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새신랑 달구기
1973년 6월 19일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신랑신부는 첫날 처가에서 자고 다음날 시댁으로 간다고 한다.
처가에 도착하여 그 동안 우리의 결혼을 그렇게도 반대하였던 사람들을 만났다.
한 결 같이 착하고 소박한 사람들이었다.
그토록 반대를 하고 시집가는 딸을 원망도 하였던 장모님도 주안상을 걸게 장만하여 신랑신부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그렇게도 고통스럽게 반대를 하던 이들의 표정이 며칠 사이에 바뀌어 우리를 반갑게 맞으며 사랑스런 눈길로 대하여주고 있었다.
작은어머니들과 처가의 처남들과 골짜기 마을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커다란 구경거리라도 생긴 것처럼 마당에 그득하게 모여 있었다.
처 작은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에게 줄 선물보따리를 두툼하게 들고 들어가는 나와 '우남'이는 마치 개선장군이나 된 것처럼 어깨가 으슥하였다.
"하이고 징그랍게도 고집 피더니만 기연시 이 집 사우 되고 말었그만!!!"
작은어머니는 나의 등을 두드리며 반가운 인사를 그렇게 하였다.
"아! 성님이 정서방 첨에 왔을적으 암만 생각히도 둘이가 수상혀서 깨져 뻔지라고 밥상에다 날계란을 두개나 놨는디 밥상 받자마자 첨부터 날계란을 '콱' 깨서 먹길래 '옳채! 잘 되얐다.
깨지야지!!!'험시롱 좋아혔단디.....그렁것도 암 소양 없능 개벼 기연시 딱 붙고 말었자녀??"
둘째 작은 어머니가 옛날을 회상하며 말하였다.
"아이갸!! 동상!! 그런 소리 멀라고 혀!!!"
장모님이 자기의 동서를 찔벅 거리며 말하였다.
"아이! 정서방! 자네 말이여! 인자 우리 한 집안 갠숙(권속=한 식구) 되았승게 잘 지내더라고!!"
첫째 작은아버지의 장남인 '병춘'이가 나에게 악수하는 손을 내 밀었다.
내가 알기로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나이인데 손위 처남이라고 반말을 하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처남이 한둘이 아니었고 동네에 사는 총각들이 수없이 모여들었다.
"야! 오늘 우남이 신랑 달구어 먹어야는디 모다 댈꼬 와!!"
"오늘 잘 다뤄먹지 않으면 딴 때는 잘 만나도 못 헐팅게 한번 잘 다뤄먹더라고!"
많은 총각들과 처녀들 그리고 동네의 아주머니들이 모여들어 신랑신부의 거동을 관찰하려 마루에까지 사람이 그득하였다.
장인과 장모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술을 한 잔씩 올린 다음 동네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 그리고 처가 당숙과 당숙모에게까지 인사를 여쭈고 나자 드디어 동네의 청년들이 들이닥쳤다.
작은 집의 큰처남, 작은처남, 둘째 작은집의 처남들, 동네 일가친척들, 동네에 시집온 새댁들, 이웃집에 사는 엄서방네 식구들, '우남'이와 나이가 비슷한 동네 처녀들까지 그리고 동네 꼬맹이들이 큰 구경거리나 생긴 양 모두 모여들었다.
커다란 교자상에 돼지고기 수육과 각종 나물 떡과 전 각종 김치 젓갈과 밑반찬 과자 등이 골고루 놓여있었다.
정작 나를 다뤄먹겠다고 벼르고 모여든 청년들이 쉽사리 접근을 하지 못하였다.
'우남'이의 나이를 생각하면 신랑인 나는 여덟 살이나 위여서 나에게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눈빛이었다.
'우남'의 사촌오빠들이 대부분 나보다 서너 살도 더 연하인 사람이 많았고, 나의 위압감을 주는 첫인상이며 큰 덩치, 큰 목소리에 압도되어 쉽게 신랑 다루기를 시작하지 못하였다.
....................
'우남'과 나는 분위기를 살리기 위하여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자! 처남님들! 그리고 동네 청년분들! 모두 들어와서 한 잔 합시다.... 산랑을 달구어 먹을라면 빨리빨리 들어와서 한 잔 씩 들 혀야지 어디 이렇게 수줍어각꼬 신랑 달궈먹을 수 있것소???"
주객이 전도되어 나와 '우남'이 직접 손님들의 손을 끌어 방으로 안내하여 앉혔다.
