모습입니다.

슬픈 제주는

외딴섬의 이야기가 아니라

조선 대륙 전체의 이야기 입니다.

조선 민족의 외세에 대한 항거

관념적 폭력에 대한 저항

분열 획책에 대한 주체적 항변

정치적 사회적 압제에

분연히 일어서는 민중의 항쟁

이 모든것이 제주라는 고립된 무대위에서

극적으로 구현되어 왔습니다.

 

오늘 이 순간 남북이 분열되고 미국 러시아

미국 중국의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고

일본의 야비한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않고 있는 이 순간

제주의 슬픔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슬픈 아일랜드에서

에이츠, 버나드 쇼, 사무엘 베케트

오스카와일드, 조나단 스위프트, 제임스 조이스 같은

세계문학의 거성들이 쏟아졌듯이

 

나는 앞으로 슬픈 제주에서 백두에서 한라까지

그 모든 생의 약동을 통합하여 분출하는

세계문명의 거대한 축이 탄생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제주의 사람들이여

우리 같이 슬픔을 말합시다.

슬픔을 노래합시다.

우리의 슬픔을 조작하는

모든 관념으로부터 해탈합시다.

 

나는 말합니다.

종교도, 정치도, 국가도

어떠한 위대한 형이상학도

한라산 기슭 해안가

현무암에 덮인

이끼 한 오라기일지라도

하나님으로 경배하는

당 오백 제주도 해녀의

경건한 생명력 앞에

무릎을 꿇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