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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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란처럼 살아온 나의 이야기/17. 돌무덤에 핀 들꽃

17. 돌무덤에 핀 들꽃

정일웅 찻집 2016. 7. 6. 14:27

17. 돌무덤에 핀 들 꽃

 

6학년이 되고서 한 달이 더 흘렀다.

45일 식목일이 되었다.

강진 면사무소에서 리기다소나무와 밤나무 묘목을 한 리어카 가득 싣고 왔다.

 

학생들은 모두 괭이와 호미를 들고 나와 식목 행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하였다.

 

워낙 일을 잘하고 부지런한 아이들이라 점심시간이 채 못 되어 식목 행사를 다 마치고 학생들을 하교시키고 선생님들은 한가한 마음으로 마을의 막걸리 파는 가게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하얀 체육복 바지와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작업을 하였기 때문에 나는 그대로 동료 교사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나는 워낙 술을 잘 마실 수 있는 체질을 타고났는지 남들보다 두 세배는 더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점심때가 훨씬 기울 때까지 신 김치 한 가지에 술을 마셨기 때문에 모두 거나하게 추하여 콩팔칠팔 주변 잡담을 늘어놓고 있을 때였다.

 

후닥닥 가게 안으로 뛰어드는 발소리 소리에 돌아보니 영환이었다.

 

영환이는 얼마나 빨리 뛰어 왔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 미처 말을 못하고 있었다.

 

"................"

"......... 라니 뭔 말이여!?" 나는 순간적으로 섬뜩한 느낌을 받았지만 별일이 아니길 기대하며 물었다.

 

"......선생님!" 그는 계속해서 나를 불렀다.

 

나는 장난기 어린 말투로

 

"내가 서선생이냐? 얌마 내가 정 선생인지도 몰라? 야가 시방 즈그 담임 선생 이름도 잊어 먹었능개비네!"

이렇게 말하여도 영환이의 표정은 긴장을 풀지 못하고 계속하여

".........."

하며 말꼬리를 끄집어 내지 못하고 있었다.

 

".........라니? 너 쐬주 마셨냐?"

가까스로 진정한 영환이는 눈이 공포에 질린 것처럼 커지면서 말을 이었다.

 

"선생님 크..큰일 났어라우"

영환이의 이러한 태도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항상 능글능글 농담도 제법 잘하고 신중한 아이인데 그 아이의 표정으로 보아 진짜 범상치 않은 긴박한 일이 일어낫구나 하는 느낌과 함께 갑자기 술이 확 깨는 긴장이 나의 가슴속에서 일어나며 여기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직감이 나를 움직였다.

 

나는 영환이의 손을 잡고 영환이가 이끄는 곳으로 무작정 뛰기 시작하였다.

심상찮은 두려움과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 것 같은 걱정에 가슴이 뛰었다.

 

영환이는 나를 끌고 학교 뒷산 골짜기 길로 향하고 있었다.

그 길은 산꼭대기의 산막이라는 곳에 이르는 길인데 그곳에는 외딴집 한 채만 있을 뿐이다.

그날 일어난 일은 다시 돌이켜 생각하기 싫은 실로 끔찍한 일 이었다.

 

우리 반 급장인 남숙이는 식목 행사를 마치고 자기 집에서 일찍 점심을 먹고 뒷산에 나물을 캐러 가기 위하여 나물 캐는 칼과 바구니를 들고 큰아버지가 살고 있는 산막에 올라갔다.

산막에서 한 봉을 키워 생활하는 큰아버지의 집에는 자기의 사촌 동생인 한 살 아래의 영숙이가 있었다.

큰 집 대문에 다다른 남숙이는 자기의 동생을 불렀다.

"영숙아-!"

"남숙이 왔냐? 어서 들어오니라. 같이 밥 묵어라!"

대나무 껍질로 엮어 만든 방문이 밀려 열면서 남숙의 큰아버지가 인자한 목소리로 반겨 준다.

"언니! 들어와! 같이 밥 먹게"

사촌 언니를 무척 따르는 영숙이가 밥을 한 입 입에 문 채로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큰 아빠! 저는 방금 밥을 먹고 왔어요. ‘영숙이랑 나물 캐러 가려고 왔어요."

마음씨 착한 남숙이의 큰아버지는 남숙이를 자기의 딸 이상으로 귀여워하였다.

"영숙아! 나는 밥 먹고 왔으니까 여기서 팔방하고 있을게 빨리 밥 먹고 나와 잉!"

