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간 피정을 마치고 돌아오신 이 오틸리아 수녀님께서
머위, 드룹,아주 어린 취, 등 봄채소를 곱게도 따서 간직하였다가
곱게 포장하여 미사가 끝난 후
아내에게 주었다고 집에 가져왔다.
수녀님이 어떻게 이런 봄채소를 주실 수가 있을까?
수수께끼 같다.
내년 부활 때 제대 앞에 주님 부활의 이미지를 나에게 그려 달라고 하신다.
초상화를 그려 드린것이...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라도 되는 줄 아시나 보다.
여기 두 외국작가의 작품을 올려 보았다.
나는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서 뭔가 나 나름대로의 부활 이미지를 창작해 내야 한다.
오늘 걷기는 천변 우측을 걸었다.
반환지점인 사평교 옆에 멋진 화장실을 시청에서 잘 만들어 놓았다.
수녀님은 나에게
"오라버님"이라고 부르신다.
황송하다.
이쁘다.
정말 정감있는 수녀님이시다.
정말 나의 여자 동생처럼 귀하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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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스미를 사다가 저녁에
오디주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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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순이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걸어 봤더니 살아 있었다.
서신동 남양 아파트에 산다고 한다.
그가 전주대 1학년 때
박남재 화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
내가 중등학교 검정고시를 보기 위하여
인물 수채화를 그 한태순 학생에게 배운 일이 있었다.
그 때 태순이는 전주대 미술과 1등 장학생이었었다.
대학교 1학년 에게 선생님이던 내가 수채화를 배웠었다.
그 솜씨로 전북 1등의 실기 합격을 하지 않았던가
1000명에서 3명 합격.....여자 둘에 남자는 나 한 사람....
내가 1등이어서 8월에 합격하고 11월에 합격자 발표하고
11월 23일까지 남원 아영중학교 선생님으로 전격 발령이 났었지
청웅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나는 5학년 여학생들과 눈물로 이별을 하고
중학교로 신분상승하여 이동하였다.
그 공로의 1등 공신이 '한태순'학생이었다.
한태순도 나중에 미술교사가 되어 같이 교사생활을 하였었다.
착하고 재주 많은 사람....그가 건강하게 살고 있음을 확인 했고 금년에 72세라 한다.
세월 정말 무심히 흘렀다.
내가 그려 보다가 어려우면
태순이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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