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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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처럼 쓸 이야기가 있는 날

전주 한옥마을 시절의 회상

정일웅 찻집 2026. 2. 24. 19:44

 

나와 '경조'와 '성욱'이가 같이 성장하던 소년 시절

6.25가 끝나고 무척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오늘 날, 全州韓屋마을의 중심에

全州市 豊南洞 은행나무 골목이 있고 

당시에 500년 된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밑둥이 어른으로 세 아름은 되었고 키는 20미터도 넘었었다.

그 집이 

全州 崔氏 宗代집이었다. 

'花樹閣'이란 현판이 걸린 그 집을 '은행나무 집'이라 불렀었다.

나는 그 집의 한 칸 방을 셋방으로 들어 우리 식구가 모두 방 한개에서 살았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던 그 시절, 그 마을....

신문사집, 오 건일

대학 교수 아들, 전기영

교육감 아들, 조선정

살구나무집에, 김강원 , 계집애 '우 안옥'

누애고추집..뇌성마비 친구 '김관영'은 나와 참 친했었다.

그 집은 엄청 부자여서 뇌성마비 '관영'이를 일찍 장가를 들였었다.

시골의 아주 예쁜 아가씨와 돈을 몽땅 주고  혼인을 시켜서 아들도 낳았다.

나이는 나보다 다섯살은 위였지 아마?

 

은행나무 건너편 일산가옥에는

전북일보사에 다니던 '오 재근'씨가 '오건일', '오영일', '오숙현',등등 아들 다섯 딸 하나를 키우고 살았었다.

그 집에'

부엌 일을 하러 들어 온 가정부였던 무주 아가씨 '수향(?)'이가 

식모살이를 하고 있었다.

 

김성욱이는 노래를 무척 좋아 하였었다.

하지만 '성욱'이는 음치였다. 음치 이면서도 노래를 좋아하며 자주 불렀다.

성욱이는 전주고등학교에 다녔었고

'전고'의 음악 선샘 별명이 '말 대가리'(박평수 선생님)에게서 배운 노래를 나에게 가르쳐 주었었다.

나는 그의 노래를 듣고 바른 음정으로 알아듣는 능력이 있었다.

나의 머리속에 절대음감 같은 것이 자리잡고 있어서

틀리는 음정을 듣고서도 옳바른 음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실력이 있었다.

 

이탈리아 가곡 '푸니쿠니 푸니쿨라'를 '김성욱'에게서 이태리 원어로 배워서

내가 교육대학교 입학 실기 시험을 볼 때 '픙금치며 노래하기'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었다.

 

오늘

종일 진눈깨비가 내리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 나가기 힘든 날

광래와 길주 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우리 아파트에 와서

상가 지하 '늘 풍성식당'에서 백반을 먹고 헤어져

집에 들어온 후 

 

방에 앉아서 옛 생각에 빠져 온 종일 헤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