 

남숙이는 나물 칼로 마당에 큰 직사각형을 그리고 나서 직사각형의 안쪽을 다시 길게 둘로 나누어 그린 다음

가로 쪽으로 전체를 5등분 하여 금을 긋고 전체가 정방형 열 개로 나누어 진 것을

 

중간의 두 사각형에 오른쪽의 하나는 세로 쪽으로 중앙에 수직선을 그어 둘로 나누고 왼편의 사각형은 오른쪽 윗 모서리에서 왼편 아래쪽 모서리까지 대각선을 그어 이등분하였다.

 

울퉁불퉁한 마당엔 팔방에 쓰는 표면이 매끄러우면서 작고 납작한 돌들이 몇 개 흩어져 있었다.

 

남숙이는 그 돌들 중 하나를 발로 밀고 와서 오른쪽 첫째 칸에 놓고 깨금발로 툭 차서 윗간까지 가게 한 다음 깨금발로 다시 깡총 뛰어서 땅에 짚은 오른 발이 팔방 돌 앞에 있게 한 다음 또다시 돌을 톡 차고 나아가는 놀이를 혼자 연습하고 있었다.

 

세 번째는 이등분된 칸을 지나서 그 윗간에 돌이 가도록 하여야 하기 때문에 좀더 세게 차야 한다. 팔방 놀이에 익숙한 남숙이는 발부리 쪽에 놓인 돌을 깨금발로 톡 밀어 찼다.

그러나 그 순간 발부리 앞에는 땅에 박힌 뾰족한 돌 뿌리가 나와 있었고 그 돌은 앞으로 기운 남숙이의 몸을 지탱할 오른쪽 발목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아 버렸다.

 

순간적으로 남숙이는 몸의 균형을 일고 앞으로 쓰러져 갔다 반사적으로 땅을 짚으려는 남숙이의 오른손에는 끝이 뾰족한 흙 묻은 나물 캐는 칼이 쥐어져 있었다.

 

순간적인 긴박감에 남숙이의 손엔 힘이 들어갔고 꼭 검어 쥔 나물 칼은 손이 땅에 닿는 순간 수직으로 곤두서고 그 위에 균형을 잃은 남숙의 몸이 덥석 덮쳐 버렸다.

 

손에 쥔 칼은 사정없이 남숙이의 목에 꽂혀 버렸고 쓰러진 남숙이는 ''하는 외마디 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밖에서 '' 하는 소리가 들리고 인기척이 없어지자 남숙이의 큰 아버지는 불안한 예감으로 방문을 밀쳐 열었다.

이게 어인 일인가? 남숙이가 목에서 울컥 울컥 피를 쏟아 내며 엎어져 사지를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이다.

 

‥‥‥‥!‥‥아이‥‥!..‥‥이 게 .. 이 게 ‥‥어 쩐 일 이 여‥‥‥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눈앞이 깜깜하여 어떻게 하여야 할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밥을 먹다가 마루에 뛰쳐나온 영숙이는 믿을 수 없는 이 참담한 광경에 두 손을 오그려 얼굴에 대고 미친 듯 소리를 질러 댔다.

 

'-----' '-----' 날카롭고 하늘을 찌르는 영숙이의 비명 소리는 온 산에 메아리쳐 산골짜기로 울려 퍼져 갔다.

 

넋이 반쯤은 빠져나간 남숙의 큰아버지는 서까래에 매달아 놓은 담배 잎사귀를 한 움큼 뜯어 들고 남숙이 에게 달려가 피가 솟아나는 목의 칼 꽂힌 부분을 담배 잎사귀로 누르고 목뒤와 두 다리의 오금장이에 양팔을 걸어 남숙이를 들어 안고서 온 몸에 힘이 빠져 축 쳐진 남숙이를 안고 정신없이 산을 내려갔다.

 

혼이 반쯤 나간 영숙이는 온 산을 찢는 비명을 지르며 자기 아빠보다 앞서 산 아래로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영환이는 앞산 중턱에서 땔나무를 줍다가 영숙이의 비명을 듣고 뛰어가 피투성이가 된 두 사람의 끔찍한 모습을 보았고, 발이 빠른 그는 정신없이 뛰어서 나에게 달려 온 것이었다

 

영환이와 내가 뛰어 산의 중턱에 이르렀을 때 지칠 대로 지쳐 거의 쓰러질 것 같은 영숙의 큰아버지가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축 늘어진 남숙이를 안고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남숙이의 몸을 받아 안고 산 아래로 뛰기 시작하였다.

 

남숙이의 모습은 실로 끔찍하였다.

녹슨 칼날이 아직도 목에 꽂혀 있고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과 흰색 블라우-스가 온통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남숙이는 눈을 뜬 채 나를 보고 있었으며 얼굴이 백지처럼 창백하고 입술이 푸르게 변해 가벼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남숙이는 보기보다 가벼웠다.

