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정년 퇴임식
아내 최 우남이 나의 퇴임식에 와서
단상에 올라와 내 곁에 나란히 앉았다.
힘든 결혼에서 시작된
모진 어려움들..... 슬기롭게 헤쳐 나가며 살아온 세월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머리에 기계독이 허옇게 번져
대가리 곰팡난 놈이......
바위틈에 뿌리 내린 풍란처럼...
죽지 않고 살아
학교를 다니고
교육대학 학생이 되고
논 벌판의
가마니 교실에서 시작한 교단생활......
수많은 고비마다
주님의 숨은 손이 나를 끌어 주셨고
건강한 몸으로
정년퇴임을 하게 된 것도 모두 주님의 은혜이다.....
지사중학교 제자들이 찾아오고
초등학교 제자들도 찾아 주고
퇴직하신 '주 동식' 장학관님이 반갑게 찾아 주셨다.
교장 동기생들....‘권 홍주’ ‘윤 덕현’.....아직 현직에 있는 친구들이
찾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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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식이 끝나고
전 직원과 참석자들을 위한 점심식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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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헤어지고
아내와 둘째 '인범'이 내외와 손자 '승민'이와
집으로 돌아오는 내 어깨는 갑자기 허전할 정도로 가벼웠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다가
짐을 푸고 지개를 버리고 내려오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가벼움을 형언 할 길이 없을 정도로
홀가분하였다.
아!
내가 짊어 졌던 짐이
그렇게도 무거웠던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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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나의 뒤를 돌아보며
미련을 갖지 않으리라.
이제 모든 것들은 나의 후배들이
더 낳은 세상을 열어 갈 것이다.
다시는
교단생활에
간섭 하지도,
참견 하지도 않고
깨끗하게 잊으리라...... 다짐 한다.
세월이 흐르고
흐르는 세월은 모든 걸 씻어내고
기억의 단상들도
뭇 사람들의 뇌리에서 희미하게 지워질 것이다.
세월의 강물은
쉼 없이 흘러
나를 태운 일엽편주는
벌써 아득한 저편에
흘러갔고
이젠
그 옛날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시간에
나의
영혼도
그렇게 소리 없이 내게서 떠나갈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생의 고비마다
절망 직전의 순간마다
내 의욕에 상관없이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내 손을 잡고
방향을 이끌어 주던 그 신비로운 손
그 손은 하느님의 손길이었음을 믿는다.
그 때마다
나도 모르게 부르짖던 기도!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는 이 화살기도를 퇴임식을 마친 마지막 순간에 주님께 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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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도록 나에게 용기를 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나의 사랑하는 아내와
나의 자식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정일웅 자서전”을 이상으로 마칩니다.>