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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란처럼 살아온 나의 이야기/24. 합창지도 환상의 커플

24. 합창지도 환상의 커플

정일웅 찻집 2016. 7. 6. 14:42

24. 합창지도 환상의 커플

 

가을 예능경연대회의 합창 대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반주를 맡으신 '이경희' 선생님은 가정에 바쁜 일로 연습시간에 못 나오실 때가 많았다.

그래도 이 선생님이 아니면 그 누구도 매일매일 해야 하는 연습시간의 반주를 희망하지 않았다.

 

또한 마음이 있어도 올갠의 연주기능이 있어야하기 때문에 선뜻 반주를 부탁할 수가 없었다.

'이경희' 선생님은 매끄러운 연주를 하지는 못하여도 그래도 다른 선생님보다 봉사하려는 마음이 항상 있는 선생님이었고 아직 병아리 교사인 나에 대하여 누나처럼 친절하게 잘 도와주시는 분이셨다.

..............

'김 우신'선생님이 중간에 전주시에 발령을 받고 떠나고 전남에서 여자 선생님이 전근 발령을 받고 온다고 하여 그의 인사기록 카드가 서무실에 도착하였다. '특기'를 쓰는 곳에 '피아노'라고 쓰여 있었다.

 

'이경희' 선생님은 피아노 특기라는 것을 보고 새로 올 '소숙희'선생만 오면 반주를 인계하려고 고대하고 있었다.

인사기록카드에 붙은 그녀의 사진.... 긴 머리와 커다란 눈이 잘 어울린 예쁜 얼굴에 관심과 기대가 큰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녀의 특기 난에 피아노라고 쓰여져 있는 것이 가장 큰 기대와 관심이었다.

 

(정말로 피아노를 잘 치는 선생님이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며칠이 지나고 합창연습을 하는 교실에서 아이들이 모이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 날도 이경희 선생님은 집안 일로 집에 간다고 먼저 퇴근하였다.

 

합창부 아이들과 모여 앉아서 나 혼자라도 연습을 시켜야지 하며 발성연습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우연히 창밖에 머물던 나의 시야에 낯선 젊은 여인이 또박또박 걸어서 오는 모습이 보였다.

까만 원피스를 입고 어깨를 덮고 견갑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의 소녀 같은 모습의 여인,

나는 직감으로 그녀가 '소 숙희'선생임을 알았고 커다란 눈과 균형 잡히고 지성미 있는 얼굴모습이 사진의 그것보다 더 예쁘게 느껴졌다.

 

나는 슬리퍼를 신은 채 밖으로 뛰어나가 그녀를 맞았다.

"어서 오세요! 소 숙희 선생님이시죠?"

 

"!"

갑자기 뛰어나와서 반기는 사나이를 그녀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당황하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우와! 너무 반갑습니다.! 제가 소 선생님이 오시는 것 제일 기다리고 기다린 사람입니다. "

"......................................."

그녀는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러한 모습의 그녀가 너무나 예쁘고 귀여웠다.

그녀가 들고 온 노란 대 봉투에 뭐가 들었는지 나는 미리 알고

"그 봉투에 사령장 들었죠?"

"!"

"이리 주세요!" "제가 알아서 처리 하겠습니다."

나는 그녀의 사령장이 든 봉투를 받아서 서무실에 맡기고 착임계는 서무실 직원에게 알아서하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 소 선생님 저하고 급히 갈 곳이 있습니다."

" ???"

소 선생님은 도깨비에 홀린 듯이 놀란 표정이었지만 순수하게 나의 말대로 따라주었다.

교장선생님도 출장 중이셨고 방과 후 늦은 시간이라서 많은 선생님들이 각자의 교실에서 학습지도안을 쓰거나

 

운동장에서 배구를 하거나

더러는 장기를 두는 그런 시간이었다.

나는 우선 급한 것이 합창연습이라서 소 선생님을 인도하여 아이들이 기다리는 음악실로 향하여 걸었다.