남숙이를 받아 든 순간부터 나의 하얀 와이셔츠와 흰색 바지는 피로 물들었다.

 

꺼져 가는 하나의 생명이 나의 품에 안겨 있음에도 그를 소생시킬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 하는 절망감과 안타까움에 나의 가슴은 저미는 듯 아팠다.

 

죽음이 임박한 것을 스스로 알고 있는 남숙이는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가쁜 숨을 간간이 몰아쉬며 힘없는 동공으로 나를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남숙아! 넌 살아야 돼! 조금만 이대로 살아 있어 다오..."

 

‥‥‥‥‥‥‥‥‥‥‥‥ ‥‥‥‥..."

 

"남숙아! 아무 말 하지 마 가만히 있어 넌 살아야 돼!"

 

나와 남숙의 큰아버지가 마을 앞에 이르렀을 때는 앞서 뛰어간 영숙이와 영환 이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은 교사들과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휘둥그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경악하고 있었다.

들에 나갔던 남숙이의 아버지가 넋이 나간 사람 마냥 뛰어 왔다.

 

남숙이의 아버지는 평소의 침착성을 잃고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은 그는 군중 속의 자기 사촌 동생을 발견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어이 동생 얼른 소 구루마 좀 챙기소! 빨리 갈담이라도 가 봐야겄네"

 

교통수단이라고 해야 소달구지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금방 꺼져 가는 생명을 초조하게 바라보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안타까움에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달려들어 소달구지에 소를 채우고 달구지 위에 가마니 한 장을 깔았다.

 

나는 남숙이를 안은 채 달구지에 앉았다.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덜컹거리며 달구지가 굴러 간다 남숙이는 완전히 힘이 빠져 사지가 축 늘어진 상태로 가끔씩 가래 끓는 숨소리만 낼뿐이었다.

 

달구지가 마을 어귀를 빠져 나와 행길에 나와 갈담 쪽으로 향하여 몇 발자국이나 갔을까 했을 때 갑자기 남숙이의 손과 발이 쭉 뻗어 힘을 주며 눈을 커다랗게 뜨고서 푸른 입술이 몇 초 동안 경련을 일으키더니 마치 풍선에 공기가 빠져나가듯 온몸이 축 늘어져 버렸다.

 

나를 바라보며 눈을 뜬 채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몸이 점점 차가워짐을 느끼며 나의 눈에선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목에서 흐르던 피가 멎고 숨소리도 완전히 끊겼다.

"남숙 아버지! "

남숙이의 눈을 쓸어 감기며 나는 남숙이의 아버지를 불렀다.

‥‥‥ 그냥 집으로 돌아갑시다. 끝났네요"

소달구지를 멈춘 남숙의 아버지는

"불쌍한 것! 불쌍한 것"

어허어어----.....어쩔껄거나--”

비통한 마음에 억누를 수 없는 슬픔을 토해 내고 있었다.

 

어머니 없이 고독하게 자라 온 딸에 대한 연민이 더욱 그의 마음을 찢고 있었다.

어머니 없는 초라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곱고 깔끔하게 자라도록 아침마다 곱게 벗겨 주던 그 곱던 긴 머리카락에 선혈이 낭자하여 주검으로 변한 현실이 도저히 믿어지질 않았다.

 

열세 살 나이답지 않게 부지런하고 인정 많던 딸아이가 이다지도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그 생명을 잃다니 ‥‥

 

유일한 생의 즐거움이요 희망이며 위안이었던 딸이 가 버리면 삭막한 집안에 홀로 남아 고독한 생활을 어떻게 보내야 한단 말인가?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위하여 또 무슨 재미로 농사를 짓고 일을 한다는 말인가?

 

달구지 방향을 마을 쪽으로 돌리던 남숙의 아버지는 가까스로 진정하던 울음을 끝내 참지 못하고 온 얼굴을 쥐어짜는 듯 일그러뜨리며

'어허허어∼ㄱ --.....'소리를 내어 심장의 가장 깊은 곳에 감춰진 오열을 토해 내기 시작하였다

 

잠자는 듯 평화로운 꿈을 꾸는 듯 조용한 딸의 뺨을 두 손으로 잡고 딸의 이마에 자기의 뺨을 비벼 대며 목 노아 울고 또 울었다.

 

슬픈 황소의 울음소리처럼 그의 오열하는 소리는 뒤따르던 모든 사람들을 울려 놓고 말았다.

 

'남숙'이의 시신을 태운 달구지가 '남숙'이의 집 앞에 이르렀고 들에서 일하던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남숙'이와 같이 지내던 우리 반 아이들도 댓 명이 몰려와 '남숙'이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고 있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의 울음소리는 더욱 비통하였다.

