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 미사를 마치고
애령회원들은 최 종옥(프리스카)의 입관 예절에 가는데
나는 사군자의 모임 때문에 예절에 참례하지 못하고 집으로 왔다.
옛 남도 주유소 건너편 수협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오리지날 4군자가 모였다.
김만(매공) , 최만산(란공), 정일웅(국공), 김연호(죽공)
불낙전골을 시켜 점심을 같이 먹고
아내가 김치담그는 것을 돕기 위하여 찻집에 같이 가지 않고 나만 먼저 집에 와서
식자재 마트에서 배추와 달걀, 기타 이런 저런 것 들 장을 봐서 집에 돌아왔다.
아내와 둘이서 쉬고 있을 때 집 전화 벨이 울렸다.
틀림없이 여론조사나 상품구매 전화일거라 생각하고 받지 않으려 했다.
아내가 전화기로 가더니 수화기를 들었다.
"보이스 피싱이면 빨리 끊어버려"하고 내가 소리를 질렀다.
아내는
"하이고....! 반가워요...이게 얼마 만에 들어보는 ........"
아내는 전화를 하면서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바꿔 드릴테니 전화를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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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화기를 받아서 "전화 바꿨습니다."하고 말하자
"이정애 예요"
"하이고ㅡㅡㅡ이게 얼마 만이야~~~!"
정말 반가운 전화였다.
내가 전화기로 갔었다면 수화기를 들었다가 바로 놓아서 끊어 버렸을 터인데
아내가 받기를 잘 했다.
이정애.....내가 임실 초등학교에 근무 할 적에 그녀는 나와 완전히 콤비가 맞아서
누구 든지 둘이서 결혼을 하게 될 지 모른다고 점치고 있었다.
그녀는 영리하고 현명하고 바르고 똑똑하여 학교에서 무슨일이든지 나와 둘이서 척척 해내는
완전한 콤비였었다.
하루는 그 녀, 이 정애가 "정선생님 오늘 끝나고 우리 얘기 좀 해요!"
하고 진지하게 말 하여 모든 직원들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
한가한 교장실 소파에 앉아서 진지한 결혼 얘기를 구체적으로 나누었다.
그녀는 내가 기독교로 개종을 하여 같이 활동하며 결혼도 하자는 말 이었고
나는 나의 종교를 바꿀 수가 없다는 얘기를 장시간 주고 받았었다.
결국 우리는 종교문제로 결혼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둘 사이의 우정은 변함이 없었다.
나의 자서전인 '풍란처럼 살아온 나의 이야기'에도 썼던 기억이 난다.
나는 최우남과의 연애가 시작되어 결국 나와 최우남이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서로의 믿음과 학교의 일에서의 콤비는 변함이 없었던 여인.........
그녀는 결국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 팔웅'과 결혼을 하였고 '김팔웅'과 '이정애'의 결혼 생활은
'김팔웅'의 학교 숙직실에서 연탄까스 중독으로 사망을 하여버린 애닯은 사연을 지니게 되었다.
'이정애'의 근황은 무릎 인대의 통증으로 요즘은 등산을 잘 못할 정도이며
시내버스를 안탄단다. 무릎의 통증으로
해마다 6월 6일 현충일이면 셋이서 등산을 하던 '최병호'교육장님
그녀가 묻는 '최병호' 선생님의 안부에 대하여
'최병호'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그의 발인 날에 내가 우연히' 최병호' 선생님께 전화를 하였더니
그의 두 번째 사모님이
그제' 최병호'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오늘 발인 한다는 말을 하여
'최병호'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고도 나를 보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최병호' 선생님과 같이 잘 지내던 '백남구'가 생각이 나서
나는 황급히 '백남구'에게 전화를 하여
'백남구'와 함께 장지까지 동행하였던 얘기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오늘은 특별한 일이 많이 생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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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준비를 천천히 시작해야 하겠다.
우선
오키나와의 3월 기온과 날씨를 알아봐야 한다.
준비해야 할 물품은 많다.
신용카드, 현금(일본 돈, 한국 돈)
속옷 양말 겉옷 모자
면도기 화장품 빗 등등
의약품
휴대용 가방
우산
시계
멀티 탭
큰 가방(23kg)이하
필기용구 수첩
담배 라이터
마스크
찜질 매트
하모니카....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