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제목 없는 자서전
3. 초등학교 시절(아! 잊고 싶은 나의 담임 '이 한충'선생님)
초등학교시절의 소년기에는 어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작고 하찮은 일 하나가 소년의 가슴에 평생 지울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사소한 배려 하나가 평생 잊지 못할 은혜로움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내가 성장하여 교육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 어언 37년이 되었고 나로 인하여 수없이 많은 상처를 받았을 학생들을 생각하면 수많은 제자들 앞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요 증오의 대상으로 자리잡은 선생님....
그 선생님은 나의 이런 심정을 전혀 알지 못하였고 그 나름대로 교육자로서의 나에 대한 배려를 하였을 거라고 이제와서 생각해 보지만 그러한 내 마음의 너그러움이 생기기 까지는 나의 전 인생이 소모되었다.
내가 교육자의 길을 걸으며 한결같이 잊지 않으려 애썼던 것 하나는
나의 초등학교 담임 '이 한충'선생님같은 가난하고 못난 학생을 없인여기고 무자비하게 매질하는 그러한 교육자가 되지 않아야한다는 일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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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똥싼 바지'라는 별명이 붙은 그 선생님만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던 나는 완전히 실망하고 말았다.
그 많은 선생님 중에 하필이면 3학년 5반 담임이 '이 한충'선생이란다.
나는 첫날부터 담임선생의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
머리에 기계독이 올라서 박박 깎은 머리통은 마치 회가루를 뿌려놓은 듯 허옇게 들떠있었고 목과 귓바퀴 가장자리에는 도장버짐이 올라 견딜 수 없이 가려웠다.
담임 이한충선생은 나의 좌석을 맨 뒤쪽에 격리시켰으며 나와 아이들이 접촉하는 것을 기피하도록 만들었다.
어머니는 내 머리의 기계독을 낫게 하기 위하여 학교에서 돌아오면 마늘을 짓이겨서 머리에 처발랐다. 후끈거리는 통증이 골통까지 스며들고 머리를 옥죄는 아픔이 견딜 수가 없었다.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왔고 이런 나를 바라보는 엄마는 내가 안쓰러워 나의 눈물을 닦아주며 자기도 우셨다.
기계독은 얼마나 지독한 균인지 그토록 독한 마늘에도 죽지 않고 더욱 번져갔다.
아이들은 나에게 '머리에 곰팡 난 놈' '대가리 썩은 놈'이라고 놀려대고 나의 곁에 잘 오지 않았다.
나는 잘 참았다.
아픔도, 배고픔도, 슬픔도, 창피함도, 담임선생님의 경멸에 찬 눈총도, 아이들의 놀림도,.................
나는 죽은 듯이 공부만 하였고 전주시 교육청 시행 학력고사에서 전체 3등을 하여 중앙초등학교의 체면을 세워주었었다.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이런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고 옆 반 선생님이 나를 칭찬하여 알게되었다.
나의 담임은 나의 성적이 좋은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듯 하였다.
미운 선생님과의 지겨운 1년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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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이 된 첫날 나는 날아갈듯이 기뻤다.
담임 선생님이 박진규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박진규 선생님은 과학선생님 이셨는데 정말 인자하고 친절하신 선생님이셨다.
그가 우리 교실에 들어오셔서 첫날 나를 불러 교무실로 데려 가셨다.
"너 머리에 '기계충' 때문에 고생 많이 했구나"하시며
손바닥 만 한 크기의 묵직한 직육면체의 종이상자를 내 손에 들려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그와 같은 종이 상자를 많이 본 일이 있었다.
향긋한 냄새가 나는 신사들의 머리에 바르는 포마드 기름이었다.
"니가 정익훈이지?"
"예!"
"이것을 머리에 바르고 모자를 쓰고 다니거라!"
"????????"
나는 영문을 몰라서 아무 말을 못하고 멍한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얘야! 기계독은 곰팡이가 머리에서 사는 것이란다. 곰팡이는 공기와 접촉을 하지 못하면 죽는단다!.
내 평생 맨 처음 남에 대한 고마움을 깨달았다.
그 날 밤 향기 나는 포마드를 머리에 발랐다.
기름이 베개에 묻어 없어지지 않도록 헝겊으로 칭칭 머리를 감고 잠을 잤다.
마늘을 짓이겨 바르던 일을 생각하면 얼마나 상쾌한 일인가?
전혀 아프지 않고 콧속으로 살살 스며드는 향기가 너무나 좋았다.
학교에 갈 때는 모자를 쓰고 다녔고 공부시간에도 모자를 벗지 않았다.
3일이 지난 후 머리를 감았다.
세상에 이렇게 신기한 일이 또 있을까?
나의 머리통에서 기승을 부리던 징글징글한 기계독이 깨끗이 낳았다.
날아갈 듯이 기뻤다.
나는 '대가리에 곰팡핀놈', '대가리 썩은 놈'이라는 소리에서 해방이 되었다.
4학년을 마치던 날 존경하는 선생님과 해어지는 게 정말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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