 

"너같이 얌전하고 착한 아이가 왜 이렇게 죽어야 한단 말이냐"

 

"니 아버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라고 이렇게 죽는단 말이냐?"

 

"아이고 불쌍 혀라---"

 

"복도 지지리도 없는 것---"

 

 

"우리 이장님 ! 인제 먼 재미로 살아 간디야--"

 

비통한 울음 가운데 붙여 넣는 사설들은 우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어린이가 죽으면 밤을 새우지 않고 당일에 장례를 치르는 것이 이 마을 관습이었다.

시신을 관에 넣지 않고 멍석에 말아 학교 뒤편의 아장터에 놓고 근처의 돌을 주어 시신 위에 쌓아 돌무덤을 만드는 것이 이 마을의 관습이었다.

 

'남숙'이의 장례도 이 마을 관습에 따랐다.

 

마당에 아직 사용하지 않은 멍석을 깔고 시신을 뉘었다.

목에 꽂힌 칼을 뽑았다 녹슨 칼은 잘 뽑히지 않았다 한 생명을 앗아간 비정(非情)의 칼날은 5cm 정도나 깊이 박혀 있었다.

 

대야에 물을 떠서 피로 범벅된 머리와 얼굴을 씻고 학교에 다닐 때 즐겨 입던 하얀 원피스를 갈아 입혔다. 빗으로 머리를 곱게 빗겼다.

하얀 얼굴이 잠자는 천사처럼 고왔다.

도저히 죽어 있는 아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평화롭게 잠든 모습이었다.

 

'남숙'이가 쓰던 책과 학용품을 책보에 싸서 가슴에 안겨 주고 멍석으로 시신을 감아 새끼줄로 묶었다.

힘이 센 '김 판바우' 아저씨가 지게를 가져와 시신을 지게에 지고 학교 운동장까지 왔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코 흘리는 어린애들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초라하고 짙은 슬픔에 눌린 운구 행렬에서 동정과 연민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 학교 뒷산의 '남숙탑' 아래로 가서 시신을 내려놓았다.

행렬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주위에서 돌을 주어 멍석의 주위에 쌓았다.

'영환'이는 커다란 소리로 ' 엉엉' 울면서 부지런히 돌을 날라 왔다.

 

쌓이는 돌에 멍석의 표면이 감춰지는 동안 '남숙'의 아버지와 큰 아버지,그리고 '영숙'이는 땅에 주저앉아 비통하게 울었다.

 

돌무덤 이 완성되었다.

 

동네 어른들은 '남숙'의 아버지를 억지로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고 집으로 향하여 내려갔다.

 

동네 사람들도 모두 뒤따라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영환'이와 나와 '죽원'(竹園)에 사는 '동섭', '강수'만이 남아 무덤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덤 주위에 망울진 진달래 꽃나무가 무수히 산재해 있었다.

 

노란 꾀꼬리 한 마리가 굴밤나무 위에서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선생님 !"

'영환'이가 나를 불렀다. 눈물 흘러내린 자국으로 눈과 뺨 주위가 발그레한 피부를 드러내고 닦여져 있었고 이제 눈물은 말라 있었다.

"선생님! 매똥이 너무 배기 싫어라우! 남숙이가 진달래 꽃을 좋아 했응개 진달래 꽃을 꺾어다 꽃아 주먼 좋겄는 디요!"

"!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동섭'! '강수'! 우리 무덤을 꽃 무덤으로 만들어 주자!"

우리 네 사람은 근처의 진달래꽃을 꺾어 돌무덤의 돌 틈에 꽂기 시작하였다.

 

무덤은 점점 화사한 꽃동산으로 변하여 갔다. 해가 뉘엿뉘엿 죽원 뒷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산을 넘는 붉은 햇빛을 받아 무덤 뒤 큰 바위 위의 남숙탑이 빛나고 있었다. 진달래 꽃 돌무덤은 모든 슬픔과 고통을 고요 속에 감추고 지는 해와 함께 정적 속에 잠들고 있었다.

 

예쁘고 착한 아이, 항상 고요한 웃음과 맑은 마음으로 모든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던 착한 아이, 항상 단정한 용모에 긴 머리카락이 유난히도 윤기 흐르며 단정한 아이, 우리 반의 급장으로써 모든 일을 솔선수범하던 믿음직스럽던 그 착한 아이가 싸늘하고 무거운 돌에 묻혀 다시는 볼 수 없는 저 먼 하늘나라로 가 버렸다.

 

돌무덤에 핀 진달래꽃을 바라보며 세 아이와 나는 모두 꽃송이에 '남숙'의 얼굴을 그려보다가 텅 빈 가슴을 안고 마을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