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에
오영해
비가옵니다.
유리창에 내리는 비는
초록 물감을 풀며
흐려집니다.
빗물에 씻겨 돌 물가 드러나듯이
깊은 가슴 속 그대가 생각나
한동안 매마르든 나의 눈이
참으로 흠뻑 젖습니다.
창을 열어 맞아들인
비의 발자국 소리와
집 앞의 숲이 물결치는 소리에
빈 가슴도 젖고 있습니다.
비가 멎어도
바람소리를 단 나무들이
어둠에 잠겨 가는데
이별도 약속도 없는 그대는
깊어진 그리움으로 또렷합니다.
문을 닫으려다
어둠을 돌아서는
나무들의 신음소리에
나도 뒤척이다가
어둠 속에서 솟아나는
몇 그루의 나무를 보았습니다.
아침은 고요하고
시리도록 파아란 모습으로
창밖에 서 있습니다.
아직 그대가 있는 까닭입니다.
가장 어둠 깊은 곳에
..................................................................
전주에서 내리는 비는
전주에 사는 사람들 처럼
순하디 순하게 내립니다.
중국에 내리는 비는
시끄럽고 요란한 중국인들 처럼
요란하고 사납게 내려
모든 것들을 집어 삼키고
때려부수고
짖이기는데
전주에 내리는 비는
뜨겁던 태양에 타들어가던
아스팔트를 곱게 식혀주고
천변을 걷는 사람들의
이마에 땀을 식혀서 말려주는
착하디 착한 비입니다.
오늘같은 비오는 날엔
운동도 쉬고
아파트 11층에서
유리창을 활짝열어 놓고
바람에 날려 들어오는
물보라의 시원한 안개를 숨쉬며
뿌연 하늘을 바라보고
유리창에 붙어서 흐르는 물을 보며
거실 마루끝에 앉아
멍때리는게 제일입니다.
빗소리에 멍때리기보다 더 행복한건 없을 것 같습니다.
내일도 비가 오면
커다란 우산 하나 쓰고
도신경외과까지 걸어서 갔다가
귀뒤 두피에 작은 혹 떼낸 곳의 실밥을 빼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광래와 길주와 만나서
운기가 밥을 산다는 식당으로가서
배부르게 먹고 오렵니다.
'일기처럼 쓸 이야기가 있는 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이소 장보기 (0) | 2024.07.26 |
---|---|
中伏날, 보신탕,,,가마골 보신탕집 (0) | 2024.07.25 |
세상은 뒤숭숭 (4) | 2024.07.22 |
성지 현양 담당 김광태 야고보 신부님 주일 미사 집전 (0) | 2024.07.21 |
엄마의 김치 (1) | 2024.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