방이 비좁았지만 끼어 앉고 등 뒤에 붙어 앉아서 방안이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들로 꽉 들이찼다.
하는 수 없이 신랑인 내가 먼저 분위기를 주도하였다.
"자! 오늘은 처갓집에 처음 들어온 새신랑 선보는 날 인디 먼저 신랑신부를 위한 건배를 합시다.!"
"모두 막걸리면 사발에 소주면 소주잔을 가득 채웁시다.!" 주전자와 술잔이 오가고 분위기는 차츰 고조 되어가고 있었다.
"자!!! 오정리의 최정태씨 딸 '최우남'신부와 임실 국민학교에 근무하는 신랑'정일웅'이가 결혼하여 행복하게 자알 살기위하여 건배!!!"
나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건배제의를 하였다.
"건배-!"
모두들 어쩔 수 없이 나의 건배제의에 건배를 외치고 한잔씩 마셨다.
"자! 다음에는 새 신부가 한잔씩 올리겠습니다.!!"
'우남'이가 맑은 목소리로 말한 후 일어서서 오빠들과 친척들에게 돌아가며 술을 권하였다.
동네 처녀를 도둑질 해 갔다고 죄인처럼 문초를 받고 벌을 서야할 신랑이 오히려 사회자가 되어 분위기를 조성하고 농담을 하여 사람들을 웃기는 사태를 아무 저항 없이 따르는 모습이 정말 순박하였다.
이리저리 술잔이 오가고 있을 때 나는 사촌 큰처남인 '병춘'이에게 술을 권하였다.
"자! 처남! 새신랑 술 한 잔 받으시오!!!"하며 큰 물 컵을 내밀고 대두병의 수주를 '꼴꼴꼴' 딸아 부었다.
"흐이!!! 이게 머여!! 정서방!! 시방 소주를 이렇게 따르는 거여??"
"헤에-! 처남도 멋을 각고 그렇게 놀란디야!! 사나이면 사내답게 한잔 혀야지!!"
"자! 처남! 나도 한잔 주시오 우리 건배한번 합시다.!"
나도 물 컵을 그에게 내밀고 소주병을 건네어 주었다."
그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술을 가득 따랐다.
"자! 건배!!"
두 사람의 소주잔이 '쨍'하고 부딪치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 졌다.
나는 막걸리를 마시듯 소주와 공기를 함께 들이마셔서 액체가 목젖을 넘어 갈 때 '꼴까닥 꼴까닥'소리가 나도록 하며 맛있게도 먹었다.
"자! 이제 이 잔이 오른쪽으로 돌아갑니다.!!"
나는 물 컵을 오른편 처남에게 돌리며 소주를 부었다.
그는 기가 질린 듯 잔을 받는 손이 자꾸 위로 올라가며 조금만 딸기를 바랬다.
............................... 마루에서 나의 술 마시는 것을 본 장모님이 놀랐는지 '우남'에게 자꾸만 당부하는 소릴 들었다.
"야1 우냄아! 저 정서방 술 쪼개만 맥여라!"
"저렇게 먹다가 먼일 나는 거 아녀?"
마루위에서도 작은 상에 여러 가지 음식상을 차려서 먹기에 한창이었고 마당에 깔아놓은 멍석위에서도 작은 아버지와 동네 아저씨들의 주안상이 벌어졌다.
수 없이 술잔이 오고가고 모두 취하여 분위기가 한창 시끄럽게 무르익었다.
..................
한동안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한 마디 하였다.
"여러분!! 새신랑을 달아 먹을 라면 둘이 노래라도 한번 시켜야 허는 거 아니요??"
"거참 아무도 노래를 시키는 사람도 없승게 우리가 자청해서 한번 불러 볼 라요!!"
"자!!! 박수! 갈기라우!!!"
박수를 치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헤이! 참 ! 박수가 이렇게 생겨 각고 어디 신랑신부 노래 듣것능기라우?? 한 번 더 세게 갈겨 보시라구요!!! 자!! 박수------!!"
억지로 박수를 유도하여 마당에 있는 사람들까지 조용하게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자 신랑 신부가 사랑의 노래를 부르겠습니다.!"이렇게 말하고서
나는 '우남'을 일으켜 세우고 '라나에로스포'의'사랑해'라는 노래를 듀엣으로 불렀다.
'사-랑해 당신을--(음-음-).....정-말로 사-랑해-(음-음-음-음-)'... ........