 

"합창부를 맡고 있는 정 일웅입니다."

"지금 반주하실 선생님이 안 계셔서 애가 타게 기다리는 중에 선생님이 오시니 너무나 반갑고 고맙습니다."

나와 함께 들어오는 소 선생님의 모습을 본 아이들이 새로 오신 선생님이란 걸 알아차리고 '----!'하고 탄성을 질렀다.

"얘들아 이제부터 반주를 하실 소 선생님이시다!"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하였다.

"얘들아! 이제 연습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훌륭한 선생님이 오셨으니까 열심히 연습하여서 꼭 일등하자 응?"

"-!"

아이들이 신이 난 모양이다.

"소 선생님! 반주한번 쳐주시겠습니까?"

"! 어떤 곡인가요?"

"도라지꽃입니다."

그녀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자신 있게 풍금에 앉아 도라지꽃 노래의 전주곡을 치기 시작하였다.

이 경희 선생님의 솜씨와는 완전히 다른 완벽한 화음이 우렁차게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에 터지도록 밀려오는 환희의 충격을 받았다.

문제없다.

이제부터 소선생과 합창을 지도하면 어떤 어려운 곡도 소화 해낼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의 얼굴에 번지고 벅찬 환희에 자꾸만 얼굴이 달아오르며 말을 잘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하늘에서 내게 보내준 하느님의 선물과 같았다.

! 아름다운 그녀! ! 신비스런 손가락의 묘기여!

 

하느님 감사합니다.

.........................

합창부의 기능은 날이 갈수록 숙련되고 나와 그녀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지휘자와 반주자로 환상적인 커플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에 나의 합창단은 자유곡으로 '달려라 우편마차'를 선택하였다.

활기차고 기교가 돋보이는 부분 3부 합창곡이었다.

훌륭한 반주 선생님 덕분에 나는 훌륭한 지휘자가 되어버렸다.

 

대회 당 일 우리는 자신 있는 발표를 하였다.

그 옛날 깨구락지 합창단 시절에 나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던 그 천사들의 모습.... 그 모습의 학생들이 나의 지휘하는 손에 의하여 아름다운 발성으로 노래를 부른다. 이것은 꿈같은 행복이었다.

 

빨간 운동화, 흰 타이즈 양발, 짧은 남색 스커트, 흰 티셔츠, 남색 조끼, 빨간 머리

리본....

꿈에도 그리던 그 환상적인 아름다운 천사들이 나의 합창단이었다.

임실군 대회에 나가면 성적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리학교가 1등을 하였다.

 

소 숙희선생은 반주 잘하는 교사로 소문이 모든 학교에 퍼졌다.

임실초등학교의 합창단은 최고의 실력을 과시하는 합창단이 되었다.

소 숙희’!

그녀는 나의 구원자였으며 내가 가장 바라는 여인상의 조건을 모두 갖춘 여인이었다.

 

아름다운 미모, 공손한 태도, 알맞은 키, 음악을 사랑하는 정서, 피아노의 실력......

합창을 연습할 때 그녀는 나의 감정을 너무나 빨리 읽어내고 마치 나와 한 몸인 양 나의 요구에 즉시 반주를 해 주어서 학생들도 나도 모두 악곡의 아름다운 선율에 도취하며 연습을 하였다.

 

그녀는 아름다운 천사였고 나의 구원자였다.

소 숙희선생님으로 인해서 나는 합창지도를 잘 하는 교사로 알려졌고 나의 전 인생에서도 많은 보탬이 되었다.

소 숙희선생님을 마음속으로 많이많이 좋아 했지만 도저히 프러포즈를 할 형편이 아닌 나의 가난한 생활

.............

그녀와 함께 근무하던 시절은 나의 비참하리만치 가난했던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깨닫게 해 주는 시절이기도 했다.

나이를 먹어서 30이 가까워지면서도 차마 마음에 드는 여인에게 청혼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