한 소절의 마지막 가사가 길게 소리를 끄는 나의 굵은 바리톤음색에
'음-음-음-음-'하면서 3도 음정으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우남'의 청아한 허밍(콧소리)반주는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엉겨붙는 화음이었다........
'당신이 내-곁을--(음-음-).....떠나간 뒤--엔--(음-음-음-음-)'
'얼마나--눈물-을 흘렸는지 모르다오__' 여기부터는 이중창으로 불렀다.
......예예예- 예예예,예예예-,예예예,예예예,예예예,예예예,............................
.....내가 '예-예-예-'를 굵은 톤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동안 '우남'은 청아한 소리의 '우---'사운드로 '사랑해 '노래의 주 멜로디를 깔아 화음을 맞춰 주었다.
마지막 부분은 점점 여리고 느린 효과를 내며 불러야 한다.
'사랑해--당신-을 정---말로- 사--랑-해---'의 2중창을 할 때 단3도 화음의 간지러운 여운이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바로 이어서 '우남'과 나의 표정은 돌변하여 딱딱한 인상으로 관중들을 얼떨떨하게 만들고 나서, 서로 등을 돌려 험상궂은 인상을 하고서 고개만 돌려 서로를 노려보면서 노래는 계속된다.
멜로디는 1절에서의 안단티노(조금느리게)가 갑자기 '알레그레토(조금빠르게)'로 변한다.
'미워혀 당신을.(여기서 스타카토로 끊고 서로에게 욕을 하듯이 입을 비뚤며 눈을 치뜨고 흘기고 온갖 엽기적 표정을 다 보낸다.)
이런식으로 노래는 계속된다.
정말로 미-워-혀--!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엔'!.
노래가 계속되는 동안 '우남'과 나의 돌발적인 연기와 표정에 모든 사람들은 뱃살을 검어 쥐며 웃어댔다.
'하이고 어쩌면 저런디야 히히히히 하이고메 웃겨서 참말로 죽겄네----'
'저 얼굴조깨 바바!! 하하하하하하 배꼽 빠져 달아나겄네 참말로 사람죽이네 ---하이고야!!!'
우리는 관중의 표정을 살펴가며 더욱 엽기적인 표정을 지어갔다.
'얼마나-- 이-빨--을 갈았는지 모른다오--'하고서는
예예예--를 하는 대신에
'빠드드 드드드 득득득 빠드드 득득득---'하며 이빨가는 표정을 하며 노래를 부르는 동안 분위기의 웃음바다는 절정을 이루었다.
'오매오매!!! 어찌야오려!! ' '우냄이가 왜 저런디야 자가! 자가! 왜 저러코롬 사람을 윗긴디야!'
'신랑조깨 봐!! 저놈의 눈깔 튀어나와 뻔지겄네 히히히히 ---------'
어떤 부인네들은 방바닥과 마루에서 뒹굴며 웃어댔다.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가서
'미워해'를 다시'사랑해'로 바꾸어 부르면서 표정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단삼도의 아름다운 화음으로 마지막을 장식하였다.
빠르던 노래가 랄렌탄도(점점느리며 약하게)로 끝날 때, 우리 두 사람은 활짝 웃는 표정으로 서로 포옹을 하였다.
관중들의 박수가 그칠 줄 모르고 쏟아져 나왔다.
...............................
웃음소리는 노래가 끝나도 계속되었고
"하이고 정서방 직업 잘못 택혔고만 코메디 혀얀디 선생은 잘못 혔능게벼!!!!"
"참말로 사람 윗겨서 죽이능구만 "
"아이갸!!'우냄'이가 그렇게 윗길종(웃길 줄) 몰랐네 천상연분이시!!"
"하고 야야! 참말로 밸 것 덜이네!. 그 정서방 저리 각고 학상들을 어찍게 갈친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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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의 '신랑다루기 잔치'는 시골의 순박한 사람들에게 우리 부부의 천생연분임을 과시하는 계기가 되었고 작은집의 식구들과 동네의 친척들에게도 좋은 인상으로 합격점을 받는 행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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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도록 오정리 꼴짝집엔 집이 생기고 처음 온 집안 구석구석까지 활기찬 웃음소리가 베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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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며 세월이 가고 '최우남'은 나의 진정한 아내로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성실하고 건강하였으며 시댁의 모든 사람들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하였다.
나의 누나가 조카 셋을 데리고 친정어머니에게 왔다.
갑자기 식구가 불어난 현실을 '우남'은 아무런 불평 없이 잘 받아들이고 이들을 위하여 성의를 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